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0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07화(607/675)
‘이만한 게 튀어나왔으면 마몬이 반응을 보일 법도 한데.’
금으로 만들어진 첨탑.
마몬이 보고 있었다면 분명 눈을 번쩍이며 첨탑 그 자체를 삼킬 수는 없을까 고민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첨탑에서 느껴지는 신성한 기운이 거북하다며 미간을 찌푸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마몬은 그 어떤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레비아탄도 그렇지.’
드디어 흑익의 마스터, 블레이크를 만났다.
레비아탄과의 계약 중에는 루시퍼의 세력인 흑익을 무너트려달라는 조건도 있었기에 분명 무언가 말을 꺼낼 법도 한데.
블레이크를 만난 이후로 단 한 번도 그녀의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는 베엘제붑까지…….’
하천 이후로 다양한 몬스터를 상대해 왔다.
그중에서는 이무기처럼 강력한 몬스터도 있었고. 당연하게도 세운은 폭식의 권능을 사용해 왔다.
평소대로라면 베엘제붑이 신나서 방방 뛰는 모습이 메시지로 표현되었을 텐데, 그 베엘제붑의 메시지마저 떠오르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신들과의 연결이 끊긴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그건 세운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방금을 기점으로, 루시퍼 님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겼다.”
“상극의 기운 때문에 연결이 끊어진 건가.”
“이 정도 장소에 도착한다면 다른 성좌들이 관심을 가질 법도 하다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그 말은, 마신뿐만 아니라 다른 성좌들의 연결도 전부 끊겼다는 말이군.”
“그럴 가능성이 크다.”
세운이 혹시나 하여 성흔을 밝혀보았다. 다행히도 공포나 광란, 파멸의 힘 같은 세운의 힘은 전부 정상이었다.
다만, 마신들의 힘을 빌려와 사용하는 색욕의 권능이나 분노의 권능 등은 모조리 먹통이었다.
‘성좌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힘으로 도전해야 한다는 건가.’
그런 거라면, 일이 꽤 곤란해진다.
마신들의 권능을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세운이 낼 수 있는 최대 출력도 배 이상 낮아지게 되니까.
무엇보다 여분의 목숨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태의 권능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건 문제가 컸다.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는 없지.’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만약 세운의 예상이 맞고, 그걸 세운이 가로챌 수만 있다면 아우터를 막아내기 전 가장 큰 문제로 다가올 신마대전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우터가 쳐들어 왔다고 해도 예전처럼 성좌들의 세력이 약해져 휘청거릴 일도 없을 거다.
“들어가지.”
“그래, 세운.”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금으로 이루어진 길을 걸었다.
첨탑의 거대한 문이 둘을 막아섰지만, 둘을 여기까지 안내해 준 날개가 팔랑거리며 열쇠 구멍으로 들어가자.
쿠궁.
문이 둘을 환영한다는 듯이 활짝 벌어졌다.
둘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본 뒤 고개를 끄덕이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도 장난 아니군.”
“마몬이 지었다고 해도 믿겠는데.”
첨탑의 안쪽 역시 금빛으로 번쩍였다.
게다가 여기까지 들어왔으면 히든 던전에 입장했다는 메시지라도 뜰 법한데.
아까부터 성좌의 메시지는커녕, 간단한 메시지 하나도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이제…… 저 계단이라도 올라야 하나?”
첨탑의 홀 중앙에 나란히 선 둘.
던전이라기에는 몬스터도, 함정도 보이지 않았기에 이제부터 뭘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때, 첨탑의 꼭대기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도전하는 이가 두 명이나 찾아오다니!”
화륵!
첨탑의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불꽃 기둥.
세운과 블레이크는 저도 모르게 각자 무기의 손잡이를 쥐었다.
다만, 들려온 목소리를 포함하여 눈앞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 기둥에서조차 적대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축복이로다! 무척이나 기쁜 일이로다!”
불꽃 기둥에서 수십 개의 날개가 튀어나왔다.
총합 36개의 날개. 즉, 18쌍의 날개.
그 모든 날개가 한데 겹치더니 마치 하나의 날개처럼 포개지며 펄럭이니 불꽃 기둥이 거짓말처럼 흩어졌다.
“반갑도다! 도전하는 이들이여!”
도전하는 이들.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는 몰라도, 이곳까지 찾아온 플레이어를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대충 보아도 상대의 무력이 보통이 아닌 걸 알기에, 세운과 블레이크는 쥐었던 무기의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언제든지 적의 공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적이 먼저 태도를 바꾸기 전에, 선공을 날릴 수 있도록.
“이리도 좋은 날에! 도전자들에게 허한 대접을 선보일 수는 없지. 천사들이여!”
펄럭.
하늘에서 수백 개의 깃털이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처럼 작은 천사 수십이 앙증맞은 날개를 펼친 채 허공에 떠 있었다.
“부디 도전자들을 위해 성대한 만찬을 차려다오!”
뿌우우우-
위에서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작은 천사들이 만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길이만 10m는 될 법한 넓은 상을 놓고, 그 위를 희고 깨끗한 천으로 덮는다.
금으로 만들어진 촛대를 설치하고, 어디서 난 것인지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음식들을 차려 올린다.
“자, 도전자들이여! 어서 앉지!”
딱!
천사가 손가락을 튕기자 상에 놓여 있던 촛대에서 일제히 불이 켜졌다.
그와 함께 세운과 블레이크의 앞에 놓인 의자가 자아라도 있는 것처럼 스스로 쭉 빠지며 자신에게 앉아주길 청하였다.
‘전투가 필요 없는 곳인가?’
시스템 창이 떠오르지 않으니 뭘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적대감은 느껴지지 않았기에 둘은 눈을 마주친 뒤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 앉았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접시의 뚜껑이 열리며 다양한 음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음껏 들게! 도전자들이여!”
덩치만 2m가 가뿐히 넘어가는 천사.
전신은 남성성을 과시하듯 탄탄한 근육이 가득하고, 등에는 열여덟 쌍의 날개가 한데 뭉쳐 거대해진 날개가 활짝 펼쳐져 있었다.
“오오! 아주 맛있군!”
둘을 안심시키기 위함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저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천사는 음식이 보이자마자 식기도 쓰지 않고 손으로 음식을 들어 뜯어 먹기 시작했다.
“안 드시오? 나를 믿고 한 번 먹어 보시오!”
이게 던전이라면 저 천사가 보스 몬스터일 텐데, 보스 몬스터가 자신을 믿고 먹어 보라며 내어주는 음식이라니.
“세운. 이상하지 않나?”
“이상하긴 한데…….”
“잠깐, 세운.”
잠시 음식을 둘러보던 세운이 손을 뻗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빵을 하나 집더니, 자연스럽게 입에 넣었다.
겉으로는 딱딱해 보였는데, 입에 넣으니 빵이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듯했다.
“괜찮아. 독은 이미 검사했으니까.”
“……그런가. 그럼, 나도 먹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음식의 검사는 끝났다.
8서클에 도달한 세운이었으니 어지간한 독이나 저주는 전부 탐색할 수 있었다.
만약 탐색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고 해도, 마신혈까지 흡수하여 온갖 면역과 저항력이 극도로 높아진 세운에게 피해를 줄 만한 독은 극히 드물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다.
이게 다였으면 문제가 없다고 해도 굳이 음식을 먹지는 않았을 거다.
세운이 음식을 먹기 시작한 이유는 단 하나.
우웅-
‘역시, 신성이 깃들어 있다.’
음식에 깃들어 있는 미약한 신성.
즉, 이 음식들 전부 신의 음식이라 불리는 ‘암브로시아’와 신의 음료라고 불리는 ‘넥타’라는 말이다.
“그쪽은 이미 눈치챘나 보오! 이것들 모두 도전자들을 위해 준비한 귀한 것들이니 마음껏 드시오!”
세운이 먹는 것을 보자 블레이크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음식에 담겨 있는 신성을 느끼고는 표정이 심각해진다.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 신성을 쌓을 수 있다니, 이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신성을 무한정 쌓을 수는 없겠지만.’
상 위의 음식을 다 먹는다고 신성을 모조리 흡수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애초에 식사로 신성을 쌓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일.
일정 수치를 넘어서면 암브로시아를 먹고 넥타를 마셔도 신성은 더 이상 쌓이지 않는다.
“식사는 좀 마음에 드셨소? 도전자들이여!”
식사가 끝나자, 천사가 목청을 높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와 상을 치우는 아기 천사들.
고작해야 두세 그릇의 암브로시아와 한 잔의 넥타를 마신 세운이나 블레이크와는 달리 그의 앞에 놓인 빈 그릇은 열 개가 넘었다.
“배도 든든해졌으니 우선은 소개부터 하도록 하겠소! 난 이곳, ‘옥좌’를 지키고 있는 천사. 메타트론이라고 하오! 계약의 천사, 하늘의 서기관이라고도 불리지.”
“메타트론?”
마신 중에서도 마몬이나 레비아탄과 같은 칠대 마신이 존재하고 마왕 중에서도 대표적인 칠십이 악마가 있는 것처럼, 천사 역시 유명한 이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라면 역시 3대 천사로 알려진 미카엘과 가브리엘, 라파엘.
사대 천사로 우리엘이 끼어 있는 경우도 있고, 그 외에도 사리엘이나 라구엘 등 수많은 천사가 존재한다.
그리고 천사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메타트론이라는 천사가 있었나? 아니, 저런 형식의 이름을 가진 천사가 있었나?’
엘(el).
대표적인 4대 천사는 물론 그 외 다른 천사들까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등 모든 천사의 이름 끝에는 엘이 붙는다.
이는 단순한 돌림자가 아니었다. ‘엘’은 그 천사가 애초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임무나 권능을 뜻하는 말이었으니까.
엘 아르브의 대도서관에서 어지간한 천사의 이름은 숙지하였던 세운으로서도 메타트론이라는 천사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도전자들이여. 그대들의 이름을 알려주겠소?”
“……세운이다.”
“블레이크.”
“세운과 블레이크! 아주 멋진 이름이오! 자, 그럼 이제 무용담을 들어볼 차례요!”
음식이 모두 치워지고, 상 위로 석 잔의 술이 새롭게 올려졌다.
연보랏빛이 감도는 포도주.
이것들 역시 신성이 깃든 신의 음료, 넥타였다.
“무용담을 왜 들으려는 거지?”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오? ‘옥좌’에 다다른 도전자들이 대체 얼마 만인데! 외로운 천사를 위한다, 생각하고 한번 읊어주시오! 보상은 섭섭지 않게 할 터이니.”
무용담.
알려주려면 얼마든지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우선은 할 일을 마쳐야만 한다.
당장 이곳에 루시퍼가 찾는 무언가가 있을 가능성이 유력한데 이렇게 천사의 말에 휘둘리고 있을 수는 없다.
“그전에 이곳에 대해 먼저 알고 싶은데.”
“말했잖소. 이곳은 옥좌요.”
“이 첨탑이 옥좌라면, 누구를 위한 옥좌지? 네가 이 옥좌의 주인인가?”
“그럴 리가. 나는 그저 대리인일 뿐이오.”
“네가 대리인이라면…… 저 옥좌의 주인이, 신이라는 말인가?”
천사는 주로 신의 사자, 신의 대리인이라고도 불린다.
그런 만큼, 메타트론이 대리인이라고 말할 정도라면 그 주체가 신일 확률이 가장 높았다.
하나, 메타트론은 세운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오.”
“그렇다면?”
“본 옥좌의 주인은…… 신성한 하늘의 열쇠라오.”
신성한 하늘의 열쇠.
그 말을 듣는 순간, 세운은 물론이고 블레이크의 눈빛 역시 번뜩였다.
블레이크는 이미 루시퍼를 통해 그 정체를 들었기 때문이고, 세운은 열쇠라는 말을 통해 그 정체를 예측했기 때문이다.
“게티아.”
솔로몬의 열쇠, 그 두 번째 장.
아르스 테우르기아-게티아.
세운의 대답과 함께 품 안의 열쇠, 네피림이 공명을 일으켰다.
제 60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