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5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57화(657/675)
루인이 자그레우스의 공격을 막아 주었다.
그건 그렇고, 인기척조차 완벽하게 숨길 정도의 투명화라니.
‘하데스의 피를 짙게 물려받았다더니, 이런 건가.’
마몬의 보구 중 ‘퀴네에’라는 게 있었다.
하데스의 황금 투구로써, 쓰는 순간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해 주는 물건이었다.
아마 그 힘을 빌려 온 것이겠지.
“무슨 짓이지?”
“놓아라! 어딜 그 더러운 아가리로 이 몸의 신성한 쌍지창을 물고 늘어지냐!”
자그레우스가 루인의 아가리로부터 창을 빼내려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루인의 치악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가 아무리 창을 밀고 당기고 비틀어도 절대 빠지지 않았다.
루인이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세운의 눈치를 살피는 사이, 세운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차피 인성이 좋은 놈은 아니라고 했고.’
심지어 얘기하는 중에 기습까지 해 왔다.
먼저 공격하면 분란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이 경우라면 정당방위가 아닐까?
‘놓아줘.’
– 크릉.
루인이 입을 벌리자마자 자그레우스가 창을 회수하며 외쳤다.
“다들 뭘 고민하는 겁니까! 아우터고 뭐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신 놈들과 손을 잡다니. 말이 됩니까!”
“멈춰라, 자그레우스. 우선은 얘기를 듣고 판단해도 늦지 않는다.”
“아저씨도 아까부터 이 인간 놈한테 뭐 그리 호의적입니까! 뭐 잡힌 거라도 있는 거 아닙니까?”
“잡힌 거라니, 이 녀석이……!”
“그런 게 아니라면 말리지 마십쇼. 저 마신의 끄나풀은 제가 직접 처리할 테니.”
아버지의 힘을 믿고 까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아무리 하데스의 아들이라도 포세이돈에게 저런 식으로 말하다니.
그 건방진 말투에 포세이돈이 표정을 왈칵 구기며 삼지창을 집어 들고 상황을 중재하려 하였으나.
“바라는 바다.”
세운이 그를 가로막았다.
녀석과의 전투는 세운을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신’으로 보여 주기에 충분해 보였으니까.
이 순간을 데뷔 무대 삼을 생각이었다.
애초에 그걸 노리고 루인에게 녀석의 창을 놓아주라고 말한 거고.
“내 부하 둘을 쓰러트렸다고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 모양인데, 진정한 신이 어떤 존재인지 똑똑히 알려 주마.”
자그레우스의 모습이 다시 한번 사라졌다.
포세이돈이 싸움을 말리려 하였으나, 세운이 손바닥을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 주인이시여, 원한다면…….
‘괜찮아.’
루인의 도움마저 거절했다.
오랜만에 루인과 합을 맞추고 싶기도 했지만, 지금은 신이 된 세운의 힘을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온전히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물론 루인도 세운의 힘에서 파생된 존재이기에 세운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엔 그리 생각 안 할 수도 있으니까.
‘이게 바로 진정한 투명화.’
감각을 집중해 보아도 자그레우스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누군가 움직인다면 필연적으로 흔들려야 할 공기마저 흔들림 하나 없었다.
지금까지 보아 왔던 은신과 투명화는 비교도 안 되는 힘.
하지만, 세운은 당황하지 않았다.
처음 녀석에게 기습받았을 때 녀석의 본질적인 허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죽어라!”
챙!
“뭣?”
세운이 순식간에 뒤랑달을 뽑아 들어 자그레우스의 창을 쳐냈다.
우연이 아니었다.
정확한 타이밍에 창대를 가격한 탓에, 녀석은 얼얼한 손목을 붙잡아야만 했다.
“이, 이놈이. 진심으로 가겠다!”
자그레우스가 다시 한번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습.
투명화라고 해도 결국 공격할 때는 투명이 풀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전히 녀석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는데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공격을 성공시킨 모습을 다른 신들에게 자랑하려고 일부러 투명화를 풀었던 모양이다.
다만.
챙, 챙!
채앵!
“무, 무슨!”
세운은 여전히 흔들림 없이 자그레우스의 창을 쳐내고 있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도 녀석이 당황하고 있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보는 거냐! 아버지의 힘은 설사 동등한 급의 신이더라도 알아차릴 수 없는데!”
“그래, 그럴 만하네. 전혀 안 보여. 미약한 기척조차도.”
“뭐? 그럼 대체 어떻게!”
“네가 미숙한 덕분이지.”
챙!
세운이 녀석의 무기를 다시 한번 쳐냈다.
그리고 녀석에게 진정한 투명화를 알려 주기 위하여 탐욕의 권능을 사용하였다.
[ 저승의 황금 투구, 퀴네에 ]다름 아니라 녀석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하데스의 투구.
투명화의 본질이 담겨 있는 장비였다.
당연하게도, 투구를 쓰자마자.
“뭣?”
세운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녀석이 사용하는 투명화처럼 모습도, 기척도 완전히.
“제아무리 뛰어난 힘이라 해도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 손에서는 쓰레기에 불과하지.”
푹!
“크헉! 어디서…….”
녀석의 어깨에 뒤랑달이 박혔다.
항상 투명화 능력으로 상대를 골리며 농락해 오기만 하였던 녀석이기에, 상대가 투명화를 사용하는 상황은 너무나 낯설 뿐이었다.
“공격에 살기조차 숨기지 못하는 멍청이한테 투명화 능력은 과분하지.”
그렇다.
살기.
자그레우스는 그 투명화라는 기습에 특화된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살기를 지우지 못했다.
물론 평상시에는 투명화 능력이 살기조차 감춰 주었지만, 공격을 내지를 때만은 팽창하는 살기를 숨길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세운은 녀석의 공격을 쳐낸 것이었다.
“젠장!”
한동안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버둥거렸지만, 그래도 하데스의 자식이라는 걸까?
“내가 내 능력에 당할 까보냐!”
녀석이 순식간에 자세를 다잡았다.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투명화를 멈추고 차분하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누가 보아도 반격 태세가 분명했지만, 세운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푹!
“잡았다!”
세운이 뒤랑달을 내지르는 순간, 녀석은 피해를 감수하고 뒤랑달의 검날을 손으로 붙잡았다.
단순 무식한 방법이긴 해도, 상대의 움직임을 막으며 투명화를 의미 없게 만들 수 있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
아마, 스스로 생각해 냈다기보다는 지금까지 농락해 온 적 중에서 저런 식으로 자신의 공격을 막은 자가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녀석에게는 실수가 하나 있었다.
뻐억!
“컥! 어, 어떻게. 무기는 분명 붙잡았는데…….”
옆구리를 직격으로 당해 한참을 튕겨 나가더니 신전의 기둥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춰선 자그레우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쓰러진 녀석을 보며, 세운이 투명화를 보았다.
그런 세운의 손에는 묵직한 둔기가 하나 들려 있었다.
[ 추방의 폭풍, 야그루쉬 ]“분명, 컥. 검밖에 없었는데!”
녀석의 말에 비웃듯이, 세운이 야그루쉬를 손에서 놓았다.
그러고는 허공에서 새로운 검을 꺼내 들었다.
무기 하나를 봉쇄하는 것 따위는 마몬의 권능을 뒤이은 세운에게 아무런 지장도 되지 않았다.
단순히 세운을 상대함에 있어서만 문제가 아니었다. 신 중에서는 예비용으로 두 개 이상의 무기를 지닌 이가 많았으니까.
녀석이 이렇게 쉽게 당한 건, 어디까지나 자신보다 약한 신들을 골려왔기 때문이리라.
스스로는 그 괴롭힘을 ‘전투 경험’이라 생각하겠지만, 녀석은 평생을 우물 안에서 가슴을 부풀리고 있던 개구리일 뿐이었다.
“내 목을 노리고 공격을 해 왔으니, 너도 목을 베일 각오는 했겠지?”
“자, 잠깐만!”
세운의 검이 자그레우스의 목에 닿았다. 미약한 힘주기만으로 살이 연약하게 베어지며 피가 흘러나왔다.
신혈이라 해도 인간과 다를 건 없었다.
똑같은 붉은 피와 은은한 온기.
포세이돈을 포함한 다른 신들이 미처 반응도 하기 전에 세운이 검을 치켜들었고.
서걱!
“크헉!”
녀석의 팔이 잘려 나갔다.
하지만, 팔을 베어 낸 건 세운이 아니었다.
자그레우스의 것과 같은 두 개의 촉을 지닌 창을 들고 나타난 남자.
아니, 분명 기본적인 형태는 같았지만, 함께 놓여 있으니 자그레우스의 창이 조잡해 보일 정도로 스산한 죽음을 내뿜는 기운을 지닌 창.
그리고 그 주인 역시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격의 차이가 보였다.
그 비슷하면서도 압도적인 기운을 느끼고도 남자가 누군지 모를 수는 없었다.
‘하데스.’
저승의 신.
올림포스의 십이신에 포함되지 않고 저승의 왕좌에 군림하며 어지간한 일이라면 속세에 관심도 두지 않는다던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그레우스의 팔을 잘라 낸 것도 다름 아닌 하데스였다.
“아, 아버지! 어째서 제 팔을 자르신 겁니까! 잘라 내야 할 건 저놈의 목입니다!”
녀석이 어깨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광분하며 소리쳤다.
하나, 돌아온 대답은 아버지로서의 따뜻한 말이 아니었다.
서걱-
“크아아악! 어, 어째서! 아버지!”
바이던트를 뒤집어 잡더니 자그레우스의 정강이를 내려찍는 하데스.
그저 창에 찔렸을 뿐이라면 다리를 회복하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하데스의 창은 평범한 창이 아니었다.
하데스의 힘을 이어받아 죽음의 힘이 깃든 바이던트.
그 명성답게, 바이던트에 찍힌 정강이가 검게 죽어 갔다.
아마, 그 어떤 치료 마법으로도 다시 회복할 수 없으리라.
“미안하네. 못난 아들을 둔 내 탓이다.”
세운이 하데스와 눈을 마주쳤다.
섬뜩한 눈빛.
올림포스에 도착해서 제우스를 마주했을 때보다 더욱 압도적인 느낌이었다.
어쩌면, 올림포스에서 가장 강한 신은 제우스가 아닌 하데스가 아닐까?
올림포스의 십이신좌에 소속되지 않고 속세에 관여하지 않아 모를 뿐이지만, 진정한 최강자는 하데스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 부족하겠군. 하기야, 목을 노린 놈을 고작 사지 두 짝으로 봐주라고 하는 건 무리겠지.”
“아, 아버지. 안 됩니다. 제발, 제발…….”
하데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리는 자그레우스.
이제 곧 자신이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깨달았나 보다.
하나, 하데스는 아들의 간절한 매달림에도 표정 하나 안 바뀐 채 바이던트를 집어 들었고.
푹!
“크아아악!!”
거침없이 자그레우스의 가슴을 내려찍었다.
죽음의 기운이 폭발하듯 치솟았다.
하데스가 내려찍은 건, 다름 아닌 자그레우스의 성흔.
녀석이 일평생 쌓아 온 신성이 담겨 있는, 녀석이 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자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같은 신이라고 하여도 상대의 신성을 파괴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으나, 하데스는 자그레우스의 아버지.
아들의 약점을 그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푸화아앗-!!
“쌓아 온 신성을 모두 날렸다. 신으로서의 목숨은 다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제 용서해 주지 않겠는가?”
하데스가 세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확실히, 성흔이 깨진 이상 녀석은 더 이상 신이라 불릴 수 없게 되었다.
솔직히 가만히 두었어도 녀석의 목숨을 끊을 생각은 없었기에 큰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녀석과 맞붙은 목적은 세운이 가진 힘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을 뿐. 목숨을 끊으면 오히려 적대감을 키울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지.”
“고맙네. 못난 아들놈은 정신을 차릴 때까지 타르타로스의 감옥에 가둬 놓겠네.”
타르타로스.
하데스가 관리하는 저승에서도 가장 아래에 위치한 나락(奈落).
신들조차 두려워한다는 올림포스 최고의 지하 감옥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곧바로 저승의 문을 열어 아들을 나락으로 걷어찬 하데스가 세운에게 몸을 돌렸다.
하데스의 등장에 다른 신들 모두 침만 꿀꺽 삼키며 식은땀을 흘리던 중, 그는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세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대의 힘을 빌리고 싶네.”
제 65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