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8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84화(80/675)
제 84화
디아블로 클랜의 위치는 생각보다 멀었다.
쉼터라는 층의 이름답게 사람들이 몰려 있는 거주지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곳.
헤드릭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헤맸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입니다! 이야, 못 본 사이에 훨씬 더 좋아졌네요! 임시 거주지고 뭐고, 하나의 마을이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거점의 모습은 꽤 본격적이었다.
목책이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로 제대로 세워진 울타리와 황금성의 성문을 본떠 만든 듯한 문. 최소 10m는 되어 보이는 높은 감시탑까지.
세운이 탑에 늦게 들어왔다고는 하나,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을 텐데.
그 시간을 생각했을 때, 놀랍도록 뛰어난 완성도의 거점이었다.
‘그 둘 덕분이겠지.’
한아름과 한다운.
각각 38위의 마왕 할파스와 39위의 마왕 말파스와 계약을 나눈 쌍둥이 자매.
둘의 실력이 분명했다.
아마,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울타리 안의 구조물도 뛰어날 것이다.
“이야, 제가 정식으로 디아블로 클랜에 와 보다니! 영광입니다! 말로만 듣던 그 랭커들을 실물로 볼 수 있다니!”
헤드릭이 이제 슬슬 가라앉기 시작한 볼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무슨 어린아이가 영웅을 만나기 직전처럼 설레는 모습이다.
박정필이 무용담을 얼마나 뿌리고 다녔으면 저런 반응일까?
세운이 다시 한번 녀석을 참교육시켜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이었다.
“호, 혹시 저도 클랜에 들여보낼 줄 수 있으십니까?”
“지금 들어가려고 하잖아.”
“그거 말고, 그, 입단 말입니다! 만약, 받아주시면 저 헤드릭!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너, 클랜 있다며?”
“디아블로 클랜에 들어올 수 있다면 당장 전부 버릴 수 있습니다!”
“탈락.”
“네? 어, 어째서…….”
“자기 클랜을 마음대로 버리는 놈을 어떻게 받아.”
“그렇다고 안 버리면 애초에 못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탈락.”
“……혹시 제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
세운은 헤드릭의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문 앞에 다가섰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경비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높게 올라서 있던 감시탑에서 가장 먼저 손님의 존재를 알아보았다.
“문 앞에 플레이어 두 명 확인했습니다.”
“이 시간에 들어올 사람이 없는데?”
“근데 조금 익숙한…… 어, 어어?”
“뭐야, 왜 그래?”
감시탑까지 거리가 꽤 있었지만, ‘코볼트의 짝귀’로 청력이 높아진 세운의 귀에는 그 작은 목소리까지 전부 들려왔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세운의 정체를 알아챈 듯하다.
곧이어, 청력을 높이지 않아도 들릴 만큼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혀, 혈랑!”
“뭐?”
“혈랑입니다!”
“진짜지? 빨리 서아 씨한테 알려!”
“넵!”
감시탑 위의 플레이어 한 명이 다급하게 사다리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목소리가 워낙 컸던 탓에, 헤드릭 역시 그 단어를 알아듣고 입을 크게 벌리며 세운을 바라보았다.
“혀, 혈랑이라고요? 진짜 혈랑이십니까? 고독한 피의 늑대, 혈랑군주 정세운?!”
“하아…….”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습니다.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당신을 위로합니다.
세운이 이마까지 짚으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며칠 정도 자리를 비웠다고 이런 소문이 퍼졌다니. 바로 옆에서 들으니까 손발이 다 오그라들 지경이었다.
“제가 그런 혈랑과 검을 섞었다니! 오오, 이 손! 아니, 이 뺨은 절대 안 씻겠습니다!”
“좀 닥쳐줄래.”
“넵.”
검을 섞인 무슨. 애초에 검 한 번 부딪친 적도 없는 주제에, 세운과의 전투 기억이 미화된 듯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꺼운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틈이 벌어지며 사람 하나가 들어갈 공간이 생겨났다 싶어 보이자마자.
쿵!
둔탁한 소음과 함께 문이 활짝 열리며, 그 안으로 듬직한 강한철의 모습이 보이고.
“세운 씨!”
유서아가 빠르게 달려와 세운을 껴안았다.
오랜만에 보아서 그런 것보다는, 이유도 안 알려주고 갑작스럽게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 세운에 대한 걱정 때문인 듯했다.
평소라면 바로 내뺐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세운도 가만히 그녀의 포옹을 받아주었다.
그 뒤로 다가온 강한철이 멋쩍은 듯이 뺨을 긁었다.
“오랜만이야.”
세운이 먼저 입을 떼고서야, 유서아가 정신을 차리고 거리를 벌렸다.
곧이어 활짝 열린 문안에서 수십 명의 클랜원이 빠져나와 세운을 반겨주었다.
“혈랑 오빠!”
“우리가 얼마나 기다렸다구!”
“특히 서아 언니가 엄청!”
“아, 아름아!”
“오랜만이다.”
“그거 봐! 내가 꼭 돌아온다고 했잖아!”
조용하던 문 앞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뒤에서는 헤드릭이 눈과 입을 크게 벌리며 어찌할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일단은 들어가서 말하자.”
“근데 저분은?”
“날 여기까지 안내해 줬어. 견학이라도 좀 시켜줘.”
“영광입니다아!”
헤드릭이 우렁찬 대답과 함께, 클랜의 안으로 발을 내밀었다.
* * *
“와아, 이걸 고작 며칠 만에 다 지으신 겁니까? 진짜 대단합니다! 이 정도면 저기 마을이랑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잖아요?”
예상대로, 거점 안의 시설 역시 바깥 못지않게 훌륭했다.
전보다 훨씬 발전한 쌍둥이 자매의 실력에 세운이 놀라는 것은 물론 헤드릭은 대놓고 감탄사를 터트려댔다.
“엣헴! 저기, 배수로 보이죠? 건물만 제대로 지은 게 아니라 배치까지 완벽하게 신경 썼단 말씀!”
“야, 배치는 내가 다 계산한 거잖아!”
“에이, 언니는 쪼잔하게 그런 거로!”
“뭐? 쪼잔? 이게!”
-성좌, ‘검은 새’가 확실히 쪼잔하긴 하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성좌, ‘거대한 새’가 검은 새의 입을 막으며 두 계약자를 말립니다.
덕분에 쌍둥이 자매의 어깨는 지칠 줄 모르고 으쓱거렸다. 가는 길에 열심히 설명을 늘어놓는 것을 보니 자부심이 대단한가 보다.
‘하긴, 이전에는 제대로 된 도구가 없었으니까.’
튜토리얼에서는 공적치 상점에서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장비만으로 건물을 지어야 했다.
재료라고 해 봤자 대부분 나무나 돌이었고, 그것만으로 기본적인 시설들은 물론 투석기까지 만들어 낸 둘의 실력은 이미 놀라운 수준이었다.
‘탑에 들어온 시점부터는, 어지간한 물품은 어떻게든 구할 수 있으니까.’
그 실력에, 좋은 재료까지 더해진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보이다시피 1층만 해도 수집 가능한 재료가 다양한 것은 물론, 마을에서는 상인들이 다양한 물품들을 팔고 있었다.
탑에서 화폐의 개념을 대신하는 공적치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다양한 물품들을 구매할 수 있었다.
“오! 오오! 저건 설마, 말로만 듣던 시해 님의 언데드입니까?”
건물로 들어가기 전, 거점의 한구석에 몬스터의 사체가 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세운 역시 익숙한 몬스터들.
튜토리얼의 다섯 번째 장에서 성을 공격해 왔던 몬스터들의 사체였다.
물론 그중에서도 네임드 몬스터 격의 강한 몬스터들의 사체.
무언가 작업을 해 둔 것인지, 해양 몬스터 특유의 빠른 부패도 보이지 않고 지독한 악취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어 형 몬스터의 빨판을 가르며 안경을 들썩이던 백현이 곧 세운의 존재를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아! 돌아오셨군요. 마중 못 나가서 죄송합니다. 제가 집중을 하면 주위가 눈에 잘 안 들어와서…….”
“괜찮습니다. 이것들은?”
“부족한 실력이긴 하나, 언데드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좋은 생각이군요.”
“하하, 그렇죠? 만티코어 덕에 깨달은 사실인데, 이런 네임드 형 몬스터는 단순히 강한 것만 아니라 하급 언데드를 지휘할 수 있더군요! 물론, 이성적인 지휘라기보다는 본능적인 지휘일 뿐이라 개선점이 필요하긴 하지만…….”
-성좌, ‘죽음을 짓밟는 말’이 계약자의 지식에 즐거운 듯이 투레질을 시작합니다.
화제가 언데드에게로 돌아가자 백현이 신난 듯이 말을 이어갔다.
평소에는 묵묵하게 자기 일만 하는 정적인 사람인데, 언데드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말이 길어지는 것 같았다.
그를 지켜보고 있는 서열 4위의 마왕, 가미긴 역시 백현의 그런 반응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소질이 조금 있어 보여서 가미긴과 연결해 준 것뿐인데, 이렇게 보니 생각 이상으로 잘 맞아 보인다.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하세요. 제가 도울 수 있으면 언제든 도와 드릴 테니까.”
“아닙니다! 세운 씨 덕분에 이렇게 클랜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아, 그래도 혹시 괜찮으시면 나중에 만티코어의 독성에 대해서 한 번 토론할 수 있을까요? 생각보다 산성이 높아 고체까지도 녹일 수 있어 보이는…….”
세운 역시 전직 모험가로서 흥미 있는 얘기였지만 유서아가 나서서 조심스럽게 백현의 말을 끊었다.
아무래도 일단은 세운의 얘기를 듣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그제야 정신을 차린 백현이 멋쩍게 미소 지으며 자리를 비켜섰다.
그렇게 세운이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그는 다시 문어 형 몬스터를 해부하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요리를 하거나 전투를 연습하는 등. 거점에서는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말, 하나의 마을처럼 말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헤드릭은 연신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잘하고 있었네. 고생했어.”
“마지막에 저한테 말했잖아요. 클랜, 잘 부탁한다고.”
누가 뭐래도, 클랜을 이끌고 탑에 들어와 거점을 꾸린 건 유서아였다.
이곳의 모두가 고생했지만, 그중에서도 유서아의 책임감은 다른 사람들의 이상이었다.
어쩐지 짐을 떠넘긴 기분에, 세운이 머쓱하게 뺨을 긁적였다.
“세운 씨가 부탁한 만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제 이것도 익숙해지기도 했구요.”
하긴, 세운이 클랜을 떠났던 게 한두 번인가?
튜토리얼의 첫 번째 장부터 바위산을 향한다며 자리를 비웠고, 그다음에도 히든 피스를 찾겠다며 틈만 나면 자리를 비웠다.
세 번째 장의 오우거 사냥 때도 그랬고, 네 번째 장에서 창고를 털고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튜토리얼의 모든 장에서 자리를 비웠던 듯하다.
‘유서아가 아니었으면, 클랜을 여기까지 이끌고 오진 못했겠지.’
아마, 기껏 해 봐야 열 명이나 스무 명 정도만이 간신히 따라왔지 않을까 싶다.
“여기예요.”
“오, 근사한데?”
“서아 언니가 지낼 곳이니까 제일 크게 지었어요!”
“흐흐, 세운 오빠 방까지 같이 만들어 뒀지요!”
“바보야, 방은 하나만 만들었어야지!”
“앗!”
“……아름아, 다운아?”
“도망쳐어!”
“꺄아!”
쌍둥이 자매가 한바탕 요란을 피우더니 저 멀리 달아났다.
자리에 남은 건 강한철과 유서아뿐.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박정필은?”
거점에 도착하자마자 입구에서 달려 나올 줄 알았는데, 거점을 거의 다 둘러봤는데도, 박정필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세운이 그 이름을 꺼내자, 유서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마, 술 마시러 갔을 거예요.”
“……술?”
고개를 돌려보니 헤드릭이 되지도 않는 휘파람을 불며 딴청을 시작했다.
박정필이 소문을 어디서 퍼트리고 다녔나 했더니, 역시 술이 문제였다.
그래도 튜토리얼 때는 그나마 멀쩡했는데.
교육을 해 줘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다.
“마을에서 술집을 발견한 이후로는 매일 출석하더라구요. 지금쯤이면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유서아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형니이이임!!”
거점의 정문 방향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박정필이 시뻘건 얼굴로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대낮부터 얼마나 마셔댔는지, 이 거리에서도 술 냄새가 느껴질 정도였다.
“드디어 나왔네.”
“크으! 그렇게 절 기다리셨습니까? 형님의 오른팔인 저 박정필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염없이 형님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유서아, 미안한데 우리 얘기하기 전에 정필이랑 잠깐만 시간 좀 가져도 될까?”
당장에라도 세운의 얘기가 듣고 싶었던 유서아였기에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세운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진득한 살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세운이 입꼬리를 올리며 박정필을 향해 다가갔다.
“혀, 형님? 근데 왜 주먹은 쥐고 그러십니까? 하하…….”
“강한철, 잡아.”
“알겠다.”
“어, 어? 놔! 놔, 이거! 형님, 왜 그러십니까? 제가 형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우리, 진득하게 대화 좀 나눠볼까?”
“자, 잘못했습니다! 형니이임!”
그 순간, 뒤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헤드릭은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 세운의 교육이 학교의 수업 같은 것이었다면, 자신이 당한 교육은 1교시 정도.
아니.
-성좌, ‘당나귀 머리의 날치기’가 내 그럴 줄 알았다며 박장대소를 터트립니다.
1교시도 시작하기 전인 조례 시간 같은 느낌이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