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72)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74화(72/675)
제 74화
“히든 던전이라고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별거 없네.”
흑해의 여왕, 데아 바칸델 에스트롯샤.
심해에 갇힌 채로, 고통이란 걸 경험한 지 너무나도 오래되었기 때문일까?
‘그라드 제국식 고문법’에 나열된 고문법의 반의반도 시도해 보지 못했는데, 그를 견디지 못한 그녀가 입을 열고 말았다.
덕분에 일반 몬스터들이 사용하는 대형 창고부터 시작해, 지금 서 있는 에스트롯샤의 고유 창고에까지 발을 디딜 수 있었다.
[ 여왕의 하사품 ]분류 : 반지
등급 : C+
설명 : 흑해의 여왕, 데아 바칸델 에스트롯샤가 자신의 비늘을 이용하여 만들어 낸 반지. 자신의 수하에게만 하사하는 증표이다.
능력 : 1. 여왕의 비늘 – 물리 및 마법 방어력이 5% 상승한다.
2. 바다의 여왕 – 물 속성 친화도가 소폭 상승한다.
3. 흑해 증명 – 물속에서의 이동 속도가 5% 상승한다.
C+급 아이템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라한 능력.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장신구형 아이템이었으니까.
보기는 조금 흉할지 몰라도, 효율을 중시한다면 열 개까지도 착용이 가능한 게 바로 이 반지형 아이템이다.
물론, 너무 많은 장신구를 착용한다면 아이템의 능력이 감소하거나 움직임이 불편해지는 등. 다양한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잘그락.
그 외에도, 에스트롯샤의 고유 창고에는 수많은 장신구형 아이템이 존재하였다.
애초에 그녀에게 무기나 방어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벽면에 C급의 무기 몇 개가 장식처럼 걸려 있어 아쉬운 김에 아공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슬슬 창고를 다 둘러보았다고 여기며 발걸음을 돌리려던 중.
“이쪽인가?”
창고의 가장 안쪽에서, 어쩐지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기운을 따라 걷다 보니, 세운의 목에 걸린 목걸이 ‘바다의 분노’가 낮게 떨리며 공명하고 있었다.
앞으로 조금 나아가다 보니, 벽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처음에는 아이템들을 확인하느라 신경 쓰지 않던 곳이었는데, 지금 보니 주변이 조금 수상해 보였다.
“입구?”
거대한 원형의 바위.
세월이 지나 흔적이 거의 사라지긴 했지만, 바위의 아래로 끌린 자국이 미세하게 남아 있었다.
힘을 주어 밀어 보았지만, 바위는 자신이 문이라는 것을 부정하듯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내공을 불어 넣어도 마찬가지.
튜토리얼 첫 번째 장에서 발견한 바위산의 숨겨진 통로는 내공을 통해 어렵지 않게 열었었는데, 이 바위는 인간의 힘으로 열 수 있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웅-
‘바다의 분노’가 공명하는 것을 보아하니, 바위 앞에 무언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짧게 고민을 마친 세운이 창고에서 획득한 장신구 중 자신에게 가장 필요 없어 보이는 반지 하나를 끼고 탐욕의 권능을 개방하였다.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라우린의 반지 ]– 난쟁이의 왕, 라우린이 착용하던 금반지. 이 반지를 착용하는 자는 12인분의 힘을 낼 수 있다고 전해진다.
우득-!
반지가 당장에라도 깨져 나갈 듯이 떨려왔다.
무기가 아닌 장신구에 마몬의 보물을 사용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조금 걱정하였지만, 이 역시 무기와 마찬가지.
아이템의 성능만 받쳐 준다면, 보물의 힘을 충분히 발현할 수 있어 보였다.
‘오랜만에 힘 좀 써볼까?’
바위의 옆에 서서 자세를 잡아 보았다.
반지를 통해서 전해지는 기운 덕분에, 전신에서 힘이 끓어오르는 듯했다.
“흐읍!”
드드득-
힘을 주자마자, 바위가 놀라기라도 한 것처럼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라우린의 반지를 사용하지 않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 벽을 미는 것과 문을 미는 것의 차이로 느껴질 정도였다.
우웅!
‘라우린의 반지’에 깃든 힘이 금 간 반지를 통해 느껴졌다.
자신은 얼마 버티지 못하니, 최대한 빨리 역할을 끝내 달라는 듯하다.
이에 세운은 전신에 내공을 활성화하며, 힘차게 바위를 밀어냈다.
압도적인 근력은 수중이라는 제한적인 환경에서도 바위를 서서히 밀어내고 있었다.
마치 등 뒤에서 열두 명의 사람들이 세운의 등을 밀어주는 것만 같았다.
일반인이 아닌, 세운과 같은 힘을 가진 이들이.
지금 현재 세운의 근력 수치는 150이 넘어가는 상태.
그러니 반지에 깃든 힘을 이에 곱한다면, 세운의 힘까지 합해 총 13인분의 힘. 2000에 가까운 근력 수치를 뽐내게 되는 셈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운의 근력이 어지간한 탑의 상위 계층 플레이어 이상으로 강력하다.
그그그극!
내공의 힘까지 더해지자, 세운의 힘이 갑절로 강해졌다.
그러자 서서히 움직이던 바위에 가속도가 더해지며 뒤에 가려져 있던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푸른색. 눈이 잠길 정도로 진푸른 빛이 흘러나왔다.
목걸이의 공명이 극에 달하고, 반지가 더는 무리라며 균열을 일으키는 순간.
콰앙!
세운이 남은 힘을 모두 끌어내어, 바위를 날려 보냈다.
그 거대하고 무거운 바위는 공처럼 튀어 나가며 바닥을 몇 바퀴나 굴러 벽에 박힌 후에야 움직임을 멈추었다.
쨍-
‘라우린의 반지’가 가진 힘을 견디지 못하고 깨져 나갔다.
세운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푸른빛이 흘러나오는 방으로 들어갔다.
숨겨진 방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넓은 공간.
동굴과 같은 지금까지의 지형과는 달리, 잘 깎아 만든 건축물처럼 매끈한 벽면으로 이루어진 방의 중간에…….
“이건, 레비아탄의 보주(寶珠)?”
회귀하기 전, 세운이 칠대 마신을 조사하며 문헌으로 알게 되었던, 레비아탄의 보물이 보관되어 있었다.
[ 심해의 보석 ]분류 : 보석
등급 : ??
설명 : ??
능력 : ??
보석이 가진 격의 차이 때문인지 그 정보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세운은 알 수 있었다.
“분명해. 문헌에서는 레비아탄이 40층에 강림했을 때 잃어버렸다고 적혀 있었는데.”
아무래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에스트롯샤가 훔쳐둔 듯하다.
마신의 저주를 받고 탑에서 쫓겨난 주제에 어떻게 이것을 챙겨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저주를 풀고 일어났을 때를 대비하여 이곳에 꼭꼭 숨겨 두었겠지.
때문에 그 고문 속에서도 이것의 위치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던 것이고.
‘기대 이상의 수확이야.’
적당히 괜찮은 아이템만 좀 챙겨갈 생각이었는데, 상상도 못 한 아이템을 획득하였다.
마신의 힘이 담긴 성물인 만큼, 세운으로서 활용할 방법이 있는 아이템이 아니었지만.
‘레비아탄과 만났을 때, 조건으로 내걸 수 있겠어.’
잘하면, 협상 카드로써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보주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어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은 세운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등을 돌렸다.
“슬슬 정리할까?”
레비아탄의 위치는 물론, 제법 많은 장신구와 함께 레비아탄의 보주까지. 생각보다 얻은 게 많았다.
이제, 이 고마운 여왕의 목숨을 끝낼 차례다.
* * *
“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어인들의 수장, 샥스.
그가 다른 어인들을 뒤로한 채로, 무너지는 산호초의 잔해 사이를 빠르게 헤엄쳐 나갔다.
길고 날카로운 상어 지느러미에서 하얀 실선이 흘러나오며, 그의 몸이 섬광처럼 빠르게 쏘아졌다.
잔해는 물론, 그 어떤 몬스터도 샥스에게 닿지 못했다. 심지어는, 몬스터의 시선마저도 샥스를 따라가지 못했다.
순식간에 잔해를 모두 뚫고 나간 샥스의 눈에, 여왕의 산란장 입구가 보였다.
그러나.
“설마!”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말았다.
입구 앞에서 쓰러져 있는 대형 몬스터들.
상처를 훑어보니 잔해를 막으며 난 상처도 있었지만, 놈들이 목숨을 잃은 결정적인 상처는 따로 있었다.
가시. 아니, 상대는 인간이라 하였으니 창이 맞겠지.
날카로운 무언가로 인한 찌르기 공격으로 몬스터들이 모두 당한 것이었다.
‘안 돼…….’
손에 들린 이지창을 앞으로 내세우며, 샥스는 더욱 빠른 속도를 냈다.
여왕을 잃게 되면, 그나마 자신들의 터전을 제공해 주던 이 황폐한 바다마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들이 이곳에서라도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탑과의 계약 덕분이었으니까.
‘그분’의 힘이 약해진 지금, 이 바다에서도 쫓겨난다면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슈르륵!
어뢰처럼 빠르게 나아가던 샥스의 눈에 은은한 초록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색욕의 마신, 리리스.
그녀의 저주가 깃든 산란장에서 나는 독특한 색이, 목적지에 다 와 감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헉, 헉…….”
샥스는, 초록빛 알이 가득한 산란장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여왕은 살아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몸에 구멍이 뚫려 있거나 벌겋게 부어오른 등 각종 상처가 나 있긴 하지만, 어쨌든 살아 있었다.
아직은.
“멈추어라!”
샥스가 다급하게 소리 질렀다. 부하들 앞에서 지키고 있었던 품위나 위엄 따위는 까맣게 잊은 채로.
여왕의 앞에서 끝장을 보려는 듯이 창을 들고 있는 인간 때문이었다.
우뚝!
정말이지, 간발의 차이.
조금만 늦었어도, 인간의 창이 여왕의 목숨을 끝낼 뻔했다. 그러나 당장 여왕의 두개골과 창이 맞닿아 있는 상태.
방심할 수는 없었다.
어떤 말로 인간을 회유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인어?”
여왕 앞의 인간.
세운이 깊은 흥미를 보이며 샥스에게 관심을 내비쳤다.
* * *
“원하는 건 다 들어줬지 않느냐! 제발, 목숨만은 살려다오! 제발!”
“뭐, 더 남겨둔 거라도 있어?”
“내 전부를 다 가져가 놓고 그게 무슨 소리더냐!”
“그럼, 살려둘 가치가 없네.”
“이, 이, 이런!”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피부. 거기에 몸 곳곳에 잔혹한 상처가 새겨진 여왕이 기괴한 목소리로 비명을 내질렀다.
자비를 베풀 생각 따위는 없었다. 어차피 그녀 역시 세운의 목숨을 희생하여 자신의 저주를 풀려고 했었으니까.
게다가, 그녀를 없애지 않으면 던전의 공략이 인정되지 않는다.
경험치를 위해서라도, 경험치를 위해서라도. 그녀를 죽일 이유는 충분했다.
창을 뽑아 들고,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내지르려던 순간.
“멈추어라!”
‘음?’
입구 쪽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몬스터의 울부짖음이 아닌, 선명한 발음의 언어.
고개를 돌려보니, 산란장의 입구에 한 어인이 서 있었다.
사람처럼 이족보행을 하고 있지만, 예리하게 솟은 지느러미나 날카로운 송곳니 등은 상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인어?”
분명하다.
회귀 전, 세운이 탑을 오르기 시작할 때쯤에는 이미 멸종했다고 알려진 어인. 인어였다.
그런 인어가,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여왕을 죽이는 것을 막으려는 것일까?
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본능적으로 저 인어가 레비아탄과 무언가 관련이 있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 살려다오! 제발! 이 인간은 미쳤어!”
게다가, 저 인어가 여왕의 목숨을 바라는 지금.
“자기소개부터 시작해 볼까?”
주도권은 세운이 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