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72)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72화(672/675)
“크윽…….”
폐왕의 신음이 들려왔다.
미처 다 회복하지 못했던 팔 한쪽은 어깨까지 완전히 떨어져 나갔고, 복부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피부는 검게 그을리고, 상처 곳곳에서 검은 액체가 줄줄 흘러나왔다.
상처가 어찌나 큰지 회복도 잘 안 되는 상황.
“그놈들이 눈치를 챌 줄이야…….”
사실, 이렇게까지 다치게 될 줄은 몰랐다.
준비가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오딘이 폐왕의 계획을 눈치채 버렸으니까.
다급하게 움직이다 통로를 확보하는 데 시간이 지체되었고, 그사이 각 주신들의 공격이 날아왔다.
아슬아슬하게 통로를 통과할 수 있었지만, 치명상을 입는 건 면할 수 없었다.
“아끼던 개체를 두고 와 버렸지만…….”
신을 숙주로 만들어 낸 아우터.
시간 축을 되돌릴 때 큰 힘을 소모해 가면서까지 데려온 아끼던 개체였는데.
그 개체가 아니었으면 통로를 통과하기도 전에 몸이 터져 나갈 뻔했다.
신들이라 하여도 본래 폐왕에게 이런 상처를 낼 수는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빌어먹을 두 번째 역행자 놈.”
마신의 역행자, 정세운.
놈 때문에 일이 전부 틀어졌다.
처음에는 사소한 변수라고 생각했다.
아우터가 처음 쓰러졌을 때도, 직접 마주해서 공격을 교환했을 때에도, 그자가 이렇게까지 큰 변수가 되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
고작 인간 하나.
인간 하나가 신의 자리에 올라 모든 신에게 인정받고 아우터를 상대할 방법을 제공하다니.
생각 이상으로 일이 꼬여 버렸다.
“하지만, 오히려 시간을 단축했다.”
폐왕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탑의 첫 번째 쉼터.
다른 쉼터처럼 특별한 이름 없이, 그저 ‘쉼터’라고 불리는 곳.
모든 플레이어가 탑에 들어오자마자 도착하는 곳이며, 지친 모험가들이 쉬어가기 위한 평화가 준비되어 있는 이름 그대로의 쉼터.
이번 아우터의 습격 때도 영향을 받지 않은 유일한 쉼터였다.
“방화벽이 두터워 시간이 제법 걸릴 줄 알았는데, 설마 세계수의 뿌리가 도움이 될 줄이야.”
본래 목표는 가장 높은 쉼터였던 샤이넬부터 시작해 탑을 무너트려 가장 아래인 이곳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계획이 바뀌었다.
처음 세운의 계략으로 신계로 추방당했을 때만 하더라도 분노에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지만, 오딘과 대화를 나누며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을 신계로 튕겨낸 통로.
아스가르드의 세계수, 이그드라실의 뿌리로 탑과 이어진 통로의 방향을 신들 몰래 바꾸는 데 집중했다.
신계를 향해 일방통행으로 열려 있던 통로를 뒤집고, 탑의 가장 아래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관리소가 허용해 준 건지, 탑의 보안이 뚫려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목적지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 덕분에, 폐왕은 곧바로 목적지였던 탑의 첫 번째 쉼터로 내려올 수 있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시스템만 먹으면 전부 끝이다.”
쉼터의 외진 곳까지 터덜터덜 걸어간 폐왕이 남은 한 손을 앞으로 뻗었다.
손이 꿀럭거리며 부풀더니 터지듯이 검은 액체를 내뿜었다.
순식간에 검게 물든 대지.
폐왕이 주먹을 쥐자, 검은 액체가 그 의지에 따라 땅을 파고들었다.
곧이어.
꽈득!
“크큭, 드디어.”
느낌이 들었다.
그 즉시 주먹을 위로 들어 올리자, 검은 액체가 주먹으로 흡수되며 바닥을 들어 올렸다.
쉼터의 아름다운 잔디가 뜯겨나가고 땅이 뭉텅 파이더니 그 아래에 거대한 문이 드러났다.
마치 문 그 자체가 자물쇠라도 되는 듯이 수많은 톱니바퀴로 장식되어 있었다.
폐왕은 검지를 뻗어 문의 자물쇠 안으로 검은 액체를 흘려보냈다.
“역시, 그 X은 보이지 않는군. 아무리 초월적인 성좌라고 하더라도 그만한 힘을 쓰고서 멀쩡할 리 없지.”
크로노스와 같았다.
시간을 다스리는 신이라 한들 시간을 마음대로 되돌리면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존재가 옅어지고, 심하면 소멸하게 된다.
회귀 전엔 넘지 못했던 벽이었지만, 그 덕분에 지금은 아무런 장애 없이 문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제.”
손가락에 느낌이 들었다.
복잡한 자물쇠이긴 했지만, 아우터에게 자물쇠의 구조를 학습시키고 변환하는 건 간단했다.
이제 이 손가락을 돌리기만 하면, 정말 끝이다.
시스템은 폐왕의 것이 되고.
탑은 무너지고.
신계 역시 아우터에게 먹힐 것이다.
세상은 곧 아우터의 것이 될 테고, 아우터를 향한 멸시는 사라지게 되겠지.
“끝이다!”
폐왕이 손가락을 움직이려던 그 순간.
서걱-
“그렇게는 안 되지.”
성좌, 파멸의 늑대.
세운의 검이 폐왕의 손목을 잘랐다.
* * *
세운이 톱니바퀴의 성좌, 마키나를 만나고 나온 직후에 찾아온 튜닝.
그가 다급하게 전한 말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폐왕! 그자의 목표를 알아냈습니다!”
“폐왕의 목표? 목표라면 당연히 신계를 집어삼키는 것일 텐데?”
“그건 최종 목표입니다!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 단계? 그게 탑에 있었습니다!”
튜닝의 말에 세운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어쩐지 조금 이상했다.
그 정도의 무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신들의 이목을 끌어 제 존재를 알리면서까지 탑을 먼저 무너트리려 하였는지.
아마, 튜닝이 발견한 게 바로 그것이리라.
“무엇이지?”
“시스템입니다.”
“시스템?”
“탑의 시스템 말입니다.”
“그걸 노리다니. 설마, 폐왕이 시스템을 집어삼킬 수 있다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신들의 허락을 빌려 전장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폐왕이 자기 입으로 언급한 내용입니다.”
“……직접 언급을 했다는 건, 둘 중 하나겠지.”
불가능해진 목표를 자포자기하듯 내뱉었든가.
상대가 듣더라도 상관없이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든가.
그리고, 세운이 아는 폐왕이라면 목표를 포기하고 자포자기했을 리가 없었다.
“네, 방금…… 통로를 역행하여 탑에 들어왔습니다.”
더 들을 것도 없다.
세운이 뒤랑달의 손잡이를 쥐며 무장을 확인하고는 출발 준비를 마쳤다.
“어디로 가야 하지?”
* * *
서걱-
“그렇게는 안 되지.”
튜닝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첫 번째 쉼터.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전에, 눈앞에서 거대한 문을 열고 있는 폐왕의 손목을 잘랐다.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저 문이 열리고, 폐왕이 시스템을 삼켰을 수도 있었다고.
“크아악!”
세운은 비명을 지르며 물러나는 폐왕의 자리에 서서 문을 막아섰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어스 월’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서클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문 앞으로 수 겹의 돌벽이 생겨났다.
폐왕이 마음만 먹는다면 쉽게 부술 수 있겠지만, 세운이 몰래 다가가 문을 여는 것 정도는 막을 수 있으리라.
“이 망할 인간 놈이! 기어코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냐!”
그야말로 악귀처럼 일그러진 폐왕의 얼굴.
꾹 참아왔던 화가 한계를 뚫고 터져 나온 듯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인데! 네깟 놈이 끼어든다고 미래가 바뀔 것 같더냐!”
터져 나온 건 울분만이 아니었다.
세운에게 잘린 손목에서부터 검은 액체가 뿜어나와 검은 칼날의 형상을 이루고, 곧장 세운에게 달려들었다.
카앙!
제법 강력한 검격이다.
기술은 물론이고 강력한 힘까지.
이전의 세운도 꽤 힘을 주고 받아내야 했던 검격이지만…….
가가각-
“당연하지.”
서걱!
세운의 검은 물 흐르듯이 폐왕의 칼날을 타고 움직이더니 기어코 그의 손목을 다시 한번 잘라 냈다.
지금껏 세운이 사용하던 검술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이건 마치, 100층에서 보았던, 처음으로 회귀한 세운이 사용했던 검술과도 닮아 있었다.
– 고맙다. 정말 고맙다. 또 다른 나.
스러져 버린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아니, 이제는 더 이상 남처럼 얘기할 수 없었다.
‘떠올라 버렸으니까.’
탑을 처음으로 등반했을 때의 기억.
그녀의 손을 잡고 아우터를 맞닥트리며, 꼭 시간을 되돌려야겠다며 회귀를 선택했다.
가장 익숙했던 무기인 검을 쥐어 들고 오직 그녀만을 생각하며 탑을 오르던 그때.
기어코 100층에 도착했지만, 결국 도플갱어를 쓰러트리지 못하고 좌절했던 순간까지.
“네깟 놈 하나로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폐왕이 뒤로 펄쩍 뛰더니 손목에서 새로운 무기를 형상화했다.
활.
폐왕의 키를 훌쩍 뛰어넘을 만큼이나 거대한 활이 만들어지며, 팔뚝만 한 화살이 쏘아졌다.
[ 여신의 황금 활, 케라우노스 ] [ 화살의 소나기, 이오케이라 ]이에 세운도 피하지 않고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손에 들린 황금빛 활과 화살.
이어서 당겨지는 활시위.
다만, 이때도 지금까지 세운이 활시위를 당겼던 방식과는 조금 달랐다.
활시위를 당김과 동시에 미묘하게 비틀어 회전력을 가미하였다.
– 이번에는, 절대 실패하지 않겠어.
활 하나만을 들고 탑을 등반하던 세운.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며, 그녀의 존재조차 잊기 시작했던 때의 모습이었다.
피잉-
세운이 쏜 화살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폐왕이 날린 거대한 화살로 나아갔다.
화살의 소나기라는 이오케이라의 이명에 걸맞게 수천 개로 늘어나는 화살.
그 모든 화살이 빠르게 회전하더니 한 몸이 되어 거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콰과과괏!
폐왕의 화살 따위는 소용돌이를 막아내지 못했다.
팔뚝만 한 화살이 너무나도 가볍게 튕겨 나가고, 화살로 이루어진 소용돌이가 폐왕의 몸을 꿰뚫으며 수백 개의 구멍을 만들어 냈다.
“네깟 놈 따위……!”
폐왕이 몸을 수복하기도 전, 세운은 어느새 그의 앞으로 다가가 거대한 도끼를 들어 올린 채였다.
– 어떻게 해서든…….
콰직!
일도양단.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두 동강 나는 폐왕의 몸.
파멸의 힘을 듬뿍 담은 만큼, 갈라진 부분에서 불에 지져진 것처럼 치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폐왕은 쓰러지지 않았다.
갈라진 부위에서 검은 액체가 터지듯이 튀어나오며 서로를 이어 몸을 재생했기 때문이다.
“결코, 이 몸을 막을 수 없다!”
폐왕의 손아귀가 태양을 가릴 정도로 거대해졌다.
도끼라는 무거운 무기를 휘두른 직후의 빈틈을 노린 모양이지만, 세운은 곧바로 손에서 도끼를 놓았다.
그러고는 날카로운 창을 손에 쥐고 벼락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손바닥을 향해 뛰어올랐다.
– 나는…… 어째서.
회귀가 반복되며 줄어드는 마키나의 힘.
이에 자연스레 지난 회귀에 대한 기억을 잃어가던 세운.
그러면서도 등반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왔다.
푸욱!
손바닥이 꿰뚫리며 폐왕의 가슴에도 구멍을 냈다.
심장을 노릴 생각이었지만, 아쉽게도 폐왕의 심장은 가슴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심장이라는 장기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을지도 몰랐다.
반으로 갈라진 상태로도 다시 몸을 회복한 그는 이미 생물의 신체 구조를 초월했으니까.
“크아아아악!”
세운은 울부짖는 폐왕의 앞에 다시 섰다.
튜토리얼 때부터 쥐어왔던 바위를 쪼갠 검, 뒤랑달을 쥐고서.
– 찾았다.
지나온 회귀는 물론, 회귀를 했었다는 사실 그 자체를 기억하지 못한 채 만마전 앞에 섰던 그때를 떠올리며.
“미래는 내가 정한다.”
세운은 묵묵하게 폐왕의 가슴을 베었다.
제 67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