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35)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35화(635/675)
세운이 협곡을 따라 걸었다.
회귀 전, 만마전을 발견했던 곳.
여정의 지침표만으로는 찾을 수 없어 갖은 조사와 탐험 끝에 겨우 찾아낸 그곳.
만마전을 찾기 위해 92층을 얼마나 쏘다녔는지, 여정의 지침표 없이도 92층을 자유자재로 쏘다닐 정도였다.
‘카샬락카스, 요란하게도 다니네.’
그러는 와중에도 저 멀리에서 포악한 용의 포효가 들려왔다.
지치지도 않는 건지, 아니면 ‘분쟁’이라는 시련 그 자체가 된 것인지. 어쩌면 이 끝없는 싸움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뭐, 무작정 나쁜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지.’
세운도 92층의 공략법은 알지 못한다.
오랜 탐험 끝에 혹시나 하는 가능성은 발견했지만, 세운은 그것을 확인해 보는 것 대신 회귀를 택했었다.
그러니 어쩌면 저렇게 분쟁에 참여하는 식으로 공략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몬스터를 사냥하며 시련을 공략하는 건 저층에서 가장 일반적인 공략법이었으니까.
“캬륵!”
“죽어라! 칵!”
세운이 나아가는 길에도 몬스터는 있었다.
그대로 무시하고 지나갈까도 했지만.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침을 줄줄 흘리며 애틋한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베엘제붑의 반응에 할 수 없이 검을 꺼내 들었다.
–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오 초식, 혈랑중엽(血狼衆獵)이 강화됩니다.
휘둘러진 뒤랑달로부터 뻗어나가는 검붉은 검기.
검기는 이윽고 사냥에 나서는 한 무리의 늑대가 되어 몬스터들을 찢어발겼다.
개중에는 이곳이 92층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검기에 당하고도 꿋꿋하게 서서 세운을 향해 손톱을 내지르는 놈도 있었다만.
서걱-
결국, 세운에게 닿을 수는 없었다.
세운의 힘은 이미 92층의 수준마저 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환호합니다.
베엘제붑의 입에 간식을 물려 준 후, 세운은 또다시 협곡을 걸었다.
회귀 전에는 위치를 몰라 많이도 헤맸지만, 위치를 알고 있으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몬스터도 세운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었으니,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이곳이냐며 관심을 드러냅니다.
세운이 주변 환경에 절묘하게 가려진 굴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보아도 구조물은 아니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굴.
안으로 들어가니 흙과 바위 사이에 조잡한 길이 나 있었는데, 수직으로 떨어지거나 사람보다 작은 구멍이 이어지는 등, 도저히 사람을 위한 길로는 보이지 않았다.
‘회귀 전에도 이곳을 통과하느라 고역이었지.’
지금은 그나마 낫다.
길을 다듬기 위해 대지 마법을 일으키는 게 간단해졌으니까.
그렇게 길을 뚫고 나아가다 보니.
착.
“도착입니다.”
세운은 금세 빈 공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회귀 전, 만마전이 놓여 있었던 공터.
지금은 그저 대체 이런 곳이 왜 존재하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빈 공간이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기묘함을 느끼며 주위를 넓게 둘러봅니다.
마몬도 마몬이었지만, 세운도 감회가 새로웠다.
무엇보다 회귀 전에 마지막으로 들렀던 곳이었으니까.
물론, 화려한 만마전 대신 텅 비어 있는 공터를 보고 있자니 조금 허전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세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곳은 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곳일까?
이 정도의 공간이라면 무언가 히든 피스 같은 거라도 숨겨져 있을 법한데, 이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몬스터도, 인위적인 흔적도, 심지어 무작정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기에도 이상한 곳이었다.
‘여정의 지침표도…….’
여기까지 도착할 때까지도 여정의 지침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회귀 전에는 만마전이 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공터일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피잉!
‘어?’
세운이 저도 모르게 사용한 여정의 지침표가 무언가에 강렬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찾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닌데.
평소와는 사용감이 전혀 달랐다.
마치 군견이 충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던 중, 돌연 먹잇감을 발견하고 급발진하여 달려 나가기라도 하는 듯한 느낌.
세운 역시 무언가에 홀린 듯이 여정의 지침표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철컥.
그럴수록 이제는 익숙하게까지 느껴지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느껴졌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턱을 짚습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인위적인 흔적은 느껴지지 않지만, 이곳은 만마전을 위한 공간이라고 할 정도로 완벽한 위치와 크기를 가지고 있다고 읊조립니다.
소리를 따라 움직이던 중, 마몬의 의심 가득한 메시지가 떠 올랐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이마를 짚습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만약 신마대전이 일어나고 자신들이 졌다고 해도 만마전이 탑에 떨어질 이유가 있을까 의아해합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이에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립니다.
그러는 사이.
철컥.
세운은 계속해서 소리를 따라 이동했다.
톱니바퀴 소리.
분명 공터에 발을 디딜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여정의 지침표를 따라, 소리를 따라 걷다 보니 세운의 앞에 어느새 하나의 톱니바퀴가 위치해 있었다.
‘이건…….’
언젠가 꾸었던 꿈속에서 나왔던 톱니바퀴.
아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세운의 꿈에서 수없이 나왔던 톱니바퀴.
– 성좌, ‘잠자는 산양’이 꿈이 보이질 않는다고 답답해하며 잠에서 일어납니다.
최근에는 샤이넬의 신전에서 신물로도 모시던 톱니바퀴.
그리고 어째서인지.
– 반갑습니다.
– 정세운 플레이어.
그 딱딱한 목소리로,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세운에게 인사를 건네던 톱니바퀴.
세운이 그 위로 손을 얹으려는 순간.
콰아앙!!
위쪽에서 거대한 충돌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공터의 천장이 흔들리며 돌가루를 흩날리고 있었다.
“뭐지?”
당황할 새도 없이 다시 한번 들려오는 충돌음.
그러는 중에도 톱니바퀴를 지키려 손을 뻗어 보았지만, 세운의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충돌음이 들려왔을 때보다 더욱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톱니바퀴는 사라진 뒤였다.
콰광!!
그리고 세운은 금방 위에서 들려오는 충돌음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고약한 냄새에 헛구역질을 하며 물러섭니다.
먹잇감을 발견한 듯이 검붉게 타오르는 성흔.
최근 잠잠하던 루인의 흥분하는 감정이 성흔을 타고 올라와 세운까지 몸이 뜨거워졌다.
“아우터.”
녀석들이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아우터 특유의 기괴한 포효가 들려왔다.
“꾸르르르르륵-”
하지만, 어째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시련에서 아우터가 나타나는 일은 거의 없다.
쉼터, 또는 쉼터와 극히 인접한 시련이 아니고서야 아우터가 등장할 리가 없는데?
마치, 시간을 되돌려 회귀 전 세운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는 것처럼 아우터가 공터의 천장을 무너트리고 있었다.
“꿈인가?”
톱니바퀴부터 아우터까지.
이해가 안 가는 일투성이다.
과거에 벨페고르를 만나러 갈 당시, 그의 부하가 악몽을 들췄던 때를 떠올리며 혹시나 환상 마법 같은 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럴 리가.”
9서클에 오를 세운을 환상 마법으로 어지럽히기가 가능이나 한가?
만약을 대비하여 주변에 마나를 흩뿌려 보았지만, 별다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
콰아앙-!!
“꾸르르르륵!”
기어코 천장을 부수고 모습을 드러낸 아우터.
악몽이나 환상 같은 게 아니었다.
녀석은 진짜였다.
당황할 틈도 없이 세운이 곧바로 무기를 빼 들며 전투태세를 다잡자, 아우터가 천장을 통해 공터로 떨어져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꾸륵, 꾸륵.”
숙주가 없어 슬라임처럼 연약한 몸덩이가 아니었다.
하나, 둘, 넷, 여섯.
떨어지는 아우터 모두가 어엿한 숙주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도 평범한 숙주가 아닌, 한눈에 보아도 위험해 보이는 제대로 된 숙주를.
“폐왕이 보낸 건가.”
어떤 아우터는 표면에 비늘이 가득하고, 어떤 아우터는 표면이 갑옷처럼 단단해 보인다.
심지어 어떤 녀석은 표면에 주름이 과하게 자글자글했는데, 이는 세운도 알지 못하는 유형이었다.
회귀 전에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유형의 아우터들.
즉, 이번 시간대에서 폐왕이 ‘학습’시켜 만들어 낸 놈들이 분명하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진정한 죽음, 바이던트 ]– 올림포스의 삼대 주신 중 하나인 저승의 신 하데스가 사용하는 쌍지창.
아펠리온에 바이던트의 힘이 깃들었다.
무려 올림포스의 주신, 하데스의 무기 신창의 힘이 깃들자, 아펠리온이 세운의 손바닥을 찢어 버릴 것처럼 거칠게 떨려왔다.
세운은 손에 힘을 꽉 주며 진동을 잠재운 뒤 곧바로 바닥을 박찼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우터가 나타난 이상, 전력을 다해 해치운다.
타앗!
세운의 신형이 화살처럼 빠르게 쏘아졌다.
바이던트의 두 창끝을 따라 그어진 궤적이 최전방에 서 있던 아우터의 몸통에 처박혔다.
“꾸르르르륵-”
녀석이 어떻게든 버텨보려 힘을 줘 보았지만.
–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 성흔의 세 번째 능력, ‘파멸’이 깨어납니다.
아우터에게 파멸의 힘은 운석 이상으로 상극의 것이다.
그저 뱃가죽에 힘을 주고 버틴다고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펠리온에 깃든 바이던트의 힘은 파멸의 힘까지 더해지며 ‘죽음’을 몰고 왔다.
“꾸윽-”
아우터에게 죽음은 없다. 다만, 아우터가 잠식하고 있는 숙주는 다르다.
바이던트에 닿은 숙주가 아우터의 재생력을 무시한 채 죽음에 당하였고, 졸지에 숙주를 잃어버린 아우터는.
치이익-
“꾸르르르륵!”
파멸의 힘에 무참히 소멸당했다.
“꾸륵!”
“꾸르륵!”
소멸해 가는 아우터의 뒤로 나머지 아우터들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천장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아우터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나마 세운이 평범한 보구도 아니고 신구를 사용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쓰러트리는 속도가 생겨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 할 뻔했다.
– 아킬레우스의 창, 아펠리온이 ‘바이던트’에 잠든 죽음의 기운을 터트립니다.
– ‘바이던트’를 통해 죽음의 연회가 재현됩니다.
파바밧!
바이던트로 인한 검은 궤적이 공터를 가득 채워나간다.
궤적에 닿은 아우터의 숙주가 죽어 나가고, 숙주를 잃은 아우터는 파멸의 힘에 의해 소멸당한다.
효율적으로 아우터를 사냥하는 방법 중 하나인 숙주를 먼저 쓰러트리는 방법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우우웅-
아킬레온이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떨려왔다.
그나마 비슷한 형질을 지닌 신과 영웅의 무구였기에 이 정도까지 버틴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진작 힘이 다했으리라.
“꾸르르르르륵-”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떨어지는 아우터.
이미 그 양은 공터의 1/3을 채울 지경이 되었다.
단순히 무기를 휘둘러서는 잡기 어려운 상황.
슬슬 바이던트의 힘이 다해 가는 시점에서, 세운은 무기를 휘두르는 것을 멈추고 잠시 녀석들이 떨어져 내리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꾸륵.”
“꾸륵.”
“꾸르륵.”
정말이지 끝도 없이 쏟아진다.
도대체 바깥이 어떤 상황이기에 이렇게나 많은 아우터가 쏟아져 내리고 있는 것일까?
혹시나 바깥이 더욱 엉망일 상황을 대비해서라도 힘을 아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세운은 마법을 사용하는 대신, 품에서 네피림을 꺼내 들었다.
“꾸르륵-”
어느덧 아우터가 공터의 2/3를 채웠다.
아니, 그것을 넘어 세운이 서 있는 자리를 제외하면 공간이 아우터로 가득 찰 지경이었다.
아우터끼리 표면이 융합해 숙주가 무엇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울 지경.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제는 도망치지 못한다고 외치듯이 달려드는 아우터를 향해.
“응답하라, 불의 총통.”
철컥.
전방의 허공에 내피림을 꽂아 돌렸다.
제 63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