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1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13화(613/675)
칠대 마신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주 오래전에는 만마전에서 자주 보였던 광경이라지만, 특정 기간을 넘어서는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광경.
그런데도 회의장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고, 눈이 부시도록 번쩍거렸다.
그사이, 방금 막 회의장에 들어온 세운은 그들에게서 자연스레 풍겨오는 위압감을 맨몸으로 감당해야만 했다.
‘이게 칠대 마신의 위압감.’
판이나 트리톤을 직접 마주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최근에 사탄을 일대일로 대면하면서도 기죽지 않았던 세운이었는데, 칠대 마신을 마주하는 것은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단순히 계산해 봐도 사탄을 대면했을 때의 일곱 배에 달하는 위압감을 견뎌야 했으니 말이다.
그나마 루시퍼를 제외하고는 세운을 적대시하는 이가 없었기에 이 정도인 것이다.
– 주인, 도와줄까?
성흔에서 들려오는 튜리크의 목소리.
하지만, 세운은 고개를 저었다.
‘못 견딜 정도는 아니야.’
입구에 들어오자마자 위압감에 놀라서 튜리크의 힘을 빌리면 저들에게 얕보일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이렇게 신들을 대면하는 것도 언젠가는 맞닥트려야 할 상황이다.
이번에 익숙해지는 게 세운에게도 좋았다.
“짐의 옆에 서 있거라.”
“너무한 것 아닌가요, 마몬? 우리 세운이에게도 선택권이 있는 것 아닌가요?”
“우리…… 세운?”
“우리 세운이도 온갖 화장과 장식품으로 덕지덕지 무장한 여자보다는 저 같은 자연미인에게로 오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자리를 정하기도 전에 마몬과 릴리스가 으르릉거렸다.
둘의 사이가 나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주변을 쭈욱 둘러보니 마신들 모두 사이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특히 몇몇은 당장 서로를 경계하거나 죽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크하하하! 시작부터 곤란하게 되었군, 인간! 뭣하면 내 옆에 서는 것을 허락하마!”
“나의 아이야, 불편하다면 내 옆으로 와도 된단다.”
“음냐…….”
“어, 우리 실제로 보는 건 처, 처음이지?”
호탕하게 웃음 짓는 사탄.
부드러운 미소로 세운을 지켜보는 레비아탄.
테이블 위에 누워 잠꼬대를 하고 있는 벨페고르.
부끄러운지, 어색한 건지, 고개를 푹 숙이고 말까지 더듬어 가며 인사하는 베엘제붑까지.
‘그러고 보니 베엘제붑은 처음 만나는 건가?’
다른 마신들은 본모습을 한 번씩은 봤는데, 베엘제붑의 본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도 회귀 이후에 튜토리얼을 시작할 때부터 마몬과 함께 가장 오래 보아온 성좌이고, 심지어 최근에는 세운의 몸에 받아들여 빙의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배불뚝이나 거인일 줄 알았더니, 전혀 의외네.’
자리에 앉아 있는 베엘제붑의 모습은 작은 소년에 가까웠다.
옷은 자신의 키에 맞지 않게 크고 긴 코트를 걸치고 있었는데, 왕자라는 이명이 괜히 지어진 게 아니었다.
벨페고르의 옆에 앉아 있으니 꼭 어린 남매가 나란히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다들 닥치거라. 이곳이 어디인지 있었느냐? 자, 이리 오너라.”
여러 회유가 있었지만, 세운을 결국 마몬의 옆에 서게 되었다.
세운의 자리를 따로 만들어 주기에는 회의장 자체가 일곱 마신에 따라 일곱 방위로 나누어져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마신 중 몇몇이 세운이 마몬 옆에 선 걸 아쉬워하거나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눈치였지만, 자리 따위로 투덜거릴 때가 아니었다.
“자, 바로 회의를 시작하겠노라. 이번이…… 오래되어 몇 번째인지도 모르겠구나.”
“음냐…… 31번째…….”
“그래, 31번째. 회의의 주제는 짐의 것이 가진…….”
“계속 자기 거라고 하는데, 그거 허락은 맡은 건가요? 허락도 없이 ‘짐의 것’이라 불리면 기분이 나쁠 것 같은데요~”
“사실일 뿐이다. 어쨌든, 이번 주제는 ‘솔로몬의 작은 열쇠’.”
마몬의 입에서 회의의 주제가 나오자 어수선하던 회의장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이곳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솔로몬의 작은 열쇠. 레메게톤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
“그리고 루시퍼의 계획에 관해서다.”
모두의 시선이 루시퍼에게 쏠렸다.
루시퍼는 이곳에 불려온 순간부터 모든 게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인상을 한껏 찌푸린 채였다.
아마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부터가 만마전의 규율 때문일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에 자리를 박차고 회의장을 빠져나갔겠지.
“그러니까…….”
“닥쳐라. 루시퍼.”
“닥치거라.”
“그만 좀 시끄럽게 굴레요? 아까부터 귀 아프게.”
“으우…….”
“나, 난 아냐!”
“이것들이 단체로 미쳐가지고! 칠대 마신이고 뭐고, 당장 네놈들부터 끝장을 내야겠구나! 일곱이나 남을 필요도 없지, 당장 한 명을 남기자!”
자신의 말에 호응하기는커녕 대놓고 무시하는 분위기에 결국 루시퍼가 폭발하고 말았다.
씩씩거리는 그에게서 신성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멍청한 놈.”
시이익-
루시퍼에서 피어오른 신성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더니 곧바로 중앙의 거대한 원탁에 빨려 들어간다.
태초에 정한 규율로 인해, 만마전에서는 전투가 이뤄질 수 없다. 그게 설령 칠대 마신 중 하나인 오만의 마신, 루시퍼라도 말이다.
“크하하하! 진정해라, 루시퍼. 우선은 먼저 들어봐야 할 게 있지 않은가!”
만마전의 규율만 아니라면 당장 칠대 마신 사이에서 전투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
그 속에서 먼저 말문을 튼 건 다름 아닌 사탄이었다.
그와 동시에 루시퍼에게 몰려 있던 시선이 전부 세운에게 집중되었다.
“인간이 어떻게 첫 번째 열쇠를 가졌는지 말이다.”
몇몇 마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메게톤의 첫 번째 장, 아르스 게티아.
그 존재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솔로몬의 열쇠들은 전부 성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퍼져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다시 계약을 펼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봉인된 상태로.”
“그건 내가 알고 있다.”
“나, 나도…….”
“저도…… 보았습니다.”
이에 대답한 건 세운이 아니라 세 마신이었다.
마몬, 베엘제붑, 레비아탄.
공통점이 있다면, 이 세 마신은 튜토리얼 때부터 세운과 함께해 온 이들이라는 점이었다.
“튜토리얼 1등 보상으로 얻은 열쇠로다. 관리자인지 멍청이인지, 추가 보상으로 나열하다가 짐의 보물이 선택한 보상이지.”
“마, 맞아. 나도 봤어.”
“다만, 그때는 철저하게 봉인된 상태였습니다. 저희도 그게 아르스 게이타인지 확신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렇군! 그럼 그 봉인이 언제, 아니, 어떻게 풀린 건가!”
“그건…….”
세 마신의 시선이 다시금 세운에게로 옮겨졌다.
“우리도 궁금하도다.”
자신이 모르는 일이 벌어진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쓰고 있는 마몬.
아르스 게티아에 관한 문제는 자신도 덮어주기 힘들다는 듯이 곤란하게 세운을 쳐다보는 레비아탄.
그리고…… 이제는 대답하는 걸 포기하고 주머니에서 몰래 간식을 꺼내먹고 있는 베엘제붑까지.
‘원래는 지금 밝힐 일이 아니었는데.’
네피림.
자세한 일은 모르지만, 대충이나마 기억하는 그의 입장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인제 와서 숨길 수도 없는 상황.
“80층의 시련에서 봉인이 풀렸습니다. 그전까지는 저도 이 열쇠가 아르스 게티아인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는 거짓이 아니었다.
세운이 튜토리얼의 보상에서 열쇠를 선택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이 열쇠가 ‘마스터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험가인 세운답게 그 누구보다 열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니까.
“80층? 80층이라면 악마들의 잔재가 남아 있는 곳일 텐데.”
“그곳에서 어떻게 봉인을? 이건 좀 관심이 생기는데.”
“봉인을 어떻게 푼 거지?”
“아르스 게이타의 봉인은…… 우리 마신들도 까다로워하는 봉인이다.”
“루시퍼 저놈도 얻자마자 열쇠를 사용하는 건 불가능했을 거다.”
“뭣이라? 날 뭐로 보는 것이냐! 레메게톤의 봉인 따위!”
“봉인 따위? 바로 풀 수 있다고?”
“……한 달. 아니, 두 달이면 충분히 풀 수 있다.”
세운이 고개를 저었다.
만약 회귀 전에 루시퍼가 열쇠를 얻고 두 달 만에 봉인을 풀었다면 신마대전의 발발이 더욱 빨랐을 거다.
자세한 시기는 모르지만, 대충 계산해 보아도 봉인을 푸는 데 최소한 1년은 넘게 걸렸겠지.
“봉인을 푼 건…….”
우웅-
열쇠. 네피림이 떨려왔다.
지금 자신의 이름을 말하면 안 될 거라는 거부 반응.
이에 세운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대답을 이어갔다.
“계약에 따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계약이라.”
“어찌 됐건, 80층이라면 악마들이 관여한 것 같은데. 뭔가 아는 자 없나?”
“악마라고 해도 이미 우리 권속을 벗어난 것들이다. 알 리가.”
“계약, 계약이라. 가장 곤란한 경우지. 대답을 들을 수가 없으니.”
“그렇다고 전부 넘어갈 수는 없다.”
“그래,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지. 인간이여.”
“네.”
“그대는…….”
호탕하기만 하던 사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것만으로도 위압감이 강해져 세운의 어깨를 짓눌러 왔다.
“우리를 배신할 생각인가?”
강마의 서, 아르스 게티아.
그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되면 계약에 따라 칠십이 마왕을 다스릴 수도 있다.
그들의 힘을 한데 모으면 칠대 마신조차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어찌 무찌른다 하여도 칠십이 마왕을 전부 무찌르면 악신의 세력에 크나큰 공백이 생겨난다.
아르스 게티아는 그만큼이나 위험한 물건이었다.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 아르스 게티아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지?”
“계약과 관련된 얘기라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여태까지 절 도와주신 분들을 배신할 생각은 없습니다.”
“흠…….”
자세한 내막은 계약을 핑계로 전부 말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렇게 말해 봤자 세운의 말을 믿기는 힘들 거다.
실제로 사탄은 물론이고 다른 마신들까지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르스 테우르기아 게티아는?”
“그건 일부러 찾아냈습니다. 그게 신마대전의 원인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신마대전?”
사탄의 의아함을 내비쳤다.
그도 그럴 게, 신마대전이 일어난 건 세운이 회귀하기 전에 일어난 일. 이번 생에서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다.
그나마 세운의 말을 알아듣는 이는 마몬처럼 세운의 회귀에 관한 일을 알고 있는 자뿐이었다.
아니, 한 명 더 있었다.
“네놈, 내 계획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루시퍼.
그만은 세운의 말을 가볍게 넘어가지 않았다.
순서가 밀려 미처 말하지 못했지만, 신마대전은 루시퍼의 계획 중 가장 큰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었으니까.
“나도 궁금하군. 루시퍼의 목표를 알고 아르스 테우르기아 게티아를 노린 것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루시퍼의 계획을 알고 있는 것도.”
회귀에 대해 알 턱이 없는 사탄이 이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에게 설명한 건 어디까지나 아우터에 관한 것뿐.
이를 자세히 설명하려면 회귀에 대해 밝힐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밝히지 않으면 대화의 진전이 없을 것 같구나.”
마몬의 말에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에 관해 밝히는 건 최대한 늦추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더 이상 미루기 힘든 ‘때’가 도달한 것 같았다.
“전…….”
세운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칠대 마신.
악신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성좌들.
이들에게 회귀에 관한 걸 밝히는 게 옳은 판단일까?
하지만 결정은 이미 내렸다.
그 어떤 성좌도 믿지 않았던 세운이었기에 더욱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비록 칠대 죄악을 담당하고 있는 악마들이라도, 그들은 자신의 죄악에 해당하지만 않으면 그 어떤 신보다도 순수한 이들이었다.
“무너진 탑에서부터 돌아온 회귀자입니다.”
몰랐던 마신들의 눈이 커졌다.
대표적으로는…….
“회귀자? 그딴 헛소리를 우리에게 믿으라는 것이냐?”
루시퍼.
하지만, 게티아에 관련된 것과 다르게 세운의 회귀에 대해서는 명확한 증인이 있었다.
“짐이 보증하겠다.”
“마몬?”
“짐의 보물이 사용하는 탐욕의 권능은 다들 보았겠지?”
“봤지, 네X이 사도도 아닌 인간에게 어째서 권능을 하사했는지는…….”
“그건 짐의 창고가 아니다.”
“뭐?”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의 창고가 아니라고 해야겠지.”
“네 창고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조금만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거다, 루시퍼. 짐의 보물이 사용하고 있는 건 무너진 탑의. 즉, 멸망한 탑의 무너진 만마전에 묻혀 있던 짐의 보물 창고다.”
마몬의 보증.
이로써 모든 마신이 세운의 회귀를 납득할 수 있었다.
아니,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말도 안 된다!”
오만의 마신, 루시퍼였다.
제 61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