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1화(61/675)
제 61화
황금성의 앞.
이곳에는 가히 지옥이라는 이름이 걸맞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미친, 이게 뭐야!”
“크아아악! 뜨거워!”
“사, 살려줘! 모, 몸이! 내 몸이 타들어 가고 있어!”
쩍쩍 갈라진 대지 사이로 바위마저 녹여 버리는 뜨거운 용암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도망치려 해도, 곳곳에 튀어나온 바위 때문에 이동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방어구? 그따위는, 용암 앞에선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가죽 갑옷도, 철제 갑옷도 용암에 닿는 순간 벌겋게 달아오르거나 이글이글 타올랐다.
공격의 범위 역시 클랜원 대부분을 집어삼킬 정도로 넓었기에, 찰스를 제외하고는 모든 인원이 뜨거운 용암 위에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용암이 끓어오르고 있는 대지의 바깥에서, 찰스가 넋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분명, 상대는 성을 점령하느라 지친 상태였을 텐데.
게다가, 저 성은 무려 A+라는 괴랄한 등급을 가진 성이다. 그만큼 성의 난이도 역시 엄청났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상대가 강할 줄은 예상했지만, 지치기는커녕 단 일격에 자신의 수하들을 반파 상태로 내몰 정도의 강력함이라니?
“랭커들의 힘이 이 정도였단 말입니까?”
들어주는 이도 없지만, 찰스는 버릇처럼 질문을 반복했다.
그 역시 무려 랭킹 10위의 랭커.
약한 플레이어만 골라서 사냥했다고 해도, 그 역시 세 번째 튜토리얼 구역을 돌아다니며 소위 랭커라 불리는 플레이어들을 만나 보았다.
다만, 상대가 랭커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그는 자세를 숙이고 평화를 주장하며 전투를 피해 왔다.
그 랭커들과 맞붙었으면 지금과 같은 광경이 재현되었을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랭커라고 해도, 이렇게 강한 건 반칙 아닌가?
그 순간, 찰스의 머릿속에 상대 클랜장의 이름이 떠올랐다.
‘세운. 세운. ……정세운?’
처음 남자의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무언가 낯익은 느낌이 있었다.
그래도 별거 아닐 거라며 넘어갔었는데,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공적치 랭킹 1위의 플레이어!”
공적치 랭킹. 그 가장 위에 적혀 있었던 세 글자의 이름이 분명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상대를 잘못 골라도 심각하게 잘못 골랐다고.
“자, 잠깐 멈춰 주십시오! 항복! 항복하겠습니다! 저희가 졌습니다!”
“대, 대장!”
“다들 무기 집어넣으십시오!”
찰스의 다급한 외침에 그의 수하들이 입술을 꽉 깨물고 무기를 집어넣었다.
당장 용암이 끓어오르고 있는 와중에, 반격은커녕 무기를 집어넣으라니.
대체 무슨 생각인가 싶었지만, 지금까지 찰스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본 적이 없었기에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부그르-
찰스의 다급한 외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마법의 지속 시간이 다한 것일까?
그의 수하들이 무기를 집어넣자, 터져 오르던 용암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용암이 가라앉은 자리에는, 이미 그의 수하들 절반 이상이 자리에 쓰러져 있었다.
남은 수의 절반은 중상을 입어 전투 불능으로 보였고, 나머지 역시 크고 작은 화상을 입은 채 상처를 부여잡고 있었다.
용암이 멈추지 않았으면 이대로 꼼짝없이 모두 전멸했을 게 분명하다.
“멈춰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감히 랭킹 1위의 플레이어를 못 알아보고 이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찰스가 다급하게 달려가 세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여기서는 살아남은 게 최우선이다.
아니, 여기서 말만 잘하면…….
‘랭킹 1위의 플레이어와 한배를 탈 수도 있다.’
이곳이 무슨 세계인지, 튜토리얼을 1등으로 통과하면 어떤 이점이 있는지, 저 멀리 보이는 탑은 어떤 곳인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지구에서 철저한 경쟁주의를 배워 온 그였기에, 1위의 혜택이 엄청날 거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튜토리얼을 통과한 후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튜토리얼을 진행 중일 때는 최고의 뒷배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저, 찰스. 무슨 일이라도 다 하겠습니다. 제 랭킹은 보셨습니까? 10위입니다! 분명, 세운 님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찰스는 자신에게 남은 모든 수를 꺼내 들었다.
자신의 수하들과 현재 지닌 아이템, 그리고 자신들의 강함.
그러는 중에도 온갖 상황에 대해 계산을 하느라 머리가 팽팽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
찰스가 아무리 매혹적인 제안을 해도, 세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남자에게 협상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찰스는 다급하게 무릎을 돌려, 세운의 옆에 서 있던 유서아를 향해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살려주십시오! 못 믿으시겠으면, 튜토리얼이 끝날 때까지 팔다리를 속박하셔도 좋습니다!”
그가 방향을 바꾼 이유는 하나였다.
‘이 여자는 그래도 마음이 좀 약해 보였다.’
첫 대면에서 세운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유서아가 세운을 설득하기 위해 대화를 나누었다.
찰스 역시 그 장면을 보고 있었기에, 이런 판단이 가능했다.
“저희, 같은 인간 아닙니까? 아까 전의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저희 클랜원들을 생각하느라. 피해를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이성과.
“그쪽도 클랜을 다루다 보면 아시지 않습니까?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클랜원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감정을 적절하게 뒤섞는다.
그는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이 말 실력 하나만으로 수많은 사람을 울고 웃게 만들었다.
그러니, 자신이 있었다.
“그렇네요. 맞는 말이에요.”
“역시! 분명 이해해 주실 거라 믿고 있었습니다!”
유서아의 대답에, 찰스가 속으로 환호를 내질렀다.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고 성안으로 들어간다면, 그 이후에 다시 한번 입을 놀려 사람들을 현혹하면 그만이다.
튜토리얼 랭킹 1위의 플레이어를 뒷배로, 아니, 1위를 앞으로 내세워 마음껏 조종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튜토리얼의 실질적인 1위는 자신이나 다름없다.
“당신 말대로, 전 제 클랜이 가장 소중해요.”
서걱-
‘……어?’
갑자기 저게 무슨 말일까? 그보다, 어째서 세상이 기울어져 가는 것일까?
어서 빨리 그녀를 설득하고 싶었지만, 입을 뻐끔거려도 아무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가 죽음을 자각했을 때쯤에는, 이미 머리가 바닥에 떨어진 후였다.
툭.
그렇게 찰스의 클랜은 황금성 안에 한 발자국도 딛지 못한 채로 생을 마감하였다.
* * *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유서아의 손에 의해 찰스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튜토리얼이 진행되며 이 잔혹한 세상에 많이 적응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이야.
하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유서아가 저러지 않았다면, 세운이 찰스의 목을 베어 낼 생각이었으니까.
“으아아악!”
“도, 도망쳐!”
도망가는 이들은 굳이 쫓지 않았다.
어차피 저들을 쓰러트린다고 해도 세 번째 튜토리얼처럼 공적치를 온전히 획득하지도 못하고, 강한철과의 연계기 ‘끓어오르는 전장’ 덕분에 이미 저들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만 내버려 두어도, 저들이 이번 튜토리얼을 통과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저, 잘한 거겠죠?”
“네가 안 했으면, 내가 했을 거야.”
다만, 유서아의 상태가 멀쩡한 건 아니었다.
손에 힘을 주어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녀의 팔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세 번째 구역처럼 무기를 들고 달려오던 플레이어를 공격했던 게 아닌, 목숨을 구걸하던 자의 목을 베어 낸 것이니까.
뭐, 순서가 바뀌었을 뿐, 찰스가 우리를 공격한 건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들어가자. 좀 쉬어.”
“네, 고마워요.”
“언니! 괜찮아?”
“잘했어! 보는 내가 속이 다 시원하더라!”
“얼른 들어가자!”
다행히 쌍둥이 자매가 달려와 유서아를 데려가 주었다.
성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중 유서아에게 뭐라고 말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방금의 일이 그녀가 자신들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기 위해 선택한 일임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사이, 세운은 고개를 돌려 바닥에 쓰러진 찰스와 그 수하들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악연이 이렇게 빨리 정리될 줄은 몰랐네.’
뭐, 악연이라고 해도 회귀 전의 악연일 뿐이다.
게다가, 회귀 전의 더러웠던 기억이지만 놈들하고는 탑에 도착하자마자 연을 끊었었다.
길고 길었던 탑의 기억에 비교하면, 찰스와의 악연은 아주 찰나의 순간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놈을 좋게 볼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지만 말이다.
“장비는 내가 잘 써 줄게.”
세운은 찰스가 가지고 있던 장비들을 털었다.
플레이어 사냥을 하고 다녔던 만큼, 꽤 쓸 만한 장비들을 착용하고 있었다.
찰스를 포함한 수하들을 시체를 정리할까도 생각했지만.
‘본보기로 놔두는 것도 괜찮겠지.’
다섯 번째 튜토리얼이 시작하기 전에, 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운 나쁘게 세운을 만나서 이렇게 됐을 뿐. 찰스의 계획은 실용성 면에서 따지면 꽤 괜찮은 전략이었으니까.
다만, 한 가지 해결할 일이 남아 있었다.
-탐욕(眞)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광물수(鑛物樹)의 진액 ]– 단단한 바위에서만 자라난다고 전해지는 광석과 같이 단단한 나무, 광물수의 진액. 뛰어난 접착 효과를 가지고 있다.
스륵-
진액, 아니, 진액보다는 광석의 가루와도 같은 물건을 성문의 절단면에 펴 발랐다.
광물수의 진액이라 하더라도 본래 저렇게 거대한 구조물을 이어 붙이는 건 어려웠지만, 성문이 워낙 깔끔하게 절단되어 있었기에, 생각보다 쉽게 잘린 성문을 이어 붙일 수 있었다.
“신기하군.”
“여긴 지구의 법칙이 통용되는 곳이 아니니까.”
“나도 돕겠다.”
“그럼 나야 고맙지.”
끼이익- 쿵!
완벽하게 이어 붙은 성문을 강한철과 함께 들어 올려 본래의 위치에 끼워 넣었다.
이음부가 고장 나 있긴 했지만, 저 정도야 쌍둥이 자매가 충분히 고칠 수 있을 듯했다.
“아, 그리고 이건 선물.”
“……갑옷?”
“고창석 어르신한테 가서 사이즈만 조정하면 될 거야.”
“불편할 것 같아 보인다만.”
“네 전투 스타일에 딱 어울릴 거야. 불편해도 익숙해지는 게 좋아.”
“알겠다.”
역시, 강한철. 자세한 이유를 묻지도 않고, 세운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운이 강한철을 대하기 편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처럼 회귀에 대한 걸 숨기느라 머리를 한 번 더 굴릴 필요가 없었으니까.
‘자, 그럼…….’
-‘튜토리얼 다섯 번째 장 – 방어’까지 남은 시간 60시간 02분
튜토리얼의 마지막 장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이틀하고도 한나절.
시간은 충분하다.
몬스터의 공격을 대비하여 수성전의 준비를 마치고…….
‘그것도 한번 알아봐야지.’
세운조차 확신할 수 없는, 튜토리얼에 숨겨진 미지의 히든 피스를 수색할 시간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