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7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73화(673/675)
“크윽, 이 빌어먹을 놈이…….”
폐왕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다.
베어지고, 뚫리고, 뭉개진 상처가 전신에 가득하다.
바닥은 검은 액체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폐왕의 상처 부위와 입에서도 검은 액체가 쉬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실, 이대로 버티고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해 보였다.
파멸의 힘으로 이렇게나 공격했는데 아직 죽지 않는다니.
이 정도면 아우터건 뭐건 죽는 게 정상일 텐데 말이다.
하지만.
“이제 끝이다.”
그것도 이제 한계다.
폐왕의 몸은 무너질 대로 무너져 있었다.
베어지자마자 곧장 수복되던 상처도 이제는 잘 아물지 않고 있었으며, 흘러내리는 검은 액체의 양도 심각한 수준으로 많았다.
“크큭.”
그때 들려오는 낮은 웃음소리.
“크하하하!”
실성하기라도 한 걸까?
아니다.
저 웃음소리는 자포자기에서 나온 웃음 따위가 아니다.
순간 섬뜩함을 느낀 세운이 곧장 달려들어 그의 가슴을 대각선으로 크게 그었다.
푸홧!
어째서일까?
폐왕은 막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환영한다는 듯이 두 팔을 크게 벌리며 세운의 검격을 덤덤하게 받아냈다.
상처가 깊은 탓에 분수처럼 튀어 오르는 엄청난 양의 검은 액체.
“크하하하하하!!”
상처가 꽤 심각한데도 폐왕의 웃음은 그치지 않았다.
회복 속도가 줄었다고는 해도 회복이 안 되는 건 아니었는데, 이번에 난 상처는 회복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폐왕은 일부러 상처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처럼 두 팔을 넓게 벌리고 가슴을 활짝 폈다.
그에 따라 검은 액체가 무서운 기세로 뿜어나오기 시작했다.
세운은 곧 그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꾸르르륵.”
폐왕의 가슴에서 뿜어나온 검은 액체.
그게 수많은 아우터로 변모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의 몸에서 흘러내린 검은 액체는 아우터와 비슷하면서도 특별히 자아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꿀럭거리며 세운에게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숙주가 있는 것처럼 어엿한 형태까지 갖추면서.
“그래봤자 네깟 놈 혼자일 뿐이다!”
아우터가 끊임없이 늘어난다.
세운이 이 사태를 막아내기 위해 폐왕을 끝장내려 하였지만, 어느새 엄청나게 늘어난 아우터가 벽을 이루어 세운의 전진을 막아섰다.
“겨우 혼자서 ‘우리’에게 대항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뿜어나온 아우터는 한두 마리 수준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수십으로 불어나는 아우터.
“루인!”
– 크릉!
혼자서는 막아내기 벅찬 수였기에 곧바로 루인을 불러냈다.
이전의 전투에서 입은 상처가 전부 회복된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터엉!
과격한 충돌.
이대로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정작 폐왕의 속셈은 세운을 쓰러트리는 게 아니었다.
“크큭,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우리’ 앞에서는 고개를 치켜들 수 없는 법이다.”
폐왕의 발걸음이 세운이 막아 둔 문을 향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었기에 색욕의 권능을 사용하여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
“루인, 부탁한다!”
– 맡겨라, 나의 주인이시여!
결국 아우터 전부를 루인에게 맡기고 직접 폐왕에게 다가서야 했다.
폐왕의 가슴에 난 상처가 등 뒤로 옮겨지더니, 걸음을 옮기는 사이에도 아우터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늘어난 아우터 모두 세운의 발목을 붙잡거나, 심지어는.
쾅!!
세운이 문 앞에 세워 둔 벽을 부수고 있었다.
– 흑탑의 묘리에 따라 ‘디스트럭션 윈드’의 위력이 강화됩니다.
곧바로 파멸의 바람을 일으켜 놈들의 공격을 막았지만, 놈들의 공격은 끊이지 않았다.
자기 몸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공격.
과연 저게 아우터의 의지가 맞을까?
생존 본능 하나만으로 몸을 움직이던 아우터가 불나방처럼 죽음에 뛰어들다니.
폐왕은 아우터를 ‘우리’라고 지칭하지만, 세운의 눈에는 아우터를 억압하며 죽음으로 내모는 폭군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았다. 저 문만 열면, 모든 건 내 손에 들어온다. 그야말로 평등한 세상이 다가온다.”
[ 희대의 마검, 다인슬라이프 ] [ 반란의 최후, 롱고미나아드 ] [ 적색의 창, 게 다러그 ]온갖 무기를 꺼내 들어 아우터를 쓰러트렸음에도 폐왕은 점점 더 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꾸르르륵!”
콰앙!
문 앞에 세워 둔 돌벽도 이제 단 하나만 남은 상태.
세운이 어떻게든 막아 보려 했지만, 결국 마지막 남은 돌벽까지 부서졌다.
폐왕이 기어코 그 앞까지 도달하려는 찰나.
“안 된다.”
[ 고르곤의 머리, 아이기스 ]터엉!
부상을 감수하면서 아우터 사이를 뚫고 나온 세운이 문 앞을 막아섰다.
고르곤의 머리가 박힌 방패는 파멸의 힘이 합쳐지며 주변의 아우터를 딱딱하게 경직시켰다.
본래 석화의 저주가 걸린 방패였지만, 아우터까지 돌로 만들 수는 없었다.
“꾸르르륵!”
앞에서 굳어 있는 아우터를 무시한 채 뒤에 있던 아우터들이 파도치듯이 몰아쳤다.
세운은 그야말로 해일 같이 몰려오는 놈들을 향해 또 다른 방패들을 사용했다.
[ 검은 방패, 두반 ] [ 찢어발기는 방패, 리노토로스 ] [ 태양의 이전, 스발린 ]…….
마몬의 창고에 존재하는 모든 방패를 꺼내 문 앞을 막아섰다.
지금은 아우터를 쓰러트리는 것보다 폐왕이 문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서는 게 중요했으니.
하지만, 이걸로는 한계가 있었다.
“크하하하!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가? 이게 바로 ‘우리’와 네놈의 차이다! 아무리 발악해 봤자 네놈은 결코 우리를 이길 수 없다!”
세운이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으로서는 그의 말에 부정할 수 없었다.
당장 방패를 놓는 순간, 아우터는 세운을 공격해 올 것이고 폐왕은 그사이에 문을 열어 시스템을 삼킬 것이다.
루인이 노력해 주고 있지만, 성하지 않은 몸으로는 아우터 전부를 상대할 순 없을 것이다.
혼자서는 폐왕을 막아설 수 없다.
그런 생각이 들자, 세운의 머릿속에 절로 몇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유서아, 강한철.’
이하늘, 고창석, 한아름과 한아름 등, 디아블로 길드의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물론, 알고 있다.
그들도 아우터의 습격을 막아내느라 모든 힘을 다 썼고, 지금 상황에서 이곳에 온다고 해도 아우터를 막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을 거라고.
세운과 같은 신급의 무력.
그 정도가 아니면 폐왕을 막을 수 없다.
“이제 끝이다, 빌어먹을 두 번째 역행자여!”
폐왕의 잘린 팔에서 검은 액체가 길게 늘어지더니 드릴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맹렬하게 회전하며 세운의 방패를 꿰뚫으려 하는 드릴.
이미 수백의 아우터가 세운을 밀어붙이고 있었기에 세운도 버티기 버거운 위력이었다.
‘이러다가는…….’
탐욕의 권능.
비록 지금은 강화되어 매개체 없이도 보구를 꺼낼 수 있다지만, 그래 봤자 마몬이 가진 진짜 권능에는 미치지 못한다.
결국에는 실체가 없는 무구들.
시간이 지나면 힘을 다해 사라진다.
지금만 하더라도 점차 옅어지고 있지 않은가?
‘조금은 더 버틸 수 있겠지만.’
조금 버틴다고 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가 않았다.
아니, 시간이 끌릴수록 세운에게 더 불리해진다.
아우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까.
대체 저 몸 안에 얼마나 많은 아우터가 들어가 있는 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분명 너무나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포기는 없다.’
되찾은 기억과 망가져 가는 마키나의 방.
그녀에게는 더 이상 세운을 회귀시킬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
이를 악물며 어떻게든 아우터의 공격을 막아내고, 빈틈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크하하핫! 소용없다!!”
그런 세운을 무릎 꿇리기 위해 등에서 수십 개의 드릴을 더 만들어 내 세운을 몰아붙이는 폐왕.
그때.
“숙여라.”
머리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 판단하기도 전에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숙이고 힘을 다해가는 방패를 기울여 몸을 감추는 순간.
콰아아아앙-!!!
앞에서 폭탄이라도 터지는 듯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단순히 소리뿐만 아니라 충격도 엄청나 방패를 들고 있음에도 몸이 뒤로 밀려나 문에 등이 닿을 지경이었다.
잠시 후.
방패를 내리고 앞을 보니 아우터가 짓뭉개지며 만들어진 검은 크레이터의 한가운데에 거한의 남성이 앉아 있었다.
“……강한철.”
“조금 늦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샤이넬에서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더 이상 아가레스에게 의존하여 신성을 받아 쓰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신성을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네놈은 또 무엇이냐!”
한순간에 백이 넘는 아우터가 압살당했다.
이에 분노한 폐왕이 더욱 많은 아우터를 뿜어냄과 동시에 몸에서 수백 개의 촉수를 꺼내 강한철과 세운에게 휘둘렀다.
당장 눈앞에서 위협적인 촉수가 날아왔지만, 세운은 피하지 않았다.
강한철 역시 마찬가지.
그를 뒤이어 상공에서 나타난 또 한 명의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휘리릭!
바람이 불어왔다.
첫 번째 쉼터 특유의 따뜻한 봄바람이 아닌, 매섭고 날카로운 광풍(狂風).
그와 함께 주변의 아우터와 함께 폐왕의 몸에서부터 꿈틀거리며 다가오던 수많은 촉수가 일제히 잘려 나갔다.
“유서아.”
“저희, 늦지 않게 온 거 맞죠?”
“물론이다.”
강한철과 유서아.
이제는 세운을 뒤이어 탑을 전부 등반하여 신격을 얻게 된 두 플레이어가 세운의 앞에 자리 잡았다.
‘설마 정말 등반을 끝낼 줄이야.’
아우터의 습격이 시작된 후, 세운은 디아블로 길드에게 아우터의 공격을 막아 달라고 지원 요청을 보냈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쉼터에 내려와 주었지만, 생각 외로 핵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강한철과 유서아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해리의 설명에 따르자면, 한계에 부딪혀 돌아오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 둘은 무수한 상처를 안고서도 100층을 향해 발을 내밀었다고 했었지.
그들이 결국 등반을 끝내고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튜닝 씨가 아니었다면 늦을 뻔했어요.”
“튜닝이?”
“저희가 신계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으로 보내 주셨거든요.”
하긴, 이곳의 상황을 알고 있는 것도, 신을 이곳으로 바로 이동시킬 수 있는 것도 튜닝뿐이다.
듣기로 그는 지금 관리소에서 가장 높은 직위에 앉았다고 했으니까.
“끝까지, 끝까지, 끝까지! 그런다고, 그런다고 네까짓 놈들이 우리의 앞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폐왕의 몸이 터졌다.
한 번, 두 번, 네 번, 열 번.
폭발을 반복하며 검은 액체가 겹겹이 쌓이더니 그의 몸이 거인처럼 커졌다.
주변의 아우터가 이에 동조하듯 꿈틀거리며 더욱 광포하게 꾸륵거렸다.
아마, 저게 폐왕의 본모습이리라.
스스로를 내버린 이름 모를 신이 수많은 아우터를 흡수하여 그들과 동조한 모습이.
“결국, 마지막에 승리하는 건 우리다-!!”
폐왕의 목소리가 쉼터의 동산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게 된 세운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그의 앞에 마주 섰다.
“아니, 우리다.”
강한철과 유서아.
지금, 그 누구보다 든든한 둘을 옆에 두고서.
제 67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