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3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30화(630/675)
아우터를 처치한 후, 디아블로 길드는 여전히 바쁘게 움직였다.
구름 속에 숨겨진 각종 시련, 중력이 수십, 수백 배는 더 무거워지는 수련장.
백금 성에서 행해지는 특유의 훈련 등, 플라카 때와 마찬가지로 샤이넬에서도 성장을 위해 활동할 수 있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세운이 가장 먼저 행한 곳은 어떠한 시설이 아닌, 제논이 있는 곳이었다.
“디아블로의 마스터.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그가 있는 곳은 강이었다.
구름 위로 황금빛 물결이 흐르고 있는 비현실적인 장소.
강 속에서는 그가 테이밍한 수많은 몬스터와 청해 길드원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 강은 평범한 물길보다 훨씬 무겁고 헤엄치기 어려워, 저렇게 헤엄치는 것만으로도 큰 훈련이 된다고 하였다.
물론, 그중에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백경과 이제는 어지간한 건물 이상으로 커져 버린 자라탄도 있었다.
“상담할 게 있어서 왔다.”
“샤이넬의 일정에 관해서는 얘기가 끝나지 않았습니까?”
“포세이돈과 할 얘기가 있다.”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사실, 세운이 원하는 것은 제논과의 대화가 아니었다.
그가 따르는 성좌, 포세이돈. 마신들과 말을 나눈 ‘협상’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포세이돈을 대면하기 위함이었다.
“가능한가?”
“안 그래도 이곳에서 진주조개의 힘을 회복하고 있었습니다. 엘하임보다 힘의 농도가 짙어 잠깐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부탁하지.”
“하하,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다.”
제논이 황금빛 강물에 담겨 있던 조개를 꺼냈다.
진청의 진주조개.
청해 길드에서 소유하고 있는 신물로서, 포세이돈과의 연결점이기도 한 물건이었다.
제논이 성흔을 가까이 대자, 진주조개에서 푸른빛 신성이 흘러나오며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 성흔이 심해의 공포를 집어삼킵니다.
– 압도적인 공포를 포식하며 혈랑의 이명이 강화됩니다.
이전에 한 번 보았던 시스템 메시지.
영혼의 격이 올라간 덕분일까? 이제는 위압감이랄 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기야, 마신들을 실물로 영접하고도 고개를 들고 있었던 세운이었으니.
신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목소리를 듣는 정도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
– 오랜만이다.
바다처럼 웅장한 목소리.
올림포스의 주신 중 하나인 포세이돈의 목소리였다.
– 할 말이 있는 거겠지. 시간이 길지 않으니 빨리 듣도록 하지.
세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올림포스와 협상을 하고 싶다.”
– 루시퍼가 나선 건 보았다. 정황상, 마신들을 보고 왔나.
“맞다. 이번에 샤이넬에서 나온 아우터는 보았겠지?”
– 사도를 통해 보았다. 엄청난 양이더군.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덕분에 우리도 이미 한 차례 회의가 열렸던 참이다.
“그건 시작일 뿐.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곧 진짜 습격이 이어질 거다. 그러니, 올림포스와 제대로 관계를 맺고 싶다.”
– 마신들은 이미 동의한 건가?
“올림포스에서 고개를 끄덕여 준다면.”
– 흐음…….
잠깐의 고민이 이어졌다.
다만, 진주조개를 통해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기왕이면 올림포스의 신들이 모두 모인 상태로 다 같이 협상을 나누고 싶다만.”
– 알고 있다. 애초에 협상이란 게 나 혼자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니.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겠나?”
– 하, 그게 문제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곤란한 상황이다.
신과의 협상 자리를 마련하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루시퍼조차도 그 자리를 위해 사도를 매개체로 엄청난 준비를 해 두었으며, 마몬도 모두를 만마전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칠대 마신의 힘을 전부 끌어모았으니까.
아마, 올림포스와 협상을 열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올림포스의 신들이 가진 신성을 모두 끌어모아야 할 거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 티케와 모이라이가 설득한 끝에 대부분 신들은 상황을 이해했다. 다만, 아직 거부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신들 중 몇 명이라도 반대해 버리면 협상을 열기가 쉽지 않아진다. 그리고 세운은 그 주축을 알 것 같았다.
“디오니소스인가?”
– 잘 아는구나.
– 디오니소스를 주축으로 판이나 트리톤과 친했던 자그레우스 같은 이들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
– 제우스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 먼저 잘못했다고는 하나, 네가 쓰러트린 판은 제우스의 아들.
– 아들을 죽인 자와 손을 잡는다는 건, 단순히 제우스의 문제가 아니라 올림포스의 권위를 깎아내릴 수도 있는 일이다.
– 올림포스의 최고신으로서 쉬이 결정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 디오니소스 역시 올림포스의 십이신 중 하나.
– 그 의견은 결코 가볍게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체면의 문제였다.
듣자 하니 제우스도 세운의 편을 드는 걸로 생각이 기운 것 같은데, 최고신으로서 쉬이 결정을 내리기 힘든 모양이었다.
“방법은 있나?”
– 디오니소스도 디오니소스지만, 지금 중요한 건 체면이다.
– 내 자식…… 트리톤이나 판에 대한 여론은 어떻게든 해 보겠다. 성좌의 자리에서 떨어졌지만, 신은 불사. 신성은 사라졌어도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고는 하기 힘드니.
– 디오니소스는 좋은 술 하나 구해 주면 조용해지겠지.
– 그건 당장 중요한 게 아니니 협상 때 술이나 하나 선물해라. 그러면 조용해질 거다.
– 그러니 네가 해야 할 일은…….
포세이돈은 망설이듯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가 어째서 말을 망설였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 네가 신이 되는 것이다.
“……신?”
– 신이 되어라. 그리고 당당하게 올림포스에 문을 두드리면, 협상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겠지.
– 네가 직접 방문하여 고개를 숙이며 상황을 설명하면, 제우스의 체면도 살 테니 거절할 이유가 없겠지.
신이 되라니.
포세이돈이 왜 말을 망설였는지 알 것 같았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얘기이지 않은가?
– 알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방법이라는 건. 그러니 일단 시간을 주면 내가 어떻게든 해 보겠다. 여론부터 움직이면…….
하지만.
“그러지.”
– ……뭐라?
세운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이었다면 다른 방법을 고민해 봤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미 계획했던 일이다.
방법도 이미 알고 있다.
생각보다 조금 늦어지겠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인 만큼 세운도 거리낄 이유가 없었다.
“신이 되어 찾아가도록 하지.”
세운의 대답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은 포세이돈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이내.
– 크하하하하하하!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황금빛 강물이 그의 웃음에 맞춰 크게 일렁이며 해일이 되었다.
제논은 그 압박감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옅은 신음을 흘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 그래, 기다리겠다. 제우스에게는 내가 전해 두지. 올림포스의 문을 두드려라.
그 웃음을 마지막으로 진주조개의 입이 닫혔다.
계획은 정해졌다.
* * *
“벌써 출발한다구요?”
“그래.”
유서아가 당황하며 물었다. 샤이넬에 도착하고, 아우터를 쓰러트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세운이 바로 출발을 선언해 버린 탓이다.
본래는 아우터를 쓰러트린 뒤에 충분히 성장할 시간을 가졌는데, 이번엔 그런 시간도 없이 바로 출발하자고 한 것이었다.
“……알겠어요. 다른 사람들한테도 최대한 빨리 준비를 끝내라고 공지해 둘게요.”
“아니.”
“네?”
“나 혼자 갈 거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 이유는 명확했다. 이번 여정에서는 디아블로 길드를 이끌고 갈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혼자,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카샬락카스와 동행할 생각이었다.
엘라는 시간의 권능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여 샤이넬에 남기로 하였다.
“혹시 저희가 방해되기 때문인가요? 저희가…… 못 미더우신 건가요?”
유서아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엔 분하면서도 답답함이 담겨 있었다.
지금까지 세운을 뒤따르기 위해 그렇게 노력해 왔는데, 마지막 순간에 뒤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녀의 질문에 세운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를 못 믿어서 그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까지의 시련은 내가 전부 알고 있는 시련이었어. 너희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달려올 수 있었던 거고.”
“그러니까 이번에도…….”
“회귀 전에 내가 올라간 시련은 92층까지야. 그 이후부터는 나도 알지 못해.”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정말?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해?”
세운이 평소보다 더욱 친숙한 말투로 물었다.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세운이 처음 출발하겠다고 말했을 때, 그녀가 바로 내뱉은 말에 ‘벌써’라는 단어가 섞여 있었으니까.
“나는 샤이넬에서 더 얻을 게 없고, 상황이 급해서 먼저 출발하는 거야. 길드를 이끌지 못하고 너한테 떠넘기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상황이 너무 급해.”
“그건…….”
“너도 봤잖아? 샤이넬의 아우터. 그리고 지금까지의 상황들.”
그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디아블로에서 세운 다음으로 탑이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게 바로 그녀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던 것들도 그녀에게는 대부분 털어놓고 있었으니까.
“따라오지 말라는 게 아니야. 다 준비가 끝났다 싶으면 천천히 따라와도 돼.”
디아블로 길드는 강하다. 하지만, 그들을 급하게 끌고 올라갈 생각은 없었다.
그건 디아블로 길드를 죽음의 아가리로 몰고 가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난 그걸 너에게 맡기는 거야.”
유서아의 임무는 막중했다.
솔직히, 미안했다.
세운이 지녀야 할 마음의 짐을 그녀에게 전부 맡기는 것 같았으니까.
“먼저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알겠어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운의 진심을 이해한 덕분이다.
세운이 자신들을 버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챙기고 미안해하는 게 느껴진 덕분이었다.
“꼭 따라갈게요.”
“그래.”
그리고 디아블로와 청해, 발할라와도 인사를 마쳤다.
급하긴 해도 그들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며 강한철과의 마지막 대련을 펼치고, 백현의 언데드까지 살폈다.
경매장에 들르는 등, 마지막 준비까지 끝낸 후, 카샬락카스와 샤이넬을 떠나려는 찰나.
“용사님!”
저 멀리에서 상황을 전해 들은 천사가 날아왔다.
세운을 아우터가 있는 백금 성의 지하까지 안내해 준 바로 그 천사였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용사님께 꼭 전해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세운의 눈이 크게 뜨일 만한 물건이 들려 있었다.
제 63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