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5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56화(656/675)
“너는?”
“알비온이라고 해요.”
알비온.
익숙한 이름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내뱉은 ‘아버님’이라는 호칭과 인어 같은 모습으로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포세이돈의 딸인가?”
“네, 네. 당신이 쓰러트린 트리톤과 남매이기도 하죠.”
트리톤과 남매 사이.
그 말을 듣자마자 세운이 허리춤의 뒤랑달로 손을 가져갔다.
혹여나 남매를 죽였다고 세운에게 해코지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보이며 뒤로 돌아섰다.
“원한 같은 거 없어요.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라니까요?”
“고맙다니?”
“그 망할 트리톤 때문에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요? 아버님은 맨날 저한테 뒷수습이나 시키고. 올림포스 이미지는 다 깎아 먹고. 하아…….”
이후로도 경계심을 유지했지만, 아무리 들어도 그녀에게서 적대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만사에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하게 세운을 올림포스로 인도해 줄 뿐이었다.
“같이 다니던 두 명도 마찬가지예요. 쓰레기들. 아, 그중 하나도 당신이 쓰러트렸다죠?”
“판을 말하는 건가?”
“네, 그 망할 염소. 여신들만 보이면 찝쩍대고. 솔직히 당신이 그놈 쓰러트렸을 때 올림포스의 여신들 전부 환호했을 걸요?”
판과 트리톤.
세운의 생각 이상으로 올림포스에서의 여론이 좋지 않았나 보다.
‘하긴, 그러니까 포세이돈도 눈을 감아 줬겠지.’
들리는 말로는 버린 자식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애초에 그런 놈들이기에 무리해서 탑에 강림하여 세운에게 까불다가 당한 거겠지.
다만, 그렇다면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다.
“같이 다니던 두 명이라면, 나머지 한 명은?”
“아, 자그레우스요? 하데스 님의 아들이에요.”
“세 주신의 세 자식이라.”
“그러니까 셋 다 아버지 직위를 믿고 까불고 다닌 거죠. 자기들 힘은 쥐뿔도 없으면서. 아, 자그레우스는 그중에서 조금 센 편이긴 하지만요.”
“어느 정도로?”
“하데스 님의 피를 나름 짙게 물려받았나 봐요. 그래봐야 저승에 안 머무르고 밖에서 사고만 치고 다녀서 버린 자식 취급받지만요.”
자그레우스.
판, 트리톤과 함께 어울려 다녔다면 세운에게 가장 큰 적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세운의 이런 생각을 눈치챘는지, 알비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아마 당신을 가장 적대시하는 게 그쪽일 거예요. 주신님들도 당신을 받아들이자는 의견에는 동조했지만, 가족을 버릴 거냐는 자그레우스의 항의 때문에 쉽사리 결정을 못 내리고 있거든요.”
“주신이니까.”
“잘 아시네요. 올림포스를 다스리는 입장에서 아무리 버린 자식이라도 가족을 버렸다는 역사는 좋지 않거든요.”
세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 가장 좋은 수가 무엇일까?
잠시 포세이돈의 말과 성격을 떠올리던 세운이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직접 찾아와서 적대하는 이들을 설득하라는 건가.’
말이 설득이지, 힘으로 제압하라는 뜻에 더 가깝겠지.
뭐, 이견은 없었다. 세운 역시 동조하는 바이니 말이다.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최근 며칠 동안 회의가 계속되고 있었으니 대부분 모여 있을 거예요. 전 시끄러운 건 별로 안 좋아해서 빠져 있을게요.”
올림포스의 중앙.
거대한 흰색 구름 위에 떠 있는 산의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구름처럼 새하얀 신전에 놓인 화톳불을 중심으로 여러 신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말이 의견이지 말싸움에 가까운 분위기.
거리는 아직 멀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어떤 분위기인지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의견을 조율하는 십이신. 찬성 측과 반대 측.’
정확하게 이 셋으로 나뉘어 있었다.
소란스럽기 그지없는 그 사이로.
탁.
세운이 사뿐하게 착지하였다.
* * *
“애초에 말이 됩니까! 제 따까리…… 아니, 친구를 죽인 인간과 손을 잡는 게 말이 되냔 말입니다!”
“진정해라, 자그레우스. 말했지 않나. 그 인간을 먼저 공격한 건 트리톤과 판이다. 정당방위라는 말이다.”
“사정이야 어찌 됐든, 가족이 죽었는데 그 살해자랑 손을 잡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올림포스의 정상.
평화롭고 여유롭기만 하던 그곳에, 한바탕 열기가 올라 있었다.
안건은 다름 아니라 세운과 손을 잡을지 말지에 대해서다.
본래는 겨우 이런 일로 이렇게 거창한 자리가 생길 리 없지만, 안건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운명의 세 자매 중 하나가 피를 토하면서까지 운명을 입에 담은 의견이었으니 말이다.
“크흠, 그에 대해서는 나도 사과한다. 트리톤에게 공격하라 지시를 내린 건 나였으니. 하나, 탑에 직접 강림해서까지 무리를 할 줄은 몰랐다.”
“아닙니다. 포세이돈 님. 포세이돈 님은 어디까지나 올림포스의 이미지를 위한 것이잖습니까. 굳이 명하지 않았어도 트리톤이 먼저 나섰을 겁니다.”
“그러니, 자그레우스. 질책은 내가 받겠다. 그 인간은 정당방위를 취했을 뿐이지 먼저 이쪽을 적대한 적이 없다.”
중립을 유지해야 할 올림포스의 십이신.
그중에서도 포세이돈이 세운의 편을 들고 나섰다.
아무래도 이 사안이 벌어진 책임 중 하나인 트리톤에 대한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 누구도 아닌 트리톤의 아비가 직접 고개를 숙이며 인간을 용서해 주라 나서니 다른 신들도 더 이상 트리톤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반대 측이 가진 불만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먼저 적대한 적이 없다니! 보셨잖습니까! 그 인간이 저의 수정 동굴을 파괴하는걸!”
“크흠, 그건…….”
“다들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제 명주의 제조가 끊긴 이유가 그 인간 때문이라는 것을!”
포세이돈이 세운의 편을 든 것처럼, 마찬가지로 중립을 지켜야 할 십이신 중 하나인 디오니소스가 반대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긴, 그 때문에 디오니소스 님의 양조가 끊겼었지.”
“술이 없는 나날…… 정말 끔찍했어.”
“하지만, 그건 모르고 한 거 아닌가? 한낱 플레이어가 그걸 알 방법도 없거니와,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디오니소스 님께 적대를 살 이유는 없을 건데.”
다양한 의견이 이어졌다.
그렇게 며칠이 꼬박 흘러갔다.
다들 지치지도 않는지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내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의견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보다 더욱 극단적으로 나뉘어 조금만 더 있으면 몸싸움으로까지 번질 듯했다.
“하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올림포스의 최고신. 제우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말년에 갑자기 이게 무슨 신세인지…….’
차라리 누가 올림포스를 공격한다면 다 무시하고 자신이 직접 튀어 나가서 깡그리 죽여 버릴 수 있겠는데, 같은 가족끼리 싸우고 있자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에는 두 의견이 너무 팽팽하여 제우스 역시 아직 하나의 의견을 선택하지 못하였다.
그 때문에 얘기를 계속 듣고만 있었던 건데, 이대로라면 며칠은커녕, 몇 달이 지나도 의견이 좁혀질 것 같지 않았다.
‘정작 안건의 주인공이라는 인간은 보이지도 않고.’
운명의 세 자매가 말한 인간, 정세운.
그는 마신들의 보호 아래에 있어 관찰이 어려워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포세이돈이 최근에 대화를 나눴다고 하였지만, 그래 봤자 플레이어.
지금까지 플레이어가 100층에 도달한 적은 없었고, 신이 되어서 올림포스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으니 잠시 휴전이라도 명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무렵.
착.
“……?”
“……!”
갑자기 올림포스의 중앙으로 웬 인간 하나가 뚝 떨어졌다.
주인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화톳불 앞에 선 인간.
제우스는 그 인간의 얼굴이 어딘가 눈에 익은 것 같다고 생각하다 그 정체를 깨닫자마자.
“정세운!”
저도 모르게 인간의 이름을 외치며 옥좌에서 벌떡 일어났다.
처음에는 정세운이라는 이름을 듣고도 고개를 갸웃하던 신들 역시 그 정체를 알아채자마자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정세운?”
“모이라이 님이 말한 그 인간?”
“인간이잖아. 여긴 어떻게 온 거야?”
모두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한창 떠들고 있던 안건의 주인공이 나타난 것을 넘어, 올림포스에 낯선 외부인이, 그것도 인간이 들어오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가장 먼저 침착하게 세운에게 다가선 것은 다름 아닌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었다.
“정말 신이 되었군.”
“조금 늦었다.”
“늦었긴. 미약한 가능성이라도 말해 본 건데, 정말 신이 될 줄이야. 탑이 플레이어들이 신의 길을 오르는 등용문이라는 게 사실이었나 보군.”
포세이돈이 손을 내밀었다.
딱히 친한 사이도 아니었기에 무시하려 했으나, 주변의 눈길이 따갑게 느껴졌다.
‘일부로 내민 건가.’
포세이돈도 그냥 손을 내민 게 아닐 거다.
세운의 안 좋은 여론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기 위해서 직접 손을 내민 것이리라.
“오느라 고생 많았다. 넥타르라도 건네주고 싶지만, 보다시피 네 안건이 한창 진행 중이라서 말이지.”
“나도 한가롭게 음료나 마시고 있을 생각은 없다.”
악수를 끝낸 세운이 주변을 넓게 둘러보았다.
찬성 측이나 반대 측이나 구분할 것 없이 이 당황스러운 사태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우왕좌왕하는 게 보였다.
이때가 기회다.
“정세운이라고 한다.”
우선은 세운의 정체를 알리는 게 중요했다.
제우스와 포세이돈의 반응으로 신 대부분이 눈치를 챘지만, 직접 말하는 것과는 다르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시간을 끌 이유는 없다.
여기서 저들의 환심을 사려 말을 길게 늘여봤자 얕보일 뿐이다.
“아우터와 대항하여 마신들과의 임시 동맹 관계를 제안하러 왔다.”
갑작스러운 제안.
당황한 건 포세이돈 역시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인가? 지금 너와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소란스러운데 마신들과 손을 잡자니, 그건…….”
“알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회귀자다. 이전의 세계는 멸망했고, 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신마대전이었다.”
“……신마대전?”
세운의 설명이 이어졌다.
안 그래도 놀란 상황에서 그 충격적인 사실에 더욱 놀라 계속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성좌들.
저들이 머리를 굴리기 전에 말을 끝낼 필요가 있었다.
“선신과 악신들의 전쟁. 그로 인해 성좌의 세력이 크게 약해졌고, 아우터가 쳐들어 왔을 때 제대로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탑이 무너져 버렸다.”
“탑이 멸망한다고?”
“회귀자라니, 인간이 어찌 시간의 굴레를…….”
“잠깐. 얼마 전에 크로노스 님이 실종되셨잖아. 혹시 그와 관계가 있는 거 아냐?”
“운명의 여신들도 그렇게 말했잖아. 특히, 모이라이 님께서.”
“근데 만약 탑이 무너진다고 해도 우리랑 크게 상관있나?”
과연, 평화에 찌든 성좌들.
탑의 멸망과 자신들의 관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충격적인 소식이긴 하지만, 자신들과는 상관없다는 듯한 안일한 태도.
이에 세운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우터는 신마저도 집어삼킨다.”
“……뭐?”
“직접 보았다. 올림포스의 신이 아우터에게 집어 먹히는 모습을.”
“그럴 리가!”
수군거림이 더욱 커졌다.
지금이 바로 기회다.
당장 모니터를 열어 이들에게 샤이넬의 모습을 보여 준다면, 분명 여론은 세운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중.
“닥쳐라! 마신의 끄나풀아!”
세운을 향한 살기가 쏘아졌다.
주변에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올림포스의 적대심을 최대한 누그러트리기 위해 무기를 잡지 않고 있었기에 반응이 잠시 늦은 틈을 타, 누군가의 공격이 눈에 들어왔다.
자그레우스.
녀석이 세운을 향해 하데스의 바이던트를 닮은 쌍지창을 내밀고 있었다.
반격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
그리고.
– 크앙!
콰직!
성흔에서 빠져나온 거대한 늑대가 자그레우스의 쌍지창을 악물었다.
제 65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