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7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75화(73/675)
제 75화
“샥스라고 한다.”
“그게 끝?”
“……현재 어인들의 수장직을 맡고 있다.”
“반가워. 난 튜토리얼의 플레이어, 정세운이라고 해.”
역시, 어인이 맞았다.
문헌에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멸종한 게 아니라 탑 바깥으로 추방되어 있던 듯하다. 아니, 어쩌면 추방이 아닌 스스로 빠져나와 이곳에 정착한 것일지도 모르지.
흑해의 여왕, 에스트롯샤가 층을 지배하던 시절에 어인들은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알려졌으니 말이다.
거기다 플레이어들의 마구잡이식 사냥까지.
어쩌면, 탑 바깥의 이 텅 빈 심해가 그들에게는 더욱 안전하고 편안한 곳일지도.
“일단, 창부터 내리고 말하지.”
“내가 그래야 할 이유부터 알려주는 게 먼저가 아닐까?”
“그건…….”
세운의 질문에, 샥스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그의 입장에서 세운은 철저한 외부인이었기 때문이다.
자기소개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게 진짜인지도 모르고,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현재 탑에서 어인족이 탑 바깥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알려진 상황에서 샥스는 이미 세운을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다.
혹여, 살려 보냈다가 탑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가 플레이어들이 튜토리얼에 개입하여 그들을 찾으러 올 수도 있으니까.
물론,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플레이어에게 한계란 없다.
아주 만약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자신들의 존재는 숨겨야만 했다.
때문에 당장의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중, 세운이 먼저 제안을 내걸었다.
“날 레비아탄에게 데려가 준다면, 죽이지 않도록 하지.”
“……네가 그걸 어떻게?”
“이게 친절하게 알려주더라고.”
세운이 에스트롯샤의 머리를 가볍게 쿡쿡 찌르며 말하였다.
순간 샥스의 날카로운 눈빛이 에스트롯샤에게 꽂혔지만, 그녀는 다급하게 변명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내 꼴을 보아라! 이자가 날 이 꼴로 만들며 고문하였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후우…….”
샥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애초에 그녀가 비밀을 지킬 거라 믿지는 않았지만, 그녀 때문에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비밀이 들켰으니 말이다.
다만, 확인할 게 하나 있었다.
“어째서 그분을 뵈려는 것이지?”
“음…….”
뭐라고 설명하는 게 좋을까.
세운이 잠깐 동안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 보아도 샥스의 경계심이 풀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회귀 전과 후. 길고 긴 플레이어 생활을 돌이켜 본 결과,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눈으로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푹.
“끼이이-”
철퍽.
“뭐 하는 짓이지?”
세운이 에스트롯샤에게 겨누었던 창을 돌려 가까이에 있던 알 하나를 찔렀다.
그 속에서, 아직 신체가 완전히 형성되지 못한 몬스터가 하찮은 신음을 흘리며 빠져나왔다.
알에서 나온 녀석은 단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시작도 못 한 삶을 마무리 지었다.
바로 이어서, 세운은 그 알을 향해 손을 가리키며 권능을 발현하였다.
-‘심해의 알’을 포식하였습니다.
-양분이 극도로 미미하여 아무런 능력치도 흡수할 수 없습니다.
“이, 이건!”
꿀꺽!
평소와 같이 검은 아가리가 생겨나더니 세운이 방금 죽인 몬스터를 알과 함께 통째로 집어삼켰다.
능력치는 오르지 않았지만, 어차피 지금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극도로 부드러운 식감이 마치 젤리와 같다며 더 많은 식사를 원합니다.
“레비아탄을 따르고 있다면, 이 힘이 뭔지 알고 있겠지?”
“폭식의 권능이라니…….”
“아, 그리고.”
세운이 연이어 새로운 권능을 사용하였다.
-탐욕(眞)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탐욕의 권능.
딱히 무언가를 꺼낼 필요도 없었다. 보물창고가 개방되는 이펙트만으로도, 샥스의 눈이 도저히 못 믿겠다는 듯이 반짝거렸으니 말이다.
“타, 탐욕의 권능까지.”
“이걸로 설명은 됐을까?”
“두 마신께서 우리 성좌님을 만나려 하시는 건가? 하지만, 어째서? 성좌님께서 이곳에 떨어질 때도, 그분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으셨는데!”
“미안하지만 너한테 설명해 줄 영역은 아닌지라.”
“……그렇군.”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신의 행동에 뜻 모를 표정을 짓습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현기증이 난다며 얼른 식사를 부탁한다고 애원합니다.
혹시나 자신의 이름을 멋대로 팔아먹는 세운의 행동에 마신들이 화를 내면 어쩌나 싶었지만.
마몬은 암묵적으로 세운을 이해해 주는 눈치였고, 베엘제붑은 늘 그렇듯이 먹이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샥스는, 곧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겠다.”
“성좌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겠어?”
“물론이다. 나 샥스는 레비아탄 님의 이름에 대고 그대를 성소까지 안내하겠다고 약속하겠다.”
“좋아.”
성좌의 이름을 건 맹세. 이것은 단순히 말뿐인 맹세가 아니었다.
맹세를 어긴다면 자신의 성좌에게서 얻은 능력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물론, 다시는 해당 성좌와 계약하지 못하게 된다.
뭐, 탑에는 간덩이가 부어서 성좌의 이름을 걸고 사기를 치는 플레이어들도 있었지만, 보아하니 저 샥스란 어인은 레비아탄에 대한 충성도가 꽤 높은 것 같았다
그러니 레비아탄의 이름에 건 맹세는 가장 최적의 맹세라 볼 수 있었다.
그 맹세를 듣고 나서야 세운은 에스트롯샤의 머리에 대고 있던 창을 떼어 냈다.
그리고 마침내.
“그럼, 바로 가 볼까?”
질투의 마신. 레비아탄을 만나러 갈 때가 되었다.
* * *
쿠궁…….
부서진 산호초의 잔해와 사방에 널린 몬스터의 시체들. 그리고 해류에 갇혀 물을 흐리게 만들고 있는 엄청난 양의 혈액.
그것들을 정리하느라 어인들은 한바탕 고생을 해야만 했다.
물론, 예상했던 치열한 전투가 아닌 단순한 뒤처리였기에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현장을 정리하는 건 하루 이틀로 될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왕인 에스트롯샤와 그녀의 알들이 대부분 무사하다는 것.
수복만 잘한다면, 다음 튜토리얼은 문제없어 보였다.
물론.
-성좌, ‘배고픈 왕자’가 이것 가지고는 감칠맛밖에 안 난다며 입맛을 다십니다.
베엘제붑을 만족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백 개가량의 알을 사용하긴 했다.
그마저도 베엘제붑을 만족시키지는 못했지만.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면서도, 마신의 요구이기에 섣불리 세운을 막지 못하는 샥스를 보고 있자니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른 어인들은 현장을 수습했고, 세운과 샥스는 먼저 던전을 빠져나왔다.
질투의 마신, 레비아탄을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속도를 맞출 테니 잘 따라오시지요.”
세운이 두 마신의 계약자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샥스는 처음과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세운을 대하고 있었다.
다만, 튜토리얼 진행 와중에 바다로 뛰어들었던 세운이기에 과도한 배려는 그리 반갑지 않았다.
레비아탄에 대한 흔적을 찾기 위해 던전을 공략했다지만, 여기서 낭비할 시간은 없었으니까.
“그냥 평상시처럼 가지. 아니, 평상시보다 빠르게.”
“확실히 탐욕의 권능은 대단해 보이지만…….”
샥스가 세운의 몸에 달린 아가미와 지느러미, 물갈퀴를 둘러보았다.
그 모습은 이미 인간보다는 어인에 더욱 가까워 보였고, 움직임 역시 물고기처럼 부드러웠다.
“저희 어인의 헤엄 실력은 모든 수중생물 중에서도 뛰어난 편입니다. 따라오긴 힘드실 겁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알겠습니다.”
촤앗!
샥스가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빠르게 앞으로 쏘아졌다. 땅을 박찬 것처럼, 바닷물을 박차며 속도를 붙인 것이다.
그 속도를 보니, 지금까지 세운을 위해 어지간히도 배려하고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물거품을 일으킨 건 세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촤앗!
머메이드의 아가미와 머맨의 지느러미. 두 개의 보물을 사용한 세운은 이미 어인 그 자체였다.
탐욕의 권능은 단순히 외적인 변화만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해당 보물이 가진 본연의 힘. 즉, 숙련도까지 올려주니 말이다.
물론 그 사용법이 몸에 익을 때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게 정상이지만, 지금까지 다양한 보물을 사용해 온 세운은 이미 보물의 적응에 익숙해졌고.
아가미와 지느러미. 두 개의 보물에 적응할 시간은 충분했다.
‘정말 따라오고 있어……?’
샥스가 자신의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는 세운을 뒤돌아보며 화들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게, 그는 어인들의 수장이다.
상어 형태인 어인 특유의 뛰어난 속도에, 길고 긴 시간 동안 노력해 온 실력. 거기에 마신의 사도가 되며 얻은 능력치까지.
장담하건대, 이 바다의 그 어떤 생물도 자신을 추월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분명, 배려 따위는 집어치우고 최고의 속도로 헤엄치고 있음에도 세운은 그의 뒤를 딱 붙어 따라오고 있었다.
그러자.
‘……질 수는 없지.’
샥스의 눈에서 경쟁심이 깃들었다.
상대는 인간. 자신은 어인.
다른 것도 아니고, 바다에서의 헤엄 실력으로 질 수는 없었다.
촤아앗!
샥스가 지느러미를 날카롭게 세우고 더욱 속도를 냈다.
단순히 육체적인 헤엄이 아니라, 마나를 이용하여 물의 저항을 낮추고 다리에 힘을 붙인다.
자세를 다잡은 그의 모습은, 어인이 아니라 온전한 한 마리의 상어를 보는 듯했다.
다만.
‘이것까지 따라오다니?’
세운은 그런 샥스와 거리를 벌려주지 않았다.
튜토리얼의 다섯 번째 장에서 씨 드레이크 다라칸을 죽이고 얻은 장신구, ‘바다의 분노’.
거기에 붙은 옵션 중 하나인 ‘물속에서의 제약이 대폭 사라진다’ 덕분이었다.
이에 초조함을 느끼던 샥스가 전방을 바라보고는, 정신을 차렸다.
“이 앞은 암초 구역입니다. 속도를 줄이셔야 할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샥스는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았다. 지느러미를 미묘하게 움직이며, 몸의 방향을 급속도로 바꾸었다.
암초에 부딪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속도를 유지하다 보니 어느새 그의 시야에서 세운이 사라져 있었다.
‘내가 너무 흥분했나.’
그제야 정신을 차린 샥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상대는 어디까지나 인간. 암초 구역에서의 빠른 헤엄은 어인들 사이에서도 까다로운 영역이었다.
승리욕에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면, 어딘가 부상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암초 구역이 끝나면, 조금 기다려 드려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암초 구역을 빠져나온 순간, 샥스의 눈앞에 보인 것은…….
“무사해서 다행이네, 이쪽 맞지?”
먼저 암초 구역을 빠져나와 샥스를 기다리고 있는 세운이었다.
길을 모르고 있으니, 먼저 암초 구역을 빠져나와도 앞서가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맞습니다.”
촤아앗!
샥스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지느러미에 힘을 주었다.
일직선 헤엄에서부터, 암초 구역의 헤엄까지. 그 어느 것도 이기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어인으로서의 자긍심이 깨져 나갈 것만 같았다.
‘마지막 구역에서 압도한다!’
어인들이 머무르고 있는 성소에 도착하기 전에는 레비아탄의 질투의 권능으로 이루어진 소용돌이를 지나가야만 한다.
해류가 뒤틀려 있어 헤엄치기가 어려운 것은 물론, 길을 잘못 찾으면 그대로 소용돌이에 빨려들어 가 버린다.
솔직히, 그곳에서는 헤엄이 문제가 아니었다.
조금 비겁한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어인으로서의 자긍심이 깨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잘 따라오시길 바랍니다!”
“저기만 지나면 되는 거지?”
“그렇습니다! 제 뒤만 따라오시면 문제는…….”
샥스가 대답을 하고 있었지만, 세운은 그것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드득.
드드득!
몸에서 리자드맨의 비늘을 일으키더니, 등 뒤에 달려 있던 창을 앞으로 내세우며.
촤아아앗!
“무, 무슨 짓을!”
불나방이 횃불을 향해 날아드는 것처럼, 소용돌이를 향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