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02)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02화(602/675)
“우와아앗! 진짜 길은 알고 가는 거예요? 이거 맞아요?”
“싫으면 따로 가든지.”
세운의 발이 빠르게 움직였다.
마음 같아서는 날개를 펴고 한 번에 계단의 끝으로 날아오르고 싶었지만, 천계에는 고도 제한이 존재했다.
기껏 날아 봐야 바닥에서 비행할 수 있는 고도에 한계가 있으니, 그럴 바에 뛰어가는 게 힘을 아끼는 데 유리했다.
“아니, 따라가긴 할 건데! 진짜 맞는 거냐구요!”
그녀가 괜히 저런 질문을 하는 게 아니었다.
86층의 입구부터 지금까지 세운은 이 빠른 속도를 한결같이 유지하며 계단 위를 달렸다.
86층의 계단은 시작할 때는 4개이지만, 계단을 오를수록 끊임없이 갈림길이 존재하니 갈림길의 개수가 배수로 늘어나게 되어 있다.
그런 계단을 고민 없이 오르다니, 솔직히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생각이 없는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브린 자르라면 정말 그런 식으로 오르겠지.’
하지만, 세운은 아니다.
성흔이 강화될수록 세운의 격이 상승하고, 그에 따라 세운의 고유 스킬인 여정의 지침표 역시 강해졌다.
그렇게 강해진 여정의 지침표는 빠르게 이동하는 세운에게 가야 할 길을 정확히 알려주고 있었다.
다만, 그녀에게는 길이 보이지 않기에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잠깐, 잠깐! 저기 갈림길! 갈림길에 몬스터 있어요! 잠깐…….”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서걱-
“……어이가 없네, 정말로.”
86층의 계단. 계단을 오를 때마다 새로운 갈림길이 나오는데, 그 갈림길에는 어김없이 시련이 존재한다.
지금처럼 몬스터인 경우도 있고, 함정일 경우도 있다.
그중에서도 플레이어들이 가장 싫어하는 함정이라면 역시.
“아니, 진짜. 뭐 이리 용감해요! 워프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겁이 없는 거야, 아니면 진짜 알고 이러는 거야!”
워프 마법진.
걸리면 꼼짝없이 시작점인 입구로 이동하게 된다.
여태까지 쌓아온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워프 마법진은 중반 이후부터 나오기 때문에 기껏 절반 이상 이동했는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콰아앙!
“무슨! 지금 함정을 그냥 몸으로 통과한 거예요?”
어지간한 함정은 무시한다. 어차피 세운에게 타격을 줄 만한 함정은 손에 꼽았으니까.
뒤따라오던 전령에게는 위협적인 함정들이지만, 세운이 미리 초토화시키고 있으니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어? 구름이 벌써 보이면 안 되는데?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
전령의 눈에 이상한 게 보였다.
바로 계단의 끝에 존재하는 구름.
즉, 87층을 뜻하는 구름이 벌써부터 보이고 있었다.
계단의 최후반부에 들어야만 보이는 게 저 구름인데, 그게 벌써 보이기 시작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니, 속도로 보면 말이 되긴 하지?’
지금 둘은 전속력으로 계단을 달리고 있다.
갈림길에서 맞닥뜨린 시련도 무시하듯이 뚫는 중이고, 계단을 선택하느라 고민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전령은 암살자를 업으로 살고 있는 만큼 다리가 무척이나 빠르다.
그런 그녀가 최고의 속도를 유지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이게 진짜 가능한 건가?’
어이가 없었다.
그녀라고 하더라도 처음 86층을 올랐을 때는 수도 없이 막히고, 아래로 되돌아가며 공략에 꼬박 몇 주일이 걸렸는데.
그런 곳을 하루도 안 돼서, 아니, 한나절도 안 돼서 공략한다니.
그야말로 경이로운 길 찾기 실력이다.
‘아니, 길 찾기 실력만이 아니야.’
갈림길에 존재하는 몬스터를 일격에 썰고 다니는 무력.
어지간한 함정 따위 몸으로 받아내는 체력.
길을 찾고 시련을 거치는 중인데도 최고 속도를 내고 있는 그녀와 같은 속도.
그 모든 게 종합적으로 어울렸기에 가능한 신기였다.
그러던 중…….
“멈춰라, 도전자여.”
계단의 갈림길에서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몬스터가 등장했다.
부러진 날개를 지닌 천사였는데, 덩치가 가관이다.
“저거 천사 맞아요? 돼지 아니에요?”
“드, 들린다! 입 조심해라, 도전자요?”
“아무리 봐도 돼진데.”
“감히! 비록 날개가 꺾였다고 해도, 나는 엄연히 천사다!”
자신을 천사라 우기는 자의 다리는 코끼리처럼 두꺼웠고, 축 늘어진 복부 지방은 골반을 전부 가려 버릴 지경이다.
가슴도 축 늘어지고, 턱살은 목을 완전히 감췄다.
실제로는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외관만 보아서는 무거운 몸뚱이를 견디지 못하고 날개가 꺾여 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무엄한 놈들에게 천벌을!”
파직!
천사가 손을 뻗자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정확하게 세운과 전령이 서 있던 쪽으로.
손을 뻗는다는 준비 동작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당장 통구이가 될 뻔했을 정도로 빠른 공격이었다.
“무지한 놈들에게 천벌을!”
촤앗!
이번에는 빛으로 이루어진 원반이 궤적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대체로 빛과 번개를 다루는 원거리 형 공격을 주로 했는데, 생긴 것과 어울리지 않게 공격이 무척이나 빨랐다.
하지만, 이미 세운은 그의 코앞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푸욱!
천사의 복부에 깊게 파고드는 뒤랑달.
칼날이 완전히 파고들 정도로 깊게 박혔지만, 천사는 오히려 세운을 비웃고 있었다.
“그따위 창칼로 이 몸의 피부를 뚫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충분한 내공에 무공까지 사용했음에도 뒤랑달의 칼끝이 천사의 피부를 뚫지 못했다.
그야말로 가공할 만한 탄성.
천사가 배에 힘을 주어 세운을 튕겨내려던 순간, 세운의 검 끝에서 빛이 번쩍였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헬 파이어’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콰르륵!
“칵! 뜨, 뜨거워어어!”
피부를 뚫지는 못했지만, 복부 중앙에 닿은 뒤랑달에서 지옥의 불길이 터져 나왔다.
덩달아 불길로 인해 뒤랑달의 칼끝이 급속도로 가열되었다.
이윽고.
치이이익!
“카아아아악!”
결국, 칼끝이 천사의 지방질을 꿰뚫었다.
마법이 아직 끝나지 않았던 터라, 녀석은 꼼짝없이 배 속으로 지옥의 불길이 들어오는 것을 느껴야 했다.
‘편하네.’
이전 같았으면 이렇게 빠르게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을 거다. 미리 준비하지 않는 이상, 8서클 마법을 이리도 빨리 사용하는 건 세운으로서도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8서클 마스터에 이른 지금, 세운의 마법 실력과 마나 운용 실력은 놀랍도록 발전해 있었다.
“카아아악, 이, 이것들이!! 내가 정마-”
푹.
“다행히 입 안은 연하네요. 입 안에도 지방이 차서 칼이 안 들어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대로 검을 한 번 더 휘둘러 마무리까지 하려고 했는데 그녀가 더 빨랐다.
가벼운 모습을 보여도 그녀 역시 플레이어였다.
그것도 흑익의 정예 암살자.
쿠궁!
천사라고 해도 결국 입 안에서 찔러 넣은 단검이 정수리를 뚫고 나오자 꼼짝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나름대로 어지간한 보스 몬스터 따위 비교도 안 되게 강력한 정예 몬스터 같았는데 말이다.
‘그래도 유일하게 멈추어 섰으니.’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역겨운 맛이지만, 역겨운 맛도 즐길 만하다며 싱글벙글 식기를 놀립니다.
어차피 남은 계단은 길지 않다.
그 이후로도 끝이 가깝다는 것을 증명하듯 갈림길마다 어려운 시련이 도사렸지만, 별문제 없이 계단의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와, 미쳤다. 처음에 시간 쟀어야 하는데. 이게 말이 돼요? 진짜 한나절 만에 계단을 돌파해 버리네.”
“잘 따라왔네.”
“지금 다리 떨리는 거 안 보여요? 전 빠른 거지 튼튼한 게 아니라구요. 한나절 동안 최고 속도로 뛰다니, 이제 진짜 못 움직여요. 한계!”
그러면서 품에서 어두운 빛깔의 포션을 꺼내 마시는 그녀.
아마 흑익에서 제공해 주는 포션인 듯하다.
마시자마자 가빴던 숨이 차분해지고,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게 꽤나 효과가 좋은 모양.
그에 반해 세운은 딱히 포션을 마셔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 진짜 게으르네요. 저희가 정상에 왔으면 바로 딱! 하고 나와야지. 안 그래요?”
“그래, 왔다.”
“앗.”
그녀의 말에 대답하듯이 나타나는 빛의 계단.
그리고 그것을 타고 유유히 걸어 내려오는 천사.
그의 표정은 처음 보았던 것과 달리 꽤나 진지했다.
“엄청난 속도군. 아니, 속도보단…….”
그의 눈에 전령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세운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의심이라도 하는 듯한 눈빛으로.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도 하지 않았더군.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이지?”
“꼭 대답해야 하나?”
“그럴 필요는 없지. 다만, 왜 네가 그것들에게 깃털을 받아왔는지는 이해했다.”
천사의 뒤에서 순백의 깃털이 사르르 떨어졌다.
바람을 타고 나풀나풀 떨어져 내린 그것은 나비처럼 날아와 세운의 손바닥 위로 들어왔다.
‘이로써 여섯 개.’
대체 어디에 쓰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떻게 다 모으긴 했다.
“어, 저는요?! 저도 같이 올라왔는데요!”
“숨이나 헐떡이며 겨우 뒤따라온 주제에 헛소리하지 마라. 마음 같아서는 네놈은 다시 떨어트리고 싶으니.”
“흡.”
혹시나 싶어 깃털을 어디에 쓰는 건지 물어봤지만, 역시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천사는 제 역할은 끝났다는 듯 콧방귀를 뀌곤 다시 계단을 올랐다. 계단과 함께 사라지며 이런 말을 남겼다.
“과연, 누가 깃털을 먼저 쓰게 될지 궁금하군.”
“누가라니?”
당연하게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어쩐지 찝찝한 기분을 뒤로 하고, 세운이 계단 끝으로 나아갔다.
“우와, 기록 봐요. 처음 얻은 공적치보다 두 배는 더 얻었네.”
공적치 정산이 끝났다.
세운의 결과는 당연하게도 1위.
그녀 역시 86층에서 세운을 조금 기다렸다고는 해도 빠르게 올라왔지만, 천사가 말한 대로 세운의 꽁무니를 따라온 탓에 정산이 제대로 안 되었나 보다.
“바로 가지.”
“오랜만이네요. 여기는 기분이 좀 이상하단 말이에요.”
87층의 시련.
하천이라 이름 붙은 이곳은 필드 전체가 구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늘은 88층의 시련이라 할 수 있는 중천으로 가려 있었고, 그 넓이는 도대체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 87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하천(下天)
– 영광스러운 계단의 끝에 도달한 당신은 마침내 드높은 하늘에 도착했습니다.
–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세 개의 하늘을 돌파하고, 그 끝에 도달하십시오.
천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천사가 나타나는 건 어디까지나 바벨탑까지.
이미 바벨탑의 너머 구름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천사들은 플레이어들에게 간섭하지 않는다.
사실, 여기부터가 진정한 ‘하늘’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흑익의 마스터는?”
“아직 연락은 안 닿지만, 마스터는 수색할 때 왼쪽부터 탐색하는 습관이 있어요. 이번에도 왼쪽. 그러니까 서쪽으로 갔을 거예요.”
“그래, 가지.”
서쪽.
정보가 너무 부족하지만, 그를 수색하며 다른 여러 정보를 찾아낼수록 여정의 지침표가 점점 더 정확한 위치를 알려줄 거다.
‘그러고 보니 마신들이 조용하네.’
마계에서는 그렇게 시끄럽게 떠돌던 마신들이었는데, 천계라 부를 수 있는 이곳, 하늘에서는 별다른 메시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가끔 베엘제붑이 쩝쩝거리는 메시지가 전부.
‘혹시 천계가 불편한 건가?’
애초에 이곳은 그들이 보기에 가장 불편한 장소이기도 했다.
세운은 그래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며 발을 내디뎠다.
이제 드디어, 흑익의 마스터를 만날 때가 왔다.
제 60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