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1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17화(617/675)
시간이 지날수록 디아블로 길드의 거주지에는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시련과 시련 사이에 휴식을 위해 찾아온 이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상천(上天). 즉, 89층의 시련까지 마치고 발할라와 함께하는 90층의 시련에 대비하기 위해 찾아온 이들을 뜻하는 것이었다.
놀라운 건, 아홉 번째 쉼터의 거대 길드들도 끊임없이 실패하였던 그 시련들을 디아블로 길드는 단 한 명의 탈락자도 없이 무사히 오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우리 슬슬 90층 시뮬레이션해 봐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게요. 작전도 너무 간단한 것 같던데.”
거주지에서 휴식이나 개인 훈련을 이어 가던 길드원 몇몇이 의문을 표했다.
이제 곧 있으면 모든 길드원이 거주지에 도착할 텐데, 발할라 길드와의 90층 공략에 대해 이렇다 할 계획이 안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마침 눈앞을 지나가고 있던 유서아에게 이에 관해 물어보았다.
“아…….”
유서아가 곤란하다는 듯이 이마를 긁적였다.
“우선, 작전은 들은 대로예요. 동맹이라지만 특별히 협업을 한다기보다는 청해 길드와 작전을 진행했던 것처럼 각자 구역을 맡기로 했어요.”
“저번에는 아니지 않았습니까? 발할라 쪽에서 좀 더 유기적으로 제대로 된 작전을 강구했던 것 같은데요.”
“그게…… 음, 따라와 보실래요?”
“네? 어딜 말입니까?”
“와 보시면 이해되실 거예요.”
말보다는 행동이라는 세운의 좌우명을 배우기라도 한 것일까? 유서아는 별다른 설명 없이 그들을 어딘가로 안내해 주었다.
“거주지 엄청나게 넓어졌네요.”
“처음에는 거주지 중앙에서 거주지의 외각 끝이 보일 정도였는데 말이죠.”
“청해랑 합쳐지고 나서는 외각을 다 둘러보지 못할 정도로 넓어졌다니까요.”
이제 디아블로의 거주지는 거주지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넓어졌기에, 예전처럼 거주지의 외각에 도착하려면 한참을 이동해야 했다.
유서아는 척박한 땅을 넘고, 청해 쪽에서부터 흘러오는 강을 넘고, 제법 높아 보이는 언덕을 지나고 나서야 걸음을 멈췄다.
“저기, 보이죠?”
“저게 무슨…….”
“와…….”
언덕 너머 보이는 풍경은 완전히 다른 세계 같았다.
운석이라도 떨어져 내린 것처럼 파여 있는 수십 개의 구덩이.
그것만으로도 신기한데, 더 신기한 건 구덩이의 상태였다.
“거주지에는 날씨나 특이 지형이 없지 않나요? 이게 무슨 일이래…….”
불을 지폈던 것처럼 새까만 구덩이.
수백, 수천 년 동안 지독한 가뭄이라도 들었던 것처럼 쩍쩍 갈라진 구덩이.
호수처럼 물이 잔뜩 채워진 구덩이.
표면이 투명한 얼음이 뒤덮여 있는 구덩이까지.
구덩이들의 상태는 그야말로 가지각색이었다.
거주지의 풍경이라기보다는 시련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이어서 유서아에게 들려온 대답은 더욱더 가관이었다.
“세운 씨가 만들어 낸 거예요.”
“길드장이요?”
“발할라의 수장과 대련을 펼쳤다고 들었어요. 아무래 보아도 대련의 흔적 같지는 않지만요.”
“길드장이 대단한 건 알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디아블로 길드원들도 세운이 거주지에서 훈련이나 대련을 하고 있는 모습은 종종 보아 왔다.
그중에서 특히나 마법을 사용해 대련할 때는 땅을 쿵쿵 울릴 정도로 위력이 대단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말도 안 될 정도는 아니었다.
눈앞의 환경은 인간이 만들어 냈다기보다는 신이 일으킨 재해가 아닐까 싶은 상태였으니까.
“그럼 혹시 작전이 간소화되고 시뮬레이션도 안 하고 있는 이유가 이것 때문인가요?”
“네. 발할라의 수장이 세운 씨의 전투력을 확인하고 작전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더라구요.”
“하긴, 이건 이미 인간을 넘어선 수준이니까요. 90층이 어떤 곳인지는 몰라도, 이런 공격을 당하면 흔적도 안 남겠어요.”
가지각색의 속성으로 뒤덮인 수십 개의 구덩이.
길드원들은 대체 어떤 공격으로 저 구덩이가 생겨났는지 상상해 보았다.
솔직히 도저히 제대로 상상을 할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이런 공격을 맞고도 버티는 몬스터는 없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공략의 초점이 바뀌었어요. 본래는 시련의 성공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 있었는데…….”
“이 정도면 길드장 혼자서도 공략할 수 있겠는데요?”
“네. 그래서 시련의 성공보다는 저희의 역량 상승에 초점이 맞춰졌어요.”
“아……. 어쩐지 익숙하네요.”
“발할라 길드야 당황하겠지만, 저희야 뭐, 항상 그래 왔으니까요.”
튜토리얼이나 극 초반의 시련을 제외하고는 세운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디아블로 길드는 따로 내버려 둔 채, 자신은 더 먼 곳으로 이동해 개인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
처음에는 불만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모든 게 우리를 위한 거였으니까.’
만약 그때부터 세운이 모든 것을 도와줬다면 디아블로 길드는 탑과는 대비되는 ‘안전함’에 적응한 채로 탑을 올랐을 것이다.
그렇게 여기까지 올라왔다면, 세운이 아무리 지켜 준다고 하여도 결국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겠지.
그들이 여기까지 성장해 온 것도, 그들이 여기까지 버텨 온 것도 전부 세운의 이런 방식 덕분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저희끼리라도 간단하게나마 시뮬레이션을 해 볼까 하는데. 어떨까요?”
“서아 양이 단독으로요?”
“네. 이렇게 강해졌다고 해도 세운 씨의 도움을 구하며 발목을 잡을 수는 없으니까요. 저희는 저희끼리 버텨…… 아니, 이겨 내야죠.”
80층의 시련에서 디아블로 길드는 악마들의 공격을 버텨 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뿌듯했지만, 거기서 안주할 수는 없었다.
유서아의 이번 목표는 이겨 내는 것.
그리고 단순히 버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시련을 밀고 나아가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렇게 행동하면 안정성이 떨어져 누군가 크게 다치거나 심하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나올 수도 있지만.
“좋아요.”
그녀를 따라온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여기서 안도하면 나중에 더 큰 위험이 닥쳐온다.
차라리 위험해 보이더라도 지금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게 미래를 대비하고, 더 안전하고 현명한 선택이다.
“저희도 바라던 바입니다.”
그리고 이건 아마, 디아블로 길드원 모두의 생각일 것이다.
* * *
어느덧 디아블로 길드에 모든 길드원이 돌아왔다.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는 완벽한 등반.
물론 시련의 난이도가 워낙 높았던 탓에 중상을 입은 채로 실려 오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하늘이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층이 높아지며 강해진 실력과 더욱 다양하고 뛰어난 약재들은 그녀의 치료를 놀랍도록 발전시켜 주었다.
“소인은 준비되었소!”
“장비는 정비받았습니까?”
“디아블로의 대장장이 실력이 엄청나더구려! 정비는 물론 강화까지 해 주었소. 오늘은 더 버틸 수 있을 거요!”
그사이에도 세운과 브린 자르의 대련은 계속되었다.
아니, 대련이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세운은 다양한 공격을 연습했고, 브린 자르는 공격은 완전히 포기한 채 방어에만 전념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브린 자르는 탑에 들어온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방어술이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비록 9서클 마법 대부분이 광범위 마법이라 개개인에게 위력이 집중되어 있지 않다고는 해도 무려 9서클 마법을 버티고 있었으니 말이다.
“유서아 님. 저희도 훈련 준비 끝났습니다.”
“오늘은 발할라 길드랑 같이하기로 했었죠?”
“네, 그쪽도 준비 끝났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바로 가죠.”
“네.”
다른 이들도 놀고 있는 건 아니었다.
단체 훈련 시간이면 고창석이나 이하늘 같은 비전투 직군들도 전부 참여하여 훈련에 임했다.
비전투직이라 해서 누군가에게 보호받기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허허, 기다리고 있었다네. 얼른 가지!”
“우와아, 훈련이다!”
“이번에는 이동식 화포를 써 볼까?”
“좋아!”
비전투 직군들도 훈련에 진심이었다.
오히려 비전투 직군인 만큼 자신의 능력이 전투에서 활약하는 순간을 감상하기 위해 더욱 열정적이었다.
“발할라 일동! 준비되었나!”
“우!”
“마셔라! 오늘, 우리는 발할라를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다!”
“우!”
진열을 갖춘 발할라 길드원들이 무언가를 마시자, 몸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일종의 버서커 상태.
아스가르드의 후원을 받는 그들이 성좌들의 힘을 더욱 깊게 내려받기 위한 준비 동작이자, 기본적인 신체 능력을 이끌어 주는 행위였다.
“가자아!”
두두두두-!
디아블로 길드와 발할라 길드의 훈련, 아니,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번이 여섯 번째 모의 전투인 만큼, 두 길드는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 단순히 전투력뿐만이 아니라 전략도 무척이나 중요했다.
쿠궁!
두 길드가 충돌했다.
곳곳에서 창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특히 발할라 쪽에서는 듣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꺾여 버릴 정도의 함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 길드 마스터 ‘정세운’이 가진 공포의 권능이 길드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제 세운은 마신들의 위압감마저 가볍게 버텨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힘은 길드원에게까지 깃들어 함성의 위압감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있었다.
되레 더욱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며 발할라 길드를 위협했다.
“대단하십니다. 한 번도 정체되지 않고 탑을 등반해 온 신생 길드라고는 믿기지 않을 실력입니다.”
“감사해요. 발할라 길드 역시 대단하네요. 빈틈이 없어요.”
“디아블로는 빈틈이 없다기보다는 빈틈이 생겨도 유기적으로 서로를 잘 채워 주는 것 같습니다.”
“튜토리얼 때부터 늘 함께해 왔으니까요. 다들 가족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처음에는 발할라 길드가 우위였다. 그들은 디아블로 길드보다 경력도, 레벨도 더 높은 숙련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모의 전투가 반복될수록 승패의 방향은 크게 달라졌다.
바로 두 번째 경기부터 무승부로 끝나기 시작하더니, 네 번째 경기에서는 결국 디아블로 길드가 우승을 따냈다.
다섯 번째 경기부터 발할라 길드가 더욱 분발하여 움직였지만, 결과는 쉽게 뒤집히지 않았다.
믿기지 않는 결과.
브린 자르의 비서로 활동하던 이는 디아블로와 대결할수록 아스가르드의 성좌들이 어째서 디아블로 같은 신생 길드와 손을 잡으라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제 곧이네요.”
“솔직히 어색하기까지 합니다. 90층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벽에 난 문을 찾은 기분입니다.”
“그래도 문으로 편하게 들어가면 결국 저희 실력은 제자리예요. 어떻게든 저희 실력으로 벽을 깨부숴야 해요.”
“동감입니다.”
90층 시련의 공략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들 이를 숙지한 채로 자신의 능력을 더욱 갈고닦거나 장비를 손질하는 등, 마지막 정비를 하고 있었다.
“열 번째 쉼터, 아름답겠죠?”
“정황상 천국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데. 아무래도 플라카보다는 아름다운 곳 아닐까요?”
“기대되네요.”
“저두요.”
* * *
그렇게 며칠 후.
“으하하하하! 발할라여! 준비는 되었소?”
“우!”
“마침내 결전의 날이오! 오늘 우리는 거대한 벽을 넘어, 위대한 발할라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갈 것이오!”
“우!”
“자, 그대도 한 말씀 하시오!”
브린 자르가 세운을 앞세웠다.
애초에 이런 자리에서 말을 길게 하지 않던 세운이었기에, 이번에도 뒤랑달의 손잡이를 잡으며 간결한 격려의 말을 내뱉었다.
“가자.”
열 번째 쉼터까지 단 한 걸음.
한 걸음 남았다.
제 61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