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4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46화(646/675)
콰르르-
하늘의 틈새에서는 더 이상 아우터가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증기가 뿜어져 나오거나 새까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 주인, 괜찮아? 힘들지?
그 중앙, 외로이 날개를 펴고 있는 세운이 숨을 허덕였다.
나태의 권능으로 회복한 힘마저 전부 써 버린 탓에 손발이 벌벌 떨려 왔다.
서클이 텅 비어 심장이 조여 오고, 내공이 바닥을 드러낸 단전 역시 통증을 호소해 왔다.
그야말로 모든 걸 쥐어 짜낸 탓이다.
“튜리크…… 아래로 좀 내려 줄래?”
– 응!
스스로 날개를 조절할 정신력도 남지 않아 튜리크가 직접 날개를 움직여 주었다.
서서히 고도가 낮아지며, 세운의 시야에 줄어드는 하늘의 틈새가 보였다.
‘성공한 건가.’
틈새의 내용물은 전부 처리한다고 하여도 틈 자체를 닫는 방법은 알 수 없었는데, 자연스레 회복되어 가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괜찮은가! 정신 차려라!”
다행히 약속을 기억한 카샬락카스가 다급하게 날아와 세운을 받아 주었다.
튜리크의 날개도 신성으로 유지되는 것이기에 점차 힘이 사라지고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용아, 진정해라. 보아하니 무리해서 탈진 온 거니까. 나도 소싯적에는 자주 저랬지. 젊을 때 저렇게 쓰러져 보기도 하는 거지.”
“네놈은 끼어들지 마라! 작은 인간 따위가!”
“호오? 이거, 아무래도 서열 정리부터 해야겠는데?”
카샬락카스와 프랜시스 하멜이 티격태격하는 게 눈에 들어왔지만, 중재해 줄 여유도 없었다.
이미 지쳐 버릴 대로 지친 체력.
그러나, 정신을 다 하기 직전, 세운은 어딘가로 정신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카샬락카스, 부탁한다.”
“크오오오오오!”
“하핫, 내 특별히 비늘 몇 장으로 봐주지!”
별로 믿음직스럽지 않은 상황을 앞에 두고, 세운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아우터가 나오던 틈을 향해 각종 공격을 퍼붓던 중.
세운은 저 안에 직접 들어가지는 못해도, 다른 방법으로 내부의 상황을 확인할 방법을 떠올렸다.
그래서 꺼낸 무기가 바로.
[ 뇌신의 정령, 쿠투네시르카 ]이것이었다.
겨울 늑대와 여름 여우의 정령이 깃들어 있는 정령의 검.
세운은 여기에 패밀리어 마법까지 사용하여 검을 틈새 속으로 투척했다.
그리고 지금, 세운이 검에 심어 두었던 패밀리어 마법과 함께 검에 깃들어 있는 정령을 일깨웠다.
“크르르-”
“우우우~”
반투명한 모습으로 나타난 늑대와 여우.
세운의 의지를 받아든 여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이 바람처럼 흩어져 늑대에게 스며들었다.
여우의 힘은 장막처럼 늑대의 모습을 감추고 소리를 차단하였다.
‘정찰을 부탁해.’
“크릉.”
늑대가 조용히 발을 옮겼다. 한겨울에 사냥감을 추적하며 눈을 짓밟는 늑대처럼 조용하게.
그러는 사이, 세운은 늑대를 통해 틈 내부의 환경을 관찰할 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테러는 성공했네.’
틈 내부는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원래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볼 수 있을 만한 게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고는 충격에 움푹 파인 구덩이들과 새까맣게 그을린 지면이나 아우터가 타들어 갈 때 나는 특유의 냄새뿐이었다.
“크르-”
늑대의 발길이 조금 더 빨라졌다.
틈이 메워지기 시작하자 세운이 늑대를 재촉한 탓이다.
정신이 연결되어 있다지만, 틈새가 완전히 닫히면 마몬의 보구나 마법의 힘으로도 늑대와 더 이상 정신을 연결할 수 없다.
지금은 기척을 조금 키우더라도 속도를 내는 게 우선이다.
솨아아-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테러의 범위가 생각 이상으로 넓었다.
황량한 폐허가 쭉 이어지던 중, 드디어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저건…….’
검은 바다가 펼쳐졌다.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은 바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곳에서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은 이 바다 전체가 아우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숙주도 가득하다.’
바다의 수면 위로 정체 모를 몬스터의 머리나 상체가 튀어나와 있었다.
기묘하게 생긴 모습은 꼭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만 같았다.
저게 바로 폐왕의 실험체.
아우터에 가장 어울리도록 실험하여 완성한 숙주임이 틀림없다.
당장 보이는 숙주들은 크기가 워낙 거대한 탓에 수면 위로 드러난 것뿐, 수면 아래로는 더욱 많은 숙주가 있을 게 분명했다.
‘안 들키고 이동할 수 있겠어?’
“크릉.”
늑대의 발톱에서 한기가 흘러나왔다.
늑대는 이내 허공에 얼음 발판을 만들어 날 듯이 허공을 달렸다.
‘생각 이상으로 넓은데.’
하늘의 틈을 통해 꽤 많은 아우터를 소멸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이 아우터로 이루어진 바다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회귀 전에 탑을 습격해 왔던 아우터의 시발점이 바로 이곳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 아우터와는 다른, 익숙한 얼굴이 저 멀리서 보였다.
“하필이면 잠자던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릴 줄이야.”
로브로 전신을 덮고 있는 남자, 쇠를 긁는 것처럼 거북한 목소리.
폐왕(廢王)이라 불리던 그 남자였다.
“정말 아쉽군. 이번 작전은 정말 괜찮았는데 말이야. 죽이든, 96층에 묶어 두든. 같이 다니던 여자의 행운이 붙기라도 한 건가.”
그는 손에 검은 액체를 장갑처럼 두르고는 정체 모를 몬스터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개조 작업이었다.
백현이 언데드를 만들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도 아우터에게 어울리는 숙주를 개조하고 있는 것이다.
“꾸르륵-”
폐왕의 질타를 듣던 아우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겁에 질린 강아지 같은 모습.
아우터에게 전혀 안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괜찮다. 그 정도 힘을 썼으면, 당분간 움직이지 못할 터. 시간을 끄는 데는 성공했으니.”
“꾸르륵!”
아우터가 기쁜 듯이 출렁거렸다.
그 감정은 이내 검은 바다 전역으로 번져나가 바다가 한층 더 거세게 일렁였다.
그 때문에 하마터면 늑대가 서 있는 상공까지 아우터가 닿아 들킬 뻔했다.
“무엇보다, ‘재료’까지 얻었으니.”
쿠구구구-
검은 바다 전체에 파문이 일었다.
그러더니 용오름이 일어나듯이 물이 크게 솟구쳤다.
“이제 곧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콰아아아!
용오름이 점점 더 커지더니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게 솟구쳤다.
그리고 그 끝에서.
“꾸르르륵—”
공간 전체를 울리는 불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액체가 흘러내리며, 흐릿하게나마 솟아오른 무언가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때.
“……어떻게 들어온 거지?”
세운과 폐왕의 눈이, 아니, 늑대와 폐왕의 눈이 마주쳤다.
늑대가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서고, 세운의 의지를 따라 고개를 움직여 제 몸을 보니 일렁거리던 검은 바다 탓에 발톱 끝에 검은 액체가 한 방울 묻은 게 보였다.
곧이어 늑대의 주변이 어두워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방금 바다에서 일어선 무언가의 손으로 추정되는 부위가 늑대의 위를 뒤덮고 있었고.
콰아아아앙!!
늑대의 형체를 완전히 짓뭉개트렸다.
늑대의 형상이 사라진 자리.
“우리의 존재를 보았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두 번째 역행자야.”
폐왕이 미간을 잔뜩 구긴 채 늑대가 있던 자리를 향해 중얼거렸다.
* * *
세운이 쓰러지고 얼마 후, 투덕거리던 카샬락카스와 하멜도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아니, 이걸 진정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 격차를 좀 알 것 같냐? 용아.”
“크윽. 네놈, 진짜 인간이냐? 저놈부터 시작해서 인간들이 어찌 이렇게 강한 것이냐!”
“시간의 차이지. 너희 용들은 수명이 긴 만큼 여유롭게 움직이지만, 우리 인간들은 수명이 짧은 만큼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죽을 각오로 달려가거든.”
“여유라니, 이 몸도 노력한다!”
“그래? 구체적으로 어떤 수련을 얼마나 하고 있었는데?”
“하루에 한 번 날뛰기! 화가 풀릴 때까지 브레스 뿜어대기! 지상 놈들 내려다보며 맘껏 비행하기!”
“뭐, 개인적으로는 괜찮아 보이는데. 그래도 체계적이지 않잖으냐. 결국 네 맘대로 한다는 소리고.”
카샬락카스의 머리에는 거대한 혹이 솟아나 있었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비늘 몇 장으로 봐주지!’라고 했던 말이 농담이 아니었던 듯이 비늘 몇 장이 뽑혀 있었다.
일대일 싸움에서 무려 카샬락카스가 패배한 것이다.
물론 아우터와의 전투 때문에 그녀의 체력이 거의 소진되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굳이 이점으로 태클을 걸지 않았다.
잠깐의 전투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하멜이라는 남자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말이다.
“야, 용.”
“뭐냐!”
“뭐 좋은 영약 같은 거 없냐?”
“영약?”
“용들은 원래 그런 거 챙겨 다니지 않나? 난 몸에 좋다 싶은 건 이미 다 먹고 다녀서 말이야.”
“이, 있긴 하다.”
“오호, 그래?”
“하지만, 안 된다! 이건…… 이 인간에게 쓸 거다!”
카샬락카스가 저도 모르게 한발 물러섰다. 하멜이 영약을 뺏어 먹을 줄 아는 모양.
하지만, 그는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세운을 향해 다가갔다.
“나도 이놈한테 쓰려는 거야.”
“휴우…….”
“근데 기절한 놈한테 영약 써 봤자 큰 의미는 없어. 만병비약이라는 엘릭서를 사용해도 바로 깨울 수는 없을걸?”
“알고 있다! 그래도 도움은 될 거다!”
“진짜 엘릭서인가 보네? 용이라고 해도 귀한 걸 텐데. 제법 친한가 보군?”
“안 친하다!”
“그럼?”
“빚을 만들려는 것뿐이다!”
“누가 용 아니랄까 봐, 자존심은 세 가지고. 아무튼, 있으면 빨리 줘 봐. 얼른 깨우게.”
“큰 의미가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써 주면 또 다르거든.”
“크흥…….”
자신감 넘쳐 보이는 하멜의 모습.
비록 오늘 처음 보는 그이지만, 왠지 모르게 믿음직스러운 그 모습에 카샬락카스가 할 수 없이 품에서 엘릭서를 꺼내 들었다.
“한 병뿐이다.”
“이야, 때깔 좋네. 역시 용은 용이라니까.”
엘릭서를 받자마자 뚜껑을 열더니 향기를 음미하는 하멜.
불안하긴 했지만, 그의 손에 엘릭서가 넘어간 이상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하멜이 약속을 지키고 엘릭서를 세운의 입에 꽂았다는 점이랄까?
“이놈 말이야,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했거든. 노련한 듯하면서 노련하지 않고. 진한 것 같으면서도 옅고. 깊은 것 같으면서도 얕아 보였단 말이지.”
그가 세운의 몸을 어루만졌다.
대충 만지는 게 아니었다.
기혈.
카샬락카스조차 완벽하게 알아보기 힘든 기혈을 완벽하게 짚어가며 세운의 몸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게 마음에 안 들긴 했는데, 내부 상태는 완전 마음에 들더란 말이지. 넓으면서도 깨끗해. 방대하면서도 순수해. 보통은 이럴 수가 없거든.”
하멜은 이내 세운의 머리부터 시작해 목을 따라 내려오며 기혈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쿡, 쿡, 쿡.
기혈을 자극할수록 해당 부위에서 엘릭서의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런 몸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도 안 거치고 뭘 했나 몰라.”
뿌득-
엘릭서가 순환되고, 기혈이 자극될수록 세운의 몸에서 수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뼈가 움직이고, 근육이 뒤틀렸다.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면 되레 기절했을 것이다.
“아무튼, 강제로나마 환골탈태를 일으키면 몸은 어떻게든 변화에 적응하려 주변의 기운을 흡수할 거고.”
하멜의 말대로 세운의 몸이 주변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닥치는 대로 기운을 흡수하는 모습에 하멜은 물론 카샬락카스까지 뒤로 조금 물러서야만 했다.
“후유증이고 뭐고, 바로 회복할 거란 말이지.”
그런데 그 반응이 생각 이상이었다.
주변의 힘을 흡수하는 반경이 점점 넓어지더니, 하멜까지 이마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려댔다.
카샬락카스가 수상한 마음에 뒤로 더욱 물러나며 물었다.
“워, 원래 이런 것인가!”
“아니, 이거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 힘까지 전부 뺏기겠는데? 알아서 피해 있어. 안녕!”
세운의 몸이 허공에 붕 떠 올랐다.
내부의 독소를 모조리 배출하고, 반대로 주변의 기운을 모조리 채워 넣는다.
그 와중에 주변의 기운조차 정화하여 그중의 독소를 전부 배출한다.
나중에는 뱉었던 독소조차 집어삼키더니 단전의 깊은 곳에 응축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성흔이 미처 흡수하지 못한 아우터의 성질까지.
“자, 잠깐!”
카샬락카스가 다급하게 자리를 피하는 순간까지도, 세운의 몸은 끊임없이 힘을 탐하고 있었다.
제 64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