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4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43화(643/675)
콰르릉-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천둥소리가 아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시커먼 하늘이 무너지고 있는 게 보인다.
“설마, 96층의 천장이…….”
세운이 회귀 전에 보았던 탑의 멸망과 비슷한 장면이었다.
탑의 모든 천장이 부서지며 아우터가 흘러내리는 장면.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무너진 하늘의 틈새에서부터 검은 액체가 주룩 흘러내린다.
“꾸르륵-”
아우터.
분명, 아우터다.
그것도 엄청난 양의.
“카샬락카스!”
세운이 다급하게 그녀의 날개를 잡아끌었다.
그렇다고 그 거대한 몸이 끌릴 리는 없지만, 그녀는 재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브레스를 멈추고 자리를 피했다.
철퍽!
둘이 있던 자리 위로 떨어지는 아우터.
그 양이 워낙 엄청났던 터라, 폭포수가 떨어지는 걸 보고 있는 듯했다.
아우터를 뒤집어쓰는 꼴을 간신히 피한 터라 처음에는 녀석들이 둘을 노리고 떨어진 건가 싶었지만.
“설마.”
“저것들, 뭐 하는 거냐. 운석이 약점일 텐데, 어째서 운석을 감싸는 거지?”
그게 아니었다.
녀석들의 목표는 96층의 시련인 억압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운석이었다.
혹시 저 운석은 기존에 아우터를 가두던 운석과 다른 운석인 걸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끄르르르륵-”
“꾸르륵-”
아우터의 거부 반응이 너무 심했다.
운석의 힘을 거북해하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우터는 운석을 완전히 감싸 안았다.
그러고는 표면을 딱딱하게 경화하기 시작했다.
“운석을 지킨다고?”
저렇게 싫어하면서까지 운석을 지키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세운은 그 이유로 두 가지를 추측했다.
하나는 세운과 카샬락카스가 96층을 떠나지 못하도록 시련의 근원을 차단한 것.
둘째로는, 96층의 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터엉!
“꾸르르르륵!!”
하늘의 구멍에서 본격적으로 아우터가 떨어져 나왔다.
단순히 질척거리는 검은 액체만 흘러나온 게 아니었다.
이미 숙주를 잠식한 채로 떨어져 나오는 아우터들.
그 모두가 폐왕의 학습으로 강화된 신체를 지니고 있었다.
“카샬락카스.”
“크오오오오! 감히 이 몸의 앞길을 또 한 번 가로막는 것이냐!”
그녀가 몸에 인챈트 된 운석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비늘에서 운석 특유의 회색빛이 감도는 순간, 손톱을 번들거리며 아우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계획 없는 행동에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나쁜 판단은 아니었다.
무너져 가는 하늘과 운석을 감싼 아우터가 신경 쓰였지만, 일단은 검을 집어 들 수밖에 없었으니.
[ 왕의 성검, 카른웨난 ]서걱!
세운이 검을 휘두르자마자 아우터의 몸이 절반으로 잘려 나갔다.
학습을 거듭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파멸의 힘에는 약했다.
이대로라면 이번에도 세운과 카샬락카스의 승리로 싸움이 끝날 터.
92층에서 패배를 겪었으면서, 무슨 자신감으로 다시 나타난 것일까?
혹시, 폐왕의 명령으로 몸을 바쳐서라도 세운의 등반 속도를 조금이라도 더 늦추기 위함일까?
아무리 명령을 받아들였다고 해도, 생존 본능으로 가득한 아우터가 그런 명령을 이행 중이라는 건가?
첫 번째 아우터가 쓰러지며 세운의 머리가 한층 더 복잡해지는 순간.
“꾸르르르륵!”
세운은 곧 녀석들이 어째서 또다시 싸움을 걸어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쿠궁!
“크오오! 이것들, 왜 이렇게 빠르냐! 이 무거운 중력 속에서 어찌 이토록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지!”
녀석들은 빨랐다.
억압의 근원에 다다른 만큼 천근에 짓눌리듯이 몸이 무거운 세운이나 카샬락카스와는 다르게, 녀석들은 맹수처럼 민첩하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저 힘이 강해서 중력을 이겨 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억압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녀석들의 발걸음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중력으로 인해 굵직한 발 도장이 찍히고 있는 세운과는 다르게, 녀석들이 지나간 자리는 너무나도 평평했다.
이에 세운은 처음 운석을 둘러싼 아우터의 목적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둘 중 하나가 아니다.
둘 모두가 아우터의 목적이었다.
세운과 카샬락카스를 96층에 가두고, 자신들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억압을 이용하여 둘을 처치하려는 것이다.
‘설마 시련을 이용하려 한다니.’
아우터가 똑똑해지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것도 폐왕의 지시일까? 그랬다고 해도 문제인데, 만약 아우터의 독단적인 판단이라면 일이 더욱 심각해진다.
“크흥, 뭐 하나! 한눈팔지 마라!”
카샬락카스가 휘두른 손톱에 세운의 뒤로 다가오던 아우터가 짓뭉개졌다.
전투가 벌어진 지 아직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숨소리는 이미 몹시나 거칠어져 있었다.
하긴, 인간의 몸으로 폴리모프한 상태로도 등산을 힘겨워했는데 저런 거구로 움직이려면 중력의 영향을 더욱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세운은 아우터에게서 등을 돌렸다.
“카샬락카스, 잠시 놈들을 부탁한다.”
“또냐!”
“공략법을 찾았다.”
“흥, 맘대로 해라!”
말은 저렇게 해도, 카샬락카스는 담담하게 세운의 뒤로 다가오는 아우터들을 막아 주었다.
이에 세운이 그대로 운석을 향해 달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운석을 둘러싸고 있는 아우터를 향해 달렸다.
[ 태양의 차크람, 수다르사나 ]세운의 손에 원형의 칼날이 쥐어졌다.
주신 비슈누의 무기로써 한 번 던져 하나의 군대를 멸하고, 공중요새를 격추했으며, 수많은 아수라와 신을 쓰러트렸다는 신의 무기.
그 무기에 파멸의 힘을 가득 실어 운석을 향해 내던졌다.
콰과과괏!
공중요새를 격추했다는 설화에 걸맞게 강력한 위력.
차크라가 회전하며 내뿜는 열기가 마치 태양과도 같았다.
그렇게 날아오는 차크라를.
“꾸루룩.”
아우터가 집어삼켰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낯선 방어 방법.
삼켜졌음에도 차크라의 회전이 멈추지 않은 덕분에 아우터가 붉어지며 크게 부풀어 올랐지만.
치이익-
곧 열기를 다하고 사그라들고 말았다.
파멸의 힘까지 들어 있었는데, 저걸 저런 식으로 막아 내다니.
하지만, 세운의 공격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 천년뇌수(千年雷樹)의 화살 ]푸북!
“꾸륵.”
파지지직!
차크라를 삼키느라 얇아진 아우터의 표면에 샛노란 화살이 박혔다.
천년뇌수의 뇌전이 깃들 화살.
그 자체로도 엄청난 뇌전을 품고 있었지만, 화살에는 세운이 미리 시전해 둔 마법이 담겨 있었다.
–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퓨리 오브 더 헤븐 (Fury of the Heaven) ]– 하늘이 분노하는 것처럼 맹렬한 벼락을 내리치는 자탑의 최고위 번개 마법.
콰르르르릉!!!
화살에서부터 엄청난 위력의 번개가 뿜어져 나왔다.
천년뇌수의 샛노란 번개에 마법의 자색 번개가 뒤엉키며 아우터 전체를 감전시켰다.
“꾸르르르륵-”
파멸의 힘까지 깃든 뇌전에 아우터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이미 코앞까지 다다른 세운이 녀석에게 붉은 창을 내질렀다.
[ 파괴의 창, 트리슈라 ]푸욱!
그런데 창이 들어가는 느낌이 이상했다.
다른 때처럼 쑥 들어가는 느낌이 아니라, 겹겹이 쌓인 층을 통과하는 느낌이었다.
몇백 개씩 겹쳐진 가죽을 뚫고 있는 느낌?
한 겹을 꿰뚫을 때마다 창의 관통력이 반 토막 나더니, 창의 절반도 들어가지 못하고 멈추고 말았다.
“꾸륵!”
곧이어 창과 함께 세운까지 삼키려는 아우터 때문에 우선은 한발 물러나야만 했다.
물론, 물러나기 전에 후속타를 터트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퍼어엉-!!
파괴의 창, 트리슈라.
그 끝에도 마법을 담아 폭발시킨 것이다.
어차피 성장한 탐욕의 권능 특성상 모든 무구를 일회성으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이런 식의 사용도 부담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방어에 특화된 개체인가.”
방금의 연계에도 아우터가 뚫리지 않았다는 거다.
색욕의 권능이나 나태의 권능 등, 순간적인 화력을 높이는 방법이 여럿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준비 시간이 길거나 큰 리스크를 동반하는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96층 특유의 중력이 세운의 공격을 모두 둔화시키고 있었다. 그게 무공이든, 마법이든 말이다.
“크오오오오! 꺼져라, 이 더러운 것들아!”
게다가, 뒤에서는 카샬락카스가 혼자서 아우터를 막아 내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을 끌 수는 없었기에, 세운이 바로 네피림을 집어 들었다.
“아르스 게티아.”
철컥.
돌아가는 열쇠.
“응답하라, 눈물의 군주.”
세운이 부른 건, 현재 아르스 게티아에 응한 마왕 중에서도 가장 높은 서열의 마왕이었다.
그것도 원래대로라면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을 테지만, 루시퍼의 명령으로 한 번에 한하여 부름에 답하겠다고 한 마왕.
“서열 21위의 마왕, 모락스.”
음모오오오오-
세운의 뒤로 생겨난 심연에서 수소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아르스 게티아밖에 사용하지 않아 마왕이 바깥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은 극히 적었지만.
“꾸르륵-”
심연의 모락스가 울부짖는 것만으로도 아우터들이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거한의 덩치에 수소의 머리를 가진 채 왕좌에 앉아 있는 모락스의 윤곽이 드러났다.
게헨나의 근원이라고도 하고, 루시퍼의 부관으로 임명될 정도로 강력한 마왕, 그가 세운의 부름에 응답하였다.
– 용무는.
“아우터의 말살입니다.”
– 알겠다.
마음 같아서는 힘을 아끼기 위해 마법의 서를 사용하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모락스의 힘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만약 마법의 서를 사용했다가 아우터가 그 한 번의 공격을 버텨 낸다면? 상황이 지금 이상으로 심각해져 버린다.
이에 세운이 곧바로 레메게톤의 네 번째 작은 열쇠를 쥐어 들었다.
“아르스 알마델 살로모니스.”
철컥.
제단의 서가 돌아가고, 심연에 자리 잡은 모락스의 윤곽이 세운과 겹쳐졌다.
과연, 21위의 마왕이라는 것일까?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힘이 세운의 몸 안에 깃들었다.
그래봐야 몇십 위의 서열 차이일 뿐인데, 36위의 마왕, 스톨라스야 조언만 얻었을 뿐이니 넘기고, 처음 제단의 서를 사용했던 크로쉘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힘이다.
마왕들 사이에서도 순위에 따라 힘의 격차가 얼마나 심한지 알려 주는 순간이었다.
– 명심하라. 내가 네놈을 돕는 건 어디까지나 루시퍼 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세운의 겉에 두꺼운 소가죽 갑옷이 걸쳐졌고, 머리에서는 두꺼운 소의 뿔이 자라나며 광포한 힘을 머금었다.
96층의 억압이 사라진 것도 아닌데, 모락스의 힘이 몸에 깃들자 중력 따위 세운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 무오오오오오!!
세운을 중심으로 엄청난 충격파가 일어났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모락스의 기운.
모락스에게 무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21위의 자리까지 오르며 그가 단련한 건 오로지 두꺼운 뿔과 주먹.
– 전부 부숴 주겠다.
모락스의 힘을 완전히 받아들인 세운이 운석을 집어삼킨 아우터를 향해 두 뿔을 겨누었다.
제 64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