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7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77화(74/675)
제 77화
“그나저나, 어째서 이곳을 성소로 만든 거야?”
“혹시, 흑경(黑鯨)이라는 몬스터를 아십니까?”
“아니. 백경은 들어봤어도, 흑경은 처음 듣는데.”
백경.
고래의 모습을 한 몬스터로, 그 크기만 해도 배 한두 척은 가볍게 집어삼킬 정도로 크다. 모든 것을 파괴할 뿐, 정복하지 않는 바다의 폭군이라 불리는 놈이다.
“그와 비슷한 몬스터였습니다. 아니, 포악한 심성이나 덩치는 백경보다 더할 정도였지요.”
“그런 몬스터가 탑의 바깥에 있었다고?”
“탑의 바깥은 철저한 암흑지대였습니다. 시스템의 관리 바깥에서, 오로지 약육강식으로 흘러가는 지옥 같은 곳이었죠.”
“그런 놈을 어떻게 잡은 거지?”
“성좌께서 직접 놈을 상대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흑경의 영역에서 저희가 머물 수 있게 되었고, 감사의 뜻을 담아 흑경의 시체를 그분의 성소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된 거였나.”
레비아탄.
마신이라는 지칭과 달리, 생각보다 착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심해의 여왕에게 고통받던 어인들을 위해 여왕을 죽이고, 함께 탑에서 쫓겨난 것은 물론 직접 흑경을 사냥하고 살 곳을 정해 주었으니 말이다.
“샥스 님, 일찍 돌아오셨군요!”
“다른 어인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은데, 혹시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그리고 그 인간은…….”
성소의 입구에 도착하자 두 명의 어인이 창으로 바닥을 찧으며 샥스를 맞이하였다.
아무래도 성소를 지킬 최소 인원만은 남겨둔 듯했다.
“성좌님을 뵈러 온 손님이다.”
“서, 성좌님을!”
“하지만…… 괜찮겠습니까? 인간입니다! 샥스 님도 탑에 들어온 인간들이 한 짓들을 알지 않습니까?”
“알고 있다. 다만, 이건 성좌님을 위한 선택이다. 비키도록.”
“……알겠습니다.”
“샥스 님의 결정이라면,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요.”
두 경비가 좌우로 한 발짝 물러나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질투의 성소. 즉, 죽은 흑경의 아가리에 들어오니 거짓말처럼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흑경은 빛을 삼키는 특성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죽어서도 마찬가지죠. 불안하시면 저를 잡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괜찮아.”
밤 올빼미의 눈이 활성화되며, 성소 내부의 극히 드문 빛이 세운의 눈에 모여들었다.
샥스가 말한 흑경의 특성 때문인지 그마저도 무척이나 미약했지만, 바닥과 벽면의 희미한 윤곽선을 보일 정도는 되었다.
“……정말 대단하군요. 두 마신님께 선택을 받은 거로도 모자라, 권능을 이리도 잘 다스리시다니 말입니다.”
“권능은 너도 사용할 수 있지 않아?”
“그렇긴 하지만 제가 다룰 수 있는 수준은 극히 미약합니다. 과하게 사용하면 되레 제가 질투의 권능에 당하게 되지요.”
“하긴, 하급 신들의 권능과는 차원이 다르니까.”
성좌의 권능이 가진 힘은 엄청나다. 사도로 임명된다고 하더라도, 권능을 제대로 다루기까지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보통이니까.
그마저도 상급 신의 권능은 플레이어의 몸으로서 온전히 발휘하기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에 비하면, 세운은 어떤가?
탐욕의 권능과 폭식의 권능. 두 권능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다.
‘뭐, 이건 살짝 다른 이유지만.’
세운이 사용하는 탐욕의 권능은 회귀 전의 세상에 남아 있던 주인을 잃은 권능이었다.
그 덕분에,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폭식의 권능은…….
-성좌, ‘배고픈 왕자’가 흑경의 뼈를 푹 고아 먹으면 무슨 맛이 날지 궁금해합니다.
……어디까지나, 세운이 베엘제붑을 잘 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마저도 그 힘을 백 퍼센트 완벽하게 다루고 있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그럼, 이 안에 레비아탄의 본체가 있는 건가?”
“아닙니다. 그분의 크기는 대양을 모두 감쌀 정도로 거대한 탓에, 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서 쉬고 계십니다.”
“그 정도야? 그래도 성좌라면 신체의 크기를 줄이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텐데.”
“크기를 줄이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지속해서 힘의 소모가 요구되지요. 그분은 탑에서 나오며 많은 힘을 잃어버린 탓에, 본래의 모습으로 심해에 잠들어 계십니다.”
레비아탄. 질투의 마신이자, 파멸의 뱀이라고도 불리는 성좌.
문헌에서 보기로, 그 크기는 가히 탑의 외곽을 한 바퀴 둘러 감을 정도로 거대하다고 하였다.
조금 과한 기록이 아닌가 싶었는데, 샥스의 표현대로라면 오히려 문헌에 적힌 내용이 과소평가였던 듯하다.
“그런가. 그럼 지금 가고 있는 곳은?”
“흑경의 심장입니다. 그분과 소통이 허락된 유일한 장소이죠.”
“직접 찾아가는 건?”
“그분이 머무는 심해는 저희 어인들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깊은 곳입니다. 그분을 뵙기도 전에 수압으로 몸이 뭉개질 것입니다.”
“……그 정도인가.”
과연, 칠대 마신 중 하나. 탑에서 쫓겨나 힘 대부분을 잃었다고는 해도 성좌로서 가진 격은 어디 안 가나 보다.
그렇게 샥스와 대화를 나누며 한참을 걸었다.
이동할수록 미묘한 빛마저 사라져, 희미하던 윤곽선이 더욱 희미해졌다.
밖에서 바라본 것만큼, 흑경 내부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극도로 희미하던 윤곽선마저 사라져 가, 샥스가 어떻게 길을 안내하는 중인지 의아한 마음이 들 때쯤.
“저곳입니다.”
두근, 두근-
저 멀리, 어두운 곳에서 희미한 생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결코 들려서는 안 될 소리인 ‘심장 소리’가 들려오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짙은 푸른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게…….”
“흑경의 심장. 성좌께서 살려두신, 흑경의 잔재입니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눈을 반짝입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싱싱한 고래의 염통에 침을 꿀꺽 삼킵니다.
그것은 단순한 심장의 모양이 아니었다. 마몬이 탐내는 이유를 알 만할 정도의 보물.
레비아탄의 힘이 깃들어 있으니, 어엿한 성물(聖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빛을 삼키는 흑경의 뼈조차도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빛만큼은 삼키지 못했다.
심장의 앞에 도달한 순간, 푸른 빛이 주위를 가득 삼키며, 마치 이곳이 흑경의 몸속이 아닌 어딘가 다른 공간인 것 같은 착각을 일게 하였다.
두근, 두근-
사람 머리만 한 크기의 심장.
본래 흑경의 크기를 생각하자면 말도 안 되게 작은 크기지만, 아마 레비아탄의 힘이 깃들어 성물화가 되며 크기가 줄어든 듯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힘만은 조금도 작지 않았다. 오히려, 본래 흑경의 심장조차도 지금의 심장이 가진 힘을 따라오지 못할 것 같았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렇네.”
아름답다. 딱 올바른 표현이었다.
본래라면 마몬이나 베엘제붑이 자신에게 성물을 바치라며 메시지라도 보내올 타이밍이었지만, 둘 다 이것이 레비아탄의 성물이라는 걸 알았기에, 탐을 낼 뿐 섣불리 무언가를 말하지는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심장의 위로 손을 올리면 됩니다.”
두근, 두근!
샥스의 말에 따라 심장에 손을 올리자, 그 뜀박질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손을 올린 것뿐인데, 심장과 손이 연결되어 몸에 무언가가 흘러들어오는 기분이었다.
“다만, 최근 심장의 빛이 많이 줄어든 상태라 연락이 닿을지는…….”
샥스가 불안함에 말을 이어갔지만, 세운에게 더 이상 샥스의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심장에서 타고 들어오는 푸른 기운. 그 기운이 말해 주고 있었다.
질투의 마신, 레비아탄의 존재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운의 뇌리에 장엄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의 권능을 뚫고 들어오다니. 제법 쓸 만한 인간이구나.
귀를 통해 들려오는 게 아니다. 목소리가 날카로운 무언가로 변해 측두엽을 쿡쿡 찔러오는 기분이다.
“큭…….”
감당키 어려운 두통이 몰려왔다.
찔러 들어오는 두통만큼이나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
처음 듣는 것이지만, 알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질투의 마신, 레비아탄의 목소리라는 것을 말이다.
‘견뎌야 한다.’
실체를 마주하는 것도 아니고, 힘을 잃은 성좌의 목소리를 듣는 것뿐인데도 이 정도의 타격이라니.
그야말로 ‘격의 차이’를 알게 해 주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레비아탄을 포섭하는 것은 꼭 필요한 수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세운이 자세를 다잡는 순간.
화아앗!
세운의 오른손등에서 감갈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티로스의 성흔(봉인)이 신의 격(格)에 반응합니다.
-성흔에 봉인되어 있던 성좌의 격이 일부 깨어나 외부의 격에 저항합니다.
-호오?
사티로스의 성흔.
능력 대부분이 봉인되어 있었기에 그 힘을 끌어내려면 최소한 탑의 중층 이상은 올라야 가능할 줄 알았는데, 성흔의 봉인이 생각보다 훨씬 일찍 깨어났다.
성흔에서 흘러나온 검갈빛이 세운의 몸을 감싸자, 심장에서 흘러나오던 푸른빛이 조금 약해지며 두통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이제 고작해야 튜토리얼의 플레이어일 텐데, 성흔을 가지고 있다니. 과연, 그 까마귀와 돼지가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었구나.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뱀의 막말에 미간을 찌푸립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돼지가 어디 있냐며, 자신에게도 나눠주라며 침을 흘립니다.
레비아탄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음에도, 더 이상 두통은 생기지 않았다. 다만, 성흔을 통해 마나와 내공이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대로 견딜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십분 안팎.
그 안에, 레비아탄과의 대화를 마쳐야만 했다.
“튜토리얼의 플레이어, 정세운이라고 합니다.”
-나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을 테니, 소개는 필요 없겠지.
“네.”
-그럼 말해 보아라, 굳이 무모한 도전까지 해 가며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지?
사설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레비아탄도 세운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었다.
샥스의 말에 따르면, 레비아탄이 탑에서 쫓겨나며 힘이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고 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성좌라는 이름답게 흑경을 가볍게 죽일 정도로 강한 존재지만 말이다.
“질투의 마신님께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 왔습니다.”
-협력이라. 그 말은, 나의 사도가 되겠다는 말인가?
“비슷합니다. 탑을 오르기 위해, 마신님의 권능을 얻고 싶습니다.”
-비슷하다니,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저 두 멍청이는 제대로 된 계약도 없이 네놈에게 권능을 내려준 것 같지만, 나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거든.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당장에라도 쪼아버릴 듯이 뱀을 노려봅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저 인간이 요리를 워낙 잘하는 탓에 어쩔 수 없었다며 변명합니다.
과연, 예상했던 반응이다.
솔직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첫 만남에서 사도로서의 계약도 아닌, 그저 권능만 빌려달라니,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당돌한 제안이었으니까.
아마 세운에게 두 마신이 붙어 있지 않았다면,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당장에라도 격을 끌어 올려 세운의 정신을 박살 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이미 예상한 상황이었다.
“대신.”
세운이 아공간 주머니로부터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심해의 보석. 다른 말로, 레비아탄의 보주를 꺼내 들자 머릿속을 파고들던 레비아탄의 목소리에서 흔들림이 느껴졌다.
“마신님과 어인들을, 탑으로 돌려놓겠습니다.”
“……!”
보주를 얻자마자 세운이 가장 먼저 떠올린 제안.
그 제안에, 샥스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답이 들리지 않는 거로 보아 레비아탄 역시 마찬가지의 반응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