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76)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80화(76/675)
제 80화
세운의 손에 뒤랑달이 쥐어진 후, 전투의 방향은 백팔십도로 달라져 있었다.
캉, 캉!
“저 검, 단단해!”
“엄청 튼튼해!”
그녀의 바위 따위는 더 이상 세운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다.
칼날이 상하는 것을 무릅쓰고 간신히 받아치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바위를 쳐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쳐내는 것이 아니라, 바위를 완전히 절단하고 있었다.
바위를 쪼갠 검, 뒤랑달.
이름부터 바위를 쪼갠다는 말이 들어간 만큼, 이 정도로는 칼날이 조금도 상하지 않는다.
그나마 세운이 바위를 막아내는 틈을 이용하여 리엘이 지팡이를 휘둘러 보았지만…….
카앙!
“큿!”
“아파!”
“위험해! 위험해!”
그녀는 뒤랑달과 일격을 교차한 이후로, 위험을 감지하며 크게 뒤로 물러섰다.
‘저 검, 위험해.’
위그드라실의 가지.
그녀가 살던 곳의 세계수와는 다르지만, 위그드라실 역시 한 차원에 우뚝 서 있던 위대한 세계수였다.
그런 나무의 가지가,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몸을 크게 떨며 도망치려 하였다.
정령들이 보호해 주지 않았다면, 가지에 예리한 흠집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 검, 튜토리얼의 보상으로 받은 건가요?”
“그럴 리가. 안 그래도 1등 보상으로 뭐가 나올지 한창 기대하던 참이었는데?”
“그렇다면, 성좌님께 받은 건가요? 튜토리얼에서 그런 검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어요!”
“있던데?”
믿기지 않았다.
튜토리얼의 보상도 아니고, 성좌님께 하사받은 무기도 아니고, 튜토리얼의 진행 도중에 얻을 수 있는 무기 중에 저토록 강한 무기가 있었다니!
공적치를 모으기 위해 열심히 쏘다니며 히든 던전도 몇 개 찾아냈던 그녀였기에, 더욱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못 믿어도 어쩌랴? 당장 눈앞에서 세운의 검이 그녀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지금은 현실을 부정하기보다는, 현실에 순응할 때였다.
‘그래도 내가 더 유리해!’
일격으로 한 번에 제압하는 첫수는 실패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첫수일 뿐이다.
실패했을 때의 대비책은 얼마든지 있다.
세운을 기다리며 입구에 머무르는 동안, 리엘은 세운과의 대련을 떠올리며 다양한 전략을 구상해 두었다.
덕분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세운을 제압해 나갔다.
펑!
우수수- 콰득!
후우우웅!!
정령들이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비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부서진 대지의 틈새로 불꽃이 뿜어져 나온다.
그야말로 천재지변(天災地變).
그 안에서 세운은 뒤랑달을 휘두르며 위태로운 춤을 추고 있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이런 공격을 쉴 새 없이 쏟아낸다면 일 분도 못 버티고 마나가 거덜 나 쓰러졌을 테지만, 그녀는 달랐다.
-풍요의 축복이 당신을 감쌉니다!
성좌, 다섯 번째 날. 미와 사랑의 여신이자, 풍요의 여신인 프레이야에게 하사받은 권능.
마치, 주변의 초목이나 바람과 같은 자연이 모두 모여 그녀에게 힘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
덕분에 그녀의 몸에서는 마나가 끊임없이 솟아올랐고, 그 힘 덕분에 그녀는 이런 강력한 공격을 흔들림 없이 유지할 수 있었다.
축복도 축복이지만, 네 정령을 동시에 활용하면서도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 그녀의 정신력은 정말이지 엄청났다.
동족의 바람을 등에 업은 책임감. 그 감정이 그녀의 정신력을 붙들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어째서 쓰러지지 않는 거지?’
난폭한 천재지변 속에서도, 세운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아까 전부터 알 수 없는 위화감이 그녀의 심장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착각인 걸까?
그렇게 위화감을 견디던 중,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준 것은 그녀의 네 정령이었다.
“우우…….”
“힘이 안 들어가.”
“리엘, 나 너무 힘들어.”
“졸려!”
육체가 없는 정령에게 체력이라는 게 존재할 리가 없었다.
그들은 자연 그 자체. 마나만 공급해 준다면, 밤새도록 힘을 발휘하여도 지치지 않는 존재들이었다.
실제로 리엘이 네 정령과 함께한 길고 긴 시간 중에서 ‘힘들다’라는 말을 들은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이변은 정령들의 불평으로 끝나지 않았다.
‘위력이 약해졌어!’
거침없이 몰아치던 천재지변.
갈라지던 대지의 진동이 멎어가고, 불길이 사그라든다. 날카롭게 휘몰아치던 바람이 산들바람처럼 가볍게 살랑이고 소나기처럼 퍼붓던 비마저 가랑비처럼 가늘어진다.
이제는 ‘공격’이라고 말하기도 초라한 수준.
자연스레, 공격을 막아내던 세운 역시 검을 내리고 있었다.
“이제 내 차례지?”
그렇게 말하는 세운의 다리에는…….
“말도 안 돼!”
정령사가 아니라면 절대 사용할 수 없는 힘, 실프의 바람이 휘날리고 있었다.
* * *
-시기의 눈초리가 ‘리엘 리프레인’을 응시하기 시작합니다.
질투의 권능을 사용했을 때, 처음에는 그 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폭식의 권능처럼 어금니가 나타나지도 않았고, 탐욕의 권능처럼 보물창고가 열리지도 않았으니까.
그저, 등골이 섬뜩할 정도의 ‘눈초리’가 느껴질 뿐,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뭔가 있을 텐데.’
당장 리엘의 공격을 벗어나 그녀에게 검을 휘두를 수도 있지만, 그래서야 질투의 권능을 확인하려는 목표가 무산된다.
때문에 세운은 천재지변 속에서 묵묵하게 그녀의 공격을 받아냈다.
다행히, 뒤랑달이 쥐어진 덕분에 공격을 받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잡아보는 뒤랑달의 그립감을 느껴보며 공격을 받아내던 중.
‘공격이…… 약해졌어?’
거칠게 휘몰아치던 그녀의 공격이 점차 약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것만 본다면 단순히 ‘리엘이 지친 건가’라며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변이 하나 더 있었다.
‘이건 분명, 정령 빙의의 힘이야.’
세운이 자신의 몸에 깃들고 있는 힘을 바라보았다.
다리에서 미약하게 살랑거리고 있는 실프의 바람은 움직임을 빠르게 만들어 주었고, 갑옷 위로 드러난 노움의 힘은 천재지변을 막아주고 있었다.
그 외에도 뒤랑달에는 뜨거운 불길이, 몸의 주변으로는 투명한 물길이 출렁이며 세운의 움직임을 보조해 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바라보며 세운은 질투의 권능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였다.
-시기의 눈초리가 ‘리엘 리프레인’의 정령력을 질투합니다.
-불의 정령이 가진 힘을 앗아옵니다.
-물의 정령이 가진 힘을 앗아옵니다.
…
질투의 권능. 그것의 능력은 ‘적의 힘을 앗아오는 것’이었다.
확실한 설명도 없었고, 처음 사용하는 능력이었기에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남을 부러워하는 감정을 뜻하는 단어인 ‘질투’. 그 이름에 가장 걸맞은 형태의 능력이었다.
‘역시 마신의 권능이란 건가.’
단순히 자신의 힘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힘을 앗아가는 힘. 버프와 디버프가 동시에 적용되는 힘이다.
이런 힘은 강적을 상대할수록 특히 강한 힘을 발할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권능의 적용 대상이 한 명이라는 것이지만.
‘폭식의 권능처럼, 이것도 사용할수록 발전할지도 모르지.’
마신의 권능의 한계가 이 정도일 리가 없었다.
폭식의 권능이 처음에 단일 개체에만 지정되었다가, 나중에는 영역 전부를 지정할 수 있었던 것처럼.
질투의 권능 역시 영역 전체를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적 한 명, 한 명에게 가해지는 디버프의 수준이 미미하더라도, 그 힘이 모이고 모여 세운에게 적용되는 버프의 수치는 엄청날 것이다.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자신의 권능을 알아보는 당신에게 옅은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질투의 권능에 대해 분석을 마치는 순간, 지진이 난 것처럼 울리던 대지의 진동이 잦아들고,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던 비바람이 잠잠해졌다.
시야가 걷히니,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리엘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질투의 권능에 당한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다.
“이제 내 차례지?”
“말도 안 돼!”
말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었다. 이미 질투의 권능에 대해 파악했으니 그녀와의 대련을 더 진행할 필요는 없었다.
캉, 카앙!
비록 정령 빙의를 사용하고 있다지만, 애초에 근접전으로만 보자면 세운이 한 수 위였다.
게다가 지금 그녀의 정령술은 질투의 권능에 의해 크게 약해진 상태였고.
반대로 세운의 몸에는 그녀의 몸에 일렁거리는 것과 비슷한 정령 빙의가 스며들어 있었다.
그녀가 풍요의 축복으로 인해 넘치는 마나로 어떻게든 저항하기 위해 발악해 보았지만…….
“이미 승부는 난 것 같은데?”
그래 봤자 처음의 몇 수가 고작이었다.
뒤랑달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으며 짧지만 알찼던 대련이 끝이 났다.
“……제가 졌어요.”
“잘 생각했어.”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그녀가 뒤통수를 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기에 세운은 뒤랑달을 허리춤에 꽂아 넣었다.
튜토리얼이 끝났음에도 세운을 기다리기 위해 탑에 들어가지 않은 그녀였기에 조금 더 격한 반응이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현실을 수긍한 모습이었다.
“인정할게요. 당신이 저보다 더 강해요. ……1위를 가질 자격이 있어요.”
처음에 그 당당하던 태도는 어디 가고,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먼저 싸우자고 해서 싸워준 것뿐인데, 저렇게 나오니 괜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에는 지지 않을 거예요.”
할 말을 마친 그녀가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다는 말투다.
하지만, 세운의 생각은 달랐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지만, 이번 대련을 통해 그녀에게서 무언가의 가능성을 알아본 것이다.
‘리엘의 목표는 분명 세계수를 심는 거라고 했었지.’
세계수. 하늘과 지상, 그리고 뿌리를 통해 지하를 연결하는 거대한 나무. 위그드라실이나 건목, 신단수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성스러운 나무.
탑의 거의 모든 구역을 탐사한 세운으로서도 발견하지 못한 나무이기도 했다.
‘만약, 탑에 세계수의 힘이 생겨난다면?’
세계수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다.
생명수라고도 불리는 만큼 모든 우주의 기원과 삶의 근원의 상징이다.
그런 나무가 탑에서 자라난다는 것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세계수에서 흘러나오는 힘은 플레이어들을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고, 그 힘은 성좌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세계수의 신화를 기반으로 둔 성좌들은 특히나 더더욱.
신마대전을 막는 것에 이어, 아우터의 공격을 막아내야 하는 세운으로서는 매우 탐나는 존재였다.
그리고…….
“잠깐.”
“……왜 그러시죠?”
“너, ‘영원의 화원’을 찾으러 탑에 들어왔지?”
“그, 그걸 어떻게?”
회귀 전, 리엘 리프레인이 끝까지 찾아내지 못했던, 수많은 문헌에 전설처럼 기록되어 있는 ‘영원의 화원’은…….
“거기까지 내가 안내해 줄 수도 있는데.”
“……!”
세운이 모험가이자 탐험가로서 탑을 전전하던 시절, 영원의 화원은 여정의 지침표를 통해 찾아낸 숨겨진 영역 중 하나였다.
즉, 회귀 전과 회귀 후를 통틀어 플레이어 중에서 유일하게 ‘영원의 화원’의 위치를 알고 있는 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