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83)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87화(83/675)
제 87화
강한철과의 대련을 마친 후, 세운은 박정필을 데리고 거점을 나와 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선대 플레이어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게 있었기 때문이다.
“이쪽, 맞지?”
“제가 마을에서 구른 짬밥이 몇 갠데!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제법 많은 사람이 보인다.
플레이어와 거주민들. 복장만 눈여겨보아도 두 존재의 차이점을 알아볼 수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튜토리얼의 경계심이 남은 것인지 최소한의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단검 하나쯤은 가지고 다녔으니까.
그에 반해, 거주민들은 평상복을 입은 채 아무 걱정 없는 표정으로 흥얼거리며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안전하다고 알려진 1층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거주민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곳의 거주민들은 게임에 나오는 npc같이 편리한 존재가 아니다.
말 그대로 거주민. 플레이어와 달리 시스템의 가호를 받을 수는 없지만, 엄연히 탑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였다.
한 달 후에 무언가 일이 일어난다면, 당연히 저들 역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너무 멀쩡해.’
당장 보이는 마을의 건물들은 너무나도 멀쩡해 보였다.
사람들 역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아무런 걱정도 없어 보인다.
일 년에 한 번 1층의 플레이어들을 전멸시키는 재앙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저들 역시 피해 가기는 힘들 것이다.
“정필아. 정보 하나만 알아 와라.”
“넵! 말만 하시죠!”
“사람들한테 여기서 일 년에 한 번 일어나는 특별한 일이 없냐고 물어봐. 플레이어가 들어오고 한 달 뒤에 일어나는 일.”
“맡겨만 주시죠! 이미 친해진 아저씨들이 꽤 있으니까 얼마 안 걸릴 겁니다!”
“그래. 길은 내가 알아서 찾아갈게. 이쪽, 맞지?”
“넵!”
말을 마치자마자 박정필이 자리를 떠났다. 가끔 이상한 짓을 하는 것만 빼면, 역시 꽤 쓸 만한 녀석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길을 걷다 보니, 예민한 세운의 청각으로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려왔다.
깡, 깡!
‘거의 다 왔나 보네.’
망치로 쇠를 내려치는 금속음과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도 느껴지는 후끈한 열기.
1층의 마을에 존재한다는 하나뿐인 대장간이었다.
하지만, 대장간이라고 해도 1층의 대장간에서 의뢰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애초에 1층은 평화로운 지역이라 대장간은 무기가 아닌 농기구나 잡기를 만드는 데 특화되어 있었고, 실력도 그리 뛰어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세운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어르신.”
“오, 이게 누구인가! 이것 참, 오랜만이구먼!”
디아블로 클랜의 유일한 대장장이. 고창석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어제 거점을 둘러보며 고창석이 안 보인다 싶었는데, 유서아에게 물어보니 마을의 대장간에 머물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하긴, 지금까지는 제대로 된 대장질이라고 하기 어려웠으니까.’
지금까지 그가 디아블로 클랜의 모든 장비를 책임져왔긴 하지만 쌍둥이 자매와 마찬가지로, 공적치로 산 기본적인 도구만을 이용한 편법일 뿐이었다.
불과 쇠를 다루는 제대로 된 대장질은 겪어오지 못했다.
그나마 28위의 마왕, 베리스와 계약하고 성좌의 힘에 익숙해지며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진짜 대장간에서 망치를 두드리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배웅하러 못 가서 미안하네! 여기도 사용 기간이 정해져 있어서, 시간이 조금 애매했거든.”
“괜찮습니다. 그래도 파티는 참석하시지.”
“젊은이들 노는 데 늙은이가 가서 뭐 하나. 이런 거라도 열심히 해야지.”
“무슨 말이세요. 아름이랑 다운이가 어르신을 얼마나 찾았는데요.”
“그런가? 허허! 그 둘을 보고 있으면 꼭 손녀딸을 보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고창석이 머쓱하게 미소 지으며 소매로 얼굴의 쇳가루를 대충 닦아냈다.
주위를 보니 이미 완성한 작품들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대충 몇 개를 확인해 보니.
[ 가시 갑옷 ]분류 : 갑옷
등급 : C-
설명 : 뛰어난 대장장이가 몬스터의 소재와 질 좋은 철광석을 이용하여 만들어 낸 가시 갑옷.
능력 : 1. 무쇠 – 기본적인 방어력 외에 방어력이 추가로 10% 상승한다.
2. 날카로운 뼈 가시 – 근접 공격을 막아낼 시, 데미지의 10%를 적에게 반사한다.
3. 흉터 – 공격력이 10% 상승한다.
대부분이 C급 아이템.
1층의 플레이어가 만든 아이템이 C급을 넘어가다니, 위층의 세력이 보았다면 침을 흘리며 영입 제안을 해 왔을 실력이다.
게다가, 모든 아이템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능력인 ‘흉터’.
무기는 물론 방어구에도 공통적으로 붙어 있는 이 힘은, 고창석과 계약한 성좌의 상징이 분명했다.
“허허, 알아본 것 같구먼. 우리 성좌께서 주신 힘이라네.”
-성좌, ‘금관을 쓴 병사’가 아직 조금 아쉽긴 하지만, 조금만 더 집중하면 금세 걸작을 만들어 낼 수 있겠다며 콧수염을 매만집니다.
과연 28위의 마왕, 베리스.
공격적인 무기를 만들어 내는 데에 한해서는 올림포스 최고의 대장장이인 헤파이스토스를 뛰어넘는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다.
그가 만들어 둔 장비를 착용한다면, 다른 건 몰라도 공격력 하나는 확실히 펌핑시킬 수 있으리라.
“아직 적응 중이라네. 불을 다루는 건 영 오랜만이라서 말이야.”
“이것도 훌륭한데요.”
“허허, 그렇게 안 띄워줘도 된다네. 그래 봤자 그 검을 따라가기는 한참 멀었으니까.”
고창석이 세운의 허리춤에 달린 검을 바라보았다.
뒤랑달.
비록 아직 봉인이 덜 풀려 B급의 성능을 가지고 있다지만, 고창석은 뒤랑달이 가진 본연의 힘을 알아보고 있었다.
“인사나 나누려고 찾아온 건 아닐 테고. 뭐 때문에 왔나? 수리? 아니면 제작?”
“제작을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흠, 나도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은데 조금 힘들 것 같구먼.”
“어째서죠?”
“아직은 자네가 착용하고 있는 것보다 좋은 장비를 만들기 힘들다네. 재료도 부족하고.”
아쉬운 듯이 고개를 흔드는 고창석.
아무래도 세운의 ‘뒤랑달’과 ‘태조 무황제의 전포’를 보고 그러는 듯하다.
확실히, 고창석의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지금 상황에서 이런 네임드급 장비를 만들어 낼 수는 없겠지.
하지만, 세운의 목적은 처음부터 그게 아니었다.
“재료라면 있습니다.”
“오, 이건?”
“씨 드레이크를 잡고 얻은 소재입니다. 그 외에도, 몬스터들의 소재를 되는대로 모아왔으니 마음껏 쓰셔도 됩니다.”
“어째 우리 클랜이 모은 소재 전부랑 비교해도 더 많은 것 같구먼.”
“씨 드레이크를 잡으러 가는 길에 잡은 몬스터가 꽤 많았거든요.”
세운의 아공간 주머니에서 수많은 몬스터의 소재가 우르르 쏟아졌다.
대부분은 하급 소재였지만, 씨 드레이크를 통해 얻은 비늘이나 송곳니 등은 탑의 하층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고급 소재였다.
“크흠, 괜찮겠나? 이렇게 귀한 소재라면, 조금 더 기다렸다가 더 실력 좋은 대장장이를 만나면 그때 부탁하는 게 나을 것 같네만.”
“그런 대장장이를 언제 만날지도 모르고, 전 어르신의 실력을 믿거든요. 그리고…….”
“그리고?”
“어르신도 탐나지 않으세요? 씨 드레이크의 소재로 장비를 제작할 기회.”
“……크흠흠. 이거, 들켰구먼. 다른 소재들은 대부분 약해빠져서 조금만 잘못해도 부서져 버리거든.”
튜토리얼 때부터 보아온 결과. 고창석은 뼛속부터 완벽한 대장장이였다.
그런 사람이 이런 고급 소재를 눈앞에 두고 가볍게 포기를 할 리가 없었다.
“알겠네. 내 최대한 노력해 보지.”
“감사합니다.”
“장비 유형은?”
“움직임이 편한 경갑옷 세트랑 각종 무기로 부탁드릴게요.”
“각종 무기?”
“네.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하기 위함이니까 만들고 싶으신 거로 마음대로 만들어 주세요.”
“허허, 그렇게 말하는 거 보면 모든 무기의 사용법을 알고 있다는 거구먼. 대단해.”
사실, 상황에 따라 사용한다기보다는 마몬의 보물을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평소에는 뒤랑달을 사용하는 게 제일이지만, 순간적인 공격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무기를 희생하더라도 마몬의 보물을 사용하는 게 제일이었으니까.
“내구력만 좀 신경 써 주세요.”
“걱정하지 말게. 전이었으면 몰라도, 이렇게 제대로 된 시설이 있으면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 낼 수 있으니.”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맡겨만 주게! 질 좋은 소재를 보니 장인의 피가 끓어오르는구먼!”
-성좌, ‘금관을 쓴 병사’가 이 정도 소재면 새로운 가공법을 사용해도 되겠다며 눈을 반짝입니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병사의 실력을 기대합니다.
-성좌, ‘금관을 쓴 병사’가 한 손으로 금관을 붙잡은 채 마신께 허리를 크게 숙입니다.
고창석에게 감사를 표한 후, 장비 제작을 위한 사이즈 측정을 마치고 대장간을 나오려던 중, 그가 처음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대장간의 사용 기간이 정해져 있다고 했었지?’
대장간을 대여하기란 쉽지 않다.
아마 고창석이 이 대장간을 대여할 수 있었던 이유도 1층이 평화로운 덕에 그랬겠지.
다른 층에서도 이런 대장간을 사용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거점에 임시 대장간이라도 만들어야겠는데.’
일단 임시 대장간은 나중 일로 두고, 지금은 그것보다 대여 기간을 늘리는 게 더 중요했다.
적어도 한 달 정도는 고창석이 여유롭게 대장질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대장간의 벽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뒤쪽에서 광석을 정리 중인 사람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혹시, 이 대장간 주인이십니까?”
“그렇소만. 누구쇼?”
“대장간의 대여 기간을 좀 늘리고 싶어 왔습니다.”
“그 늙은이의 아들놈인가?”
뼈가 앙상하게 보일 정도로 왜소한 체격의 남성.
손에 낀 두꺼운 장갑이나 얼굴에 묻은 쇳가루가 아니었다면, 대장장이인 줄도 몰랐을 모습이었다.
망치를 제대로 휘둘렀다면 어느 정도 근육은 붙어 있어야 정상일 텐데.
겉모습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형편없는 실력의 대장장이인지 알 수 있었다.
“한 달 정도만 좀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면 합니다. 광석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부탁드리고요.”
“뭐유? 아니, 대장간 좀 빌려줬더니 누굴 호구로 아나. 나는 뭐 매일 노는 줄 아슈? 나도 최대한 짬 내서 겨우 빌려주고 있는 건디!”
짬을 내기는 무슨.
아까 들렀던 대장간의 안에는 고창석이 만든 작품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아이템을 보지 못했다.
애초에, 대장간에 일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고창석이 사용 기간을 언급했다는 건, 저 남자가 그만큼 비싼 가격을 불렀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탑에서의 모든 거래는 물물교환이나 공적치의 거래로 이루어진다.
“오천 포인트.”
“뭐유? 지금 공적치 가지고 사람을…….”
“한 달이 끝나는 시점에 오천 포인트를 추가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광석은 사용하는 만큼 시세에 맞게 지불하겠습니다.”
총 일만 포인트.
거기에 광석의 비용까지 지불하겠다는 말에, 남자의 눈이 커지며 허리가 곧게 펴졌다.
1층의 거주민인 그에게, 일만 포인트는 반년 치 수익에 가까웠다. 아니, 일거리가 줄어든 요즘이라면 일 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공적치였다.
그런데 거기에 광석값도 제대로 지불해 준다고 하니 눈이 커질 수밖에.
실제로 탑에 막 들어온 지금, 공적치가 초기화된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쥐꼬리만 한 공적치만을 가지고 있었다.
랭킹 1위의 보상을 받은 세운이었기에 10만 포인트 중에서 일만 포인트를 간단하게 지불할 수 있었다.
짧은 고민을 마치고 세운이 큰손임을 이해한 남자는.
“마음껏 사용해 주십쇼! 광석은 얼마든지 캐 올 테니까, 부족한 거라도 있으면 바로 말해 주이소!”
곧바로 곡괭이와 안전모를 착용하며 세운에게 허리를 굽신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