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1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16화(616/675)
블레이크가 내려간 후, 세운은 곧바로 89층의 시련을 끝내고 길드 거주지로 이동했다.
89층이라면 숨겨진 히든 던전이 수도 없이 존재했지만…….
‘조금만 쉬자.’
세운은 81층부터 시작해서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89층까지 올라왔다.
다른 플레이어였으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일.
신체적 피로감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칠대 마신의 위압감…… 보통이 아니었어.’
만마전에서의 대회의.
칠대 마신을 마주하고, 그 위압감을 온전히 받아 내는 것은 엄청난 정신력 소모를 요구했다.
마신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했지만, 만마전을 벗어날 때쯤엔 세운도 한계였다.
“마스터?”
“소식도 안 통하고 모습도 안 보여서 다들 얼마나 걱정했는지…… 어, 어?”
“자, 잡아!”
다행히 거주지에는 이제 막 시련 공략을 끝내고 쉬던 디아블로 길드원 몇몇이 있었다.
덕분에 무너지듯이 쓰러지던 세운은 차가운 바닥에 쓰러지지 않아도 되었다.
“어쩌지? 하늘 씨도 없는데!”
“저번에 응급처치법 배웠잖아요. 일단 안으로 옮기는 게 좋겠어요.”
“아, 그랬지. 응급키트가 어디 있을 텐데.”
“마스터 전용 포션이라면서 준비해 둔 게 있었어요. 이런 일이 가끔 있었다나 봐요.”
“정말? 그래도 이럴 때는 인간미가 조금 보이네.”
“인간미는 무슨. 무리하는 거죠. 얼른 들어요.”
“그래.”
솔직히 세운에게 거창한 치료는 필요 없었다. 신체적으로 무기하긴 했지만, 무엇보다 심한 건 역시 정신력이었으니까.
가장 좋은 치료는 휴식이었다.
그래도.
“이거 먹이면 되는 거지?”
“네, 제가 먹일게요.”
“우리가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면 어쩔 뻔했어.”
“큰 상처는 없는 것 같고……. 그저 무리해서 지친 것 같으니까 우리가 없었어도 큰 문제는 없었을걸요? 서아 씨가 쓰러진 마스터를 보면 기겁했겠지만요.”
“그렇겠네.”
이하늘이 만들어 준 포션은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일종의 신경안정제.
같은 휴식을 취해도 더욱 깊게 잠들 수 있게 해 주어 피로도를 더욱 빨리 가라앉혀 주는 포션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누워 있었을까?
“이틀이나 누워 있었다구요?”
“네, 하늘 씨가 알려 준 대로 응급처치는 끝냈어요.”
“잘하셨어요. 최근엔 어지간히 무리해도 이틀 정도면 깨어났는데…… 여기서부터는 제가 맡을게요. 쉬세요.”
“도울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주세요!”
“네.”
몽롱한 정신에도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련을 끝내고 돌아온 사람들.
세운을 두고 출발하기 어려워하면서도 남들과 속도를 맞추기 위해 시련으로 떠나는 사람들.
시련을 공략하다 세운의 상태를 듣고 돌아와 도움이 될 만한 소재를 찾겠다며 다시 떠나는 사람들.
우웅-
그사이, 세운은 그저 정신을 잃고 있던 게 아니었다.
‘안정시켜야 한다.’
예상 밖의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도달한 9서클의 경지.
그로 인해 급격하게 높아진 영혼의 격.
거기에 만마전에 초대받아 칠대 마신의 엄청난 위압감을 버티며 정신력도 많이 소모되었다.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세운의 내부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몸은 잠들어 있고, 정신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세운은 끊임없이 몸 상태를 조율해 갔다.
마룡의 마나임을 증명하듯 난폭하게 일렁이고 있는 아홉 번째 서클을 진정시키고, 영혼의 격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부족하다.’
몸에 집중하고 있으니 기운이 부족한 게 느껴졌다.
이대로도 충분히 강력하지만, 커져 버린 그릇을 다 채우지 못한 기분.
세운의 힘만으론 커져 버린 그릇을 가득 채울 수 없었다.
그때 떠오른 아이템 두 개.
‘저주의 응집체와 마신혈의 응집체.’
아홉 번째 쉼터인 플라카에서 얻은 아이템들. 이거라면 부족한 기운을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세운은 그 생각이 들자마자 두 응집체를 사용하였다.
굳이 삼키거나 할 필요 없이 손에 쥐고 기운을 운용하는 것만으로 두 응집체가 세운의 몸에 스르르 녹아들었다.
‘됐다.’
세운의 몸을 뜨겁게 달구며 활발하게 움직이는 마신혈의 응집체.
묵직하게 자리를 잡아 영혼의 격을 채워 주는 저주의 응집체.
비록 저주의 응집체는 정화하는 데 노력을 꽤 들여야 했지만, 그 기운만은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당신을 걱정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어차피 겪었어야 할 고난이었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 성좌, ‘암야의 올빼미’가 하루가 다르게 안정되어 가는 당신의 격에 관심을 내비칩니다.
그러는 사이, 바깥의 시간은 세운의 예상 이상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길드원 대부분이 바벨탑을 넘어 87층인 하천 위로 올라갔다. 때로는 혼자의 힘으로 시련을 돌파하고, 때로는 힘을 합치기도 하며.
세운의 도움 없이도 디아블로 길드는 충분히 강력한 플레이어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알지 못한 채, 세운이 눈을 뜨자…….
“……박정필?”
“음냐…… 어, 어? 어! 형님! 형니이임!”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박정필이 보였다.
세운을 간호하고 있어 준 모양인데, 박정필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성격은 예전과 같았지만, 이곳까지 올라오며 플레이어로서의 기량이 많이 올라온 덕이다.
“형님, 안 일어나시길래 놀랐잖습니까! 하늘 씨도 엄청 걱정하면서 간호하다가 바로 어제 시련에 떠났다니까요?”
“시간은 얼마나 지났지?”
“듣기로는 오늘까지 보름도 넘었다는 거 같던데요? 이야, 역시 저밖에 없지 않습니까? 제가 옆에 서니까 형님이 바로 깨어나잖습니까!”
“같던데요? 너는 얼마나 있었는데.”
“……전 아까, 두 시간쯤 전부터? 헤헷.”
보름이라니.
생각 이상으로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아홉 번째 서클을 진정시키고 영혼의 격에 적응하는 등, 거창한 일들을 해 나가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다.
“길드의 시련 공략 진행 상황은?”
“다들 구름 위에서 헤매고 있던데, 물어봐 드릴까요? 서아가 알고 있을 건데.”
“아냐. 너는?”
“엣헴, 저도 중천 공략 끝냈죠! 이제 상천만 남았슴다!”
“제법인데?”
“다 형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구름에 있는 놈들, 지느러미나 날개부터 꺾어 주면 상대할 만하더라구요.”
“날개가 꺾이더라도 상대하기 꽤 까다로울 건데. 기본적으로 방어력이 높은 놈들이라.”
“저도 이제야 성좌 덕 좀 보고 있어서 그 정도는 괜찮슴다.”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낄낄댑니다.
“아, 그리고 이거. 누나가 형님 깨면 먹이라던데요.”
“이하늘?”
“넵.”
처음 보는 포션.
마셔 보니 오랜 시간 잠에 빠져 굳어 있던 몸에 열기가 돌며 근육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반대로 머리는 깨끗해지는 것을 보니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레시피를 묻고 싶을 정도였다.
“벌써 일어나시게요? 좀 있으시지. 아, 음식도 준비해 놨는데 차려드릴까요? 데우기만 하면 된다고 뭐 준비해 놨던데.”
“내가 가지.”
“힘들면 언제든지 저한테 말씀해 주십쇼! 형님의 오른팔 아닙니까!”
부축이라도 해 주려는 모양새였지만, 부축까지는 필요 없었다.
애초에 세운이 이리도 오랜 시간 누워 있었던 건 육체의 피로함이 아닌 다른 이유가 컸으니까.
멀쩡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박정필이 ‘역시 형님!’이라고 외치며 졸졸 따라왔다.
‘죽인가.’
오랜만에 음식을 먹는 세운을 배려한 밥상.
옆에 있는 돌에 마나를 살짝 불어넣으니 금세 열기가 올라 음식들이 데워졌다.
“맛있지 않습니까? 옛날에는 식재료도 한정되고 조미료도 없었는데, 요즘은 탑에서 찾아낸 것들로 이렇게 막 만들더라고요. 이제 호텔 요리 부럽지 않다니까요?”
“김미정이 차린 건가.”
“옙. 먹을 때마다 버프까지 생겨서 시련에 나설 때마다 든든하게 챙겨 먹는다니까요? 시련에서 돌아오면 회복 관련 버프가 깃들어 있는 음식도 차려 주고요.”
이뿐만 아니다.
쌍둥이 자매는 목욕탕 등의 편의 시설을 지어 두었고, 의원에는 포션까지 배치되어 있었다.
시설이나 복지로만 따지자면 이미 그 어떤 길드도 넘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이제 뭐 하실 겁니까? 아, 형님은 어디까지 공략하신 겁니까?”
“89층.”
“상천까지 전부요? 우와, 보름도 전에 들어오셨으면서 벌써요? 역시 대단하심다.”
“어차피 90층은 발할라와 같이 공략하기로 했으니, 우선은 기다려야지.”
“아, 말 잘하셨슴다. 안 그래도 어제 들어왔더라구요.”
“들어오다니? 누가?”
“형님 일어난 거 공지했으니까 이제 슬슬 올 법도 한데…….”
쿵!
박정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식당의 문이 열렸다.
손에 들린 거대 망치.
거주지에 들어왔으니 편한 복장으로 있을 법도 한데, 중갑옷으로 무장한 채 당당하게 어깨를 펼치고 있는 남자.
“브린 자르?”
“일어나셨소! 정말 다행이오!”
발할라 길드의 수장, 브린 자르였다.
어디서 훈련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전신이 땀으로 흥건했다.
“소인도 상천까지의 공략을 마친 참이라오! 안 그래도 90층의 공략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정말 다행이오!”
“하긴, 이제 슬슬 계획을 짜 둬야겠군요.”
디아블로와 청해, 거기에 발할라 길드까지, 이번 90층의 시련은 총 세 길드가 힘을 합하여 공략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니 인원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어떤 전략으로 싸울 것인지 등의 상세 계획을 짜 두어야만 한다.
브린 자르는 비록 끝에서 실패했다지만 90층에 대한 지식이 있었으니까.
솔직히 그 지식도 세운을 따라오지는 못했지만, 굳이 그에게 90층에 대한 지식을 드러냈다가 괜한 의심을 받을 필요는 없다.
“우선은 90층에 관해 설명부터 하겠소! 소인도 90층 전부를 경험한 건 아니지만, 아는 것만이라도 설명해 보자면…….”
“잠시.”
“음? 왜 그러시오.”
“그전에 서로의 전력 파악부터 해 봤으면 합니다.”
“전력 파악이라……. 좋은 생각이오! 우선은 서로의 전력을 알아야 행동 방침을 정하기 편하니 말이오.”
브린 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세운이 바라던 바는 그게 아니었다.
89층에서 일어난 사건 덕분에 이미 90층의 공략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다. 공략은 100% 성공할 것이다.
그러니.
“그런 의미로, 상대를 좀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하하, 물론이오!”
공략 그 자체보다는 이번에 새로 얻은 힘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 * *
브린 자르와 세운의 대련.
본래 그 목적은 서로의 힘을 확인하여 90층에서 어떤 전략을 짜야 할지 판단하는 것이었다.
그래, 본래는 그 목적이었다.
콰아앙-!!
“……허허.”
다만, 지금 브린 자르의 상태를 보면 대련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본래 자신의 상징처럼 휘두르고 다니던 거대 망치는 꺼내지도 못했다.
그는 현재 간혹 공격이 어려울 때 큰 공격을 막기 위해 사용하던 타워 실드 안에 숨어 간신히 세운을 공격을 받아 내고 있었다.
“원래 이런 실력이었소? 아니, 그랬다면 소인과 동맹을 맺을 필요가 없었겠지.”
장비는 시커멓게 그을리고, 타워 실드는 당장에라도 부서질 듯이 금이 가 있었다.
사각의 테두리 중 한 곳은 아예 뜯겨 나갔고, 실드로 세운의 공격을 받아 내는 그의 팔다리는 덜덜 떨려왔다.
“고작 보름 사이에 이런 경지까지 성장했다는 말이오? 정말이지…….”
하지만, 세운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공격을 마음껏 받아 주는 훌륭한 대련 상대는 쉽게 찾을 수 없기에, 가능한 한 새로 깨달은 힘을 모두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메테오 스트라이크 ]– 우주로부터 거대한 운석을 끌어당겨 떨어트리는 궁극의 파괴 마법.
“내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믿기지 않소.”
구름이 잔뜩 끼어 햇빛도 잘 들지 않는 거주지의 하늘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왔다.
까만 구름을 뚫고 운석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먼 옛날, 드래곤이 분노하여 성 하나를 날려 버렸을 때 사용했다는 궁극의 마법.
비록 이제 막 9서클에 진입한 세운이었기에 그 위력은 전설에 나오는 것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지만, 그렇다고 해도 메테오 스트라이크였다.
브린 자르는 그 믿기지 않는 장관을 올려다보며 타워 실드를 더욱 꽉 붙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성좌에게 신성을 빌려 모든 힘을 방어로 돌렸다.
탑을 오르며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방어에만 목숨을 걸었던 적이 있었을까? 이제는 경외심까지 차올랐다.
“이렇게 된 거, 소인이 모든 힘을 다해서라도 받아 주겠소!”
브린 자르가 눈빛을 다잡으며 추락해 오는 운석을 올려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디아블로 길드의 거주지 전체에 후끈한 열풍이 불어닥쳤다.
제 61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