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6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69화(669/675)
콰르르르-
이그드라실과 연결된 공간으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아우터.
그 양이 어찌나 많은지, 전투를 위해 비워 두었던 우주의 공간조차도 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꾸륵.”
“꾸르륵-”
그 와중에 아우터들은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당황하며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아우터가 적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
신들이 전부 무기를 바로 잡으며 공격을 시작하기 직전.
“잠시.”
오딘이 신들의 앞으로 나아갔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그를 말리려 하였으나, 오딘은 차분하게 고개를 저어 그들을 저지하며 홀로 나아갔다.
“폐왕이라 하였나.”
“크아아아악!”
하지만 대답 대신 들려온 건 고통에 찬 신음인지 울분에 찬 함성인지 모를 외침이었다.
다른 신들이 아우터와 대화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말렸으나, 오딘이 다시 한번 그들을 막아서며 질문을 던졌다.
“그대는 누구인가?”
“크으…….”
폐왕의 고함이 점차 줄어들었다.
한껏 일그러진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는 게, 이제야 상황 파악을 하고 있나 보다.
이에 신들은 폐왕이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오딘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그대들은 스러진 별에서부터 탄생한 존재. 빛을 잃고 모든 기억과 자아를 잃어버린 자들이지.”
폐왕은 더 이상 고함을 지르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오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대들의 존재는 이미 알고 있었네. 위험성은 알고 있었지만, 자아가 없는 만큼 관리가 가능했기에 오히려 스러진 별에 대한 존중을 표하였지.”
“존중?”
“다른 은하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 아스가르드에서는 그랬었네. 비록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해 엄중히 관리하였지만, 존중은 잃지 않았지.”
오딘의 말에 폐왕이 안 그래도 구겨졌던 얼굴을 한층 더 일그러트렸다.
존중이라는 말조차도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그게 뭐가 존중이라는 거지? 어두운 지하에 가두어 미래를 지우고, 잊혀진 과거만 부르짖게 만드는 것이?”
“사자를 섬긴다고 사자의 아가리에 얼굴을 들이밀지는 않는 법이네.”
“겁쟁이들의 변명이군.”
“겁쟁이라 해도 상관없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존중을 표하고 있었으니. 하나, 그대의 등장으로 그 존중이 일그러졌네.”
“그건 존중이 아닌 위선일 뿐이다.”
“이미 아스가르드의 무덤 아래에서 존중받고 있던 스러진 별들은 그대의 등장과 함께 존중이 아닌 공포의 대상이 되었네.”
“잘 되었군. 우리가 너희의 공포의 대상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니.”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대를 용서할 수 없네. 스러진 별들을 일으켜, 혼돈을 일으킨 그대를.”
이걸 과연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
언뜻 듣기로는 서로가 각자 자기 말만 내뱉고 있는 것 같았다.
뒤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신들 역시 이 답답한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그리고 오딘이 마침내 마지막 질문을 내뱉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처음 내뱉었던 것과 정확하게 같은 질문.
하지만, 어쩐지 그 뉘앙스가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아마, 앞서 말한 ‘존중’에 의한 것이겠지.
“크큭…….”
신들마저 입을 다물고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 폐왕의 입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하하하하하하!”
우주에 울려 퍼지는 그의 웃음소리.
이에 뒤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꾸물럭거리던 아우터들이 파도치듯이, 크게 일렁거렸다.
“우습구나! 이제 와서 존경이라니, 누구냐니! 지금껏 폐부의 종기라도 되는 양 숨기고, 꺼려 왔으면서! 이제야 그딴 말을 지껄이는가!”
폐왕의 뒤에 열린 통로.
세계수와 연결되어 있던 공간이 점점 더 크게 벌어졌다.
“너희들이 대체 언제 우리에게 신경이나 썼는가! 버려진 자들의 목소리에 한 번이라도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있는가!”
이는 이그드라실의 힘이 아니었다.
폐왕의 의지로 통로가 억지로 벌어지며, 아우터가 잠들어 있던 공간과 통로가 확장되고 있었다.
“나는 들었다! 스스로 버려지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간절한 희망을 깨달았다!”
탑에서는 강제로 하늘을 부수고 틈새를 만들어 아우터를 억지로 밀어 넣어야만 했다.
시스템이라는 제한 때문에.
하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신계에서는 그런 방화벽이 존재하지 않았다.
즉, 폐왕이 관리하던 아우터 모두를 제약 없이 방출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집어삼키는 것.”
폐왕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오딘을 포함한 모든 신이 저도 모르게 오싹함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무기를 바로 쥐었다.
“다시 빛날 수는 없겠지만, 찬란한 별들을 전부 집어삼키면 결국 너희들 모두 우리와 공평해지지 않겠는가?”
오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한 게 아니다.
깨달은 것이다.
어쩌면 폐왕을 스러진 별들의 묘지기로서 인정하고 양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은 오산일 뿐이었다고.
폐왕과는 결코 양립할 수 없을 거라고.
이에, 오딘과 폐왕이 동시에 상대방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삼켜라, 세상의 모든 빛을!”
“스러진 별에게 안식을.”
신과 아우터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신계의 전투가 시작된 순간.
샤이넬에서 간신히 폐왕과 아우터들을 무너진 하늘로 밀어낸 세운이 아슬아슬하게 바닥에 착륙하였다.
“후우…….”
마지막에 날린 최후의 일격.
근육을 쥐어 짜내고, 내공과 마나는 물론 성흔의 신성까지 최대한 끌어 쓴 탓에 속이 텅 빈 느낌이었다.
근육통은 물론이고, 서클과 단전이 얼얼한 것을 보아 힘을 다시 회복하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지.’
3분.
그 안에 폐왕을 확실히 밀어 넣기 위해서는 확실한 일격을 가할 필요가 없었다.
혹여나 힘을 조금 아껴 보려다가 폐왕을 밀어 넣는 데 실패하면 모든 계획이 공중분해 되는 셈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신이 된 후에 급격하게 늘어난 힘을 처음으로 제대로 사용해 본 탓에, 생각 이상으로 무리한 감이 있었다.
“괜찮소!”
바닥에서 숨을 고르고 있자니, 저 멀리서 브린 자르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세운을 걱정해 주고는 있지만, 그의 상태도 정상이 아니었다.
들고 있던 방패는 고철이 되었고, 갑옷도 찌그러지고, 이음새가 끊어져 이미 갑옷을 벗은 상태와 다름이 없었다.
그나마 멀쩡한 건 끝까지 쥐고 있던 전투 망치.
그마저도 손잡이 윗부분이 휘어 있었지만, 브린 자르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하였던 신념이 담겨 있는 듯했다.
“여기, 포션이오. 지금 치료사들도 상태가 안 좋으니 이걸로 응급처치라도 하시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붉은 액체.
제법 성능이 좋은 포션인지 몸의 근육통이 조금 가라앉는 게 느껴진다.
그래봤자 이걸로 서클이나 단전까지 치료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아몬과 미카엘은…….’
당연하게도 둘과 함께 세운이 마지막에 열었던 심연과 광휘 역시 사라져 있었다.
네피림이 뜨겁게 달궈진 채 아무런 공명도 일으키지 않는 걸 보니 한동안은 재사용이 불가능할 듯했다.
최소 며칠…… 아니, 마지막에는 정말 무리를 했던 터라 몇 주는 반응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세운이 고개를 올려보았다.
화창함을 넘어서 태양이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처럼 찬란한 샤이넬 특유의 빛나는 하늘.
성공했다.
하지만, 다른 쉼터는 어떨까?
그들을 믿고 있었지만, 혹시나 한 곳이라도 실수했다면?
세운의 머릿속에 불안한 감정이 싹트고 있을 때.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계획이 성공했고 전투가 시작되었음을 알립니다.
–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수고했으니 이곳은 자신들에게 맡기고 쉬고 있으라고 알립니다.
마몬이 계획의 성공을 알리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아…….”
절로 나오는 안도의 한숨.
다 지친 상황에서도 당장에라도 튀어 나갈 것처럼 자세를 취하고 있던 세운이 온몸의 힘을 풀고 바닥에 푹 퍼져 누웠다.
“크하하하! 보아하니 다른 곳들도 일이 잘 풀린 모양이오!”
그 옆으로 브린 자르도 몸을 뉘었다.
이렇게 누워 있자니 샤이넬의 하늘이 다른 때보다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이런 적은 처음이네.’
아무 생각 없이 누워서 감상하는 샤이넬 하늘은 아름다웠다.
회귀 전에도, 회귀 후에도, 세운은 언제나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저 아름다운 하늘을 제대로 감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잠시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던 중.
“용사님! 괜찮으십니까!”
저 멀리서 천사들이 날아왔다.
그중에서 중앙에 있는 자는 백금 성을 관리하고 있는 천사장.
천사장이라고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닌지 그도 날개에 먼지가 묻고 깃털이 빠져 있는 등,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이런! 어서 용사님을 치료해 주게!”
“알겠습니다! 용사님,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천사장의 지시를 받은 천사 몇몇이 세운에게 다가와 양손을 내밀었다.
따뜻한 빛이 쏘아진다 싶더니, 포션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빠른 속도로 세운을 치료해 주었다.
근육통이 완전히 사라지고, 일반적인 포션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마나 탈진 현상이나 단전의 얼얼함까지 전부.
과연, 마지막 쉼터라 할 수 있는 샤이넬의 거주민이랄까?
그렇다고 해도 신성까지는 회복할 수 없었지만, 덕분에 바닥난 체력은 대부분 회복되었다.
“아우터는?”
“마지막에 용사님 쪽으로 전부 빨려 들어갔습니다. 아직까지 탐색 중이긴 하나, 현재로서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다행이군.”
혹시나 처리되지 않은 아우터가 남아 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마지막에 폐왕이 발악하며 모든 아우터를 끌어모았던 모양이다.
당시에는 아우터를 끌어모아 공격을 버티던 폐왕이 무척이나 거슬렸으나, 지금 와서 보니 남은 것들을 정리하지 않아도 되어 편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용사님. 또 한 번 샤이넬을 구해 주시다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대답할 기력도 없었다.
그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끝난 건가…….’
탑에서 아우터가 전부 사라졌다.
이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전에 누군가가 물었던 게 떠올랐다.
아우터를 전부 막아내면 그 후에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생각은 많았다.
이대로 샤이넬에 정착해서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도 괜찮고, 다시 신계에 올라서 디아블로 길드와 함께 새로운 은하를 만들어 가도 괜찮겠다.
그도 아니라면, 모든 플레이어의 꿈이라 할 수 있는 ‘귀환’.
본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솔직히 귀환은 그리 끌리지 않지만.’
세운은 이미 회귀를 거친 플레이어다.
옛날이라고 해 봤자 떠오르는 건 회귀 전 탑에서 열심히 뛰어다녔던 기억들뿐.
지구에서의 일들은 시간에 풍화되어 떠오르는 것도 별로 없었다.
“치료는 끝났습니다.”
세운의 몸을 감싸던 따뜻한 빛이 전부 거두어졌다.
둘러보니 빛을 내뿜던 천사들도 기력이 다했는지 식은땀까지 흘리며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과연, 서클이나 단전까지 치료하는 기술이 그리 간단할 리가 없지.
“용사님, 이제 막 전투가 끝나 피곤하실 테지만…… 꼭 보여 드릴 게 있습니다.”
“뭐지?”
“가져오너라.”
천사장의 지시에 뒤쪽에서 또 한 무리의 천사들이 나타났다.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는 듯 열 명의 천사가 진형을 이룬 채 날아오고 있었다.
철컥.
익숙한 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천사들이 가져온 그것은 황금빛 천에 가려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신물을 가져온 건가?”
“그렇습니다.”
백금 성에서 모시는 신물.
아니, 천사장이 샤이넬의 신이라 표현한 그것.
철컥.
천사들이 작은 톱니바퀴를 세운의 앞으로 가져다 두었다.
제 67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