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5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53화(653/675)
“처음으로?”
“머리가 복잡할 테지. 이 얘기를 설명하려면…… 그래, 100층의 시련에 대해서 얘기해야겠군.”
“이제 싸움은 걸지 않는 건가?”
“싸우고 싶었던 게 아니다. 싸울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게 바로 100층의 시련이니.”
“그럼 지금은?”
“보다시피, 이제 싸움을 걸 만한 상태가 아니라서 그런지 제약이 덜해진 것뿐이다. 그래도 경계는 이어 가라. 혹시 나도 모르게 기습을 할지도 모르니까.”
시스템의 제약, 즉, 녀석이 100층의 시련으로 탄생한 건 확실하다.
어차피 시련은 끝낸 거나 마찬가지였고, 세운의 머릿속에도 의문점이 많이 남아 있었기에 그의 말대로 경계를 이어 가며 얘기를 경청하였다.
“100층의 시련, 대면. 이미 짐작했겠지만, 나 자신과 맞붙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하는 시련이다.”
“그 정도는 눈치챘지만, 내가 궁금해하는 건 그게 아니라는 걸 알 텐데?”
“하나다.”
“뭐?”
“100층의 시련에서 상대해야 하는 적은 단 하나다. 말 그대로, ‘대면’이니까.”
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당장 세운이 쓰러트린 도플갱어의 수만 해도 몇십.
아니, 백이 넘어갈지도 모르는데 본래의 시련은 한 명을 쓰러트리는 게 전부라니.
“이유는 간단하다. 시스템은 100층에 도달한 순간에 플레이어의 정보를 그대로 복사하고 재현한다. 그리고.”
“……설마.”
“네 앞에 나타났던 모든 이들이 100층에 도달했던 너의 모습이다. 그 오류로 인해 너는 하나의 자신이 아닌 수많은 자신을 상대해야 했지.”
세운의 머릿속으로 쓰러트렸던 도플갱어들이 스쳐 지나갔다.
암살자, 권사, 궁수 등, 다양한 무기에 특화된 이들.
아니, 그렇다고 무작정 한 가지 무기에 특화된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세운처럼 검과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기도 했고, 일부는 세운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성흔을 지니고 권능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들이 전부 세운 자신이었다니?
“그대는 진정 나의 주인인가?”
문득, 99층에서 루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질문이 이와 관련이 있었던 걸까?
“그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거지? 정말 평행세계가 있기라도 하다는 건가?”
“평행세계라. 그런 건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머릿속으로는 이미 이해하지 않았나? 너는 이미 백 번도 넘게…… 아니. 어쩌면, 수백. 수천 번도 넘게 회귀 중이다.”
갑작스러운 정보에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도플갱어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했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
이 또한 100층의 시련에서 안겨 주는 혼란이 아닐까 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네가 보았던 건 어디까지나 100층에 도달했던 이들. 100층에 도달하지 못한 횟수까지 합하면 족히 그 정도가 되겠지.”
“나는 그런 기억이 없다.”
“그럴 수밖에. 그녀의 힘은 시간 역행이라기보다는 미래 계측에 더 가까우니.”
“그녀? 누구를 말하는 거지?”
“네가 따랐던 유일한 성좌.”
“나는 성좌를 믿지 않았다.”
“지워졌을 뿐이다. 힘을 과도하게 쓰게 되면, 신성이 사라지며 성좌는 존재 그 자체가 지워지게 되니.”
세운의 머릿속에 크로노스의 경우가 떠올랐다.
올림포스에서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시간의 신.
아마도, 자신의 사도인 ‘엘라’의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신성을 과도하게 사용하여 존재가 옅어지거나 사라진 것으로 판단되는 신이었다.
검사의 말에 따르면, 세운이 따르던 신도 그렇게 잊혔다는 뜻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따랐던 사도인 세운에게까지 말이다.
“그녀는 계측에 미약한 변수를 주는 것으로 미래를 바꾸려 노력하였다. 그 미약한 변수로 인해 너는 아까 보았던 것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성장하였지.”
“그럴 리가…….”
“다만,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검사가 고개를 숙였다.
입술을 어찌나 꽉 깨물었는지,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끝냈어야 했다. 처음으로 100층에 도달한 내가, 모든 걸 끝냈어야만 했다.”
“……패배한 건가.”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을 뛰어넘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100층의 시련에 그러한 오류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말은 알 것 같았다.
오류.
세운이 겪었던 것과 같이, 나 자신이 아니라 과거의 나 자신까지 생겨나는 일을 뜻하는 것이겠지.
즉, 검사 다음으로 100층에 도달한 이들은 전부 자신의 도플갱어를 포함하여 검사까지 상대해야만 했다.
그다음으로 도착한 세운은 세 명의 도플갱어를.
그다음은 네 명을.
그다음은 다섯 명을.
“새로운 내가 올라올 때마다, 새롭게 나 자신이 만들어질 때마다 끝없이 자책했다. 하지만, 이미 탑에 묶인 실패자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러다가 도달한 게 바로 세운이었다.
수많은 도플갱어를 대면하고, 검사는 당연히 이번에도 세운이 쓰러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세운은 그 모든 적을 쓰러트렸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아이템을 사용하고, 도달했던 모든 힘을 사용하고, 희망을 품고 있는 힘을 휘두르며.
“고맙다. 정말 고맙다. 또 다른 나.”
빠직.
검사의 뒤랑달에 금이 일었다.
바위를 쪼갠 검, 뒤랑달.
세운과 같은 검으로써 그 어떤 공격으로도 내구도가 소모되지 않는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검사의 뒤랑달이 부서지고 있었다.
오랜 전투에 검의 능력마저 상실된 것인지, 그저 시련이 끝나가며 존재가 사라져 가는 것인지는 모른다.
“비록 시련에 묶인 과거로써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었지만, 혹시나 이런 경우가 찾아올까 하는 작은 희망에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잠깐.”
세운이 경계심까지 집어던지고 검사에게 다가갔다.
지금 선물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세운에게는 꼭 들어야 할 답변이 있었다.
“그 신의 이름은 뭐지?”
아직 검사의 말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이것 하나만큼은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세운이 믿었던 성좌.
지금은 존재 대부분이 흩어져 세운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지만, 분명해 존재했을 성좌.
“그녀의 이름은…….”
하지만, 검사가 마지막 대답을 하기도 전, 마치 세운이 그 이름을 듣기를 원하지 않기라도 하듯이.
파스스-
검사의 몸이 완전히 흩어졌다.
결국, 이름은 듣지 못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철컥-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누군가의 윤곽이 보이는 듯했다.
세운이 그 윤곽과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려던 찰나, 100층의 공간에서 정체 모를 힘이 세운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건…….”
누군가의 지식이 머릿속에 스며들어 왔다.
검술.
다른 누구도 아닌, 방금까지 세운과 대화를 나누었던 검사의 검술이었다.
이게 바로 그가 말했던 선물일까?
아쉽게도 그의 기억까지는 얻을 수 없었지만, 그가 가진 검술 지식은 멸흑신무를 강화하기 충분했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궁술, 창술, 둔기술…….”
100층에서 상대한 모든 도플갱어의 지식이 세운에게 스며들었다.
비록 전체적인 전투력에서는 세운에게 밀려도 그 한 분야만큼은 세운을 추월할 정도로 강력한 자들의 지식이다.
그리고 최근 신화경의 경지에 접어든 세운은 그 지식들을 온전히 받아들여 스스로의 무공에 녹여 낼 수 있었다.
우웅-
상대했던 이들 중에 성흔을 가진 이들도 있었기 때문일까?
단순히 지식만 스며든 게 아니라, 그 어떤 신성보다도 세운의 것과 가까운 신성이 성흔에 흡수되었다.
동화율이 높은 탓에 흡수한 신성이 낭비되지 않고 온전하게 세운에게 흡수되었다.
– 나의 주인이시여.
“……루인?”
모든 힘이 흡수되었다 싶었을 때, 성흔에서부터 루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기 전, 루인이 99층에 했던 말이 또 한 번 떠올랐다.
“네가 말한 의문이 이거였나.”
– 그렇다, 나의 주인이시여.
그제야 루인과 나눴던 말들이 모두 이해되었다.
세운이 가진 세 권능.
이는 단순히 이번 생의 경험으로만 얻은 게 아니었다.
검사가 말한 대로 수백 번. 어쩌면 수천 번 동안 회귀를 반복하며 쌓인 경험과 감정, 힘이 쌓이고 쌓여 발현된 힘이었다.
– 그대는 진정한, 하나뿐인 나의 주인이다.
화아앗!
성흔이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검붉은 기운이 성흔을 통해 세운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동공이 빛에 동화되어 검붉게 물들고, 머리카락 역시 검붉게 물들었다.
성흔에서부터 터져 나간 문신이 전신에 새겨지고, 차오르는 힘만큼 몸이 뜨겁게 달궈졌다.
당장에라도 터져 나갈 것만 같은 힘.
이대로라면 그릇이 깨져 나갈 것만 같았다.
세운의 몸도 몸이지만, 이 공간 자체가 세운의 힘에 버티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성좌가 탑에 무리하게 강림하려 하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무렵.
– 100층의 시련 ‘대면’을 훌륭하게 완수하였습니다.
시련의 끝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 올랐다.
그와 함께 세운은 층을 이동할 때 느끼던 미약한 현기증과 함께 몸이 붕 떠 오르는 게 느껴졌다.
새까맣기만 하던 주변의 풍경에 수만, 수억 개의 빛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 * *
터져 나갈 것만 같던 힘이 조금씩 안정된다.
힘이 약해진 게 아니다.
작은 연못에서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몸집이 불어난 물고기가 강가로. 강가를 넘어 바다로 나아간 기분.
그럼 대체 여긴 어디일까?
“으음…….”
세운이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루인의 힘을 깊게 받아들여 야수처럼 날카로워진 손톱과 더욱 탄탄해진 잔근육.
신화경에 도달했을 때와는 달랐다.
마치, 인간의 경지에서 벗어난 기분.
“여긴…….”
그다음으로 보인 것은 드넓은 공허.
100층의 시련처럼 새까만 어둠이었다.
아니, 그건 어디까지나 그 작은 공간만을 예를 들었을 경우다.
조금만 더 시야를 넓히자 셀 수 없이 많은 빛이 눈에 들어왔다.
별과 행성, 그리고 수많은 위성.
당연하게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만, 서적이나 성좌와의 대화를 통해 이곳이 어디인지는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은하.’
더 나아가서는 우주라고 불리는 곳.
성좌에 도달한 자들이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자신을 우러러보는 이들을 비춰 준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즉, 세운은 이미 100층을 넘기고 신격을 얻었다는 뜻이 되었다.
이곳에 도착할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 성좌에 오른 존재뿐이었으니까.
“이제야 눈을 떴느냐.”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
고개를 돌려보니 화려하지만 익숙한 복장의 여인이 보였다.
“마몬.”
“생각보다 오래 걸렸구나. 100층에서 그리 오래 머물 줄이야. 관찰도 되지 않아 얼마나 답답했는지 아느냐?”
“마중을 나와 주신 겁니까?”
“짐의 것이 도착한다고 하는데 어찌 나와 보지 않을 수 있겠느냐?”
우주에서 맞이한 마몬은 탑에서 보던 것과 느낌이 전혀 달랐다.
탑에서 맞이했을 때만 하더라도 더 이상 우러러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졌던 그녀였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한 힘이 한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과연, 세운이 그토록 크게 느꼈던 탑에서 본 마몬의 모습도 탑이라는 제약에 의해 힘을 한계까지 낮춘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다만.
“평온해 보이는구나. 처음 이곳에 도착하면 꽤나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역시, 짐의 보물이로다.”
그런 존재감 앞에서도 세운은 떨지 않았다.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모습.
마치, 이미 와 보았던 것만 같았다.
100층에서 만난 검사와의 대화로 미뤄보아 그럴 리는 없었지만 말이다.
“우선 따라오너라.”
“갈 곳이라도 있습니까?”
세운의 질문에 마몬이 새까만 날개를 활짝 펴곤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길 잃은 아이에게는 보호자가 필요하지 않겠느냐?”
제 65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