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2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24화(624/675)
본래 샤이넨의 신물이 저런 모양을 띠고 있었던가?
회귀 전, 열 번째 쉼터에 도달한 세운은 당연하게도 천사들의 환영 아래 그들의 신물을 영접했었다.
분명 이미 한 번 보았던 신물인데.
‘어째서?’
어쩐지 제대로 기억이 나질 않았다.
샤이넨의 신물같이 중요한 요소를 잊었을 리가 없는데, 회귀 전에 보았던 신물의 형상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잊었다기보다는…… 강제로 잊힌 듯이 불쾌한 느낌.
게다가, 신물의 모습 역시 세운의 상식선에 어긋났다.
‘톱니바퀴라니.’
신(神)이 무엇인가?
세운이 넘어왔던 지구로 보자면 종교적 신앙의 대상.
탑에서 보자면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절대적 존재를 뜻했다.
그런 존재가 현대 문명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톱니바퀴를 신물로 삼는다니?
무언가 어긋난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신물로 자리를 잡고 있는 톱니바퀴의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혹시…… 신의 이름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세운이 먼저 천사에게 물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쉽게도 이름은 알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본래는 이름이 있었던 걸로 사료됩니다만, 어째서인지 신의 이름은 세상에서 지워졌습니다.”
“지워지다니…….”
“그 말대로입니다. 모든 신앙 서적과 찬양가, 역사 등, 신의 이름은 그 모든 곳에서 부자연스러우리만큼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본래 이름 자체가 없었던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문헌을 연구한 결과, 과거에는 분명 그 이름을 인지했다고 사료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투성이였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세운은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기로 하였다.
“혹시, 용사가 봉인되었다는 곳에 들를 수 있겠습니까?”
정황상 회귀자는 아우터를 되돌릴 수는 있어도 아우터를 무찌를 힘은 없어 보였다.
세운이 들어간다면 그녀의 봉인을 해방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한 도움이 아니다.
과거를 알고 있으며, 크로노스의 회귀자인 용사라면 세운의 계획에 큰 도움이 될 터다.
“저희도 염원하던 일이지만, 아직은 안 됩니다.”
“그걸 위해 저희를 용사로 대접해 준 것 아닙니까?”
“맞는 말이지만, 때가 이릅니다.”
“그럼 언제…….”
“용사님이 아니었다면 샤이넨은 이미 그것에 의해 멸망했을 겁니다. 그렇게 위험한 악이 잠든 곳을 함부로 열 수는 없습니다.”
“그쪽은 이미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다만, 저희 역시 병사들을 보내자마자 문을 잠그려 했습니다. 용사님들께 그런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희가 괜찮지 않습니다. 조금 더. 용사님들의 힘이 무르익고, 그 수가 최소 천에 이를 때 용사님들께 부탁할 생각입니다.”
용사의 수가 최소 천, 즉, 샤이넨에 천 명이 넘는 플레이어가 모였을 때 문을 개방해 주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세운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안 된다.’
세운이 회귀하기 직전까지도 샤이넨에 도착한 플레이어의 수는 천이 되지 못했다.
현재 디아블로와 청해, 발할라. 거기에 레드 드래곤을 더한다고 하더라도 오백이 안 될 텐데…….
잠자코 문을 열어 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가는 들어가 보기도 전에 아우터의 습격이 시작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철컥.
아까부터 이게 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일까?
철컥.
묘하게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소리가 세운의 귓가에 끊임없이 맴돌았다.
철컥.
세운이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여정의 지침표가 제멋대로 떠오른다.
여정의 지침표가 가리키는 방향은 세운의 정면.
샤이넨의 신물이 있는 곳.
철컥.
금빛의 톱니바퀴가, 회전하고 있었다.
* * *
철컥.
어쩐지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톱니바퀴.
샤이넨의 신물처럼 아름답게 균형 잡힌 톱니바퀴가 아니었다.
닳고, 부서지고, 녹이 슬어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 톱니바퀴들이었다.
‘전보다 더 엉망이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조금 이상했다. 눈앞의 장면은 세운으로서도 처음 보는 장면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게다가…….
“여정의 지침표…….”
톱니바퀴의 중앙에는 여정의 지침표가 걸려 있었다.
세운이 사용하는 여정의 지침표와는 달랐지만, 두말할 것 없이 확실한 여정의 지침표였다.
그게 대체 왜 이런 낯선 공간에 걸려 있는 것일까?
– 오랜만입니다.
– 현시점에 대한 분석을 시작합니다.
– 시기 X_6
– 분기 R_93.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계음처럼 딱딱한 목소리는 무척이나 무미건조했지만, 세운에게만은 더없이 따뜻하고 익숙하게 느껴졌다.
“너는…… 누구지?”
어쩐지, 데자뷔가 느껴진다.
이미 한 번 내뱉었던 것 같은 질문.
이전에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던 것 같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 반갑습니다.
– 정세운 플레이어.
톱니바퀴가 격하게 움직였다.
당장에라도 부서질 것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는 톱니바퀴가 모여들어, 무언가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 정말…….
– 감사합니다.
어쩐지 안쓰럽게 느껴지는 그 목소리를 끝으로, 세운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 * *
털썩.
순간적으로 감당키 힘든 두통이 몰려왔다.
영혼의 격까지 상승하며 어지간한 타격으로는 흔들리지도 않던 세운이 무릎까지 꿇을 정도라니.
‘뭐였지?’
도저히 감당키 힘든 기억이었다.
당장 이 기억이 맞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 기억과 함께 기억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단단한 벽을 깨고 올라올 것만 같았다.
“오오…….”
그런 상황 속에서, 어째서인지 바로 앞에서 감탄사 같은 게 들려왔다.
고개를 드니 역시나, 천사가 세운과 신물을 번갈아 바라보며 감탄사를 흘리고 있었다.
“이럴 수가, 믿기지 않습니다! 신물이 반응하다니!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던 톱니바퀴가 돌아가다니!”
톱니바퀴가 돌아간 것 같다는 세운의 생각은 착각이 아니었다. 천사 역시 그 장면을 똑똑히 목격하였다.
아무래도, 처음 일어난 일인 듯했다.
“그렇군요. 그렇습니다! 용사님이 바로 저희를 구하기 위해 신께서 내려 주신 두 번째 사자임이 분명합니다!”
무언가 깊게 착각하는 듯하지만, 세운은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그의 착각은 충분히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이제, 그곳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지금 즉시 자리를 준비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천사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용사라고 부르기는 해도 내심 완전히 신용하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세운의 말이라면 무엇이라도 들어줄 기세다.
지금 즉시라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는 듯이, 곧바로 천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입장’을 준비하였다.
“같이 오신 용사님들도 소집하면 되겠습니까? 아, 괜찮으시다면 붉은 용과도 함께 하시는 걸 권합니다. 그녀는 무척이나 강한 힘을 품고 있으니 분명 큰 힘이 될 겁니다.”
레드 드래곤, 카샬락카스.
그녀의 힘은 분명 강력하다.
하지만, 아우터를 사냥하는 데 그녀의 힘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닙니다.”
아우터가 있는 곳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아우터로 가득하다는 건 분명하다.
그런 곳에 괜히 다른 사람을 데리러 갔다가는 일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잠식을 당할까 봐 걱정하는 것보다는 세운 혼자 들어가는 게 최선이었다.
“저 혼자 들어가겠습니다.”
“신의 사자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신의 사자라.
용사보다도 듣기 민망한 호칭이었다.
어쨌거나, 세운은 그를 따라 백금 성의 계단을 타고 아내로 내려갔다.
여기부터는 세운도 알지 못하는 길이다.
계단은 사방이 찬란한 빛으로 가득한 백금 성과는 달리, 조명 하나 없어 굉장히 어두침침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병사들의 안내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니 도착한 지하는, 도저히 지하라고 부를 수 없을 만한 공간이었다.
‘구름이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샤이넨은 구름 위에 세워진 도시.
그곳의 지하라면 당연히 구름이다.
다만, 지하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구름은 위에서 보았던 것처럼 깨끗하고 밝은색이 아닌 새까만 색을 띠고 있었다.
몽실몽실한 게 아니라 걸쭉해 보이는 것이, 썩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이곳입니다.”
“입구는 어딥니까?”
“이 모든 곳이 입구이자 벽입니다. 오직 허락된 자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아우터와 대면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휴식은 충분히 취하고 왔다.
만약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해도 세운은 이 만남을 미루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아래에 있는 것은 아우터만이 아니었으니까. 여태껏 혼자라 생각했던 자신과 똑같은 회귀자가 이 아래에 있었으니까.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그 직후, 천사들의 찬가가 울려 퍼졌다.
아름다우면서도 웅장한 목소리에 구름이 떨리며, 작은 파동을 만들어 냈다.
세운이 파동의 중심으로 발을 내딛자.
우우웅-
“아아, 정말로 문이 열리다니…….”
파동의 중심부에 작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구덩이는 점점 더 깊고 넓게 벌어지더니, 이내 사람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세운은 감격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천사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곧바로 구멍을 향해 뛰어들었다.
“축복을 빌겠습니다. 신의 사자시여.”
천사의 축복과 함께 세운의 신형이 사라지며 검은 구름에 난 구멍이 순식간에 메워졌다.
* * *
구름의 내부는 어두웠다.
위쪽은 태양이 몇 개라도 떠올라 있는 것처럼 빛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곳에는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어두웠다.
잠시 눈을 감고 어둠에 적응한 뒤 눈을 뜨자,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아우터는…….’
이전에 사용한 보물 덕분에 세운은 어둠 속에서도 시야 확보가 가능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런 것이 무의미했다.
마치 인위적인 무언가가 간섭한 것처럼 세운의 시야가 차단되어 구름의 윤곽만 간신히 보이는 수준이다.
그러던 중.
사아아-
세운의 눈에 새로운 무언가가 담겼다.
바다.
구름 안에는 어째서인지 드넓은 바다가 존재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도 작은 파도를 일으키며 앞으로 나왔다가 뒤로 물러가기를 반복한다.
그 존재를 확실히 인지한 순간.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세 번째 능력, ‘파멸’이 깨어납니다.
세운이 파멸의 힘을 일으키며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이건 단순히 바다가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드넓은 액체가 전부.
‘아우터.’
아우터였다.
믿기지 않는 양.
지금까지 지나쳐 온 쉼터에서 보아 왔던 그 어떤 아우터와도 비교할 수 없는 양이었다.
‘이것들이 샤이넨을 습격했다는 건가?’
이 정도면 회귀 전에 아우터가 탑을 처음으로 습격했을 때 천장을 깨고 흘러 들어온 양과 비슷할 정도다.
첫 번째 회귀자가 이 아우터를 멸망의 근원으로 생각한 것도 무리가 아니라 생각될 정도였다.
‘설마 이것도…….’
파도처럼 앞으로 밀려 나왔다가, 다시금 되돌아가는 아우터.
세운이 아우터를 바다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이 현상은 바람 같은 물리적인 현상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꾸르륵-
검은 구름으로부터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우터.
그들을 잡기 위해 주기적으로 되감아 지고 있는 시간.
그 두 의지가 반복되며 파도와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세운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흥분을 가라앉혔다.
사방이 아우터로 가득한 상황에서도 침착을 유지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정의 지침표를 통해 세운이 찾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이 진짜 크로노스의 모래시계를 사용한 첫 번째 회귀자.’
아우터로 이루어진 바다.
그 중앙에, 한 명의 여인이 외로이 쓰러져 있었다.
제 62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