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2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20화(620/675)
만마전에서 마신들과의 회의를 거친 후, 세운이 솔로몬의 작은 열쇠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마신들뿐만 아니라 칠십이 마왕에게도 공표되었다.
그들은 튜토리얼 때부터 세운을 눈여겨봤지만, 세운은 탐욕의 마신인 마몬이 점찍어 둔 플레이어였기에 자세히 관찰하지 못해 열쇠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에 따른 반응은 당연히 격렬했다.
– 성좌, ‘악어를 탄 노인’이 당장 열쇠를 부숴야 한다며 땅을 쿵쿵 내리찍습니다.
–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독니를 드러내며 경계합니다.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이건 또 무슨 상황이냐며 낄낄댑니다.
– 성좌, ‘피투성이 사자’가 진중한 얼굴로 마신들의 의견을 묻습니다.
– 성좌, ‘검은 새’가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 성좌, ‘거대한 새’가 다급하게 검은 새의 머리를 숙이며 마신들의 의견에 존중을 표합니다.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무작정 화를 내며 난동을 피우는 성좌.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이 방관하는 성좌.
조용히 마신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열쇠로 인한 파급효과를 떠올려 보는 성좌 등.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럴 만도 한 게, 칠십이 마왕 전부가 이전에 솔로몬의 열쇠에 갇혀 있었었다.
혹시나 다시 갇히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 성좌, ‘격노의 군주’가 인간의 신용은 칠대 마신이 보증하겠다고 선언합니다.
– 성좌, ‘격노의 군주’가 혹여나 마왕들이 열쇠에 갇힌다면 자신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빼내 줄 테니 믿고 따라오라고 외칩니다.
마신들이 세운의 편을 들어주었다.
사탄은 자세한 설명 없이 의리와 믿음으로 마왕들을 설득하였다.
솔직히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설득 방식이었지만, 칠십이 마왕 중에서도 은근히 사탄을 따르던 마왕들은 그 말만으로도 고개를 숙였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인간이 지닌 열쇠로 인한 이득을 설명합니다.
마몬은 세운이 열쇠를 지님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설명하였고.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마왕들의 걱정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함께 지켜보면 안 되겠냐며 그들을 다독입니다.
레비아탄은 마왕들의 말에 공감해 주었다.
마왕들은 그렇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대부분의 마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아직 납득하지 못한 마왕도 몇 있었지만, 그건 앞으로 차차 해결해 나갈 문제다.
“혹시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에 세운은 마왕들에게 고개를 숙여 부탁하였다.
루시퍼에게 얻은 솔로몬의 작은 열쇠, 세 번째 장.
아르스 포울리나.
그것을 사용하려면 마왕들의 허락을 구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계약에 따라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그들의 힘을 사용할 수야 있겠지만, 그러면 마왕들의 적대감을 사게 된다.
다만, 솔로몬의 열쇠는 마왕들에게 족쇄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과거에 자신들을 구속하였던 열쇠에 몸을 맡기고 싶어 하는 마왕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 성좌, ‘노래하는 일각수’가 재미있을 것 같다며 콧노래를 흥얼거립니다.
–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동감이라며 낄낄거리며 웃습니다.
– 성좌, ‘불의 총통’이 근질거리는 몸을 풀기에 제격일 것 같다며 불길한 미소를 짓습니다.
…….
그중 몇몇은 세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때부터 세운은 허락받은 마왕들의 힘을 빌려 열쇠의 힘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그 힘을 사용해 볼 그 첫 번째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 * *
– 아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현세의 모습이란 말인가!
열쇠로 인해 만들어진 심연.
그 속에서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래하는 일각수.
서열 67위의 마왕, 암두시아스.
자신의 힘을 허락한 순간부터 얼른 바깥을 구경하고 싶다며 세운에게 노래를 부르던 성좌였다.
– 푸른 하늘! 금빛 구름! 신성한 공기까지!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구나~
심연을 통해 보이는 암두시아스의 윤곽은 이명 그대로였다.
외뿔의 짐승, 일각수.
일각수라는 말을 들으면 유니콘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그의 윤곽은 유니콘보다는 코뿔소에 더욱 가까웠다.
그 거대한 덩치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몸을 덩실거리고 있으니, 인지 부조화가 찾아올 것만 같았다.
‘아르스 게티아로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네피림과 나눴던 대화처럼, 아르스 게티아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심연을 통해서나마 목소리를 듣는 정도.
만약 그 존재가 눈앞까지 찾아온다면 계약에 따라 무릎을 굽히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을 다루는 건 불가능하다.
아르스 게티아는 어디까지나 계약의 증명일뿐, 그들을 다루는 건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암두시아스.”
– 실제로는 처음 보는구나! 제법 잘생겼는데? 어떠냐, 나와 함께 춤을 추어 보지 않으련? 노래는 내가 맡지!
“약속한 대로 힘을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 흠흠, 듣던 대로 재미없는 인간이구나. 뭐, 좋다. 이렇게 기분 좋은 날, 한 곡 뽑아내는 정도야 간단하지!
다행히도 암두시아스는 기분 좋게 세운의 말을 따라주었다.
고개를 끄덕인 세운이 네피림의 이름을 외치자 열쇠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 갔다.
루시퍼에게 건네받은 솔로몬의 세 번째 열쇠, 아르스 포울리나. 룬 문자가 새겨지며 풍만한 마나를 풍기는 열쇠가 나타났다.
“끼야아아악! 내 앞에서어어! 마법 따위를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으냐아아아아!”
천조가 기다려 주지 않고 세운에게 달려든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거대한 부리를 힘껏 벌린 채로 세운을 한입에 집어삼키겠다는 듯이, 몸에서는 바람을 뿜어내며 미사일처럼 빠르게 날아든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세운이 열쇠를 돌렸다.
철컥.
우웅-
암두시아스의 윤곽이 자리한 심연의 앞으로 정체 모를 마법진이 생겨났다.
이 짧은 순간에 세운의 바로 코앞까지 날아든 천조.
마나는 더욱 불안정해져 세운의 서클과 단전에까지 영향을 줄 지경이어서 피하기도, 막아내기도 어려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 흠흠.
그때, 암두시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아~!
피이이이잉!
전방으로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그저 소리로 만들어진 충격파일 뿐인데, 그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바람보다 빠르게 다가오던 천조가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밀려날 정도였다.
– 아아아암~두시아스!
“끼야아아아악!”
– 내 이름은 아아암! 아, 아, 암두시~ 아스!
“끼야아아아아악!!”
– 마계 최고의 음악가! 심연처럼 깊은 목소리의 성악가! 이 세상의 모든 어둠이 나의 노래에 맞춰 꿈틀거리네!
누가 마왕 아니랄까 봐 자신의 얘기로 가득한 가사.
자존감이 충만하게 느껴지는 가사가 뱉어질 때마다, 천조가 괴로운 듯 날개를 허우적거렸다.
아직 노래는 초입부일 뿐인데, 녀석의 귀로 추정되는 곳에서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 아아, 아름다워라! 아아, 암두시아스! 저 맑은 하늘은 내 목소리처럼 깨끗하며, 저 금빛 구름은 내 노래처럼 반짝이노니!
“그마아아안! 그만, 그마아아아안!”
충격파를 견디지 못한 천조의 깃털이 빠지기 시작한다.
깃털 하나하나가 창칼처럼 날카롭고 단단했는데, 암두시아스의 노래 앞에 그의 깃털은 민들레 씨앗처럼 손쉽게 빠져나갔다.
녀석은 순식간에 한쪽 날개의 깃털이 모조리 빠져 매끈해졌고, 곧바로 등을 돌렸다.
아무리 강한 녀석이라 하더라도 감히 성좌의, 마왕의 힘을 견디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 저 아름다운 나무마저 나의 노래에 춤을 추네~ 관객들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내지르네!
“그마아아안! 제발, 그마아아안!”
본래 천조들의 둥지가 자리했을 하얀 나무.
세운이 쏘아낸 메테오 스웜으로 인해 부러졌던 나무가 순식간에 자라났다.
자라난 가지는 넝쿨처럼 꿈틀거리더니 도망치려던 천조의 날갯죽지를 휘감았다.
암두시아스.
그는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음악을 통해 나무를 조종하는 힘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었다.
– 온 세계가 나의 노래에 축복하네, 찬란한 빛마저 고개를 숙이네!
“끼아아아악! 사, 살려어어어…….”
– 수줍어 말아라, 나의 첫 관객이 된 영광을 누려라! 나와 함께 춤을 추어라!
심연 속, 암두시아스의 윤곽이 흔들거렸다. 자기 노래에 심취하여 춤이라도 추고 있는 모양이다.
천조 역시 마찬가지로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단, 자기 의지로 춤을 추는 암두시아스와는 달리 녀석은 본래 자기 둥지를 받쳐 주었던 나무에 묶인 채로 강제로 춤을 추는 중이었다.
그로 인해 날개가 뒤틀리며 깃털뿐만이 아니라 날개 자체가 잔혹하게 뽑히고 있었다.
– 아아, 아름다워라! 아아, 암두시아스!
“키악, 켁. 크악. 컥.”
천조의 등에 달린 다섯 쌍의 날개가 모두 뽑혀 나갔다.
하얀 가지는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듯 천조의 목을 휘감았다.
녀석의 고막은 이미 파괴되었지만, 암두시아스의 노래는 피부를 통해 녀석에게 강제로 주입되고 있었다.
– 나와 함께 춤추세, 나와 함께 노래 부르세! 아아, 이 아름다운 세상! 아아, 이 아름다운 노래!
파직!
암두시아스의 목이 뒤틀렸다.
신경이 끊어지며 사지가 축 늘어졌지만, 녀석의 머리만은 죽지 않았다.
“제바아알…… 그마아아안…….”
녀석은 자신의 생명력을 저주했다.
고막이 터져 나간 귓구멍으로 쑤셔 박히듯 파고드는 노래를 저주했다.
– 박수 쳐라, 감탄하라! 울부짖어라! 그래, 바로 나의 이름~
천조의 생명이 끝에 다다랐음을 느낀 것일까? 암두시아스의 노래 역시 절정으로 치달았다.
가사는 자존감만으로 가득 차 듣기 거북할 지경이었지만, 중독성 짙은 음색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공격’의 영향을 받고 있지 않은 세운조차도 머릿속을 침범하는 암두시아스의 구절을 잊으려 머리를 휘저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저도 모르게 ‘아아, 암두시아스~’라고 흥얼거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암두시아스의 노래에 마침표가 찍혔다.
마지막 가사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정직한 가사.
마치,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것만 같은 노래.
– 암~ 두~ 시~ 아~ 스~
이게 바로 솔로몬의 작은 열쇠, 세 번째 장. 마법의 서, 아르스 포울리나의 힘.
계약한 이의 힘을 빌려 와 구현하는 힘이었다.
“키야-”
파직!
천조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보기 불쌍할 정도로 잔혹한 최후.
그 까다로운 상대였던 천조가 암두시아스의 노래 하나로 처참히 쓰러졌다.
과연, 마왕의 힘.
별다른 제약 없이 탑에서 마왕의 힘을 구현할 수 있다니,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힘이었다.
– 아아, 주변이 아름다우니 영감이 절로 떠오르는구나! 지금 이 기분이라면 노래 몇 곡은 금방 작곡할 수 있겠어!
“감사합니다. 암두시아스.”
– 고맙긴, 내가 더 고맙구나! 앞으로도 얼마든지 불러다오! 내 아름다운 노래를 마음껏 들려주지!
“……네.”
철컥.
세운이 열쇠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렸다.
무언가 잠기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며, 마법진과 함께 암두시아스의 윤곽이 그려진 심연 역시 빠르게 사라졌다.
‘생각 이상인데.’
솔로몬의 작은 열쇠.
거주지에서도 한 번 확인해 보았지만, 실전으로 사용해 보니 더욱 강력했다.
이 힘이라면 당장 90층대의 시련을 올라도 걱정 없을 것만 같았다.
다만, 문제라고 한다면…….
치이익-
–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하지.
“그래.”
네피림의 상태였다.
본래 풀려서는 안 될 봉인을 네피림이 강제로 풀고 있는 탓에, 열쇠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네피림의 힘이 필요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고 나면 네피림의 힘이 모두 소진되어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될 때까지 휴식 시간이 제법 필요했다.
모든 열쇠를 되찾거나 시간이 지나 네피림이 적응되면 이런 제약도 전부 사라진다고야 하지만, 당장에는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 ‘추방당한 가쉬마엘’을 포식하였습니다.
– 양분을 흡수하여 모든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환호합니다.
강한 몬스터였다는 걸 증명하듯이 총합 능력치가 20이나 상승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었지만, 이거뿐이라면 여정의 지침표가 이 안을 가리켰을 리가 없다.
난장판이 되어 있는 천조의 둥지를 둘러보던 세운은…….
“저건가?”
여정의 지침표가 문 내부를 가리켰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제 62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