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52)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52화(652/675)
질문할 틈은 없었다.
주변을 둘러싼 도플갱어들이 곧바로 공격을 해 왔으니 말이다.
“시작하겠다.”
가장 먼저 공격해 온 건 눈앞의 검사였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 무엇보다 빠르고 날카로운 검격.
그 공격을 간신히 쳐낸 세운은 뒤쪽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즉시 몸을 회전시켰다.
팅!
세운의 검에 튕겨 나가는 것은 화살.
화살이 날아온 궤적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니 견제용 활을 집어넣고 자기 키만 한 대궁을 설치하고 있는 궁수가 보였다.
딱 보아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대궁이었기에 설치를 막기 위해 세운이 마법을 쏘아 보냈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헬 파이어’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혹시 모를 변수를 일체 차단하기 위해 날려 보낸 지옥의 불길.
하지만.
“어떠한 공격도 허용하지 않겠다.”
궁수의 앞으로 방패수가 나타나 타워 실드를 치켜들었다.
아무리 좋은 방패라고 해도 헬 파이어는 범위 화염 마법.
화염이 퍼져나가는 건 막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하기 무섭게 그의 방패 앞으로 마나로 이루어진 거대한 방어막이 생겨났다.
‘헬 파이어를…….’
지옥의 불길이 이름이 무색하도록 허무하게 흩어졌다.
그러면서도 방패에 그을음 하나 생기지 않다니, 분명 범상치 않은 방어 능력이었다.
“빈틈.”
서걱-
이어서, 조금의 인기척도 없이 갑자기 눈앞에서 나타난 단검을 간신히 피해 냈다.
100층까지 올라오며 감각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그 모든 감각을 뚫고 코앞까지 접근하여 단검을 휘두르다니.
이 순간부터 세운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의문을 억누르며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 창의 아들, 막 아 루인 ] [ 겨우살이, 미스틸테인 ] [ 마녀의 마법검, 바리사다 ]탐욕의 권능이 빛을 발했다.
거기에 멸흑신무까지 어우러지니, 무기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적을 쫓았다.
“큭!”
공격을 연속으로 막아낸 검사가 신음을 흘렸다.
그사이, 옆에서 9서클의 화염 마법이 날아왔다.
‘마법사까지 있는 건가?’
[ 사라스의 십자 방패 ]쿠궁!
십자 형상의 방어막이 떠오르며 마법을 막아 낸다.
그치지 않고 빈틈을 통해 쏘아 들어오는 팔뚝만 한 화살.
궁수가 아까의 대궁 설치를 끝낸 듯했다.
분명 위협적인 공격이었지만, 세운은 방어하지 않았다.
[ 순백, 비테게의 갑옷 ]티잉!
세운의 몸을 둘러싼 순백의 갑옷이 대형 화살을 막아 냈다.
그사이, 세운의 손아귀에 생겨난 무기는 대궁을 쏘아내느라 빈틈이 드러낸 궁수를 노리고 있었다.
“날 넘어설 수는 없다.”
다시 한번 방패를 들어오는 방패수.
하지만, 방패에 닿기 직전.
화살은 속도를 유지한 채로 기묘하게 방향을 꺾더니 방어막을 스치듯이 타고 올라가 궁수의 목에 틀어박혔다.
[ 절대 명중, 페일 노트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빗나가지 않고 ‘상대에게 명중’하는 힘을 가진 페일 노트.
그리고 그 촉 끝에는 세운의 마법이 깃들어 있었다.
퍼어엉!!
“내 방패를…….”
궁수의 몸이 흩어졌다.
이로써 하나.
숨통이 조금 트이나 싶었는데, 도플갱어들은 동료의 죽음에도 동요하지 않고 세운에게 달려들었다.
‘생각 이상이다.’
처음에 맞붙었던 검사와 마찬가지다.
도플갱어들 전부 세운과는 다르게 하나의 영역에만 집중했지만, 그 하나의 영역만큼은 세운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 상태로 서로 지켜 주고 연계 공격까지 이어 가니, 궁수를 잡아낸 이후로는 방심이 완전히 사라져 사소한 빈틈마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적은 다수.
힘이 먼저 빠진다면 위험할 수 있다.
게다가 이곳은 100층.
이곳만 통과하면 더 이상의 시련은 없으니,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여도 문제없을 거라 판단한 세운이 곧장 열쇠를 꺼내 들었다.
“응답하라, 검은 기사.”
철컥.
“서열 15위의 마왕, 엘리고스.”
심연이 열리고,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철컥, 철컥, 철컥.
무거운 갑옷을 입은 기사의 발걸음.
그의 윤곽이 드러나기도 전에, 세운이 네 번째 열쇠를 꺼내 들었다.
제단의 서.
그에 따라 마왕은 심연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그 밖으로 서서히 걸어 나왔다.
– 주군을 통해 들었다오.
칠흑같이 어두운 갑주로 전신을 무장한 기사.
손에는 깃이 달린 창을 쥐고 있었는데, 창에는 흉악한 뱀의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그가 말한 주군은 바로 분노의 마신, 사탄.
얼마 전, 모락스가 실수하고 벨페고르 라인의 마왕들만 부르자 보내던 메시지가 농담이 아니라는 듯이 소개해 준 마왕이었다.
현재 세운으로서 부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왕이었다.
“부탁드립니다.”
–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소.
천천히 걸어온 엘리고스의 몸이 세운과 합쳐졌다.
그가 입고 있던 검은 갑주가 세운에게 입혀지고, 깃창 역시 세운의 손에 쥐어졌다.
모락스를 받아들였을 때 이상으로 강력한 힘이 몸을 채웠다.
“빈틈.”
그사이, 세운의 급소를 향해 단검이 날아들었다.
어떻게 한 것인지 하나가 아니라 목이나 심장, 단전 같은 급소들을 향해 다섯 개의 단검이 정확하게 날아왔다.
그 모두에 날카로운 기운이 서려 있어 그 어떤 방어구도 뚫을 것 같아 보였지만.
캉!
“큭…….”
순식간에 급소를 두른 검은 갑주는 그 모든 공격을 막아 냈다.
그리고는 암살자의 손목을 쥐고.
콰앙!!
단단한 바닥을 향해 패대기쳤다.
그 위력이 어찌나 강했는지 무기를 사용한 것도 아닌데 암살자가 일격에 흩어지고 있었다.
– 깃발을 치켜드시오.
엘리고스의 지시에 따라 세운이 깃창을 높게 들어 올렸다.
그러자 바람 한 점 없는 공간인데도 깃발이 크게 펄럭이며 주변에 스산한 기운을 흩뿌렸다.
– 소인이 관장하고 있는 영역은 장해(障害). 소인의 적들은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룰 수 없을 것이오!
쿠궁!
스산한 기운이 땅을 파고, 벽을 세웠다.
갑작스럽게 생겨난 장해물들.
엘리고스의 힘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장해는 그저 장애물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저주처럼 도플갱어들을 시야를 막고, 마법사의 입을 막아 마법을 봉인하기도 하였다.
여기까지도 대단한데, 그보다 대단한 건.
“크헉! 어떻게…….”
그 모든 장해물이 세운에게만은 예외라는 것이다.
세운의 발은 구덩이에 빠지지 않았으며, 벽조차도 세운을 막지 않고 통과시켰다.
덕분에 빠르게 상황 파악을 끝내고 장해물을 이용하려 벽에 숨어 있던 창수 하나가 깃창에 꿰뚫리며 목숨을 잃었다.
그때.
쿠르릉!
까맣기만 하던 천장에 먹구름이 가득 채워졌다.
분명 엘리고스의 권능으로 입이 막혔을 텐데, 마법사가 어떻게 영창을 마친 모양이었다.
흐르는 마나만 보아도 얼마나 강력한 마법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 소인만 믿으시오!
세운이 다시 한번 깃창을 집어 들었다.
허공에 어둠으로 이루어진 장해물이 생겨나며 방어막을 이루었다.
그러던 중, 세운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처음부터 세운을 노려오던 검사가 장해물 뒤쪽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세운의 목을 베려 하는 장면.
세운이 대처하려 반대편 팔을 뻗었지만, 뒤쪽에서 쏘아진 무음의 총탄이 세운을 꿰뚫는 장면.
‘이건.’
– 미래이오.
‘미래?’
– 찰나의 미래이긴 하지만, 소인에게는 미래를 보는 힘이 있소. 이 힘으로 수많은 강적을 물리치며 이 자리까지 도달했소.
미래를 볼 수 있다니.
비록 찰나의 미래라고는 하지만, 바사고나 스톨라스의 예언보다 훨씬 선명하고 구체적인 힘이었다.
휙-
이에 세운은 깃창을 들고 머리 위의 장해물을 유지한 채 몸을 비틀어 검사의 공격을 피해 냈다.
곧바로 닥쳐오는 총탄.
속도는 당연하고 그 어떠한 소음도 없이 날아드는 총탄은 무척이나 위협적이었지만.
팅!
그 존재만 인식하면 막아 내는 건 간단했다.
[ 용의 최후, 리딜 ]세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몸을 한 바퀴 회전하며 총수를 향해 단검을 내던졌다.
이 한순간만을 위해 숨죽이며 기회를 노리고 있던 총수였기에, 공격이 막힌 순간 당황하며 자리를 뜨기도 전에.
푹.
세운의 공격이 박히며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 성좌, ‘격노의 군주’가 흐뭇하게 웃습니다.
– 성좌, ‘추락하는 날개’가 상대가 나빴을 뿐이라며 버럭합니다.
– 성좌, ‘눈물의 군주’가 주먹을 부들거리며 고개를 숙입니다.
흐름은 세운에게 왔다.
그 이후로도 엘리고스의 힘을 휘두르며 주변의 도플갱어 절반 이상 쓰러트렸다.
‘이 정도라면.’
모락스의 실패를 경험 삼은 걸까?
엘리고스는 열쇠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적절하게 힘을 조절해 주었다.
덕분에 15위의 마왕을 불러들였음에도 아직 사용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다만, 상대의 전력 역시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도달했나.”
새로이 나타나는 도플갱어들.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나타난 놈들은 처음 있던 것들보다 더욱 강해 보였다.
단순히 무기만 강한 게 아니고 그중 몇몇은 세운과는 다르지만, 왼쪽 손등이나 목 언저리 등에 성흔이 새겨져 있을 정도였다.
– 소인의 힘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이오!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지만, 달라질 건 없었다.
엘리고스의 깃창을 휘두르며, 세운은 더욱 격렬하게 도플갱어들을 밀어붙였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쓰러진 적은 흩어져서 흔적을 남기지 않아서 처음과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벌써 수십의 도플갱어를 쓰러트렸다.
엘리고스의 힘은 사라진 지 오래.
그 이후로 열쇠의 남은 힘을 쥐어 짜내 마법의 서까지 사용했음에도 도플갱어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후우…….”
숨이 차오른다.
질투의 권능이나 색욕의 권능 등, 현재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쥐어 짜내 포기하지 않고 도플갱어를 쓰러트렸다.
심지어 지금은 최후의 수라고 할 수 있는 나태의 권능까지 사용한 상태.
다행인 점이 있다면.
“……네가 마지막인가?”
“탑의 시스템이 이 이상을 감당하지 못하나 보군.”
남은 도플갱어가 하나뿐이라는 점이었다.
검사.
처음 세운과 대면한 도플갱어로서 그 어떤 도플갱어보다 열심히 전투를 이어 갔으면서도 끝까지 목숨을 부지한 존재다.
성흔을 지닌 도플갱어들은 어떻게 보아도 저 검사보다 강했는데, 어째서인지 저 검사는 다른 모두가 쓰러질 때까지 살아남았다.
물론, 상태가 정상이라는 건 아니다.
전신에 크고 작은 상처가 나 있고, 왼쪽 팔이 잘려 나갔으며, 오른쪽 눈에 상처가 생겨 외눈이 되었다. 다리의 힘줄도 베였는지 검을 짚고서 간신히 일어서 있을 정도였다.
“드디어…… 성공했네.”
세운이 한 말이 아니었다.
도플갱어.
그가 눈물까지 흘리며 내뱉은 말이었다.
“어째서 네가 우는 거지?”
세운은 도플갱어의 목에 뒤랑달을 겨눈 채 물었다.
전투가 이어질 때는 잡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100층의 시련은 이상했다.
마치 평행세계의 자신을 부른 것처럼 다양한 힘을 가진 도플갱어들.
탑의 시스템이라고 하여도 그런 걸 구현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탑을 오르며 겪은 시스템은 무척이나 대단하면서도 한계가 명확했다.
시스템은 이렇게 창의적인 일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 세운의 질문에, 검사가 세운과 눈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처음으로 100층에 도전한 ‘너’였기 때문이다.”
제 65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