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51)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51화(651/675)
여정의 지침표가 길을 알려 줬다.
아직 99층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는데, 심지어 세운이 사용한 것도 아닌데, 저절로 발현되어 길을 알려 주다니.
회귀 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여정의 지침표를 사용해 온 세운으로서도 처음 겪는 경우였다.
“어째서…….”
의문이 들었지만, 무척이나 좋은 상황이었다.
여기서 의문을 키운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으니, 다시금 다리를 움직였다.
타닷!
지금까지 99층에서 움직였던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발걸음.
망망대해 속에서 등대를 찾은 격이니, 노질이 빨라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외길을 따라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나 여정의 지침표는 외길이 아닌 다른 곳을 가리켰다.
“저기까지 올라가라는 건가.”
저 하늘 위 까마득히 먼 곳에 위치한 작은 돌조각.
여정의 지침표는 바로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와 조금 다른데.’
여정의 지침표는 기본적으로 상식선을 따른다.
이는 ‘길’을 알려 주는 스킬에 가까웠기에, 대부분의 사람이 통과하지 못할 길목은 어지간하면 표시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저런 길을 알려 주는 이유는 둘 중 하나였다.
길이 이 하나뿐이거나, 갑작스레 발현된 것처럼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세운은 일단 날개를 펼쳤다.
펄럭!
넓게 펼쳐지는 보랏빛 날개.
아니나 다를까, 날개를 펄럭여도 바람이 불지 않아 몸이 잘 떠 오르지 않았다.
마나를 이용해야 가까스로 몸을 떠 올릴 정도.
이 정도로 저 먼 곳까지 향하는 건 무리였기에, 세운이 다른 방법을 추가했다.
[ 매의 날개옷 ]뒤집어쓰면 매로 변신할 수 있다는 프레이야의 보물을 덮어쓰고.
[ 탈라리아 ]전령신 헤르메스가 신고 다닌다는 날개 달린 신발을 신는다.
[ 페타소스 ]마찬가지로 헤르메스가 쓰고 다니는 날개 달린 모자와.
[ 이카로스의 날개 ]튜리크의 날개가 생긴 이후로는 사용하지 않았던 이카로스의 날개까지 사용한다.
비행과 관련된 보물은 죄다 꺼내 몸에 두른 세운.
그 상태로 날개를 한 번 더 펄럭이자.
쐐애액!
세운의 몸은 미사일처럼 빠르게 목표를 향해 쏘아졌다.
미풍조차 불지 않는 곳에서 이런 속도의 비행이라니.
그 짜릿함을 느끼며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세운은 당황스러운 인도를 겪어야만 했다.
‘진짜 이상한데.’
평소의 여정의 지침표가 아니었다.
갔던 길이 막혀 뒤로 되돌아가거나 비효율적으로 길을 빙 둘러 가는 등, 목적지까지 향하는 길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여 주는 여정의 지침표와는 결이 전혀 달랐다.
심지어는.
[ 괴력검, 마르미어드워즈 ]콰앙!!
길이 아예 막혀 있어 강제로 뚫어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건 가장 효율적인 길이라기보다는 마치…….
‘누군가의 흔적.’
정체 모를 누군가가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기분이었다.
목적지를 알고 가는 게 아니라 고민하고 분석하며 길을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결은, 어쩐지 세운이 생각하는 것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회귀 전, 모험가였던 세운이었다면 정말 딱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다만, 그러면서도 길은 맞는 듯했다.
“우우웅…….”
처음으로 몬스터가 등장하여 세운의 앞길을 가로막았으니.
몬스터라고 해도 고독이라는 주제에 맞게 생명체가 아닌 골렘 같은 비생명체들이었지만 말이다.
깡!
특유의 단단함으로 무장한 골렘들.
보구로 내려쳐도 제대로 된 상처가 나지 않을 정도였지만.
– 멸흑신무(滅黑神武)의 제일 초식, 적랑(赤狼).
콰직!
거기에 세운이 새로이 만들어 낸 멸흑신무까지 더해지자 녀석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이걸로 끝인 줄 알았지만, 아쉽게도 그게 아니었다.
녀석들은 자신들이 생명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우우웅…….”
무너진 파편을 조립하여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핵이랄 것도 보이지 않고, 여정의 지침표는 녀석들은 안중에도 없이 목적지만을 가리키고 있는 상황.
– 성좌, ‘배고픈 왕자’가 어째서 먹이가 밥상에 올라가지 않는 거냐며 한탄합니다.
지금까지의 몬스터들과는 다르게 쓰러트렸을 때 폭식의 권능을 사용하여도 먹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녀석들을 무시하고 여정의 지침표를 따라 달렸다.
멸흑신무는 무기술뿐만 아니라 온갖 보법까지 융합시켜 만든 무공이기에, 골렘들은 세운의 빠른 몸놀림을 따라올 수 없었다.
‘원래 길은 아닌 것 같은데.’
– 성좌, ‘눈먼 노인’이 당신의 행보를 관심 있게 지켜봅니다.
자신이 예언을 해 내지 못한 탓일까? 바사고마저 세운의 행보를 지켜보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쭉쭉 나아간 세운은 드디어.
“여기가…… 끝.”
막다른 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나온 길을 제외하고는 주변에 그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거라고는 눈앞의 까마득한 낭떠러지뿐.
심지어, 여정의 지침표는 저 아득한 심연을 가리키고 있었다.
‘깊이 들어가면 탐욕의 권능으로도 올라오기 힘들겠지.’
이 이후부터는 믿음의 영역이다.
여정의 지침표를 믿느냐, 그러지 않느냐.
만약 여정의 지침표가 틀렸다면, 세운은 99층까지 올라와서 허무하게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하지만, 세운은 믿었다.
언제나 자신에게 제대로 된 방향을 알려 준 여정의 지침표를 믿지 않을 리가 없었다.
‘가자.’
타앗!
세운이 망설임 없이 낭떠러지 아래로 뛰어내렸다.
엄청난 속도로 추락하고 있는데도 별다른 바람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이 워낙 어둡고 텅 비어 있는 터라, 내려가는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신경을 예리하게 세웠다.
당장 어떤 변수가 생기더라도 대처할 수 있도록.
하지만, 세운의 그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 99층의 시련 ‘고독’을 훌륭하게 완수하였습니다.
여정의 지침표는 세운을 다음 계단으로 인도해 주었다.
* * *
“드디어.”
100층의 시련.
탑의 마지막 시련에 도착했다.
레드 드래곤 카샬락카스도, 검제 프랜시스 하멜조차도 도착하지 못했던 100층의 시련.
이제 정말 앞으로 단 한 걸음.
이 100층만 통과하면, 성좌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과정일 뿐이다.
아우터의 위협은 아직까지 건재했고, 올림포스와의 협상도 시작하지 못했다.
오히려 100층을 통과하는 것이 진정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세운이 차분하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둡다.’
새까만 공간.
그렇다고 어둡다고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사방이 새까맸지만, 모든 걸 볼 수 있었으니까.
즉, 공간이 검게 칠해져 있을 뿐이지 어두운 건 아니었다.
말이 안 되는 말이었지만, 탑에서 이 정도의 이변은 익숙했다.
– 100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 주제 : 대면
마침내 떠 오르는 탑의 마지막 시련.
대면.
무엇과 대면한다는 뜻일까?
“너인가.”
답은 금방 나왔다.
세운을 제외한 모든 게 검정으로 뒤덮여 있는 공간에서 새로운 인물이 색을 찾아갔다.
어깨에 두른 ‘태조 무황제의 전포’와 오른손등에 새겨진 검붉은 성흔.
허리춤에 차고 있는 뒤랑달.
마치 거울을 보는듯한 그 모습에 세운은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도플갱어인가.”
도플갱어.
원하는 존재의 힘과 능력, 생각 등을 전부 따라 하는 몬스터다.
그래 봤자 도플갱어가 플레이어의 힘을 완벽하게 따라 할 수는 없겠지만, 이곳은 100층의 시련.
거기에 ‘대면’이라는 주제까지 생각하자면, 눈앞의 도플갱어에게 무언가 제한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대면이라는 주제가 가진 뜻은 아마.
‘나 자신을 뛰어넘는 것.’
이것일 것이다.
자신과 똑같은 존재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한 단계 더 성장해야만 할 테니까.
“도플갱어라. 그래, 그렇게 보이겠군.”
세운의 도플갱어가 천천히 다가왔다.
검을 빼 들고, 검강을 한껏 내뿜는다.
세운도 가능은 하지만,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사용하지 않는 전략.
‘응용도 가능한 건가?’
도플갱어인 만큼 전투 스타일도 완벽하게 똑같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시련의 내용은 세운의 생각 이상인 모양이다.
지금 당장 사용하기 익숙한 전략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술까지 사용해 가며 상대의 전략을 파악하지 않으면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시작하지.”
타앗!
세운과 도플갱어의 격돌이 시작되었다.
아직 거리가 떨어진 만큼, 세운의 첫 시작은 마법이었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기가 라이트닝’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일대일 상황이었기에 굳이 마나 소모가 크고 시전이 느린 고서클 마법보다는 몇 서클 낮더라도 빠르고 피하기 어려운 마법을 사용했다.
자색의 번개가 번뜩이며 도플갱어에게 날아들었다.
당연히 실드 마법을 사용할 거라 생각하며 이를 취소하기 위해 디스펠 마법을 준비했지만.
파직!
“마법인가.”
상대가 사용한 건 마법이 아니었다.
검막(劍膜).
최근에 프랜시스 하멜이 보여 주었던 것처럼 검강을 얇게 퍼트려 만들어 낸 방어막이었다.
게다가,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타앗!
검막과 함께 마법을 흩트린 도플갱어가 섬광 같은 속도로 세운에게 달려들었다.
세운마저 처음 보는 보법.
여태까지 탐욕의 권능으로 사용해 본 적도 없고, 이번에 만들어 낸 멸흑신무의 보법도 아니었다.
카앙!!
다급하게 검을 집어 들었지만, 엄청난 충격에 몸이 뒤로 밀려났다.
뒤랑달을 쥔 손이 얼얼하게 쓰려왔다.
캉, 캉!!
연달아 이어진 공방.
탐색전이라고는 하지만, 제법 길게 맞붙어도 머릿속에서 의문이 떠나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아무리 합을 이어 가도 상대는.
“어째서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거지?”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혹시나 상대가 기습적으로 마법을 사용할까 봐 마나를 퍼트려 마나 민감도를 최대한 끌어 올린 상황인데도, 상대에게서는 마나의 움직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마나 서클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러한 세운의 질문에, 상대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나는 마법을 배운 적이 없으니까.”
“……무슨 소리지?”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마법을 배운 적이 없다니? 상대는 세운의 도플갱어가 아니라는 뜻인가?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장비나 습관, 말투 등이 전부 세운과 똑같았다. 그가 세운과 비슷한 존재라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나는 오직 검에 모든 것을 바치며 탑을 올라왔다. 그 차이는, 이미 느꼈을 텐데?”
세운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검술, 보법, 심공 등, 전부 세운이 이뤄왔던 것과 비슷하면서 달랐다.
검에 모든 것을 바치며 탑을 올랐다는 말이 진짜인 것처럼, 검 하나로만 보자면 세운의 수준을 뛰어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이럴 수는 없다.
아무리 탑의 마지막 시련이라고 해도, 이런 건 불가능하다.
탑에는 여러 차원의 세상이 연결되어 있지만, 그건 엄연히 다른 차원일 뿐. 흔히 말하는 다중우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세상에 세운은 오직 단 한 명.
저런 존재가 존재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우리이기에, 가능하다.”
“……우리?”
그의 말에서 불길함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둘 뿐이라 생각했던 공간에서 다른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한 기척은 어느새 열을 넘어가며 세운의 주변을 포위했다.
“너희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세운.
로브로 몸을 푹 가리고 기척을 숨기고 있는 세운.
중갑으로 무장한 채 몸만 한 방패까지 앞으로 내세우고 있는 세운 등.
행색은 모두 달랐지만, 알 수 있었다.
그 모두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누구지?”
세운의 질문에 주변에 몰려든 존재들이 대답하였다.
무척이나 당연하다는 말투로.
“정세운.”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에 똑같은 목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회귀자다.”
제 65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