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0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00화(600/675)
스륵.
그녀의 피부가 갈라지고, 극독이 상처를 타고 혈관으로 흘러들었다.
세운이 당장 치료를 해 주려 하였지만,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고는 그 끔찍한 고통에 몸을 움츠리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여기서 처음으로 일이 일어났어요. 너무나도 사소한 일이었어요. 이 나뭇잎에 손끝이 스쳤을 뿐인데, 극독이 전신에 퍼져나갔어요.”
“치료는…….”
“물론, 바로 했죠. 각종 해독 포션을 사용하고 상처도 회복했어요. 당장 통증이 줄어들기에 안심하고 계속 길을 걸었어요.”
“다른 사람은 괜찮았나?”
“네. 다들 더욱 조심했거든요. 제 행운 덕분인지 쉬운 길도 발견할 수 있었구요.”
둘은 목의 길을 나란히 걸었다.
주의점을 알았기에 장비로 몸을 가렸지만, 이곳의 독은 닿아야만 감염되는 게 아니었다.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나비는 독 가루를 퍼트렸고, 아름다운 꽃에서 터져 나온 꽃가루 역시 독을 품고 있었다.
“역시 제 행운만 있으면 걱정 없다고. 그렇게 말하며 금방 길을 돌파했어요. 다들 독을 주의하느라 남을 관찰할 틈도 없이.”
목의 길은 길었다.
몬스터가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지만, 차라리 몬스터가 튀어나와 난동을 부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위협적인 요소가 주변에 가득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극독에 노출된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다 목의 길을 탈출하기 직전에, 그녀가 팔을 올렸다.
“팔이!”
그녀의 팔은 중독되어 있었다.
처음 손끝을 통해 온 극독이 팔을 썩히고, 고름을 퍼트렸으며, 피부를 푸르게 했다.
“목의 길을 나왔을 때 모두가 환호했어요. 그리고 보았어요. 마지막으로 나온 친구가 몸이 퉁퉁 부은 채로 가까스로 목의 길을 빠져나와…….”
“당장 치료하자.”
“어찌 손 쓸 틈도 없이 쓰러지는걸요.”
세운이 곧바로 그녀의 팔을 회복시켰다.
8서클에 이른 백마법은 잘린 신체도 회복이 가능할 수준이었기에,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그녀를 회복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면역력도 꽤 뛰어난 덕분에 독이 팔 이상으로는 퍼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명을 잃었어요. 너무나도 허무하게.”
“……차라리 그때 돌아가는 게 낫지 않았나?”
“동료의 희생을 허무하게 넘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돌아가려면 목의 길을 다시 거쳐야 했으니까요.”
“그렇겠지.”
“그렇게, 다음 길을 걸었어요.”
오행의 길, 그 두 번째.
화의 길.
81층에서 그랬던 것처럼, 83층의 초입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뜨거운 불길이 도전자를 집어삼키려 일렁이고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사방에 넘실거리는 용암 위로 발 반쪽을 겨우 올릴 정도로 튀어나온 돌조각들이 길이었다는 것.
“위험했지만, 다들 자신 있었어요. 누가 뭐래도 83층까지 올라온 우리였으니까요. 동료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 힘썼죠.”
“가지.”
그녀의 팔이 모두 회복되고, 둘은 화의 길에 발을 올렸다.
까치발을 들어야만 발을 디딜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돌다리에, 양옆으로는 용암이 들끓고, 위로는 열풍이 불어 균형을 잡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중간까지는 걱정 없었어요. 서로서로 도와주며 어떻게든 길을 걸었어요. 그리고, 그때.”
콰앗!
“뜨거운 용암이 저희 중 하나를 집어삼켰어요.”
세운과 아르카나의 사이로 용암이 뿜어나왔다.
무작위로 뿜어져 나오는 용암.
평상시라면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이 작은 돌조각 위에서는 전사든 마법사든 할 것 없이 막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재해였다.
“어떻게 해 볼 틈도 없었어요. 도울 틈도 없이, 꼼짝없이 한 명을 잃었어요.”
“……그게 던전이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자신이 없으면 곧장 등을 돌려야만 했다.
동료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아니다. 여기서 도망쳐 목숨을 유지하는 게 동료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그들은 83층까지 올라왔으면서 어째서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83층까지 올라오며, 운이 너무 좋았던 탓이다.
“구할 수도 없었어요. 말 그대로 즉사였거든요. 저희는 눈물과 비명을 삼키며 빠르게 길을 건넜어요. 잊고 싶은 것처럼, 아무도 그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어요.”
탑에서는 수많은 위험을 맞이한다.
그 위협을 맞이하며 플레이어는 성장해 나가고, 포기할 것과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배운다.
그에 반해 그녀의 파티는 운이 너무 좋았다.
어지간한 일은 모두 성공했고, 밝은 웃음을 유지하며 탑을 올랐을 거다.
그러니 이런 일이 생겨난 거다.
그녀의 말은 둘이 화의 길을 모두 건넌 뒤에야 이어졌다.
“한 명이 저한테 화를 냈어요.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거냐고. 어째서 이렇게 불행한 일이 찾아온 거냐고. 너 때문이라고.”
“그런…….”
“저는 변명할 수 없었어요. 저도 몰랐어요. 어째서 저에게 그런 불행이 찾아왔는지.”
확실히, 이상한 일이다.
무작위로 뿜어지는 용암이라 하더라도 그녀의 행운이었다면, 그녀의 행운을 받고 있는 파티라면 맥없이 용암에 삼켜지는 일이 없었을 거다.
“리더가 말려주었지만, 그녀는 계속 저를 몰아붙였어요. 그리고 그녀는…….”
아르카나가 다음 길을 바라보았다.
토의 길.
사방에 심연으로 향하는 구덩이가 파여 있고, 지진이 계속되며, 땅이 갈라지고 바위가 떨어지는 절벽.
화의 길을 통과한 둘이 마주한 길이었다.
“토의 길에서, 심연에 떨어지고 말았어요.”
“……어째서지?”
“하필, 바위가 그녀에게로 굴러왔거든요. 어떻게든 피했지만, 구덩이에 떨어지고 말았어요. 제가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어요.”
들을수록 이상했다.
그녀의 권능은 행운.
그런데 지금 들리는 이야기는 불행이 가득했다.
그렇게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 세운과 아르카나는 어느새 토의 길의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리더도 저를 편들어 주지 않았어요. 침묵이 계속되고, 리더와 제 절친이었던 동료는 떨리는 눈동자로 저를 바라보았어요.”
“포기……할 수는 없었겠군.”
“이미 여기까지 건너왔으니까요. 이대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앞으로 나가는 게 더 안전하고 빨랐을 테니까요.”
“그렇겠지.”
오행의 길은 다섯 시련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개의 시련을 지나쳐왔으니, 그대로 되돌아간다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금의 시련에서는…….”
금의 시련.
사방에서 날카로운 쇠가시가 날아들었다.
화살이 날아오고, 가시 벽이 떨어져 내렸다.
“결국, 제 동료가 참지 못하고 도망쳤어요. 이 모두가 저 때문이라고. 제 곁에 남아 있으면 결국 죽게 될 거라고.”
“……그래서 어떻게 됐지?”
“죽었어요. 저에게서 떨어지는 순간, 위에서 떨어진 쇠 벽에 깔려 버렸거든요.”
여기까지 들으니 세운은 무언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인과율을 비틀 정도로 행운이 가득하던 그녀의 삶에 갑자기 불행이 끼어들었다.
그것도 이렇게나 위험한 순간에.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지만, 이대로 마지막 길에서는 파티의 리더가 죽을 터.
세운은 그 원인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설마, 성좌가 간섭한 건가.”
“네.”
그녀의 행운.
즉, 인과율에 간섭할 수 있을 만한 정체는 성좌밖에 없다.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그들이 그녀의 행운을 불행으로 뒤바꾸어 버렸다.
다만,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정답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다툼이었어요. 여신님의 품에 들어온 저를 탐내서, 여신님의 무능을 보여주기 위해 저의 불행을 강조했다더라구요.”
“그게 가능한가?”
“아이러니하게도, 제 권능이 행운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제힘을 조금만 뒤틀면, 이런 결과가 만들어지거든요.”
“그럼, 티케가 너에게 미안해하는 이유가…….”
“네. 자기 때문에 동료를 잃고. 그런데도 지켜주지 못해서. 계속 그런 마음을 품고 있나 봐요. 우리 착해빠진 무능한 여신님이 말이에요.”
데스힐에서 티케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아르카나를 잘 부탁한다고.
신답지 않게 고개까지 숙일 기세로 부탁했던 게 떠올랐다.
이제는 그 이유를 조금은 이해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수의 길에서.”
둘이 마지막 오행의 길을 걸었다.
수의 길.
언제 끝날지 모르는 대양을 건너는 길이었다.
몸은 천근을 단 듯이 무거워 끝도 없이 가라앉고, 숨을 쉴 때마다 파도가 몰아친다.
“리더가 저를 구해 줬어요.”
“……네가 구해 준 게 아니고, 그 리더라는 사람이?”
“네. 갑작스럽게 나타난 해일로부터 저를 감싸고 구해 줬거든요.”
“……그 뒤는?”
“저는 정신을 잃었어요. 그는 팔이 부러지고, 폐에 물이 찬 상태로 저를 끌고 대양을 건너줬어요. 그 몸으로, 저를 길의 끝에 데려다주었어요.”
상상도 가지 않았다.
성좌들의 방해로 의도적인 불행이 찾아오고 있는데, 그걸 몸으로 뚫으며 헤쳐 나갔다니.
그렇게 해서까지 그녀를 지켜주었다니.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몸은 이미 회복 불능이었어요.”
“…….”
“그때, 리더가 저한테 말해 주었어요.”
세운과 아르카나가 수의 길을 넘었다.
불행이 아닌 행운이 이끄는 길은 너무나도 고고했다. 이게 고행의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저조차도 불행의 이유를 알고 있지 않았는데. 리더는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저에게 말해 주었어요.”
그녀가 지나쳐 온 대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쓰러져서 숨을 허덕였을 바닥을 바라보았다.
“이해한다고. 괜찮다고. 다 잘될 거라고. 앞으로는 휘둘리지 말고…… 행복하게, 걱정 없이 살아가라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그녀와 리더는 어떤 관계였을까?
모르긴 몰라도 튜토리얼부터 83층까지 늘 함께해 왔으니 무척이나 끈끈한 관계였을 거다.
세운이 생각하는 디아블로 길드, 아니, 그녀의 동료는 길드가 아닌 파티 단위였으니 수가 적은 만큼 더욱 끈끈했을 것이다.
“그 이후, 한동안은 이성을 놓다시피 했어요. 그렇게 90층까지 올랐구요.”
“시련은…… 통과한 건가?”
“네. 통과는 했는데, 눈앞에 열 번째 쉼터로 향하겠냐는 메시지도 떠올랐는데, 도저히 선택할 수 없더라구요.”
“……그래서.”
“네. 라일락으로 돌아갔어요. 어두운 도시긴 해도, 저희 파티가 가장 재밌게 놀았던 곳이었거든요.”
이로써 그녀의 얘기가 끝났다.
아니, 세운이 들은 건 기껏 해봐야 이 오행의 길에서 있었던 얘기였다.
실제 그녀의 삶은 이 자리에서 다 말하지 못할 만큼 길었으리라.
– 히든 던전, ‘오행의 길’을 완벽하게 공략하였습니다.
– 보상으로 개인 공적치가 10,000,000point 상승합니다.
…….
눈앞에 던전 공략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둘 다 메시지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왜 내게 이 얘기를 하는 거지? 아니, 왜 나를 따라온 거지?”
사실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왜 그녀가 라일락에서부터 세운을 따라왔는지.
상처가 있어 공략을 멈추었다면 굳이 따라올 이유가 없었고, 그녀의 생에 세운과 관련 있는 점은 없었으니까.
단순히 세운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알아채 관심이 생겼다기에는 근거가 조금 부족하다.
“성좌.”
“성좌?”
“늑대 씨는, 운하에 닿으러 가고 있죠?”
“어디까지나 과정일 뿐이지만, 결국 가야겠지. 아우터를 멈추려면.”
“그래서예요.”
그녀가 본래의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늑대 씨를 보니까 괜히 떠오르더라구요. 신께 닿겠다는 우리 멍청한 리더가. 솔직히, 닮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지만요.”
“복수하겠다는 건가?”
“복수라. 그것도 좋겠죠. 그런데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
그녀가 고개를 들어 저 위를 바라보았다.
던전의 천장이 아니라 그보다 더 높은 곳.
저 위, 어딘가에 있을 성좌의 쉼터. 운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그때 그 성좌들 뒤통수 좀 쳐주고 싶어서요.”
제 60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