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67)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67화(667/675)
일곱 번째 쉼터, ‘침묵의 도시, 데스힐’.
이곳은 다른 쉼터들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제논이 흑익은 물론이고 데스힐의 주민들까지 지휘하며 아우터를 막아내고 있었다.
흑익이 비록 디아블로 길드에게는 패배했었다지만, 본래 데스힐 전체를 지배하였을 정도로 강력한 길드였다.
그 덕분에 어떻게든 아우터를 막아낼 수 있었다.
“크흠. 마스터,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끝도 없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우선은 다른 것들에게 맡기고 체력을 회복하는 게 좋겠습니다.”
흑익의 간부를 포함한 몇 명이 입을 열었다.
이미 제논에게 매타작을 당했는데도 사람들을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건 똑같았다.
그들의 투덜거림을 들은 제논은 망설임 없이.
“닥쳐라.”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만약 내빼는 게 보인다면, 이 자리에서 즉결 처형하겠다.”
“그럴 수가……!”
“당장 움직여라.”
제논은 이미 흑익에 정을 뗀 상태였다.
애초에 루시퍼의 명령으로 마스터의 즉위를 받았을 뿐이지, 흑익이 하는 행동이 마음에 든 적은 없었다.
심지어 세운에게 지금까지 흑익이 벌여 온 짓들까지 들었으니, 이들은 더 이상 제논에게 길드원이 아닌 범죄자나 다름없었다.
그런 이들이었기에 아우터와 싸우며 쓰러지는 것에도 아무런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 성좌, ‘파멸의 늑대’가 신호를 알립니다.
“지금인가.”
제논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너진 하늘을 다시 한번 무너트리라니.
어처구니없는 계획이지만, 그는 이미 어찌할지 생각해 두었다.
“너희들에게 조금이라도 죄를 씻을 기회를 주겠다.”
“사, 살려 주시는 겁니까? 어떻게 하면…….”
“힘을 바쳐라.”
“물론입니다! 그분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그래.”
– 성좌, ‘추락하는 날개’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루시퍼의 허락하에 흑익의 간부를 포함하여 길드원 모두의 어깻죽지에서 검은 날개가 펼쳐졌다.
강제적인 권능의 개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날개의 깃털이 떨어져 나와 제논에게 흡수되었다. 아니, 깃털만이 아니라 날갯죽지가 통째로 뽑혀 나왔다.
“크헉!”
“힘이…….”
힘을 바치라는 말은 단순히 도우라는 뜻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힘을 전부 바치라는 뜻이었다.
탑을 등반하며 쌓아 온, 악행을 저지르며 빼앗아 온, 루시퍼에게 하사받은 힘 모두.
그 모든 힘을 받은 제논이 붉은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향해 비행하였다.
아마, 힘을 빼앗긴 흑익 모두 다시는 악행을 벌이지 못하리라.
기껏해야 일반인보다 못한 체력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게 고작일 것이다.
“루시퍼 님.”
– 성좌, ‘추락하는 날개’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제논이 섬광 같은 속도로 하늘에 닿았다.
성흔을 맹렬하게 빛내며 오른손을 앞으로 내뻗으니, 등 뒤의 날개가 세 쌍으로 분열하여 하늘을 뒤덮을 기세로 커져 갔다.
“역전(逆轉).”
루시퍼에게 받은 권능.
지금껏 흑익이 내려받은 권능을 모조리 앗아온 덕분에, 제논은 한순간이나마 진짜 루시퍼가 사용하는 역전의 권능을 온전히 재현할 수 있었다.
그 순간, 하늘이 뒤집히며 차원이 반전되었고.
“성공했다. 세운.”
데스힐의 상공이 본래의 우중충한 하늘로 되돌아오며, 제논이 루시퍼의 이명처럼 지상을 향해 추락했다.
* * *
여덟 번째 쉼터, ‘생명의 중심, 엘하임’.
이곳은 본래 현자들이 애를 쓰며 아우터를 막아내고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라져 있었다.
“저게 다 정령이란 말인가?”
“세상에…….”
엘하임.
그 거대한 나무 주변에 정령이 가득 차 있었다.
대표적인 사대 속성의 정령은 물론이고 안개, 나무, 연기 등 하위 속성을 지닌 정령들까지 전부.
그들은 세운이 지닌 파멸의 힘이나 운석의 힘이 없음에도 확실하게 아우터를 몰아내고 있었다.
– 안개 아이의 복수를 해 주자꾸나.
– 묻어라.
– 더럽군.
– 타는 냄새가 이리도 고약하다니, 냄새까지 전부 불태워 버리겠다!
덕분에 엘하임은 아우터가 지면에 닿을 새도 없이 소멸당하고 있었다.
정령의 힘은 그만큼이나 강력했다.
물론, 이들이 활약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모두와 계약하고 힘을 제공 중인 계약자, 리엘 리프레인 덕분이었다.
‘여신님이 아니었으면 버티지 못 할 뻔했어.’
그녀의 성좌, 아스가르드의 여신 ‘프레이야’.
프레이야에게서 내려받은 권능 덕분에 제한적이나마 마나를 무한하게 사용할 수 있어 어떻게든 정령들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떠오른 세운의 메시지.
– 성좌, ‘파멸의 늑대’가 신호를 알립니다.
메시지를 읽는 즉시, 리엘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사성진, 부탁드릴게요.”
– 알겠구나. 아이야.
– 구성하라.
– 때가 되었는가.
– 집합!!
엘하임 주변을 자유분방하게 떠돌며 아우터를 막아내던 정령들이 질서를 갖추기 시작했다.
네 방위를 기준으로 물과 불, 땅과 바람의 정령이 구획을 나누더니 각 속성의 힘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그 중앙.
모든 정령의 힘을 한데 받은 리엘이 세계수의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지팡이를 높게 들어 올렸다.
“고마워요. 저를. 아니, 저희 일족을 도와주셔서.”
촤아앗!
네 속성의 힘이 한데 뭉쳐 리엘의 지팡이를 통해 하늘로 쏘아졌다.
그야말로 엄청난 힘.
성좌에 가까운 존재라 할 수 있는 네 정령 왕의 힘은 물론이고 수많은 정령의 힘까지 모아 내뿜은 일격은.
촤아아아악-!!!
무너진 하늘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 방대한 힘이 옅어지며 엘하임에 무지개가 일렁거릴 때쯤에는 상공이 본래의 따뜻한 하늘로 되돌아와 있었다.
“당신도 꼭 성공하길 바랄게요.”
* * *
아홉 번째 쉼터, ‘검은 대지, 플라카’.
이곳은 플레이어의 수준도 높고 운석으로 된 장비도 갖춰져 있었기에 제법 훌륭한 전투를 선보였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그어어어-”
“그극, 그그극.”
바로, 백현의 언데드.
운석으로 대체된 손톱과 이빨을 휘두르며 아우터에게 달려드는 언데드는 플레이어들과는 달리 잠식당할 필요도 없고, 아우터에게 겁도 먹지 않았다.
물론, 언데드라 해도 무적은 아니다.
아우터를 상대하다 보면 자연스레 언데드가 소모되고, 백현이 아무리 많은 언데드를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한계가 있지만.
“다시 싸우고 싶은 자들이여.”
쿠구구구-
“일어나십시오.”
푸홧!!
이곳은 플라카.
땅속에는 플라카에서 죽어 간 수많은 마족이 존재했다.
그렇다고 해도 죽은 지 오래된 마족들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일으키는 건 어려웠지만, 백현은 만티코어 사건이 있던 이후 영혼과 교감하는 법을 깨달았다.
그 방법을 통해 더욱 많은 언데드를 더욱 강하게 일깨우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어어어어!”
“그어어어억!”
마족을 일으켜 세워 만들어 낸 언데드는 강력했다.
교감을 통해 일으켜 세운 만큼 생전의 기술 같은 것도 미약하게나마 유지하고 있어 그 전투력은 기존의 언데드를 뛰어넘었다.
거기에 보관 중이었던 운석 파편만 좀 박아 두어도 아우터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갔다.
그러던 중.
– 성좌, ‘파멸의 늑대’가 신호를 알립니다.
백현의 눈앞에 세운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백현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기다렸습니다!”
펄럭!
그가 양팔을 활짝 펼치자, 하얀 가운 또한 활짝 펼쳐졌다.
이어서 백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대한 기운에 당장에라도 날아갈 것처럼 미친 듯이 펄럭였다.
“모두, 마지막입니다!”
–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거칠게 투레질합니다.
아르카나나 제논과 마찬가지로 일개 플레이어일 따름인 백현.
그 역시 메시지를 통해 세운에게 계획을 전해 들은 직후, 자신의 성좌인 가미긴과의 상의를 통해 그 방법을 구상해 두었다.
“그어어어어어!”
전장에 나와 있던 수백 마리의 언데드가 한데 모인다.
하늘에 오를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짓밟고 오른다.
하지만, 그래봤자 저런 방식으로 하늘에 닿는 건 불가능하다.
이에 백현이 활짝 펼쳤던 두 팔을 모으며 눈을 하얗게 반짝였다.
“레이즈 키메라(Raise chimera).”
꽈드드득!
한데 뭉쳐 있던 수백 마리의 언데드가 순간적으로 압축되었다.
살과 살의 경계가 사라지고, 수백 마리의 언데드가 백현의 의지에 따라 하나의 언데드로 변모하기 시작됐다.
펄럭!
언데드로 이루어진 날개가 활짝 펼쳐진다.
위로 뻗어 나온 부리에서는 아우터마저 마비시킬 정도로 날카로운 귀곡성이 울려 퍼진다.
“끼야아아아아악!”
키메라 버드.
날개가 붙어 있으니 새의 형상이 가장 가깝겠지만, 수백의 언데드가 뭉쳐 탄생한 키메라는 단순히 새라고 명명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살점으로 이루어진 두꺼운 날개는 비행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키메라가 날개를 펄럭이자 엄청난 풍압과 함께 거대한 몸체가 붕 떠 올랐다.
“가십시오! 대망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겁니다!”
키메라가 흘러내리는 아우터를 꿰뚫고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부리를 포함한 상체 일부분이 운석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키메라를 막아서려는 아우터는 키메라에 닿자마자 터져나갔다.
고작 다섯 번의 펄럭임으로 무너진 하늘에 도착한 키메라.
목적지에 도착했음에도 키메라는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잘 훈련된 개처럼 백현의 지시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수고하셨습니다.”
백현의 손이 아래로 그어짐과 동시에.
퍼어어어엉-!!!
키메라의 몸체가 터져나갔다.
시체 폭발.
수백 마리의 언데드가 뭉쳐져 만들어진 만큼 그 화력 역시 엄청났다.
심지어 그 안에는 수류탄의 파편처럼 운석의 파편이 셀 수도 없이 많이 들어가 있었으니.
후웅-
데스힐의 하늘은 어느새 우중충하던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 * *
열 번째 쉼터, ‘빛나는 하늘, 샤이넬’.
아우터의 습격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이자, 폐왕이 직접 나서서 공격을 자행하고 있는 곳.
세운이 직접 강림하여 아우터를 막아내고 있는 곳이었다.
“이놈! 또 무슨 같잖은 짓을 하려는 것이냐!”
이변을 눈치챈 것일까?
당장 눈으로는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는데도 폐왕은 오딘의 메시지가 도착하는 순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샤이넬에서 보았던 것 중 가장 구겨진 얼굴로 세운에게 화를 드러냈다.
‘다른 쉼터는, 믿고 맡긴다.’
신계와 연결이 지속되는 시간은 대략 3분.
그사이에 세운이 모든 쉼터를 돌아다니며 차원을 연결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들에게 신호를 알리고 믿고 기다리는 것뿐.
세운은 지금 당장 눈앞의 일을 해결하면 될 뿐이다.
‘문제는…….’
세운이 무너진 하늘과 그 아래의 폐왕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무너진 하늘에 충격을 주어 좌표를 바꾸는 것 정도는 간단하다.
탐욕의 권능으로 신의 무구를 꺼내고 9서클의 마법을 담아 날리는 것 정도라면 충분하리라.
문제는 하늘이 아니었다.
‘폐왕.’
이자 또한 샤이넬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폐왕의 목적은 신계에 앞서 탑을 무너트리는 것.
그 목적을 완전히 무마시키기 위해서라도 폐왕은 무너진 하늘과 함께 신계로 날려 보낼 필요가 있었다.
‘그것도 3분 안에.’
지금까지도 세운의 전력에 맞서 팽팽하게 맞서왔던 폐왕이다. 그런 폐왕을 3분 만에 저 하늘 위로 밀어 넣을 수 있을까?
확신은 없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지금은 할 수 있냐의 유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해야만 한다.
“간다!”
3분.
그 안에, 탑에서의 전투가 마무리될 것이다.
제 66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