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5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54화(654/675)
마몬의 말에 굳이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세운은 이곳에서 길잃은 어린아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발을 디딜 바닥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넘어 갓난아기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이곳에서의 대부분은 개념으로 이루어지니라. 몸으로 걷는다기보다는 이곳에서 움직이는 개념을 스스로 착안하거라.”
“개념을?”
“물고기는 지느러미를 흔들고, 짐승은 네 발로 뛰지 않느냐. 어떻게 움직일지는 네 자유이니라.”
발을 움직여도 몸이 움직이지 않자 인상을 쓰던 세운이 마몬의 말에 따라 눈을 감고 개념을 떠올렸다.
개념을 통해 움직이라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마몬이 가진 수많은 보물을 사용하며 다양한 개념을 접해 온 세운이었다.
“후우…….”
“처음에는 어려울 것이니라. 짐이 충분히 기다려 줄 테니…….”
“알 것 같습니다.”
세운이 우주에서 한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물속에서 버둥거리듯이 제멋대로 휘저어지던 발이 당당하게 나아가며 몸을 앞으로 이끌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상에 있는 것처럼 몸을 통통 움직이더니, 이윽고 날개를 펼쳐 비행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우주.
공기조차 존재하지 않는 곳이지만, 세운은 어엿하게 비행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마몬이 말한 개념화(槪念化)이리라.
‘애초에 공기조차 없는 곳에서 숨을 쉬고 있었으니까.’
이 정도면 마몬이 없었어도 금방 개념화를 깨닫지 않았을까?
물론, 그녀 덕분에 바둥거리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흥, 가르치는 맛이 없구나.”
“못 따라갔으면 답답해했을 거잖습니까.”
“신언을 배울 때 그 반만큼이나 따라오면 좋았으련만. 따라오너라. 늦으면 버리고 갈 터이니.”
마몬이 날갯짓을 시작했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질 정도로 엄청난 속도.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여기서 그녀를 놓칠 수는 없으니 세운 역시 재빠르게 날개를 펄럭였다.
‘신기한 감각.’
이렇게 빨리 날아가고 있음에도 풍압이 느껴지지 않는다.
바람이 앞을 가로막지 않으니 점점 더 빠르게 속력을 낼 수 있었다.
빠르게, 좀 더 빠르게.
그렇게 날아가다 보니 금방 마몬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별들이 보이느냐?”
“네.”
“저 별들 모두가 성좌라 할 수 있느니라. 성좌가 쌓아 온 설화와 격이 뭉쳐 구현된 상징이라 할 수 있지.”
“……그렇다면, 제 별도 있습니까?”
“아, 그렇구나. 네 별부터 보아야겠지. 기대는 하지 말거라. 이제 막 떠 오른 신성의 별은 볼품없기 그지없으니.”
그렇게 이어진 짧은 비행.
세운의 별을 보러 간다고 하였지만, 비행경로는 바뀌지 않았다.
크고 작은 별들이 스쳐 지나가고, 이게 다 성좌라면 이곳에 얼마나 많은 성좌가 존재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쯤.
“도착이니라.”
마몬이 비행을 멈추었다.
도착한 곳에 있는 것은 마치 블랙홀처럼 생긴 곳이었다.
우주먼지는 물론이고 빛마저 빨아들이는 어둠의 소용돌이.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면 세운마저도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무엇입니까?”
“통로이니라.”
“통로라면.”
“아무리 빨리 날아다닌다 하여도 이 넓은 곳에서 날갯짓만으로 움직일 수는 없지 않느냐?”
마몬이 블랙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보랏빛 신성이 흘러나오더니 블랙홀에 스며들어 블랙홀 전체를 보라색으로 물들였다.
“따라오너라.”
그녀를 따라 블랙홀의 내부로 들어갔다.
조금 불안하긴 하였지만, 그녀가 앞장까지 서주니 따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곧이어 어쩐지 익숙한 미약한 현기증과 함께, 주변의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짐의 별이니라.”
우변의 우주 전체가 미약한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빛의 중심에 자리 잡은 건 거대한 행성.
대지는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지만, 그 위로 금칠이라도 한 것처럼 빛이 번쩍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행성의 중심에는 익숙한 건물이 지어져 있었다.
“……만마전.”
“그렇느니라. 주변의 별들이 무엇인지는 알겠느냐?”
세운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행성을 중심으로 주변을 회전하거나 조금 떨어져 부유하고 있는 별들.
크기도, 형태도 전부 달랐지만 그 모두가 행성에서부터 빛을 받아 가고 있었다.
잠시 별들을 지켜보던 세운은 별에게서 익숙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마왕들입니까?”
“눈치가 빠르구나. 일종의 공생관계라 할 수 있느니라. 이들은 짐에게서 빛을 받아 가고, 짐은 이들을 품어 별을 더욱 키울 수 있도다.”
대충, 마신들이 최근에 그렇게 말했던 ‘라인’과 비슷한 개념이 아닐까?
해성과 가까운 곳에서 회전하고 있는 건 마왕들일 것이고,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건 가까스로 성좌의 자격을 얻은 악마들의 것이겠지.
“이런 느낌이니라. 통로에 네 신성을 흘리면, 제 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우웅-
세운은 대답 대신 통로를 향해 신성을 흘려보냈다.
그러자 마몬이 가진 신성 특유의 보랏빛에서 검붉게 물들어 갔다.
이번에는 세운이 먼저 앞장서서 블랙홀을 향해 들어갔다.
이윽고 도착한 곳에는.
“……생각보다 거대하구나.”
마몬의 말처럼 거대한 행성이 하나 있었다.
주변에 아무런 별도 보이지 않는 공허한 공간에 위치한 별 하나.
세운의 신성을 받아 검붉은색을 지니고 있었지만, 정상적인 별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어 보였다.
“원래 신성은 이런 모양입니까?”
“그럴 리가 있느냐. 본래 신성의 별이라고 하면 훨씬 더 작고, 특색 없는 별이니라.”
그 누가 이 별을 보고 방금 막 떠 오른 별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표면은 수백, 수천 년 동안 가뭄이라도 난 것처럼 쩍쩍 갈라져 있고, 그 위로는 정체 모를 건물들이 무너져 내려 폐허가 형성되어 있었다.
방금 막 떠 올랐다기보다는, 이제 곧 질 것만 같은 별.
혹시나 다른 별을 찾은 게 아닐까 싶었지만, 세운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게 자신의 별이 맞다는 걸 말이다.
“이것도 회귀의 영향이더냐? 하나, 인간이 회귀를 한 번 겪었다고 해도 이게 말이 되나 싶구나. 게다가, 미약하지만 다른 성좌의 기운마저 남아 있고.”
“다른 성좌? 어떤 기운입니까?”
세운이 다급하게 물었다.
다른 성좌의 기운.
어쩌면, 검사가 말했던 성좌의 정체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몬은 세운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가 유추될 만한 양이 아니니라. 설령 나태의 잠탱이가 오더라도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
마몬에게는 알려 주기 힘들었지만, 별이 이 모양인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수백, 수천 번의 회귀.
그녀의 말에 따라 별이 성좌의 설화나 격, 경험 등으로 이루어진 상징이라면…… 세운의 별은 이미 너무나도 많이 반복되어 무너지기 직전인 상황이었다.
아마, 이번 생에서도 실패하면 결국 별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내리지 않을까?
‘저건…….’
그렇게 말없이 자신의 별을 내려보던 중, 별 위에 폐허 속에서 멀쩡해 보이는 건축물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신전에 가까운 형태의 건물.
그게 무엇인지 살펴보러 가려던 찰나.
치익-
“흐음…….”
뒤에서 마몬의 신음이 들려왔다.
그녀가 어지간한 일로 신음을 흘릴 만한 이가 아니란 걸 알기에 세운이 고개를 돌렸고, 그녀의 앞에 떠 오른 흑백의 화면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플레이어들을 지켜볼 때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화면.
그 화면 안에서는.
“……아무래도 지금 바로 우리와의 계약을 이행해야 할 것 같구나.”
꿈틀거리는 검은 액체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 * *
꾸륵-
아우터로 이루어진 바다.
그 위로 아우터를 흠뻑 뒤집어쓴 인영이 떠 오른다.
이윽고 아우터가 모두 벗겨진 그의 정체는 역시나, 폐왕(廢王).
“흐흐흐…….”
그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흐하하하하!!”
그의 웃음소리에 따라 바다와도 같이 쌓여 있던 아우터가 전부 출렁였다.
아래에 잠겨 있는 숙주들이 몸을 일으키고, 바닥에서 정체되어 있던 아우터들이 기나긴 잠에서 깨어났다.
“드디어 준비가 끝났다. ‘진정한 우리’의 모습을 되찾았다!”
쿠구구구!
아우터의 바다에 용오름이 생겨났다.
그와 함께 일어난 거대한 형체.
세운이 얼마 전에 늑대를 통해 아우터의 영역에서 보았던 그 거대한 형체가 분명했다.
“이제 전부 관심 없다. 역행자 따위, 더 이상 우리를 방해할 수는 없다!”
그 거대한 형체가 손바닥을 펼쳐 폐왕을 들어 올렸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아우터의 바다는 생각 이상으로 거대했다. 세운이 지금까지 상대해 온 아우터는 티끌에 불과하다고 느껴질 정도.
그리고 그 아래.
빠직-
바다의 심부에 미약한 금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닥에 잠겨 있던 아우터들이 끝없이 두들기고, 또 두들긴 탓에 결국 바닥이 갈라지고 있었다.
“벌레들이 아무리 발악해 봤자…….”
파도가 더욱 거세졌다.
그만큼 아래의 숙주와 아우터 또한 더욱 거칠게 바닥을 내려치고 있었다.
쿵, 쿵, 쿠웅!
공간 전체에 묵직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위로.
“정해진 미래는 바꿀 수 없는 법.”
콰아아앙!!
폐왕을 들고 있던 아우터가 반대쪽 손으로 금이 가 있는 바닥을 내려쳤다.
아우터가 하늘에 닿을 듯이 솟구치고, 엄청난 위력 탓에 그 깊은 바다가 갈라지며 바닥이 노출되었다.
이윽고 그 주먹이 바닥에 닿자.
빠드득!
결국, 금이 갈라지며 바닥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닥의 틈새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흘러 들어가는 아우터.
“지지 않은 자들에게 복수를!”
“꾸르르르르륵-”
아우터의 함성이 공간을 울리며 공간을 더욱 크게 무너트렸다.
* * *
“어떻게 벌써!”
아우터가 흘러내리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탑이었다.
세운이 가장 마지막에 지나왔던 쉼터인 열 번째 쉼터, 샤이넬.
그 아름다운 하늘이 갈라지고, 틈을 통해서 아우터가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마치, 회귀 전에 보았던 탑의 멸망이 재현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얼른 돌아가야…….”
그 짧은 순간, 세운의 머릿속에 다양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우선, 자신이 있는 곳은 더 이상 탑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다시 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성좌가 되었다면 탑에 돌아가는 것 자체로 시스템의 제약으로 인해 힘이 줄어들거나 격이 감소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뭐가 어찌 되었든 돌아가야만 했다.
아우터를 막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다.
그때.
“멈추거라.”
마몬이 세운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대로 내려가서 쌓아온 격을 전부 날려 버릴 셈이더냐?”
“아우터가 쳐들어왔습니다. 지금 가지 않으면 지금까지 쌓아온 격이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됩니다.”
“아니, 네가 쌓아온 것은 격만이 아니다.”
마몬이 모니터를 키웠다.
아우터가 흘러내리고 있는 하늘, 그 아래에서 천사들이 다급하게 전열을 갖추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카샬락카스가 두고 온 용아병들과 세운을 따라 탑을 올랐던 발할라 길드 그들이 전부 힘을 합쳐 아우터에게 대항하기 위해 진열을 갖추고 있었다.
“지금 네가 해야 할 건 당장의 위기에 급급하여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니라.”
“지금까지와는 다릅니다. 저들만으로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믿어라.”
“…….”
“성좌가 되었다면, 신하들을 믿어야 하느니라. 왕이 된 자는 신하들과 함께 싸우기보다는.”
마몬이 세운과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가 영롱하게 다가왔다.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전장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느니라.”
제 65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