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1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11화(611/675)
서걱-
블레이크가 만들어 낸 상처와 세운이 베어낸 상처.
두 대각선이 합쳐져 메타트론의 몸에 엑스 모양의 상처가 생겨났다.
비록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운의 공격을 몸으로 당당하게 받아내면서도 멀쩡하던 그였지만.
“……커헉.”
지금은 아니었다.
비록 블레이크의 역전을 맞고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고는 해도 메타트론은 세운의 일격을 전혀 받아내지 못했다.
입에서 피까지 토해 내며 무릎을 꿇고 쓰러지는 메타트론.
단 일격으로 전투가 마무리 지어졌다.
‘9서클 마법. 쉽게 쓸 만한 건 아니네.’
다만, 세운의 상태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방금 막 9서클에 올라서 서클을 조절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고작 마법 하나를 사용했을 뿐인데, 서클이 과부화된 것처럼 뻐근한 느낌이 든다.
기껏 9서클에 올랐는데, 만약 메타트론이 방금의 일격을 버텼다면 상당히 곤란했을 것이었다.
“어찌…… 인간에게.”
아직까지도 타오르고 있는 카오스 블레이드의 흔적.
상처가 재생되는 것도, 고통이 잊히는 것도 용서치 않겠다는 듯이 불타오르는 혼돈의 불길.
메타트론은 목숨이 꺼져 감에 따라 눈빛을 잃어가며 중얼거렸다.
“루시퍼를 경멸하는 것 같은데. 너도 다를 바 없어 보이네.”
“내가…… 루시퍼와?”
“오만. 네가 죽는 건 오만 때문이다.”
만약 세운과 블레이크가 첨탑에 들어오자마자 메타트론이 공격을 해 왔다면 어땠을까?
아기 천사들이 당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고 전투에 합세했다면 어땠을까? 처음부터 최선을 다해서 둘을 밀어붙였다면 어땠을까?
이런 가정 자체가 무의미하지만, 그랬다면 세운과 블레이크가 졌을지도 모른다.
오만.
루시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그 죄목은 아이러니하게도 루시퍼를 천계에서 쫓아낸 천사에게도 똑같이 작용했다.
어쩌면, 루시퍼의 이명은 천사라는 태생에서부터 유래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하, 그렇소. 타락하지 않기 위해 눈을 감고 살았소만, 결국에 나 또한…….”
화르르-
메타트론의 몸이 타들어 갔다.
목숨이 다했다는 것을 증명하듯 잿더미로 화해 사라져 가는 몸체.
단단한 중갑옷도, 타오르는 불꽃 대검도 모두 그의 명과 함께 사라져 갔다.
이어서…….
쿠궁.
첨탑의 꼭대기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의자, 아니, 옥좌.
메타트론이 지키고 있던 첨탑 그 자체.
그 위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열쇠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열쇠에는 자신의 신성함을 뽐내듯이 희고 아름다운 날개가 달려 있고, 그 위로는 천사의 링까지 떠올라 있다.
네피림이 떨리는 것으로 그 정체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르스 테우르기아 게티아.”
루시퍼의 목표이자, 신마대전의 시발점.
그 정체가 솔로몬의 열쇠였다니.
‘네피림의 부탁을 이렇게 빨리 들어주게 될 줄은 몰랐는데.’
솔직히, 솔로몬의 남은 열쇠들이 탑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까지 들었었는데 벌써 또 하나의 열쇠를 찾아내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세운은 그렇게 생각하며 옥좌를 향해 걸었다.
그때,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운…….”
블레이크가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당장 기절해서 사흘 밤낮을 누워 있어도 회복되지 않을 판인데 의식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다니.
정신력이 놀라운 수준이었다.
“그 열쇠는…… 루시퍼 님의 것이다.”
자신의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조차 루시퍼의 명령을 행하다니.
여기까지 오니 세운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그렇게 루시퍼의 명령을 따르는 거지?”
블레이크는 강하다. 설령 루시퍼의 신성을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도 블레이크는 강했을 것이다.
세운의 질문에 블레이크는 힘겹게 앞으로 한 발을 내디디며 대답하였다.
“루시퍼 님은…… 나를 구원해 주셨다.”
“구원?”
“내 목숨을 구해 주셨다. 미아의 목숨을 구해 주셨다.”
세운이 고개를 저었다.
극적인 상황에서 성좌가 내밀어 준 구원의 손길.
이는 탑에서 성좌를 따르게 되는 가장 흔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손을 내밀면 플레이어는 성좌에게 은혜를 품어 성좌를 더더욱 따르게 된다.
자신에게 불리한 계약이더라도, 좋지 않은 성좌이더라도, 불합리한 명령이 떨어지더라도.
그에 반해 성좌는 자신이 마음에 드는 플레이어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간혹 성격 나쁜 성좌들은 플레이어를 일부러 위험 상황에 빠트린 후 손을 내밀기도 하였다.
마치, 이전에 아르카나가 당한 일처럼 말이다.
“너도 깨닫지 않았나? 그건 어디까지나 너를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알고 있다.”
“목숨을 구원받았다고 해도, 지금 다시 목숨을 바쳐야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지?”
“……미아가 살았다. 그럼 되었다.”
“미아가 그렇게나 소중한가?”
“그렇다.”
“무슨 관계기에?”
“미아는…… 내 편이다.”
“혈연도, 연인도 아닌?”
“아니다. 미아는 그저…… 탑에 하나뿐인 온전한 내 편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전의 세운이었다면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세운에게도 블레이크가 말하는 것과 비슷한 존재가 있었다.
유서아와 강한철, 고창석 어르신과 쌍둥이 자매 등, 디아블로 길드가 바로 그런 관계였다.
그렇기에 알 수 있는 게 하나 있었다.
“네가 죽으면 미아가 슬퍼할 거라는 건 생각 못 했나?”
“그래도…… 살 수 있다. 살아만 있으면…….”
“만약 미아가 널 살리려고 목숨을 희생한다면, 블레이크 넌 살 수 있겠나?”
“…….”
필사적으로 발을 앞으로 내딛던 블레이크가 우뚝 멈추어 섰다.
털썩 굽혀지는 한쪽 무릎.
세운의 말 때문일까, 아니면 결국 체력이 다한 것일까?
둘 중 뭐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애초에 그가 서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으니까.
“블레이크, 미안하지만…….”
세운이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첨탑의 꼭대기에서 떨어진 옥좌를 향해.
옥좌 위에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솔로몬의 두 번째 열쇠를 향해.
“열쇠는 내가 가지겠다.”
세운이 열쇠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이에 열쇠는 저항하기는커녕 날개를 팔락거리며 세운의 손바닥을 향해 날아왔다.
손에 잡히자마자 환한 빛을 내뿜은 열쇠는 형체가 사라지며 세운의 품속에 있는 네피림에 흡수되었다.
– 솔로몬의 작은 열쇠에 ‘레메게톤의 두 번째 장 – 아르스 게티아’가 흡수됩니다.
– 솔로몬의 작은 열쇠에 담긴 힘이 강화되어 열쇠의 힘 일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아르스 게티아에 담긴 ‘강마의 술’이 활성화됩니다.
– 아르스 테우르기아 게티아에 담긴 ‘강신의 술’이 활성화됩니다.
세운이 열쇠를 완벽하게 흡수하였다. 그 후, 곧바로 무너지기 시작하는 첨탑.
메타트론이 쓰러졌기 때문인지, 옥좌의 열쇠가 사라졌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임무를 마치고 사라져 가는 첨탑의 모습은 꽤 장엄했다.
‘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열쇠가 신마대전의 시발점이 맞았다.
즉, 이것으로 신마대전을 막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선신과 악신의 중립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아우터가 쳐들어 왔을 때 합세하여 물리치면 된다.
비록 회귀 전의 탑은 성좌들의 노력에도 무참히 무너졌지만, 신마대전을 겪지 않은, 온전한 상태의 성좌들이라면 아우터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세운이 있으니, 아우터를 상대할 방법을 조언할 수도 있다.
일전의 드래곤만 하더라도 세운의 조언을 듣고 운석을 다루어 아우터를 상대하지 않았던가?
성좌들이라면 드래곤보다 더 뛰어난 힘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안심하던 중.
– 성@, ‘추락하는 #!’가 %$#@ &*@_0`…….
– 성좌, ‘추#하는 날개’가 당신$ &@$(%$)…….
세운의 눈에 성좌의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첨탑이 무너지며 성좌와의 연결이 복구된 모양이다.
비록 글자가 무참히 깨져 있긴 하지만, 그 정체를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성좌, 추락하는 날개.
‘오만의 마신.’
루시퍼였다.
안달 나서 메시지를 보내오는 것을 보니, 세운이 열쇠를 빼앗은 것을 알아챈 모양이다.
‘그래봤자 열쇠를 빼앗을 수는 없다.’
성좌가 직접적으로 탑에 관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판이나 트리톤처럼 격이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고 본래의 1/10도 안 되는 힘으로 강림하는 것도 하급 신이나 가능한 일이다.
루시퍼쯤 되는 신은 손익을 계산했을 때 절대 그런 무리한 짓을 벌일 수 없다.
기껏해야 이전처럼 심상 세계를 구현하는 게 전부.
평범한 플레이어라면 그것만으로도 정신이 흔들려 열쇠를 가져다 바치겠지만, 세운은 아니었다.
이전에는 간신히 정신을 유지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그때보다 더욱 성장한 지금이라면 루시퍼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파아앗!
‘저쪽은?’
루시퍼가 벌인 일은 심상 세계로의 초대 따위가 아니었다.
부서진 첨탑의 중앙.
블레이크가 있던 자리에서 붉은빛이 마구 뿜어져 나왔다.
“설마.”
첨탑의 잔해 속에서 블레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블레이크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간신히 실 끈 같은 생명줄만 붙잡고 있는 상태.
그런데도 블레이크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키며 세운을 향해 몸을 돌렸다.
“열쇠를 찾는 시간을 당길 수 있을 것 같아 동행을 허락해 줬더니, 정말로 열쇠를 가로챌 줄이야.”
블레이크의 몸을 하고 있었지만, 그 정체는 달랐다.
루시퍼.
그가 블레이크의 몸에 빙의하였다.
‘그래도 온전한 상태는 아니다.’
본래 빙의라고 하면 플레이어와 성좌의 힘과 정신이 융합된 상태.
예를 들자면 이전에 레비아탄이나 베엘제붑과 빙의했던 세운의 상태가 바로 진정한 빙의였다.
“건방지기 짝이 없군. 끝까지 대답을 거부하고 여기까지 따라온 것도 결국 열쇠가 탐나서겠지.”
하지만, 지금 루시퍼의 상태는 아니다.
성좌로서의 위압감이 어깨를 짓누르긴 해도, 루시퍼의 힘까지 내려온 것 같지는 않았다.
빙의한 건 어디까지나 의식뿐.
이 상태라면 세운이 질 리가 없었다.
“그런데 말이야.”
블레이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웃음을 지켜보던 세운이 본능적으로 섬뜩함을 느꼈다.
“설마 내가 이런 상황도 예상하지 못하고 네놈을 허락한 거라 생각한 건가?”
블레이크의 등에서 날개가 뻗어 나왔다.
하지만, 그건 여태까지 보아왔던 블레이크의 붉은 날개가 아니었다.
천사를 상징하는 순백의 날개와 악마를 상징하는 칠흑의 날개.
그 두 개의 날개는 지금 세운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가 블레이크가 아니라 오만의 마신, 루시퍼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본래 이 녀석에게 주입한 신성은 오로지 신성이었지만, 네놈이 합류한 이후에 하나를 더 심어 두었지.”
“……그게 뭐지?”
“쉽게 말하자면, 초대장이다.”
“초대장?”
“아니, 초대장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군. 내 초대장에는 네놈의 승낙 여부가 필요치 않으니.”
그의 날개가 크게 펄럭였다.
흰 깃털과 검은 깃털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시야를 빼곡하게 가렸다.
공격이 아니다.
말 그대로 초대장.
저 깃털로 인해 세운과 블레이크, 아니, 세운과 루시퍼의 공간이 탑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타앗!
세운이 그것을 깨닫는 즉시 바닥을 박찼다.
– 내공을 통해 파극암검의 제일 초식, 파천(破天)이 강화됩니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이 역시 결국 루시퍼의 신성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결계.
그렇게 생각하며 결계를 벨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다.
파멸의 힘이라면 신성으로 이루어진 결계 따위, 가뿐하게 벨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어째서…….”
결계는 베어지지 않았다.
깃털을 잡으려 하면 바람에 밀려 손아귀에서 더욱 멀어지는 것처럼, 세운이 검을 휘두르자 깃털들 역시 베이지 않고 검의 궤적에 한 차례 밀려날 뿐이었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모든 것을 베어내고 모든 것을 날려 버리는 파멸의 바람을 소환하는 대범위 마법.
하지만 세운은 포기하지 않고 서클을 팽팽하게 돌렸다.
메타트론을 쓰러트리기 위해 사용한 마법, 카오스 블레이드만으로도 이미 서클은 과부하 상태였지만 엄살 부릴 때가 아니었다.
깃털을 모조리 날려 버릴 생각으로 파멸의 바람을 일으켰지만.
“소용없다. 나와 동등한 성좌가 아니고서야, 마법 따위로 나의 초대를 벗어날 수는 없다.”
소용없었다. 무려 9서클 마법인 디스트럭션 윈드도 루시퍼의 ‘초대’는 막아내지 못했다.
마법이 통하지 않음을 알았지만, 세운은 끊임없이 깃털의 벽을 빠져나가려 시도했다.
몸에 파멸의 힘을 둘러 돌진하기도 하고, 다른 속성의 마법을 펼쳐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계는 뚫리지 않았다.
“그리고, 보아하니 네놈. 흥미로운 물건을 하나 더 가지고 있더군.”
루시퍼가 손가락을 펴 세운의 품을 가리켰다.
그러자 솔로몬의 작은 열쇠, 네피림이 빛을 내뿜으며 떨려왔다. 루시퍼의 인력에 당겨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었다.
“설마, 네놈에게 첫 번째 열쇠가 있었다니. 이로써 다른 놈들의 의견을 들을 필요도 없어졌군. 정말이지, 횡재했어.”
깃털로 이루어진 벽이 사방을 뒤덮었다.
9서클에 도달하며 높은 격에 도달해 ‘자격’을 얻은 세운이었기에 알 수 있었다.
기나긴 통로를 지나, 마침내 루시퍼가 안도한 장소에 다다르고 있음을.
그때.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신의 품에서 빛나는 열쇠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립니다.
세운을 지켜보던 또 하나의 성좌.
마몬의 메시지가 세운의 눈앞에 떠올랐다.
제 61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