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3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33화(633/675)
제단의 서.
아르스 알마델 살로모니스의 힘은 대단했다.
– 역시 바다는 이렇게 붉은빛이 돌아야 멋있죠!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아아, 조금 더! 좀 더!
크로셀의 힘을 내려받을 수 있다니.
‘계약’에 다가갈수록 더욱 강력한 적이 세운의 앞을 가로막았는데도 그들 모두 크로셀의 얼음 칼날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나갔다.
그렇게 여정의 지침표를 따라 계약의 코앞까지 다다르고 나서야.
– 아아, 너무 아쉽네요. 조금만 더 즐기고 싶었는데요.
“그 조금만, 열 번은 넘게 외쳤습니다.”
– 아하하하! 마계의 바다는 바다 같지도 않게 끈적해요. 그런 곳에 몸을 담그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된다니까요?
열쇠의 힘이 대부분 빠져나갔다.
심연의 인력이 강해지며 크로셀의 힘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다음에도 꼭 불러 주세요! 바다 위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크로셀의 힘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순간, 세운은 일말의 무력감을 느껴야만 했다.
후유증은 아니고, 크로셀의 힘에 익숙해져 있다가 그 힘이 빠져나간 탓에 드는 아쉬움에 가까운 현상이었다.
‘자주 쓰기는 애매하네.’
열쇠의 힘이 무척이나 옅어졌다.
다시 사용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듯하다. 그나마 나태의 권능처럼 후유증은 없는 게 다행이다.
‘그래도 이 정도 효율이라면 주술의 서는 더 자주 쓸 수 있겠어.’
네 번째 열쇠까지 찾으며 네피림의 힘이 크게 회복됐다.
제단의 서를 사용했을 때 이만큼이나 버텼다면, 마법의 서를 사용하는 쿨타임은 훨씬 앞당겨졌을 터다.
앞으로는 상황을 보아가며 두 열쇠를 골라 사용하면 될 것 같았다.
– 폭식의 권능으로 ‘갈등의 바다’를 지정하였습니다.
– 폭식의 어금니가 몬스터를 덮칩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 포악하게 적들을 집어삼키는 폭식의 어금니.
세운이 지금까지 쓰러트린 적들이 모두 베엘제붑의 배 속으로 들어갔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기다리느라 혼났다며 다급하게 음식을 흡입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기다린 만큼 더욱 꿀맛이라며 엄지를 치켜듭니다.
쓰러트린 적의 수도 많지만, 무려 91층의 적들인 만큼 그 질 또한 엄청난 덕분에 능력치도 제법 올랐다.
세운이 만족스럽게 메시지를 치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마지막으로 휘두른 얼음 칼날에 산호초가 반파되어 있고, 그 사이로 ‘계약’이 훤히 드러났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눈을 반짝입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시련에 예속된 보물이라 아쉬울 따름이라며 고개를 젓습니다.
회귀 전의 세운이 찾아낸 계약은 대지의 계약이었다.
이번에 찾은 바다의 계약은 생김새는 달라도 그 구체적인 형태는 여전했다.
표면에 새겨진 알 수 없는 글자들은 지금도 역시…….
‘잠깐.’
그렇게 계약을 지켜보던 중, 세운이 눈이 잠깐 번쩍였다.
분명 회귀 전에는 단어 하나도 알아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내용 전부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몇 가지의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신언?”
세운이 회귀 전에 새로이 익힌 단어라면 그것뿐이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그래도 배워 놓고 알아보지도 못하는 까막눈은 아니라며 당신을 칭찬합니다.
세운이 차분하게 계약을 들여다보았다.
알아볼 수 있다고는 해도, 신언은 일반적인 언어 체계와는 차원이 다르다.
아는 단어가 보인다고 바로 해석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라는 뜻이다.
“바다, 오염, 원인…….”
마몬에게 신언을 계속 배우는 중이지만, 여전히 미숙하다.
그리고 신언은 이렇게 해석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성이 소모된다.
이곳까지 오며 네피림의 힘이 빌린 게 아니라 순수한 힘으로 성흔을 밝히고 왔으면 힘이 부족했을 뻔했을 정도였다.
“육지의 존재들이 바다를 오염시켰다는 건가?”
그 외에도 드문드문 아는 단어가 보이지만, 완전히 해석하긴 어려웠다.
할 수 없이 회귀 전의 방식대로 시련을 끝내려던 찰나.
“누구지?”
뒤쪽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순간 세운은 자세를 바꾸어 인기척을 향해 뒤랑달을 겨누었다.
이렇게나 정확하게 위치를 들켜 버리면 당황해서 튀어나오거나 도망가는 등, 다급한 반응을 보일 법도 한데.
“허어, 계약을 읽을 수 있는 자가 나타나다니…….”
그 존재는 너무나도 여유롭게 산호초 밖으로 걸어 나왔다.
거북이.
수염 난 거북이가 사람처럼 두 발로 서서 지팡이를 짚은 채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고행자시여. 그리 경계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그저 노인일 뿐이오니.”
세운이 검 끝을 떨어트렸다. 최소한의 경계는 남기겠지만, 그의 말대로 전투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평범해 보이지는 않았다.
풍겨오는 분위기가 마치 현자에 가까웠다.
“무슨 일이지?”
“저희의 ‘계약’을 알아주는 분이 나타나셔서 감탄했을 뿐이옵니다.”
“계약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나?”
“물론이옵니다. 이제는 대부분 사라져 버린 계약자 중 하나이오니.”
“계약자?”
“말 그대로입니다. 바다의 대표자가 모여 고행자께서 들고 계시는 ‘계약’을 만들어 낸 일원이옵니다.”
91층에 이런 요소가 있었나?
회귀 전의 세운이 계약을 찾아낸 곳은 대지였지만, 그곳에 이런 존재는 없었다.
아니, 있었는데도 나타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당장 눈앞의 거북이도 세운이 계약을 읽고 나서야 그 존재감을 드러냈으니까.
그전까지는 세운으로서도 기척을 알아내지 못했었다.
“어째서 모습을 드러낸 거지?”
“계약을 읽어내신 고행자님께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사옵니다.”
“부탁?”
“고행자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신 영역일 겁니다.”
보아하니 들어 보고 거절해도 되는 것 같으니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거북이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먼저 그 계약에 대해서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역사에 가까운 길고 지루한 얘기지만, 짧게 말하자면…….”
사실, 고리타분한 얘기였다.
점점 오염되기 시작한 바다.
안 그래도 대지와 바다의 생물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오염으로 인해 터전까지 줄어들자 바다의 일원들은 오염의 원인으로 지상의 존재를 꼽았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 지상 위의 존재들은 다짜고짜 갯벌이나 연안과 같은 바다 일부를 과하게 침범해 왔다.
그렇게 되자 바다의 일원들은 대지를 적으로 생각하며 ‘계약’을 나눴다.
“신께 맹세한 계약. 당시에는…… 이게 저주가 될지 몰랐사옵니다.”
갈등은 싸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싸울수록 깊어져만 간다.
죽고 죽이며 지칠 법도 했지만, 계약에 의해 전투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눈앞의 거북이는 깨달을 수 있었다.
“모두 오해였습니다. 지상의 존재들 역시 저희와 비슷한 착각으로 ‘계약’을 작성하였단 걸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시기적절하게 오해를 했다는 게 말이 되나?”
“신의 농락이었사옵니다. 저희가 맹세한 신의 농락. 평화로운 시대에 정체된 자신의 신성을 키우기 위한 신의 농락…….”
그 순간, 세운의 머릿속에 아르카나가 떠올랐다.
그녀 역시 신에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 중 한 명이었으니까.
“그래서, 뭘 원하는 거지?”
안타깝긴 하지만, 세운이 줄 수 있는 도움은 많지 않았다.
지금까지 탑을 등반해 온 결과, 탑의 시련들은 이미 멸망한, 또는, 이미 멸망해 가는 차원의 시간 축을 옮겨온 것에 불과하다.
세운이 갈등을 멈춰 준다고 해도 시련은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몇몇 시련을 제외하고는 이 고정된 시간 축을 돌릴 방법은 없다.
“방법이 하나 있사옵니다.”
세운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거북이가 눈을 반짝였다.
“두 계약을 한데 모아 빛을 발할 때 부숴 버리면 이 저주가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확실한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현재로서 가장 가능성이 큰 방법이옵니다.”
어째서 이런 데에 희망을 거는지는 모른다.
설명을 듣던 세운이 생각에 잠겼다.
과연, 여기서 그들을 도와도 되는지 말이다.
“보시다시피 보상이라고 드릴 만한 건 없지만, 고행자님께도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어떤 도움이 된다는 거지?”
“그 계약은 신과 약속한 매개체입니다. 지금까지 쌓아 온 계약이 신성으로 뒤바뀌어 있습니다.”
“……신성이라.”
“고행자님께서는 신을 향한 길을 걷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모아온 신성이라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당장 느끼기로도 이 계약에는 상당한 양의 신성이 묶여 있다.
다만, 그저 부수는 걸로는 신성을 얻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거북이의 말에 따르면 두 계약을 한데 모아 빛을 발할 때 부수면 그 신성을 온전히 획득할 수 있다는 모양이다.
‘솔깃한데.’
세운은 당장 신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신의 힘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신성을 조금이라도 더 모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환영이었다.
게다가, 생각해 보니 그렇게 어려운 방법도 아닌 것 같았다.
“수락하지.”
“감사하옵니다. 고행자시여.”
세운이 서클을 회전시키며 튜토리얼 때나 사용했던 간단한 마법을 사용해 보았다.
텔레파시. 마나를 통해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기본적인 마법.
본래 유효 거리가 그리 길지 않은 마법이었지만, 9서클에 다다른 세운이었기에 어지간히 멀리 있는 상대에게도 의사 전달이 가능했다.
심지어 지금 텔레파시를 거는 대상은 마나 민감도가 극도로 높을 테니, 어지간하면 제 텔레파시를 느낄 것이다.
“카샬락카스.”
마나를 통해 전달되는 세운의 의사가 바다를 지나 수면 위로 빠져나갔다.
공기를 타고 이동한 마나는 곧 시련의 정 반대편에 위치한 용에게까지 닿았다.
– 흥, 무슨 일이지. 이번 시련은 각자도생이라 하지 않았나?
뾰로통한 말투. 세운이 시련은 자신의 힘으로 알아서 극복해야 한다고 떠났기 때문인 듯했다.
“지금 어디지?”
– 당연히 대지의 끝에 도달해 있다. 그 누구도 용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지.
역시, 카샬락카스.
쉽지 않았을 텐데 벌써 대지의 끝에 도달했나 보다.
생각보다 쉽게 거북이의 조건을 들어줄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저 뾰로통한 용을 어떻게 설득하냐의 문제인데, 사실 간단한 문제였다.
“거래를 하지.”
– 거래?
“91층의 공략법을 알려 줄 테니,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겠나?”
대지의 끝에 도달했다고는 하나, 그녀는 아직 91층의 공략법을 알지 못한다.
공략법은커녕, 양쪽 진형에 계약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그리고 세운은 회귀 전의 기억으로 대지의 계약이 어디에 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계약의 내용을 말해 주자, 아니나 다를까, 카샬락카스가 짐짓 흥분한 어투로 대답했다.
– 얼른 말해라. 머리를 굴리는 건 취향에 안 맞으니.
“좋아.”
계약 체결이다.
제 63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