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2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27화(627/675)
엘라는 세운의 말에 눈까지 질끈 감은 채 고민했다. 그러고 결론을 내렸다.
세운을 완전히 믿게 된 건 아니었지만, 세운이 보여 준 힘은 진짜였으니까.
“설마 처음 보는 남자한테 내 미래를 맡기게 될 줄은 몰랐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을게. 솔직히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거든.”
엘라가 쓸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권능을 사용하며 필사적으로 크로노스를 찾고 있었지만 이제는 분명히 인지할 수 있었다.
자신이 버티는 동안 크로노스가 찾아올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을.
이대로라면 결국 시간의 권능이 힘을 다하든가, 자신이 무너져내리든가 둘 중 하나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그녀는 실낱같은 희망만을 기다려야 했고,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풀게. 너무 오랫동안 묶어 둬서 나도 아우터가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자신감은, 진짜.”
그녀의 몸에서 신성이 피어올랐다.
이게 바로 크로노스의 힘.
귓가에 째깍거리는 듯한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려오며, 아우터로 이루어진 바다에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파문은 곧 파도가 되었고, 파도는 곧 해일이 되었다.
“꾸르르르륵-”
곳곳에서 아우터가 솟아올랐다.
그 순간, 세운은 이미 준비를 마친 마법을 발현하였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디스트럭션 윈드’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최근 세운이 자주 사용하고 있는 바람 마법. 파멸의 바람을 소환하여 모든 것을 베어내는 강력한 9서클 마법이다.
다만, 이번에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화륵!
앞서 세운이 만들어 낸 파이어 스톰, 그 뜨거운 불꽃이 파멸의 바람과 융합하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불꽃의 바람은 공간 전체로 퍼져나가며 아우터를 가르고, 불태웠다.
“꾸르르륵!”
“꾸르륵-”
순식간에 타들어 가는 아우터.
디스트럭션 윈드 자체가 워낙 광범위 마법인데다 파멸의 힘과 가장 시너지가 좋은 화염까지 더해지니 그 위력이 상당했다.
엘라도 옆에서 감탄하기 바쁠 지경.
하지만, 아우터의 양이 세운이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많았다.
“꾸르륵!”
“저기, 도망친다!”
마법을 무시하고 솟아오르는 아우터.
당연하게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겉면의 아우터를 방패 삼아 무식하게 위로 나아간다.
양이 워낙 많고 범위가 넓었던 탓에 9서클 마법으로도 아우터를 완전히 가로막기는 불가능했다.
결국 위로 빠져나가는 아우터의 양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어, 어쩌지? 역시 안 되는 거였어…….”
“이미 연락을 취해 두었습니다. 위로 빠져나가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으음…….”
엘라가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세운이야 디아블로 길드를 믿고 있기에 그나마 여유로울 수 있었지만 그녀는 디아블로 길드에 관해 알 리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꾸르으으윽-”
세운은 계속해서 마법을 확장했다.
도망치는 녀석들은 어쩔 수 없고, 당장은 최대한 많은 아우터를 소멸시키는 게 급선무다.
혼자서 어쭙잖게 아우터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고 해 봤자 힘 낭비, 시간 낭비다.
콰과과괏!
화염 폭풍이 아우터로 이루어진 바다 전체를 뒤덮었다.
아우터가 고통을 호소하며 쉴 새 없이 꿈틀거리는 와중, 그 중앙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치솟았다.
“저건?”
숙주가 없는 이상, 아우터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슬라임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뿐이다.
다만, 그 어떤 공격으로도 쓰러지지 않고 다가와 상대를 잠식하는 능력 때문에 위험할 뿐이다.
그런 아우터가 숙주도 없이 저렇게나 높이 치솟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런 곳에 아우터가 잠식할 만한 생명체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세운이 의아해할 무렵, 엘라가 그 정체에 대해 눈치를 챘다.
“여기, 뭔가 묻혀 있다고 들었어.”
“무덤?”
“나도 정확하게는 몰라. 아래는 처음부터 아우터에 잠겨 있어서 못 봤어.”
아우터가 천장에 닿을 듯이 높게 치솟았다.
도망치기 바빴던 아우터는 자신감이라도 붙은 듯 그 거체에 달라붙으며 덩치를 더욱 거대하게 불려 나갔다.
그러고는 세운을 향해 몸을 돌렸다.
‘천사?’
워낙 많은 아우터로 뒤덮여 있어 본래의 형상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것은 인간, 아니, 거인의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세운이 천사를 떠올린 이유는 그 등에 달린 뭉툭한 날개 때문이었다.
세운조차 모르는 형태였는데, 어째서인지 엘라는 알고 있는 눈치였다.
“거신병이네.”
“거신병이 뭡니까?”
“천사들이 사용하는 병기 같은 거야. 병기라고 해도 생명체에 더 가깝지만.”
“그런 게 왜 여기 묻혀 있던 겁니까?”
“말했잖아, 나도 잘 몰라. 생명체이긴 해도 작동시키기 전까지는 꼼짝도 안 하는데, 아우터한테 잠식당한 상태라면…… 위험할 것 같은데.”
쿠우우!
문제는 거신병이 한 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우터가 높게 치솟으며 모습을 드러내는 수 기의 거신병.
녀석들은 두 팔을 넓게 벌린 채 세운을 향해 느긋하게 걸어왔다.
세운에게 복수라도 하려는 기세.
숙주에 제대로 잠식해 있으니 마법으로 인해 받는 피해도 확 줄어든 듯했다.
“역시 권능을 멈추면 안 됐어. 위험하겠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물러나시죠.”
불안에 떠는 엘라를 뒤로 물린 세운. 곧이어 만병지함에서 새로운 무기를 꺼내 들었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제거의 폭풍, 야그루쉬 ]– 폭풍신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곤봉. 그는 이 곤봉을 휘두르며 바다의 신을 쓰러트렸다고 한다.
야그루쉬의 힘이 세운의 무기에 깃들었다.
당연하게도, 성흔이 더욱 강렬하게 빛나며 야그루쉬에 파멸의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고는 당장 코앞까지 다가온 아우터 거신병을 향해 힘차게 휘둘렀다.
뻐걱!
“꾸르-”
엄청난 위력.
타격한 곳은 머리인데, 그 충격이 파문으로 변하여 아우터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녀석의 상체를 뒤덮은 아우터가 모두 충격을 받아 일렁이는 순간.
파스스-
파문이 일던 아우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 어떻게 한 거야?”
“야그루쉬. ‘제거’의 폭풍이 담긴 무기입니다.”
동료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듯이, 아니, 동료의 희생을 이용하기 위해 뒤쪽에 있던 아우터가 거대한 장창을 휘둘렀다.
장창 전체에 아우터가 붙어 있어 무척이나 위협적으로 보였지만.
빠악!
세운은 무덤덤하게 야그루쉬를 휘둘러 녀석의 공격을 받아쳤다.
팽팽한 대치 따위는 없었다.
야그루쉬가 지닌 제거의 힘이 또 한 번 빛을 발하며, 장창의 절반을 통째로 날렸다.
“꾸르르르륵!”
“뒤에!”
“알고 있습니다.”
아우터로 이루어진 바다.
그 아래에 숨어 있던 또 하나의 거신병이 세운을 향해 손을 불쑥 내밀었다.
하지만, 세운의 반대편 손에는 이미 또 하나의 둔기가 들려 있었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추방의 폭풍, 아이무르 ]– 폭풍신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곤봉. 그는 이 곤봉을 휘두르며 바다의 신을 쓰러트렸다고 한다.
아이무르의 힘이 둔기에 깃들자마자 몸을 360도 회전하며 곤봉을 휘둘렀다.
눈앞에 보이는 거신병의 거대한 손아귀. 너무 커서 세운이 타격한 곳은 고작해야 그 손가락 정도였지만.
터엉!!
“꾸르륵!!”
아이무르에 맞은 아우터의 팔은 단번에 뒤틀리며 세운의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그뿐만 아니다.
거신병의 몸체가 식물의 뿌리가 뽑히듯 쑤욱 빠져나오더니 팔을 따라 저 멀리 튕겨 나가 바닥을 몇 바퀴나 굴렀다.
그저 괴력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
이게 바로 아이무르에 깃든 힘, ‘추방의 폭풍’이었다.
일반적인 공격이었다면 아무리 강하게 튕겨내 봤자 아우터는 멀쩡했겠지만, 아이무르에도 파멸의 권능이 깃들어 있는 이상…….
“꾸–”
단순한 튕기기도 녀석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바닥을 구르며 짓뭉개지고 튕겨 나간 아우터가 타격을 받은 만큼 소멸했으니 말이다.
“어, 어떻게 한 거야?”
“아이무르. ‘추방’의 폭풍.”
“아니, 그걸 물은 게 아니잖아. 대체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거 아니면 물러나 계시죠.”
세운은 야그루쉬와 아이무르를 휘두르며 거신병을 쓰러트려 나갔다.
그러면서도 마법은 계속 유지하면서 전체적인 아우터의 수를 줄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9서클 마법을 유지하면서 이 정도의 근접전을 벌이다니.
엘라는 눈앞의 전투가 믿기지 않아 자신이 아직 꿈을 꾸고 있는지 확인하려 눈을 비벼 보았다.
‘그래도…… 생각 이상으로 많이 올라갔는데.’
세운을 상대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이미 서로의 몸을 고기 방패 삼아 위로 올라가던 아우터는 물론이고, 거신병을 잠식한 아우터까지 세운을 무시한 채 도망치듯 위로 날아올랐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세운이 아니었다.
타앗!
세운은 단번에 날개를 펼쳐 날아가던 거신병들을 격추했다.
그 거대한 덩치만큼 어지간한 힘으로는 쓰러뜨릴 수 없지만, 제거와 추방의 힘을 지닌 두 곤봉 덕분에 그 일이 가능해졌다.
쾅, 콰광!!
사방에서 들려오는 잔혹한 타격음.
아우터가 바닥을 구르고, 부러지고, 짓뭉개졌다.
그리고 타격당한 부위는 어김없이 파멸의 힘에 의해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타들어 갔다.
바다처럼 방대하게 퍼져 있던 아우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제…….”
수는 충분히 줄여 두었다.
이제 마무리를 할 차례.
세운이 파멸의 힘을 한껏 끌어 올리며 두 곤봉으로 동시에 바닥을 내려쳤다.
– ‘야그루쉬’를 통해 제거의 폭풍이 재현됩니다.
– ‘아이무르’를 통해 추방의 폭풍이 재현됩니다.
폭풍신의 쌍곤봉.
그 이명을 증명하듯, 내려친 자리에서 아우터가 터져 오르며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 냈다.
평범한 폭풍이 아니다.
제거와 추방의 힘이 깃들어 있어, 닿는 모든 것을 제거하거나 추방시키는 폭풍.
간신히 명줄을 유지하고 있던 아우터들은 속수무책으로 폭풍에 빨려 들어가 제거되거나 추방당하며 빠르게 소멸당했다.
“꾸르르르르억!”
“뒤에!”
터엉!!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세운의 빈틈을 노리던 아우터마저 소멸당했다.
마법으로 주변을 한 차례 정리하자, 주변의 모든 아우터가 사라졌다.
‘원래는 이런 곳이었나.’
세운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썩은 것처럼 거무죽죽한 구름이었는데, 지금 보니 조금 달랐다.
지하인 만큼 밝지는 않았지만, 은은하게 햇빛이 들어오는 게 제법 따뜻한 느낌이었다.
거신병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본래는 거신병을 만들고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올라갑시다.”
“바, 바로?”
“제 동료들이 막고 있겠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세운이 날개를 펼쳤다.
엘라에게는 비행 수단이 없었기에, 세운이 직접 품에 안고 날아야만 했다.
아래 구름을 빠져나왔지만, 천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전부 아우터를 피해 대피한 모양이다.
어차피 그들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현명한 판단이었다.
파바바밧!
세운이 순식간에 지하 계단을 빠져나왔다.
거침없이 날아올라 백금 성의 창문을 통해 고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보이는 건.
‘정리가…… 끝났어?’
모든 정리를 끝내고 평화를 되찾은 샤이넬의 모습이었다.
디아블로 길드가 강력하긴 하지만, 이렇게 빨리 정리를 마치다니. 백금 성이 워낙 넓어 그 모든 범위를 감당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던 세운은.
‘저건.’
저 멀리에서 이쪽을 똑바로 직시하고 있는 생명체와 눈이 마주쳤다.
디아블로도, 청해도, 발할라도 아니다. 그렇다고 샤이넬의 거주민도 아니다.
파충류 특유의 세로로 길게 늘어진 동공. 타오르는 듯이 새빨간 비늘과 박쥐를 닮은 날개.
‘레드 드래곤, 카샬락카스.’
그녀가 지원을 나선 건가? 그걸 고민할 틈도 없이…….
“네놈…… 저주받을 마룡, 카탈락카스여! 어떻게 다시 나타난 것이냐!”
그녀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세운에게 거칠게 날아들었다.
제 62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