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3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39화(639/675)
성장한 탐욕의 권능은 세운의 기대 이상이었다.
메시지에 적힌 대로 매개체도, 일회성 제한도 없어진 탐욕의 권능.
더 이상 매개체로 쓰일 장비 걱정을 안 해도 되고, 남은 보구가 뭐 있나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눈이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집어 사용하기만 하면.
콰과과광!!
“끄우우우욱-”
아우터들이 세운의 손에 무참히 쓰러졌다.
상상을 뛰어넘는 고양감.
덕분에 카샬락카스가 상대하고 있는 아우터까지 모두 치워 버리고 말았다.
비록 열화판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듯, 마몬의 진짜 탐욕의 권능보다는 위력이 부족한 감이 있었다.
마몬의 보물들이 진품의 복제판이었다면, 세운의 보물들은 복제판의 복제판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자제는 필요하겠어.’
탐욕의 권능이라 하여도 대가가 필요 없는 건 아니었다.
마나나 내공과는 다르지만, 영혼의 그릇에서 힘을 끌어다 사용하게 된다.
일종의 격이라고 해야 할까?
신성과 비슷하면서 다른 느낌.
신성으로도 대체할 수 있겠지만, 신성은 파멸의 힘을 유지해야 하니 사용하는 만큼 정신력이 극도로 빠르게 소모된다.
그 후유증을 깨달았으니 적절한 사용은 괜찮아도 낭비는 자제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아우터 정리가 끝나고, 카샬락카스와의 짧은 대화를 나누던 중.
[ 관리소로부터 공지 사항이 도착하였습니다. ]둘의 앞에 메시지가 떠 올랐다.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할 틈도 없이 메시지가 길게 늘어지며 공지 사항이 이어졌다.
[ 92층의 도전자. ‘정세운’ 플레이어님과 ‘카이온 델라 카샬락카스’ 플레이어님께 공지 올립니다.현재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92층의 공략 중 일부가 훼손되었습니다.
이 경우 해당 시련의 플레이어를 모두 쉼터로 돌려보내고 소정의 보상을 건네는 게 원칙입니다.
하지만, 본 관리소는 두 플레이어에게 시련을 통과할 만한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두 플레이어의 도움 덕분에 시련을 안정화할 수 있었던 바.
본 관리소에서는 두 플레이어가 92층의 공략에 성공한 것으로 인정하며, 소정의 보상을 지급하겠습니다. ]
“크흥?”
“공략에 성공한 것으로?”
“그럼, 92층을 따로 공략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더냐? 바로 93층에 갈 수 있다는…….”
– 92층의 시련 ‘분쟁’을 훌륭하게 완수하였습니다.
카샬락카스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떠 오르는 시련 통과 메시지.
시련의 보상과 시스템의 보상으로 엄청난 공적치가 들어왔지만, 사실 이제 와서는 공적치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세운이야 그저 그렇구나, 하는 정도였지만.
“크오오오오오! 92층마저 통과하다니! 벌써 93층이구나!!”
카샬락카스는 신나서 발까지 동동 구르며 날개를 펄럭였다.
하긴, 여태까지 샤이넬에서 머물며 91층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91층은 물론이고 92층까지 통과해 버렸으니 감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세운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92층의 시련, 분쟁.
만마전을 찾기 위해 92층의 전역을 쏘다녔기에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얼마나 다양한 히든 피스가 존재하고 있는지.
하지만, 이제 와서 히든 피스를 찾겠다고 시간 낭비를 할 수는 없었다.
당장 폐왕이 세운을 방해하기 위해 아우터를 보낸 것만 보아도 사태가 얼마나 다급한지 알 수 있었다.
지금 필요한 건 하나다.
‘속도.’
폐왕이 예상치 못하도록 빠르게 탑을 올라야만 한다.
당장 얻어도 크게 도움이 안 되는 히든 피스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얼른 가지, 카샬락카스.”
“크, 크흥. 그러지!”
아우터와의 전투로 소모된 체력만 회복한 후, 둘은 곧장 다음 시련으로 이동하였다.
이제부터는 정말 한시도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 * *
93층의 시련. 세운도 처음 발을 디디는 곳.
걱정되긴 했지만, 모험가로서 활동하던 본능 때문인지 도대체 어떤 곳일지 궁금하기도 하던 곳이었다.
그 주제는 바로.
– 93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질병
질병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꺼림칙함이 절로 몰려오는 주제.
그 주제에 걸맞게, 세운과 카샬락카스가 도착한 93층은 기이한 배경을 형성하고 있었다.
“크흥, 절로 불쾌해지는군.”
“동감이야.”
사방에서 정체 모를 썩은 내가 풍겨온다.
나무는 썩어 있고, 질척한 바닥에는 쥐와 벌레가 기어 다닌다.
썩은 늪지대에는 정체 모를 생명체의 해골이 반쯤 녹은 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공기부터가 심상치 않아.’
안개가 퍼진 것처럼 흐린 숲.
문제는 이 안개 전부가 독과 세균, 바이러스로 이루어진 질병 그 자체라는 점이었다.
어딘가 닿거나 하지 않아도, 그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질병에 걸릴 것 같았다.
“카샬락카스, 괜찮나?”
“용의 면역력을 얕보지 말아라. 이따위 독성은 이 몸에게 간지럽지도 않다. 오히려 네가 걱정이겠지.”
“나도 아직은 괜찮은 것 같은데.”
마신혈로 얻은 면역력 중에는 독과 질병에 관한 것도 있었다.
덕분에 독 안개를 마시고 있어도 큰 부담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니 91층부터 100층까지의 시련이 어떤 테마로 이루어져 있는지 대충 감이 잡혔다.
“……멸망해 가고 있는 세상. 아니면, 멸망한 세상인가.”
“크흥? 그게 무슨 말이냐.”
“이 시련들. 전부 다른 방식으로 멸망해 가고 있다.”
“들어 보니 그런 것 같군. 그 말대로라면 여기는 질병으로 멸망한 곳인가.”
갈등으로, 분쟁으로, 질병으로 멸망한 차원.
지금까지의 차원들도 멸망에 앞선 차원으로 보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적나라하지는 않았다.
아마, 앞으로의 시련도 전부 이런 식이겠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직 그 공략법은 예상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설마 이 모든 질병을 해독하라는 건 아니겠고.’
세운이 91층의 시련을 떠올렸다.
회귀 전의 세운은 대지 측의 계약을 훔쳐 바다 측에 바치는 식으로 공략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카샬락카스와 함께 두 진영의 계약을 합쳐 부수는 것으로 공략에 성공했다.
전혀 다른 방식이었지만,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갈등을 멈춘 것.’
한쪽의 승리건, 양쪽의 평화건, 결국 두 진영의 갈등을 멈춘 것이다.
92층의 시련 역시 어떠한 방법을 이용하여 모든 분쟁을 멈추는 게 공략법이 아니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이번 시련 역시 간단하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이 질병을 없애는 것.
세운은 그 방법으로 질병의 근원을 떠올렸다.
물론 근원이 무엇일지 감도 잡히지 않았고 이 수많은 질병에 하나의 근원이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그게 가장 현실적인 추측이었다.
“이번에도 각자 공략할 생각이더냐?”
카샬락카스가 당장 출발할 듯이 날개를 펄럭이며 물었다.
세운이 잠시 고민하다가 이번에는 고개를 저었다.
“같이 하지.”
“크흥? 네가 웬일이냐.”
“혹시 모르니까. 아우터 상대를 도와준 것도 있고.”
“도와주다니,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짓밟은 것뿐이다.”
“어쨌든. 의심되는 게 있으니까…… 그래도 방향은 따로 움직이지. 그게 효율이 높으니까.”
“좋다. 의심되는 거라면 뭘 말하는 거지?”
“질병의 근원.”
“그게 뭐냐?”
“몰라.”
“크흥, 할 수 없군. 알겠다. 비슷한 게 보이면 전부 불태워 주지.”
공략법이라 예상되는 것은 이야기해 주었지만, 움직이는 건 따로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세운은 그녀가 저 멀리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무슨 기준으로 방향을 정한 거지.’
카샬락카스에게 길 찾기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이 이끄는 대로 생각 없이 날아간 게 아닐까 싶었다.
‘우선은…….’
세운이 질병의 근원을 떠올리며 여정의 지침표를 사용했다.
당연하게도, 아직까지는 여정의 지침표로도 알 수 있는 정보가 몇 없었다.
탐지 스킬 중에서도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여정의 지침표였지만, 이 넓은 곳에서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질병의 근원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했으니까.
그러니 지금부터는 차분하게 93층을 탐험하며 질병의 근원에 대한 정보를 알아가야 한다.
마치, 92층에서 만마전을 수색했을 때처럼 말이다.
타앗!
세운이 날개를 펴고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주변을 정찰하고 조사하기에는 역시 공중에서 탐색하는 게 최고였다.
하지만, 세운이 날아오른 순간.
“께에에에엑!”
거대한 괴조 한 마리가 수십 개의 눈을 번뜩이며 날아왔다.
부리에서는 녹색 침이 줄줄 흘러내렸고, 깃털에서도 검은 가루 같은 게 흩날리고 있는 게, 살짝 스치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세균이 옮을 것 같은 녀석이었다.
서걱-
그래도 전투력이 강한 편은 아니었는지 세운의 일검에 몸이 반 토막이 났지만.
푸화앗!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독?”
둔기로 내려친 것도 아니고 깔끔하게 베었을 뿐인데, 그 즉시 녀석의 몸이 터져나가며 녹색 피를 사방에 흩뿌렸다.
세운으로서도 예상하기 힘든 공격이었기에 몸의 일부에 녀석의 피가 튀고 말았다.
츠으으-
세운의 장비가 썩어 갔다.
지금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 모두 히든 피스로 얻거나 고창석이 직접 만들어 준 S급 이상의 장비였는데, 그런 장비가 썩어 가다니.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세운은 이를 보자마자.
철컥.
감염되어 썩어 가는 장갑을 벗어 허공에 내던졌다.
그 외에도 피가 튄 갑옷의 어깨 부분을 잘라 버리는 등, 즉시 조치를 취하였다.
마신혈로 인한 면역력으로도 이런 직접 감염은 피하기 힘들다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그 괴조 외에도…….
“우웨에에엑.”
“터큭, 큭. 카악. 악!”
감염된 몬스터들이 쉴 새 없이 덤벼왔다.
피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후부터는 마법으로 방어막을 두른 덕에 큰 위험은 없었지만, 마나로 이루어진 방어막까지 썩히는 혈액은 무척이나 위협적이었다.
게다가 상공은 안개가 특히나 짙어 기침이 나올 지경이었기에 세운은 할 수 없이 바닥에 착륙했다.
“용이라고 멀쩡할 수준이 아닌데.”
카샬락카스가 걱정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공중에서의 소란을 들은 탓인지, 지상에서도 썩은 몬스터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나마 뻥 뚫린 상공보다는 숲에서 몬스터를 상대하는 게 조금 더 수월하다는 점?
‘사냥하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 성좌, ‘배고픈 왕자’가 톡 쏘는 맛이 일품이라며 음식을 음미합니다.
– 성좌, ‘배고픈 왕자’가 배가 꾸륵거리는 걸 즐기며 다음 쟁반을 집어 듭니다.
베엘제붑이 만족하고 있기는 하지만,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시련 공략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가장 중요한 여정의 지침표도 요지부동인 상황.
이에 세운이 새로운 수를 꺼내 들었다.
“아르스 게티아.”
철컥-
열쇠가 돌아가며 심연이 펼쳐진다.
이제는 제법 익숙한 마왕의 기운.
“응답하라, 낙타를 탄 여인.”
푸흐흐흐-
세운의 부름과 함께, 심연에서부터 낙타가 입을 터는 소리가 들려왔다.
점차 드러나는 마왕의 윤곽.
“서열 56위의 마왕, 그레모리.”
– 어머, 드디어 제 차례인가요?
어쩐지 익숙한 말투.
그녀의 정체는 바로…….
– 성좌, ‘암야의 올빼미’가 응시합니다.
– 성좌, ‘암야의 올빼미’가 둘이 제법 잘 어울려 보인다며 미소를 짓습니다.
– 언니도 참, 놀리지 말아요~
색욕의 마신, 릴리스의 여동생이었다.
제 64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