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2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29화(629/675)
“오랜만이야.”
“저 더러운 것들을 몰고 간 인간이군. 기억난다.”
둘은 이미 구면인 모양이었다.
세운도 이곳까지 안내해 주었던 천사에게 들은 게 있었기에 둘이 구면이리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다.
레드 드래곤, 카샬락카스. 그녀조차도 막지 못한 아우터를 엘라가 몰고 지하로 들어갔으니, 엘라를 기억하는 것도 당연했다.
아마 운석을 찾아내 가공하고 아우터를 상대할 준비를 한 것도 그에 따른 분함이 컸겠지.
“내가 아래로 데려갔던 아우터. 전부 쟤가 소멸시켰어.”
“크흠…….”
카샬락카스가 신음을 삼켰다.
엘라가 아우터를 모조리 이끌고 지하로 잠기는 모습을 그 누구보다 선명하게 보았던 그녀였다.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엘라의 증언은 신뢰도가 높았다.
“어떻게 한 거지? 운석의 힘을 뽑는 법도 모르고, 운석으로 된 장비를 착용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운석도 좋은 방법이지만, 나한테는 아우터 한정으로 극상극의 힘이 있어서 말이야.”
세운이 성흔을 빛냈다.
그러자 특유의 검붉은 신성이 불타듯이 타올랐다.
파멸의 힘.
드래곤인 카샬락카스도 처음 보는 힘이었기에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그 힘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말의 진의는 믿겠다. 그럼, 그 힘을 어떻게 얻은 거지?”
순수한 호기심에서 우러나온 질문.
그녀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 갈 생각이었기에 그냥 대답해도 되겠지만, 세운은 그러지 않았다.
“운석의 힘을 뽑아내는 방법. 그걸 알려 주면 나도 알려 주지.”
“이 몸이 수년이나 목매어 연구한 결과물이다. 그걸 그리 쉽게 알려 달라는 말인가?”
“이미 깨닫고 있을 텐데? 내가 가진 이 힘이 운석에서 뽑아낸 힘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아우터를 소멸시킬 수 있다는걸.”
“크흠.”
카샬락카스가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처럼 콧김을 내뿜었다.
말이 콧김이지, 제법 떨어져 있는데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불길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전신에서 붉은빛을 내뿜으며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알겠다. 교환하지.”
폴리모프.
주로 용이 유희를 위해 인간 세상에 발을 들일 때 사용한다고 알려진 변신 마법이다.
단순히 겉보기만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종족 그 자체를 원하는 종으로 뒤바꿔 버리는 최고의 변신 마법.
인간으로 변한 그녀는 붉은 비늘로 이루어진 갑옷으로 무장한 채 새빨간 장발을 허리 아래까지 늘어트리고 있었다.
“탑을 오르며 느낀 불쾌한 냄새. 불쾌한 감각. 그게 전부 저것들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위로 향하며 저것들을 또 마주칠지도 모르지.”
탑을 오르며 아우터를 존재를 느꼈다는 건가? 세운조차도 아우터들을 찾느라 꽤 애를 먹었었는데, 역시 용은 용이었다.
아니, 용이라고 하여도 아우터의 기척을 느끼는 건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아마도 그녀가 특별한 것이겠지.
“그렇기에 그 힘은 얻어 두고 싶다.”
카샬락카스가 세운에게 다가서며 손을 내뻗었다.
세운 역시 거절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용과의 약속.
이는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마나의 약속이었다.
거절하는 순간 평생 마나를 이용할 수 없는…… 불구의 상태가 될 수 있는 계약이었다.
약속을 마친 세운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먼저, 탑을 오를 때 느낀 아우터라면 내가 전부 정리했다.”
“전부?”
“스카베, 카이어, 데저트 등. 쉼터마다 숨어 있던 아우터 전부.”
“크흠……. 대단한 놈이군. 뭐, 좋다. 대답은?”
사실 세운도 파멸의 힘을 얻은 정확한 경위는 모른다.
하지만, 성좌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자신의 권능을 얻게 되는지는 대충 짐작하고 있다.
“회귀자다.”
“……뭐라?”
“회귀 전의 탑은 아우터에 의해 멸망했다. 난 그것들을 쓰러트리기 위해 회귀했고, 아마…… 그 열망에 의해 이 힘이 탄생한 것이겠지.”
결국 그녀가 바라던 바는 이루지 못했다. 세운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결코 파멸의 힘을 얻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그녀가 집중한 건 파멸의 힘을 얻지 못하리라는 것이 아니었다.
“회귀자? 탑의 멸망? 그게 무슨 소리냐?”
용은 진실을 느낀다.
세운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겠지만, 진실을 파악하는 것도 완벽한 건 아니다.
상대가 작정하고 속이려 한다면 용을 속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니까.
그렇기에 그녀가 경계하던 찰나, 의외의 인물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실이야, 카샬.”
“……뭐라?”
“카이온 델라 카샬락카스. 아버지의 이름이 싫다며 카샬이라고 불러 주는 걸 제일 좋아했지?”
“그걸 어떻게…… 설마.”
“당연히 알지. 내 오랜 친구. 너무…… 오랜만이야.”
카샬락카스가 당황했다.
놀라기는 세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풀 네임을 아는 사람은 탑의 모든 플레이어 중에서도 몇 안 되었으니까. 거기에 애칭까지 알다니.
아마, 회귀 전의 관계를 얘기하는 것이겠지.
“너도 회귀자라는 것이냐.”
“응, 맞아. 크로노스 님 덕분에.”
“어떻게…….”
“사실 처음 보자마자 제일 먼저 인사하고 싶었어. 너무 그리워서. 근데 바로 아우터가 나오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어. 미안해.”
“잠깐, 잠시. 이건…….”
카샬락카스가 이마를 짚었다. 머리에 과부하가 온 모양이다.
갑자기 회귀나 탑의 멸망, 과거의 친구 같은 얘기를 들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녀와 엘라가 아무리 친했다고 해도 그건 결국 과거의 이야기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나의…… 역린은?”
“왼쪽 날갯죽지 안쪽에. 특징까지 말할까? 쟤가 들어도 괜찮아? 그럼 다른 곳에 숨기기 어려울 텐데.”
“크흐, 그래. 그런가. 인정하겠다. 너와의 관계도, 둘의 회귀도.”
카샬락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당황하여 상황을 쉬이 이해하기도, 인정하기 힘들 텐데, 역시 용은 다르다.
“회귀 전에도 이런 일이 벌어졌던 건가?”
“아냐. 그때는 조금 더 이후에 한 번에 쳐들어 왔어. 샤이넬의 아래에 저렇게 많이 있는 줄은 나도 몰랐어.”
“그럼, 너희 둘이 회귀하고 뒤틀림이 생겼다는 건가.”
“그건 내가 설명하지.”
세운이 앞으로 나섰다.
회귀를 하고 난 이후에 생긴 변화.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변화 대부분은 하나의 존재를 가리킨다.
“폐왕.”
“폐왕?”
그는 회귀 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도 회귀를 한 것일까?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그가 회귀 후의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는 건 분명하다.
세운은 폐왕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모두 내뱉었다.
다른 때였다면 정보를 주기 꺼렸겠지만, 지금 양옆에 있는 건 같은 회귀자인 엘라와 플레이어 중 최강이라고도 불리는 카샬락카스가 아닌가?
정보를 공유해서 나쁠 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이 둘이 같은 편이 된다면 그 누구보다 든든할 테니까.
“그의 말대로라면 아우터에게 ‘학습’을 시키고 있는 모양이다.”
“학습?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말이냐?”
“맞다. 처음에는 냉기에 대한 저항 정도였지만, 갈수록 학습의 수준이 올라갔다.”
“예를 들자면?”
“표면을 굳혀 갑각류처럼 꼬리를 만들기도 하고, 자신의 성질을 독처럼 부리기도 했다. 산란장을 만들어 양을 늘리더니 전술을 구상하기도 했지.”
“안 그래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들인데. 크흠…….”
카샬락카스가 신음을 삼켰다.
이는 엘라도 마찬가지였다.
회귀 전에 아우터가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였는지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데, 그 아우터가 전보다 더욱 강해졌다니.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더욱 강해지고 있다니.
회귀한 순간부터 아우터를 붙잡아 두기 위해 샤이넬의 지하에 갇혀 권능을 사용하고 있던 그녀였기에 충격은 더했다.
“그럼 우린…… 어쩌지?”
순수한 걱정이었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 회귀했는데, 정작 회귀 후의 세상은 그 이전보다 더욱 위험한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세운은 그녀의 질문에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였다.
“그에 따른 대비를 해야겠죠.”
“약속의 문제가 아니었군. 나도 최대한 지원하겠다. 운석의 힘을 뽑아내는 방법은 제대로 전수하도록 하지. 탑을 전부 등반하기 전에 탑이 무너지면 곤란하다.”
“네 목표는 뭐지?”
“내 목표라…….”
카샬락카스의 목표는 아무도 모른다.
드래곤이 어째서 탑에 플레이어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 어째서 샤이넬에 머무르고 있었는지도.
그리고 세운은 그 이유를 처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죽은 아버지의 존재가 잊힐 만큼 압도적인 용신(龍神)이 되기 위함이다.”
* * *
그 이후, 즉시 카샬락카스의 강연이 펼쳐졌다.
사실 운석은 가공하기도 힘들고 탄성도 거의 없어 장비로 만들었을 때 단단함을 제외하면 별 볼 일이 없는 재료다.
고창석도 이점 때문에 운석으로 무언가를 만들 때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힘만을 빼낼 수 있다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운석으로 만든 것보다 훨씬 좋은 장비에 운석의 힘만을 불어넣을 수 있으니까.
그것만으로 아우터를 상대할 때의 전력을 크게 올릴 수 있었다.
“허허, 대단하구먼.”
“대장장이의 실력이 굉장하군. 돌머리 부족의 장로. 드워프조차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고창석은 그 기술을 빠르게 흡수했다.
물론, 운석의 힘을 뽑아내는 데에는 마법적인 활용도도 필요했기에 고창석 혼자서 힘을 뽑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의 역할은 운석의 힘을 불어넣을 최고의 장비를 만드는 것.
당연하게도, 그 결과물은 엄청났다.
“이게 새 장비인가요?”
“와…….”
디아블로와 청해, 거기에 이번에 함께 탑을 등반한 발할라까지, 모두가 새로운 대 아우터용 장비를 받게 되었다.
운석의 힘을 뽑아내는 건 운석 자체를 사용해 무기를 만드는 것보다 효율이 높아 더 많고, 더 좋은 장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게다가 세운은 지금까지 탑을 오르며 얻은 운석 모두를 거주지에 보관하고 있었다.
‘양을 넉넉하게 만들어 둬도 되겠는데.’
이 장비들이라면 탑의 모든 플레이어가 아우터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이전 쉼터였던 플라카의 플레이어들에게 이 장비를 쥐여 주기만 해도 큰 전력이 될 터였다.
그리고 어쩌면, 성좌에게도 이 무기를 쥐여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운석의 힘을 뽑아내 정수의 형태로 만들어 내면 모든 신의 무기에 운석의 힘을 깃들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읊조립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다만, 신들은 의심이 많아 함부로 정수를 사용하지는 않으리라 조언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일단은 정수를 충분히 만들어 낸 후, 이후의 ‘협상’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고 조언합니다.
마몬의 말에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수라.
운석의 힘을 보관해 둘 매개체도 찾아야 하고 방법도 더욱 까다롭겠지만, 분명 좋은 방법이다.
‘그래도 여기서 안주할 수는 없지.’
샤이넬에 잠들어 있던 엄청난 양의 아우터를 상대하며 세운의 계획도 더욱 높아졌다.
본래는 최후의 수로 생각해 두었던 목표.
성좌의 길에 오를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세운을 따르는 이들에게, 심지어는 신들과도 파멸의 힘을 공유할 수 있을 테니까.
본래는 그 방법조차 알지 못했기에 그저 신성을 쌓아 갈 뿐이었지만, 이번에 그 방법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용신?”
“그렇다.”
“그 말은, 신이 되겠다는 건가?”
“모르고 있었나? 탑의 100층은 해당 플레이어가 지금까지 쌓아 온 설화를 판단하여 최후의 시련을 안겨 준다. 그 시련을 통과하면, 신이 될 수 있다.”
“그건 어떻게 알게 된 거지?”
“……아버지에게 들었다.”
“카탈락카스 말인가?”
“맞다. 그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놈에게 들었지. 실제로 씹어 버렸지만.”
그녀가 살던 차원에서 카탈락카스는 신의 자리에 오르려 하였다고 한다.
단, 중간계의 조율자라는 말과는 다르게 파괴적인 방향으로.
마룡이 되어 세계를 불태우며 설화를 쌓으려 했다고 한다.
카샬락카스는 그로 인해 덧씌워진 드래곤의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 탑을 오르고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세운은 확고히 결정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길, 나도 함께 가지.”
제 63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