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7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70화(670/675)
“신물을 백금 성 밖에 가지고 와도 되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적어도 제가 천사장의 직위에 오른 이후로는……, 아니, 역사를 뒤져보아도 신물이 백금 성 바깥에 나온 경우는 없을 겁니다.”
“그런 걸 어째서 가지고 나온 거지?”
“신께서…… 그걸 원하고 있었습니다.”
“……샤이넬의 신이 말인가?”
신이 원했다니.
신탁이라도 받았다는 말인가?
생각해 보니 조금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대체 어떤 신을 말하는 거지?’
세운은 이미 신이 되었다.
제우스나 오딘을 포함하여 각 은하의 우두머리들까지 만나 보았지만, 저 신물의 주인으로 보이는 자는 없었다.
게다가, 애초에 탑의 영역 중에서도 가장 높은 구역인 샤이넬에서 따르는 신이라니.
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철컥-
금색으로 빛나는 톱니바퀴.
볼 때마다 어쩐지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회귀 전에는 본 기억이 없고, 회귀 후에도 역시 마땅한 접점이 없었는데, 어째서 매번 이런 기분이 느껴지는 것일까?
‘설마.’
그때, 세운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100층의 도플갱어가 말해 주었던, 세운이 처음으로 탑을 등반할 때 따랐던 성좌.
끝내 그 이름을 듣지 못하고, 아쉬움과 그리움만이 진하게 남은 성좌.
그 성좌가 바로 샤이넬에서 말하는 신이 아닐까?
“신께서 신탁을 내리셨습니다. 저번에 이어 이번에도 신께서 직접 신탁을 내리시다니. 역시 용사님은 저희 신의 사도가 틀림없으십니다!”
“무슨 신탁이지?”
“음, 자세한 말씀은 없었습니다. 신탁이라 해도 언어라기보다는 감정에 가까웠습니다.”
“감정?”
“그리움과 애틋한…… 그런 감정이었습니다. 용사님을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이에 그 즉시 달려온 것입니다.”
“어째서 나에게…….”
샤이넬의 신.
천사들은 신을 섬기면서도 신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그런 신이 이번에는 세운에게 그리움과 애틋함을 느꼈다고 한다.
점점 세운의 추측에 확신이 더해졌다.
‘정말 이 신이 내 성좌였다면.’
세운의 손이 절로 톱니바퀴를 향했다.
천사장도 굳이 막아서지 않았다.
온갖 생각이 다 스쳐 가는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 흐르고.
철컥-
세운의 손이 톱니바퀴에 닿았다.
* * *
이제는 제법 익숙해 보이는 공간.
분명 이번이 두 번째일 텐데, 도저히 두 번째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는다.
‘하긴, 첫 번째 때도 그랬지.’
이미 한 번 와 보았던 느낌.
아니, 수십 번은 와본 것처럼 친숙한 느낌.
사방이 차가운 톱니바퀴로 뒤덮여 있는데도 따스함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그래도 한 번 와 봤다고 전보다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톱니 구조는 이전에도 엉망이었는데, 지금은 상태가 더욱 심각해 보였다.
당장에라도 부서질 것 같은 기계 안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니 얼른 빠져나가야 할 것만 같았다.
– 오랜만입니다.
– 현시점에 대한 분석을 시작합니다.
– 시기…….
– 분기…….
이전과 똑같았다.
기계처럼 딱딱하고 무미건조하지만, 어쩐지 더없이 따뜻하고 익숙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다만, 착각일까?
어쩐지 그 목소리에서 미약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작은…… 희망 같은.
– ……최초. 성공 근삿값에 도달하였습니다.
“성공 근삿값?”
–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정세운 플레이어.
여전히 알 수 없는 소리만을 내뱉는 목소리.
그의 말뜻이 무엇인지는 궁금했지만, 목소리가 당장에라도 사라질 것만 같았기에 세운이 다급하게 본래의 목적을 내뱉었다.
“네가 나의 성좌……였었나?”
중요한 질문이었다.
기억나는 바는 전혀 없지만, 그녀의 존재는 세운에게 빠진 톱니바퀴와도 같았다.
그녀의 존재를 들은 순간, 여태까지 느껴왔던 공허함이 그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저 생존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던 아우터를 쓰러트리겠다는 목표도.
그 어떤 성좌와도 계약하기 싫었던 이유도.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도.
그녀라는 톱니바퀴만 끼우면 모두 알 것만 같았다.
– 저는…… 잊으셔야 합니다.
“어째서지?”
– 저는…… 이미 너무 망가졌습니다.
“망가졌다니, 그게 무슨…….”
이유를 물어보려던 세운은 문득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이 절로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톱니바퀴로 향했다.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공간.
녹슬고, 부서진 상태로 힘겹게 돌아가고 있는 톱니바퀴들.
– 더 이상 당신에게 짐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 잊으셔야 합니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녀는 다시 세운을 내보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척.
세운이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몸이 저 녹슨 톱니바퀴가 된 것처럼 잘 움직이지 않았지만,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였다.
“그럴 수는 없다.”
잊으라고?
누구 마음대로.
잊고 말고는 남이 아닌 스스로가 정해야만 한다.
– 괴롭기만 할 겁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계적인 말투가 조금씩 녹아내리고,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그건 내가 결정한다.”
세운이 또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중앙의 톱니바퀴.
그곳에 떠 올라 있는 그녀의 윤곽을 향해 손을 뻗었다.
– 죄송합니다. 정세운 플레이어님.
– 그리고.
– 정말…….
그녀의 윤곽에 손끝이 닿는 순간.
더없이 따뜻한 감각과 그보다 더욱 따뜻한 기억이 세운에게 흡수되었다.
– 감사합니다.
곧이어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공간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 * *
“요, 용사님! 용사님! 괜찮으십니까, 용사님!”
“윽…….”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에 세운이 눈을 떴다.
지독한 두통.
톱니바퀴를 만지자마자 현실의 몸이 기절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지난 거지?”
“찰나입니다. 오 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자세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셔서 걱정되는 마음에…….”
“오 초라.”
세운이 기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온갖 기억이 가득했다.
처음 그녀와 만났을 때의 일.
처음 회귀했을 때의 일.
점차 옅어져 가는 그녀를 붙잡았을 때의 일.
아직은 너무나도 희미하고 옅은 기억이었지만, 이 기억의 소중함은 너무나도 잘 느껴졌다.
비록 행복한 기억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절로 눈물이 날 것처럼 슬픈 기억들도 가득하지만, 결코 후회되지 않았다.
‘마키나.’
마침내 기억난 그녀의 이름.
그녀의 이름을 머릿속으로 두세 번 더 바로 새기고 있을 때, 세운의 앞으로 돌연 메시지 창으로 이루어진 문이 나타나 길게 벌어졌다.
“정세운 플레이어님.”
튜닝.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세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그 시각, 신계.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살아가는 은하의 주위로 때아닌 폭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콰아앙!
“이것들, 왜 이리 질겨!”
“닿지 마십시오! 운석으로 보호되고 있는 부위가 아니라면 절대 접촉해서는 안 됩니다!”
“젠장! 답답하게!”
신과 아우터의 대결.
너무나도 쉽게 끝날 줄만 알았던 대결은 생각보다 팽팽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신이라 하여도 결국에 아우터에게 잠식당할 위험이 있는 건 마찬가지였고, 무엇보다…….
콰르르르륵-
“꾸르륵!”
쉴 틈 없이 흘러나오고 있는. 아니, 뿜어져 나오고 있는 아우터 때문이었다.
탑에서는 무너진 하늘의 틈새를 통해 흘러나오는 게 고작이었는데, 지금은 그 제한이 사라진 덕분에 그 한계가 완전히 깨져 버렸다.
그야말로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아우터.
“이렇게 많았던 건가!”
“하위 신들까지 동원해야겠어요!”
“안 되네! 들었지 않은가! 운석이나 파멸, 정령의 힘. 저들을 대처할 방법이 없는 이들을 불러 모아봤자 잠식당할 뿐이라네! 적을 늘리는 꼴밖에 안 돼!”
“하지만, 이대로라면 아스가르드가…….”
아우터가 쓰러지는 속도보다 생겨나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덕분에 아우터의 기세가 점점 늘어가더니, 이제는 이곳의 신들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어 버렸다.
전력이 밀리는 건 아니지만, 이대로라면 아스가르드의 은하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말게. 대피는 끝내 두었으니.”
“정말 괜찮겠는가, 오딘.”
“우선은 멸망을 막는 게 우선순위 아니겠나.”
“이 사태가 끝나면 아스가르드의 피해는 어떻게든 분담해 복구할 수 있도록 돕겠네. 내 장담하지.”
“고맙네.”
우주로 불러들이기만 하면 금방 처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실제로 상대해 본 아우터의 힘은 탑을 내려다보았을 때보다 더욱 강력했다.
오만이나 자만심 같은 게 아니었다.
저들은 정말, 강해져 있었다.
“탑에서 제약을 받는 게 네놈들뿐이라고 생각했나?”
저 뒤편에서 다친 몸을 수복하고 있던 폐왕이 입을 열었다.
당장 폐왕이 몸을 수복하는 걸 막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늘어난 아우터의 세력 때문에 쉽게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몇몇이 자신의 권능을 사용해 기습을 날려 보았지만, 폐왕의 주위를 에워싼 아우터에 막힐 뿐이었다.
“우리 역시 한때 별이었던 몸. 이곳에서 힘이 해방되기는 네놈들과 마찬가지다!”
“꾸르르르륵!”
폐왕의 말은 사실이었다.
본래 숙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아우터가 숙주를 핵으로 사용하며 자신의 한계를 벗어났다.
거대한 크기. 유동적으로 뒤바뀌는 외형. 그에 따른 다양한 공격.
파멸의 힘은 분명 강력했지만, 이미 세운을 상대하며 파멸의 힘을 최소한의 데미지로 받는 방법도 학습한 폐왕이었다.
아우터를 처음 상대해 보는 신들을 밀어붙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크하하하! 다들 뭣들 하나! 생각할 시간에 주먹이라도 한 번 더 휘둘러라!”
“우웩…… 맛없어…….”
“보물을 짐의 손으로 직접 더럽혀야 한다니. 슬프구나.”
신들이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아우터의 전력에 당황하던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칠 대 마신을 포함한 마왕들이었다.
그들은 이곳에 존재하는 그 어떤 신보다 세운이 가진 파멸의 힘을 깊게 이어받을 수 있었다.
거기에 마신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도록 강한 힘은 아우터를 박살 내기에 충분했다.
사탄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아우터가 터져 나가고.
베엘제붑이 토악질을 해대면서까지 아우터를 씹어 삼키고.
마몬이 탐욕의 권능으로 전시회를 일으키며 수많은 보물로 아우터를 꿰뚫는다.
그 외에도 선신들을 증오하는 루시퍼나 잠만 자던 벨페고르, 세상일을 무관심으로 일축하던 릴리스까지.
모두가 전장에서 놀랍도록 강력한 힘을 선보였다.
그사이.
‘아우터…….’
전투에 직접적인 가담을 하지 않으며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하나 있었다.
지혜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아스가르드의 최고신, 오딘.
가장 큰 전력 중 하나인 그가 쉬고 있는데도 그를 뭐라 하는 신은 아무도 없었다.
‘신계에서 더욱 강해지는 힘, 이만한 전력, 놈들은…… 어째서 신계가 아닌 탑을 먼저 무너트리려 했던 것이지?’
오딘의 지혜가 이 싸움을 역전시킬 비장의 한 수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 67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