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68)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69화(68/675)
제 69화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상대가 드레이크라고 지능을 너무 무시했나 보다. 이런 식으로 결계를 깨부수다니.
노린 것이든, 계획한 것이든. 이것으로 승기가 다라칸에게로 크게 기울었다.
“어, 어쩌죠?”
꽈악.
세운이 할버드를 강하게 쥐었다.
이대로 몬스터들이 전투에 끼어든다면, 가진 보물을 쏟아낸다고 해도 이길 확률이 적었다.
이대로 도망치기에는, 지금까지 사용한 보물이 너무 아까웠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이 막막한 상황 속에서, 세운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생겨났다.
갑자기 먹구름이라도 생겨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든 세운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인을 목격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 강한철이 ‘개전(開戰)’을 사용합니다.
콰아앙!!
세운과 리엘을 포위하며 다가오던 몬스터들이 모두 자리에서 쓰러졌다.
지진이라도 난 듯이 울렁거리는 지면 덕분이었다.
얼마나 높이서 떨어진 것인지, 개전의 위력과 범위는 평소의 두 배에 가까울 정도로 강력했다.
“강한철?”
“탈 것이 너무 비실거려서 조금 늦었다.”
“탈 것?”
적랑을 말하는 것일까?
하지만, 적랑을 타고 왔다면 강한철이 하늘에서 떨어진 게 이해되지 않는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세운이 ‘탈 것’의 정체를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푸북.
“크오오-!”
“만티코어?”
독수리처럼 하늘에서 직각으로 하강한 만티코어가 다라칸에게 꼬리의 독침을 박아 넣었다. 그것도 세운이 놈과 할버드를 맞댈 때 벗겨진 비늘 사이로 정확하게.
튜토리얼 영역에서 만티코어의 등장이라니.
그 주인은 세운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백현?”
“비실거린 게 아닙니다! 오히려 강한철 씨를 태우고 비행한 것 자체가 대단한 겁니다!”
백현이 만티코어를 일으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것도 세운이 생각하던 스켈레톤이 아닌, 그보다 두 단계나 높은 단계인 구울의 형태로 말이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되살아난 것처럼 움직이는 만티코어의 사체를 바라보며 크게 감탄합니다.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최선을 다해 만들어 낸 걸작이라며 마신에게 고개를 조아립니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자신의 보물을 더욱 완벽하게 세공시킨 대후작의 실력을 인정합니다.
‘그렇다는 말은?’
강한철과 백현이 등장했으니, 자연스레 다른 사람도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몬스터 무리를 뚫고 붉은 뼈로 된 늑대 한 마리가 높이 뛰어올랐다.
“형니이이임!”
적랑을 타고 등장한 박정필.
그리고 그 뒤에 타고 있던 유서아가 전장을 살펴보고는 적랑이 착지하기도 전에 뛰어내려 쌍검을 꺼내 들었다.
-플레이어 유서아가 ‘타란튤라의 세 번째 다리’를 사용합니다.
서거거걱!
그녀가 착지하는 순간, 주위에 있던 열 마리의 몬스터가 피 분수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강한철과 백현, 박정필과 유서아.
네 명이 미리 짜기라도 한 듯이 세운의 네 방향에서 몬스터와 대적하였다.
“몬스터들을 막고 있으면 되겠죠?”
“할 수 있겠어?”
“물론이다.”
“안 돼도 해야죠. 지금까지 늘 그래 왔잖아요?”
“골든 라이트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제법인데?”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네 명의 모습에, 리엘만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 명 다 최소 랭킹 100위권 이상이야. 이런 이들이 전부 저 남자를 따른다고?’
튜토리얼의 랭킹은 결코 올리기 쉬운 게 아니었다.
당장 리엘부터가 1위를 차지하기 위해 그토록 안간힘을 썼음에도, 세운이라는 자에 의해 2위에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그런 랭커들이 이렇게 많이 등장하다니. 대체 저 남자의 정체가 무엇일까?
그렇게 생각하던 중, 드디어 그녀의 귀로 남자의 이름이 들려왔다.
“많이는 못 버틸 거예요. 세운 씨.”
“십 초만 버텨줘. 그걸로 충분해.”
“……잠깐, 세운이라구요?”
“간다.”
“잠깐!”
타앗!
세운은 리엘의 질문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세운이라니. 자신을 누르고 랭킹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플레이어의 이름 아니던가?
머리가 혼란스러웠지만, 지금은 묻고 따질 시간이 없었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가진 마나를 모두 쥐어짜 내어 정령들을 활성화시켰다.
“가자!”
“태워 버려!”
“우리가 도와줄게!”
“나쁜 용!”
“크아아아아-!”
결계가 무너졌음에도 당돌하게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세운을 보며 다라칸이 더욱 크게 포효를 내질렀다.
공포가 통하지 않는다지만, 그 포효에는 풍압만으로도 몸을 밀려나게 하는 힘이 담겨 있었다.
다만, 바람의 정령이 기류를 휘게 하여 움직임을 보좌해 준 덕에 세운은 조금의 저항도 없이 앞으로 내달렸다.
다라칸은 그런 세운을 향해 손톱을 내질렀지만.
척.
세운은 무기를 휘두르지 않았다.
그저 다라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음 공격을 위해 힘을 집중하였다.
[믿는다.]“응!”
콰앙!
고창석이 만들어 준 장비와 정령의 힘을 믿었다.
손톱이 몸에 닿는 순간 강력한 충격이 느껴졌지만, 세운은 오히려 그 기세를 타고 더욱 빠르게 다리를 움직였다.
체력이 한계까지 떨어졌지만, 이걸로 충분했다.
-내공을 통해 그라드 제국식 부창술의 제이 초식, 박격부(搏擊斧)가 강화됩니다.
쿵!
할버드가 다시 한번 다라칸의 아래턱을 강타했다.
하지만 놈은 같은 공격에 두 번 당하지 않겠다는 듯이 이를 악물고 공격을 버텨내었다.
그 자신도 알고 있는 것이다. 역린만 드러내지 않는다면, 세운이 자신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그 순간, 세운이 도끼를 바꿔 잡으며 자세를 바꾸었다.
-내공을 통해 그라드 제국식 부창술의 제사 초식, 난격부(亂擊斧)가 강화됩니다.
콰과과광!!
“크억, 커어어!”
할버드가 빠르게 휘둘러졌다.
장병기에다가 도끼날까지 달려 속도가 느린 게 특징인 할버드였지만, 지금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할버드. 아니, 지금은 방천화극에 더욱 가까워진 무기가 어지럽도록 빠르게 휘둘러졌고, 어지러울 정도로 맹렬한 기세에, 다라칸이 굴복하며 턱을 들어 올리고 말았다.
척.
‘지금이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세운이 자세를 바꾸었다.
손잡이가 으스러질 정도로 손에 힘을 꽉 주고, 훤히 드러난 다라칸의 턱을 올려 쳤다.
-내공을 통해 그라드 제국식 부창술의 제오 초식, 타격부(打擊斧)가 강화됩니다.
콰아앙!!
그 위력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다라칸의 머리는 물론 앞다리까지 일순간 바닥에서 떨어졌다.
목적을 완수한 골든 헬버드가 힘을 다하고 금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아깝긴 하지만, 방천화극의 힘을 머금고도 이렇게나 힘을 발휘해 준 것만으로도 기대 이상의 활약이었다.
역린이 드러난 것을 깨달은 다라칸이 급히 자세를 고치려던 순간, 세운이 황금성의 고유 능력을 외쳤다.
“골든 라이트.”
저 멀리서 보이지도 않는 황금성에서부터 황금빛이 쏘아졌다.
골든 라이트.
하루에 한 번, 적의 움직임을 일제히 멈추게 하는 황금성의 고유 능력. 황금성의 성주라면, 위치를 가리지 않고 능력을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
촤아앗!
황금빛이 닿자마자, 다라칸의 몸이 앞다리가 떨어진 채로 멈추었다.
오직 눈동자만이 거칠게 떨리며 세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야 튜토리얼 끝인가.”
터벅, 터벅.
세운이 새로운 무기를 꺼내며 놈의 역린을 향해 느긋하게 다가갔다.
마지막 일격인 만큼,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기 위해 놈에게 가장 효과적인 보물을 꺼내었다.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용살검, 아스칼론 ]– 성 게오르기우스가 드래곤을 쓰러트릴 때 사용한 명검. 악에 맞서 싸우는 승리의 무기.
푸욱.
세운의 검이 다라칸의 역린 사이를 비집고 박혀 들어갔다.
그 단단하던 비늘과 육질에 비교하면, 두부를 찌르는 듯이 부드러운 촉감이었다.
이에 확신을 느낀 세운이 힘을 주어 역린을 잘라내자.
서걱-
분노한 바다의 폭군. 씨 드레이크, 다라칸의 목이 허무하게 잘려 나가며…….
-튜토리얼의 최종 보스 몬스터, ‘분노한 바다의 폭군, 다라칸’을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
-개인 공적치가 300,000point 상승합니다.
-‘씨 드레이크의 비늘’을 획득하였습니다.
-‘씨 드레이크의 송곳니’를 획득하셨습니다.
…
-‘바다의 분노’를 획득하셨습니다.
튜토리얼의 막이 내렸다.
* * *
[ 튜토리얼 다섯 번째 장 – 방어 ]-과제를 완벽하게 수행하였습니다!
-놀랍도록 위대한 업적을 남겨 보스 몬스터 주위의 플레이어들에게 추가로 150,000point를 제공합니다.
-수성전에서 살아남은 모든 인원에게 50,000point를 제공합니다.
-축하드립니다! 튜토리얼 다섯 번째 장을 훌륭하게 끝마쳤습니다!
-최종 집계를 위해 탑의 입구를 향해 이동해 주십시오.
드디어 튜토리얼의 다섯 장이 모두 끝났다.
이 모든 과정에서 살아남은 플레이어만이 탑에 들어가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할 수 있다.
“끝……이라.”
“고생하셨어요. 세운 씨.”
“형니이임! 믿고 있었습니다아!”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튜토리얼이 끝나며, 세운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몬스터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긴, 자신들의 왕이 쓰러졌으니.
더 이상 싸울 의지를 잃어버리는 게 당연했다.
“좀 피곤한 것 말고는, 괜찮아.”
사실, 조금 수준이 아니었다.
지금은 빛이 꺼졌지만, 성흔이 활성화되는 중에는 몸에서 기운이 쭉쭉 빠져나가는 듯했으니까.
마나도, 내공도 아닌 생명력 그 자체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마나나 내공이 충분하다는 건 아니었다. 마지막 일격을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마나와 내공을 모두 소모하였으니까.
보물창고를 열어 포션 한 병을 마시니, 떨리던 손이 조금은 진정되는 듯했다.
“넌 뭐야?”
“비키세요.”
“뭐? 내가 누군지 알아? 이 몸이 바로 형님의 오른팔, 컥!”
리엘 리프레인. 그녀가 박정필을 가볍게 밀쳐내고 세운에게로 다가왔다.
‘리엘의 성격이라면, 어지간히도 분해하고 있겠지.’
회귀 전에 리엘의 행보는 세운에게도 들릴 정도로 유명했다.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과 수련을 반복하며 탑을 올랐다고 했었지.
실제로, 꽤 많은 층에서 1위를 쟁탈했다고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소식이 완전히 끊겨 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세운의 앞에서 잠시 멈춰 서 있던 그녀가 생각을 마친 듯 첫 질문을 하였다.
“어째서 정체를 숨긴 거죠?”
바꿔 말하면, 어째서 자신을 속인 것이냐는 뜻이겠지.
눈빛만 보아도, 그녀의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게, 1위를 쟁탈할 마지막 수단이었던 보스 몬스터를 결국 세운이 쓰러트리게 되었으니까.
전투에 참여한 만큼 꽤 많은 공적치를 배분받았겠지만, 결국 튜토리얼 1위는 세운의 차지가 되었다.
“대답할 게 있나? 나도 1위를 원했으니까. 그게 다야.”
거짓말할 필요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아무리 1등에 집착하는 리엘이라 하여도, 실력 차이로 벌어진 일에 괜한 복수심을 드러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세운의 대답에 대꾸하려던 중.
쿠구구구-
절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튜토리얼이 끝나며, 남은 대지마저 바닷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움직이죠. 세운 씨, 저기 타세요.”
“너! 내가 용서하지 않을 거야! 헤헤, 형님! 이쪽으로 오시죠!”
“……돌아가면, 꼭 제대로 해명해야 할 거예요.”
다들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쯤. 체력이 적당히 회복된 세운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곧장 절벽을 향해 걸어갔다.
“세운 씨? 어디로 가시는…….”
“클랜, 잘 부탁해.”
“네?”
“일단 1층으로 올라가 있어. 입구에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그게 더 안전할 테니까.”
“무슨 말이에요! 당연히 세운 씨도 같이 가셔야죠!”
“나는…….”
세운이 드넓은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고민은 길었지만, 선택까지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폭식의 마신과 탐욕의 마신. 두 마신의 권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탑에는 이조차도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한 플레이어와 괴물들이 득실거린다.
그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욱 강한 힘이 필요하다.
“아직 여기에 할 일이 남아서 말이야.”
“그게 무슨……!”
타앗!
누군가 말릴 틈도 없이, 세운이 절벽의 아래로 몸을 던져 넣었다.
튜토리얼의 무너진 바닷속에 잠들어 있는 질투의 마신. 레비아탄을 만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