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84)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88화(84/675)
제 88화
마을을 대충 둘러보고 있으니 금방 박정필이 도착하였다.
아는 사람이 있어서 얼마 안 걸릴 거라더니, 시간을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대충 삼십 분도 안 걸린 것 같았다.
자신이 그만큼 노력했다는 것을 티 내듯 허덕이던 녀석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바로 보고를 시작했다.
“형님, 알아보고 왔습니다!”
“그래서, 뭐래?”
“아무 일도 없었답니다!”
“……뭐?”
세운이 인상을 찌푸렸다.
플레이어가 전멸할 정도의 사건이 벌어지는데, 거주민은 그걸 모르고 있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입니다! 플레이어가 들어오고 한 달 후쯤에 플레이어들이 전부 사라지긴 하는데, 자신들은 아는 게 없다던데요?”
“그럴 리가…….”
“오히려 저한테 플레이어들끼리의 약속 같은 게 있는 거 아니었냐고 물어보더라구요. 한 달이라는 시간제한 같은 게 있는 거 아니냐고.”
세운이 여전히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 녀석이 다급하게 말을 이어갔다.
“거주민 세 명한테 똑같은 대답을 들었으니 확실합니다! 아, 근데 사건은 아니고 조금 이상한 일은 있었다고 했습니다.”
“뭔데?”
“플레이어들이 사라지고 난 다음 날에 보면 마을에 전투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전투 흔적이라…….”
“뭐, 땅이 파이고 핏자국이 묻어 있고. 그런? 그런데 거주민들은 아무것도 몰랐다고 합니다.”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냐? 마을 안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아무것도 모를 리가 없잖아.”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세 명이 다 똑같이 말하니, 저야 뭐 그러려니 했죠.”
“음…….”
아직 정보가 부족한 탓에 머리를 굴려 보아도 제대로 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몇 가지 가설이 떠오르긴 했지만, 그마저도 정보가 없으니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역시, 생존자를 찾아내는 수밖에 없나.’
혹시나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생각을 마친 세운이 고개를 돌렸다.
“선대 플레이어의 위치. 알고 있다고 했지?”
“넵! 안 그래도 아까 형님이 부탁하신 거 물어보는 김에, 그 사람 위치도 다시 물어보고 왔습니다!”
“그래, 바로 가자.”
“저, 근데 형님.”
“왜?”
“저희, 마을에 온 김에 배 좀 채우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무슨 말을 하는가 했더니, 생존자 탐색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평소라면 박정필의 말을 가뿐히 무시했을 세운이었지만…….
“……괜찮은 곳 있어?”
“제가 이 마을 맛집은 줄줄이 꿰고 있습니다! 저 박정필이만 믿으십쇼!”
어젯밤의 파티 때문일까? 세운 역시 조금은 긴장이 풀린 듯했다.
* * *
“흐흐, 형님. 어떠셨습니까?”
“괜찮네.”
“그냥 괜찮은 것치고는 눈이 엄청 커지셨던데요?”
확실히, 박정필이 안내해 준 맛집의 수준은 뛰어났다.
고기 스튜와 마늘빵이 함께 나오는 것이었는데, 거점에서 먹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특히, 부드럽게 익혀진 채소의 맛이 기가 막혔다.
아무래도 튜토리얼 중에는 채소보다 고기로 끼니를 때웠기에 채소의 식감이 더욱 새롭게 느껴졌나 보다.
그 아삭한 식감에 반한 덕에.
아삭!
세운은 지금도 꼬치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다.
고기는 물론 다양한 채소가 꽂혀 직화 구이로 익혀진 요리였는데, 고기도 고기지만 채소의 식감이 환상적이었다.
조만간 아공간 창고에 육회 말고 신선한 채소도 좀 채워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 여깁니다!”
꿀꺽.
적당히 구워진 피망을 삼키는 것으로 꼬치구이를 다 먹은 세운의 앞으로 작은 골짜기가 보였다.
중앙으로는 작은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모든 게 바위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여기 어디?”
“그것까진 저도 모릅니다!”
“뭐?”
“애초에 숨어 사는 사람이라서, 이 주위에서 본 적이 있다는 소문 정도뿐이었거든요. 뭐, 대충 걷다 보면 보이지 않겠습니까?”
역시 박정필이랄까. 뭔가 잘해 오는 듯하면서도 2% 아쉬운 정보력이다.
잠시 한숨을 내쉬던 세운이 탐욕의 권능을 발현하였다.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서칭(searching) ]– 무색의 마탑에서 개발한 마법으로 주위의 지형, 생물 등을 탐색할 수 있다.
우웅!
세운의 서클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주위로 마나를 퍼트려 나갔다.
마치 주변을 스캔하듯이 뻗어나간 마나는 지형을 더욱 입체적으로 띄어주었다.
“오오, 역시 형님이십니다! 이건 또 무슨 마법입니까?”
“쉿.”
“흡!”
이전이었다면 세운이 마법을 사용한 것도 못 알아봤을 텐데, 그래도 딴에 탑의 플레이어라고, 세운이 마나를 퍼트리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어떻게 마나 다루는 법을 깨달은 모양이다.
‘음…….’
지금 찾고 있는 건 지형의 형태가 아니었다.
세운은 마나를 더욱 섬세하게 다루며 주변의 ‘흔적’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에 새겨진 다양한 흔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자연스럽게 꺾인 나뭇가지나 딱딱하게 굳은 대변, 바위에 들러붙은 털 뭉치 등.
작은 물줄기만 있을 뿐 야생 동물이 살아가기는 어려운 곳이라 생각했는데, 꽤 많은 동물의 흔적이 존재했다.
아무래도 물을 마시기 위해 찾아온 동물들의 흔적인 듯했다.
‘믿음직하진 못해도, 정보는 사실일 건데.’
아무래도 주변의 지형이 대부분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흔적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바위 위에서는 가장 찾기 쉬운 흔적인 발자국을 발견하기가 힘들었으니까.
그러던 중…….
우웅!
“찾았다.”
“오오!”
서칭 마법의 마나 소모량이 생각보다 컸기에 슬슬 재정비하려던 중에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물줄기 주변의 바위에 얕게 눌어붙어 있는 진흙.
흔적의 절반 이상이 벗겨져 있었지만, 길이나 보폭으로 보았을 때 분명히 사람의 신발 자국이었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지금까지 서칭의 마나 소모량이 컸던 이유는 조사 범위가 넓었던 탓이다. 반대로 이미 찾은 흔적을 토대로 경로만을 살펴본다면, 마나 소모량이 그리 크지 않았다.
“집중해야 하니까 조용히 따라와.”
“넵!”
세운과 박정필이 골짜기의 안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 * *
“형님, 여기 맞는 겁니까?”
“맞아. ……아마도.”
“혀, 형님? 아마도라뇨?”
흔적을 따라 골짜기를 들어온 지도 시간이 꽤 지났다.
문제는, 애초에 처음 찾았던 흔적이 신발에 묻은 진흙 자국이었기에 이제 그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서칭 마법으로도 그럴싸한 흔적이 보이지 않아, 지금은 발자국의 방향과 감에 의존해 나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일단 돌아가는 게 어떻습니까? 클랜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넓게 수색하면 훨씬 빠를 것 같은데.”
“그 사람, 숨어 지낸다며.”
“그러니까 다 같이 찾으면…….”
“이런 골짜기에 숨어지내고 있는데, 사람 수십 명이 골짜기를 들쑤시고 있으면 가만히 있겠냐?”
“아?”
게다가, 만약 상대가 신중한 성격이라면 누군가 골짜기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채고 거주지를 옮길 수도 있었다.
그러니 웬만하면 오늘 안에 생존자를 찾아내는 게 좋았다.
‘그래도 흔적이 너무 없는데…….’
세운이 난항을 겪으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크앙-”
두 갈래로 나누어진 골짜기의 왼쪽 길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박정필은 듣지 못할 정도로 미약한 소리.
이 소리가 생존자와 연관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골짜기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들려온 소리다.
“가자!”
“네, 넵!”
세운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보법까지 밟으며 바위와 바위 사위를 뛰어다니며, 마치 한 마리의 야수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그 와중에 대단한 건…….
“형님, 좀만 천천히 갑시다!”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박정필이 세운의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압도적인 민첩 수치에, 보법까지 밟고 있는 세운을 따라오다니. 아무리 발레포르와 계약을 했다고 해도, 생각 이상의 속도였다.
‘그러고 보니 이놈이 싸우는 걸 본 적이 없네.’
가장 처음에 한 전투법이 미끼였기 때문일까?
그 이후로도 박정필은 몬스터를 도발한 후 유인하거나, 시간을 끌거나, 정찰을 하는 등, 한결같이 몰이꾼으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발레포르의 힘과 저 정도 속도라면 충분히 다른 방법으로 전투를 벌일 수 있을 텐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대련이나 한번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속도를 올리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늑대의 울부짖음이 가까이서 들려왔다.
그와 함께.
“으, 으윽!”
“크릉!”
늑대를 상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마을의 사람들이 굳이 이런 골짜기 안쪽으로 들어올 리는 없기에, 저 사람이 세운이 찾던 생존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높은 바위 하나를 뛰어넘고, 남자를 둘러싸고 있는 스무 마리가량의 늑대를 발견하는 순간, 세운이 허공에서 뒤랑달을 뽑아 들었다.
-내공을 통해 혈랑검법의 제삼 초식, 혈랑습격(血狼襲擊)이 강화됩니다.
세운의 내공이 붉게 번들거리며 늑대의 형상을 이루었다.
1갑자를 달성한 세운의 내공 덕분에, 그 형상은 이전보다 더욱 선명하고 날카로워져 있었다.
늑대들이 살기를 느끼며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콰과과과!!
“깨앵!”
세운이 바닥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에 있던 열 마리의 늑대가 난도질당하며 붕 떠올랐다.
분명 검으로 벤 상처인데, 놈들의 몸에 난 상처는 꼭 맹수에게 물어뜯긴 것처럼 보였다.
곧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하려던 중, 오른손등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사티로스의 성흔이 혈랑전설의 설화에 반응합니다.
-성흔의 첫 번째 능력, ‘공포’가 깨어납니다.
쿠구구구!
세운을 중심으로 붉은 기류가 일렁였다.
압도적인 살기.
이에 남은 늑대들은 동료의 복수도 하지 못하고, 도망도 치지 못한 채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감당할 수 없는 공포에 땅에 머리를 처박거나, 오줌을 지리는 놈들도 있었다.
‘이명 덕분이구나.’
혈랑(血狼)의 이명이 생겨나며 얻게 된 잠재력인 공포. 거기에 사티로스의 성흔까지 힘을 발휘하여 시너지 효과가 일어는 듯하다.
단순히 겁에 질려 도망가게 하는 공포가 아닌, 생존 본능을 포함한 상대의 이지를 빼앗는 압도적인 공포.
회색 망토 늑대의 옵션으로 공포를 활용하던 이전보다 더욱 강력해진 모습이다.
“역시, 형님! 크으, 죽여줍니다!”
보아하니 아군은 대상으로 지정되지 않는 듯하다.
마무리를 짓기 위해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달아오르던 성흔이 거짓말처럼 차갑게 식었다.
‘시간제한이 있는 건가?’
세운으로서도 익숙하지 않은 힘이었기에 생각보다 다루기가 어려웠다.
공포가 풀리자, 늑대들이 정신을 차리고는 다급하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성흔으로 인한 공포는 풀렸으나, 감히 세운에게 덤빌 생각은 못 하겠나 보다.
“형님, 안 따라갈 겁니까?”
“놔둬. 그보다…….”
세운이 검을 다시 허리춤에 걸고, 몸 이곳저곳을 물어뜯겨 피투성이가 되어 버린 남자를 바라보았다.
장비가 워낙 해져 있긴 했지만, 회귀자인 세운의 감이 그가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찾았다.’
세운이 남자에게 손을 내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