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6화(66/675)
제 66화
타닷!
세운이 빠른 속도로 몬스터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몬스터들이 나아가는 방향과 완전히 역행이었지만, 그 어떤 몬스터도 세운과 부딪히기는커녕 지느러미 하나 닿지 못했다.
바로, 세운이 새로 배운 보법인 니추공 때문이었다.
그 걸음은 정말 미꾸라지가 된 것처럼, 몬스터 사이를 유연하게 빠져나올 수 있게 해 줬다.
게다가, 거기에 ‘킬케르가식 은신술’까지 활용하니 어지간한 몬스터는 자신의 다리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세운의 존재조차 알아채지 못하였다.
물론, 그중에서도 감각에 좋은 놈들은 세운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었지만.
“키엑?”
세운의 정체까지 알아챌 수는 없었다.
지금 세운은 수많은 몬스터를 사냥하며 피와 비늘이 튀어 비린내가 가득해진 망토를 푹 눌러쓰고 있었으니까.
이 난잡한 전장에서, 그런 세운을 확인할 만한 몬스터는 흔치 않았다. 아마, 모습을 본다고 하더라도 ‘길도 모르는 멍청한 털게’ 따위로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던 중.
“무어, 무웅?”
기다란 수염을 가진 메기 모습의 몬스터 한 마리가 세운의 정체를 알아차린 듯 눈을 크게 뜨며 아가미를 뻐끔거렸다.
잘은 몰라도, 다른 몬스터보다 감지력이 특화된 놈인 듯했다.
놈이 세운의 정체를 알리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렸지만.
푹.
놈의 입에서는 아무런 목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어느샌가 다가온 세운이 놈의 목구멍에 칼을 쑤셔 넣었기 때문이다.
털썩.
동료가 바닥에 쓰러졌지만, 워낙 대군이 질서 없이 움직이고 있었던 터라 놈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세운은 체력을 보존하며 편하게 적 진형의 깊숙이까지 침투할 수 있었다.
‘슬슬 위치 좀 확인해 볼까.’
세운이라고 해도 보스 몬스터가 출현하는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한다.
회귀 전의 세운은 찰스의 클랜원들에게 부려 먹히며 다섯 번째 장의 몬스터를 간신히 막아 내고 있었으니까.
지금 아는 정보라고는, 보스 몬스터가 절벽가에 나타났을 거라는 것뿐이다.
타앗!
몬스터 사이를 거닐던 세운이 가장 높아 보이는 바위 위로 몸을 날렸다.
몇몇 몬스터가 ‘저 털게는 저길 왜 오르는 거야?’라는 눈빛으로 세운을 이상하게 쳐다보았지만, 수상하게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바위의 끝으로 올라가니, 절벽에서 올라오는 몬스터의 대군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성벽 위에서 봤을 때보다 장관이네.’
꽤 많이 물리쳤다고 생각했는데, 절벽에서는 계속해서 수백 수천의 몬스터가 끊임없이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높이 서서 바라보니, 그 모습이 꼭 벌레 무리 같아 징그러울 지경이다.
‘놀의 들창코’를 통해 느껴지는 비린내를 꾹 참으며, 절벽가를 크게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드디어 놈들의 보스 몬스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크오오오오-!!”
분노한 바다의 폭군. 씨 드레이크, 다라칸.
녀석이 그 거대한 몸으로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등에 용종(龍種) 특유의 날개가 자리 잡고 있었지만, 앞발로 힘겹게 절벽가에 발을 걸치고 포효를 내지르는 모습을 보니 비행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게, 녀석은 비행 능력이 퇴화하였다는 용종인 ‘드레이크’였다.
드래곤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비행, 마법, 지능 등 그 어떤 것도 드래곤을 따라가지 못하는 하위호환형 몬스터였다.
게다가 놈은 ‘씨 드레이크’.
날개는 비행보다는 일종의 지느러미로써 헤엄을 위해 발달해 있어, 지상에서는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놈을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더럽게 크네.’
비행과 마법, 지능을 제외하더라도 드래곤 특유의 육체적 힘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
결정적으로, 놈은 마나를 다루지 못한다고 해도 용종의 고유 능력 중 하나인 ‘브레스’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 두 가지만으로도, 놈은 충분히 위협적인 몬스터다.
쿠르르, 쿵!
“크오오오오-!!”
절벽이 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지만, 놈은 필사적으로 사족을 휘저으며 절벽 위로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놈의 울부짖음을 들은 몬스터들이 고개를 수그리며 길을 비켜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폭군이 자신들을 짓밟고 앞으로 나아갈 것을 인지한 것이다.
‘회귀 전에는, 저놈을 잡기 전에 성의 절반 이상이 무너졌었지.’
다섯 번째 장에 ‘성’의 존재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성을 이용해 공격을 막아 내고, 모두가 힘을 합쳐 놈들을 공격하는, 일종의 레이드 몬스터인 셈이다.
당장 세 번째 장에서는 플레이어들끼리의 전투를 강요하더니, 이제 와서 협력이라니. 웃음도 안 나오는 목표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세운은 그런 몬스터를 혼자서 사냥할 생각이었다. 놈이 성에 도착하기 전에 말이다.
‘마몬의 보물을 사용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딱 보아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처럼 마몬의 보물을 하나 꺼내서 휘두르는 것만으로는 놈을 죽일 수 없었다.
아깝긴 하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아이템 대부분을 소모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놈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몬스터니까.’
놈을 사냥하면 얻게 되는 것이라면, 첫 번째가 바로 공적치다.
수많은 사람이 힘을 모아 처치하여도 개인마다 엄청난 양의 공적치를 안겨주던 녀석인데, 그런 녀석을 혼자 사냥한다면?
안 그래도 벌어진 공적치 차이가 압도적으로 벌어지게 될 것이다.
둘째로, 놈에게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
소문으로는, 놈을 죽인 플레이어에게 엄청난 가치를 지닌 장신구가 지급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놈에게서 얻을 수 있는 소재는 전부 용종의 것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외에도 경험치나 폭식의 권능으로 얻을 수 있는 힘 등. 놈을 사냥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했다.
‘문제는 저 몬스터들인데…….’
세운이라 하여도 보스 몬스터와 함께 저 많은 몬스터들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무언가 방법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던 중.
“키에엑!”
“크헥!”
화륵!
콰과광!!
절벽가와의 반대편.
저 멀리서, 몬스터들의 비명과 함께 각종 원소가 터져 나가고 있는 게 보였다.
날카로운 바람이 몬스터의 사지를 베어 나가고, 불꽃이 살결을 불태운다. 대지가 쩍쩍 갈라지고, 비가 화살처럼 쏟아져 내린다.
세운이 마법을 난사할 때보다 훨씬 화려하고 강력하다.
천재지변이라는 말이 그 무엇보다 잘 어울려 보였다.
굳이 ‘제왕 독수리의 척안’을 활성화하지 않아도, 세운은 저곳에서 일어나는 천재지변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리엘 리프레인.’
그녀였다.
사대 속성의 정령을 다루며, 자연에게 사랑받는 자로 알려진, 세운이 아니었다면, 본래 튜토리얼의 공적치 랭킹 1위를 차지했을 플레이어.
그런 그녀가, 네 정령을 앞세운 채로 보스 몬스터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리엘이 원래 보스 몬스터를 찾아 나섰던가?’
아니다.
세운의 기억이 맞다면, 그녀도 수성전이라는 목표에 집중하여 성을 방어하고 있었다.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며, 사람들과 협력하여 마지막 일격을 날린 그녀였지만, 자선하여 보스 몬스터를 찾으러 움직이지는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씨익-
‘기왕 이렇게 된 거, 잘 써먹어 줘야지.’
그녀를 이용한다면, 편하게 보스 몬스터를 대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리엘 리프레인.
그녀는 엘프 특유의 나뭇잎을 닮은 길고 날카로운 귀를 가지고 있었다.
엘프. 자연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 이미 멸망한 세계에서 건너온 세계수의 마지막 씨앗이었다.
지금 그녀는, 네 정령과 함께 몬스터가 들끓는 전장을 누비고 있었다.
“나쁜 아이들!”
“물을 더럽혔어.”
“그럼 불태워 버려야지!”
“묻어도 돼?”
그녀의 정령들은 강력했다.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마법사 한 명과 비슷한 힘을 내며 불과 바람, 물과 대지를 다스렸다.
게다가, 네 정령이 힘을 합치자 그 시너지는 마법의 기본적인 상식을 벗어나고 있었다.
본래라면 정령이 사용하는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정령사가 먼저 탈진되어 자리에서 쓰러졌겠지만, 그녀는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힘을 불어넣으며 정령들을 지원해 주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성좌, ‘다섯 번째 날’이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며 당신을 안쓰럽게 바라봅니다.
성좌, 다섯 번째 날.
사랑과 미의 여신, 프레이야에게서 받은 축복 덕분이었다.
풍요의 축복.
프레이야는 사랑과 미의 여신이자, 풍요의 여신이기도 했다.
그런 여신이 내려 준 풍요의 권능은, 리엘로 하여금 무한에 가까운 마나의 축복을 안겨 주었다.
물론, 신의 권능이라 하여도 플레이어가 사용할 수 있는 영역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튜토리얼 수준의 플레이어에게 프레이야의 축복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았다.
“어쩔 수 없어요. 1등을 되찾기 위해서는 저 보스 몬스터라는 놈을 꼭 잡아야 해요.”
-성좌, ‘다섯 번째 날’이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며 당신을 걱정합니다.
“아뇨. 가야 해요. 저를 위해서도. 일족을 위해서도. 세계수님을 위해서도. 그리고, 저를 선택해 주신 여신님을 위해서라도.”
-성좌, ‘다섯 번째 날’이 어쩐지 안쓰러운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튜토리얼의 네 번째 장이 시작된 후, 곧바로 개인 공적치 랭킹을 확인한 그녀는,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정세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름을 가진 플레이어가 자신을 제치고 랭킹 1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슬아슬한 차이가 아니라 무려 30만에 가까운 차이로 말이다.
‘이대로 1등을 빼앗길 수는 없어.’
그녀의 목적은 탑에 존재한다는 ‘영원의 화원’에 올라 세계수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강해져야 한다.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게,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게.
그래야만 세계수의 씨앗을 심고 일족을 되살릴 수 있다.
-성좌, ‘다섯 번째 날’이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며 위로합니다.
“……그렇지만, 여신께서도 그 플레이어를 눈여겨 보고 계시잖아요.”
-성좌, ‘다섯 번째 날’이 당신이 질투하는 모습을 귀여워하며 작게 미소를 짓습니다.
그렇게 차근차근 보스 몬스터를 향해 나아가던 리엘이었지만, 그녀의 걸음은 조금씩 더뎌지고 있었다.
아무리 마나가 끊임없이 차오른다고 하지만,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쓰러트리고 쓰러트려도, 적이 끊임없이 차올랐다.
‘혼자서는 무리인 건가……?’
그녀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랭킹 1위를 쟁탈하기 위해서는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다.
기껏 용기를 내어 성을 빠져나와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분했다.
그 순간.
솨아아-
너무나도 익숙한, 너무나도 그리운 기운이 리엘의 피부를 스쳐 지나갔다.
착각인가 싶었지만, 그녀의 정령들 역시 그 기운을 알아채고 있었다.
“시원해!”
“따뜻해!”
“누구야?”
“누구지?”
기운의 근원지를 따라가니, 웬 인간 하나가 몬스터 사이를 걸어 나왔다.
세계수의 마지막 씨앗으로 불리는 그녀였기에, 남자의 몸에서 풍겨오는 기운의 정체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인간이 어떻게 엘프의 마법을 사용하는 거죠?”
자연의 숨결. 엘프의 고유 마법으로, 숲에 생기를 되찾거나 정령에게 활기를 북돋아 주는 마법이었다.
그런 마법을 평범한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것보다 저놈들을 뚫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확실히, 그의 말이 맞았다. 자연의 숨결 덕분에 힘을 되찾은 정령들은 전보다 더욱 강하게 몬스터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저 인간의 힘이라면, 보스 몬스터에게 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듯했다.
“지금은 일단 힘을 합치지.”
“……좋아요.”
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일단 힘을 합치는 게 우선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정령들에게 더욱 많은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 남자의 정체가…….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자연의 숨결 ]– 엘프의 고유 마법. 숲을 정화하여 생기를 불어넣거나, 정령들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힘이다.
자신이 그토록 넘으려 하는 공적치 랭킹 1위의 주인, 세운이라는 것을 모른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