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8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93화(89/675)
제 93화
천 마리의 늑대가 덤벼든 것치고 전투는 금방 끝이 났다.
이전이었으면 몰라도, 5서클을 달성한 세운에게 양만 내세우는 적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튜토리얼에 비하면 늑대들의 수준이 조금 더 강했으나, 세운의 마법을 한 번이라도 버티지 못하는 이상, 결과는 똑같았다.
‘뭐, 보스 몬스터가 있어도 결과는 똑같았겠지만.’
세운의 수준은 5서클만이 아니었다. 무려 1갑자의 내공.
이 정도라면, 마법이 통하지 않는 몬스터가 나타나더라도 무공으로 충분히 가볍게 제압할 수 있었다.
거기에 강한철을 선두로 디아블로 클랜 역시 전투에 합세하였으니, 전투가 빨리 끝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폭식의 권능으로 ‘늑대 무리’ 전체를 지정하였습니다.
-폭식의 어금니가 몬스터를 덮쳐옵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간만의 포식에 크게 즐거워합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만약을 대비하여 비상식량을 챙겨둬야겠다며 굳게 다짐합니다.
세운의 힘이 너무 강해진 탓인지, 늑대들이 너무 약했던 탓인지, 이렇게 많은 늑대에게 폭식의 권능을 사용했음에도 오르는 능력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제 막 5서클에 도달하여 텅 빈 다섯 번째 서클에 역시 미미한 마나가 흡수되었을 뿐이다.
지금까지는 기연을 통해 생각보다 빠르게 도달할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다음 단계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그보다, 어찌 된 일이지?’
세운이 폭식의 어금니에 삼켜지는 늑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본래, 1층에는 몬스터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찾으라면야 찾을 수 있지만, 층이 이름부터가 ‘쉼터’인 이곳에, 갑작스레 늑대가 몰려든 것부터가 이상했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닌, 천 마리가.
게다가, 늑대들이 보인 움직임.
‘분명, 조직적이었어.’
튜토리얼에 비해 늑대들의 신체적인 강함은 물론, 지능도 더욱 똑똑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까 보았던 전략적인 움직임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누군가, 늑대들에게 체계적인 명령을 내린 게 분명하다.
문제는 그게 누구인지 전혀 짐작되지 않는다는 사실.
‘잠깐.’
늑대들의 갑작스러운 공격.
그 원인이 될 요소를 고민하던 중, 세운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거점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난 변화. 바로, 세운이 선대 플레이어를 데려온 것이었다.
“세운 씨, 일찍 오셨네요?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들었는데.”
“유서아, 환자는 어디 있지?”
“환자라면 세운 씨가 데려오신 분을 말하는 건가요? 그분이라면 당연히 병동에…….”
“여기 뒷수습 좀 부탁해. 난 환자 좀 확인하러 갈 테니까.”
“네? 잠깐…….”
세운이 다급하게 거점을 향해 내달렸다.
* * *
덜컥!
“클랜장?”
“환자는?”
“저쪽에 누워 있어요. 그런데 벌써 도착한 거예요? 아직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이하늘 역시 방금 전장에서 돌아온 듯이 무장을 벗고 있었다.
그녀가 자리를 비웠으니, 만약 그사이에 정신을 차린 선대 플레이어가 도망을 쳤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 세운이 다급하게 침상의 커튼을 걷었지만.
드르륵!
‘후…….’
선대 플레이어는 어제보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다행히도 최악의 예상은 빗나간 듯하다.
“무슨 일이에요? 설마, 이분 때문에 중간에 돌아오신 거예요?”
“……아냐.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났거든.”
“잘됐네요. 음, 보이는 대로 아직 정신은 못 차렸어요. 상태는 꽤 많이 호전되었지만, 아무래도 신체적인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세운이 먼저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그녀는 환자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세운이 남자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다.
뭐, 설명을 듣지 않아도 남자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딱 보기에도 상처가 많이 아물어 있었으니까.
단 하룻밤이지만,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남자를 간호했는지를 증명해 주고 있었다.
“고마워. 아, 그리고 이거.”
세운이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 있던 약초를 쏟아냈다.
아공간 주머니 안에 있을 때는 체감이 안 됐는데, 밖으로 꺼내 보니 양이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와! 이렇게 많이 채집해 오신 거예요? 정말 감사해요!”
“최대한 쓸 만한 것들로 챙겨오긴 했는데, 부족하면 말해 줘.”
“일단은 이 정도로 충분할 것 같아요.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약초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동산에서 보았던 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역시, 그녀는 천생 치료사인가 보다.
‘일단은 지켜봐야 하나.’
세운이 침상 위의 남자를 내려보았다.
아직 의문점이 많았지만, 결국 남자가 일어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때.
꼬르륵-
세운의 배에서 눈치 없이 배꼽시계의 알림이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정오에 박정필과 식사를 한 이후로는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수련이 끝나자마자 달려온 것은 물론, 도착하자마자 늑대를 상대해야 했으니까.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이하늘이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싸울 때 보면 사람이 아닌 것 같았는데. 이럴 때 보면 사람은 사람이네요.”
“……식당이 어디라고 했었지?”
“따라와요. 마을에서 새로운 식재료를 조달해 왔다고 하니까, 오늘 식사는 더 맛있을 거예요.”
아무래도, 한동안 육포로는 만족하지 못할 것 같았다.
* * *
그 이후, 경계에 신경을 썼으나 늑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흔적을 둘러보아도 이렇다 할 정보는 얻지 못한 터라, 세운은 선대 플레이어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며칠, 회귀 전에 찾아낸 히든 피스를 찾으러 돌아다녀 보았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애초에, 1층은 이름 그대로 ‘쉼터’ 였기에 별다른 히든 피스가 존재하지 않았던 탓이다.
‘반짝이는 동산에 있던 벌레들도 전에는 알지 못했던 거니까.’
그렇다고 해도 기존에 목표였던 4 서클을 뛰어넘어, 5서클을 달성할 수 있었기에, 세운은 나름대로 느긋하게 일상을 즐겼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이것.
챙!
“아직도 모르겠어?”
“죄송해요. 지배라고 해도, 바로 잡히는 이미지가 없어서…….”
“나한테 미안할 게 뭐 있어.”
“혹시, 뭔가 알고 계시면 조금이라도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안 돼.”
“어째서…….”
“잠재력이라는 건 누구나 똑같은 단순한 힘이 아니야. 같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저마다 드러내는 방식이 다르지.”
“그래도 참고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요?”
“스스로 깨닫는 게 제일 중요해. 괜히 남의 방식을 따라가다가는, 오히려 나중에 가서 뼈저리게 후회할 거야.”
유서아와의 대련이었다.
그녀는 아직 광풍의 이명을 획득하며 얻은 잠재력인 ‘지배’를 다루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한철이야 워낙 직관적인 잠재력이었기에 처음부터 곧잘 사용하긴 했지만, 유서아의 경우에는 제법 까다로운 잠재력이었으니까.
세운이 아는 정보가 몇 개 있긴 하지만,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잠재력의 사용법은 결국 자기 자신이 직접 터득하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세운 씨나 한철 씨는 이미 이명을 활용하고 있잖아요?”
“조급해할 필요 없어. 이제 겨우 탑의 1층이니까. 잠재력은커녕, 이명도 얻지 못한 플레이어가 대부분이야.”
“그래도…….”
“그리고 잠재력을 못 사용할 뿐이지 움직임은 많이 좋아졌잖아?”
시간이 여유로웠기에 잦은 대련을 가진 덕분일까? 강한철은 물론이고, 유서아 역시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다.
세운이 별다른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속도만 따진다면, 유서아가 조금 더 앞선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카밀식 쌍검술. 세운 씨가 알려준 검술이 생각보다 저랑 잘 맞더라구요.”
“단검술은?”
“대상이 없어서 실전에서는 못 써 봤지만, 그것도 꽤 익숙해졌어요.”
“좋아.”
-성좌, ‘왕관을 쓴 거미’가 계약자의 현란한 움직임에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한 차례의 대련이 끝나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평소였다면 강한철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 대련을 신청했겠지만, 요즘은 이전에 알려준 ‘태을섬수공’을 수련하느라 바쁜 건지 거점 수련 터 한구석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박정필은?”
“들은 건 없는데, 또 마을에 가지 않았을까요?”
“전투법이나 좀 알려줄까 했더니…….”
“그래도 세운 씨 말은 잘 듣는 것 같더라구요. 마을에 내려가도 술은 안 마신다고 들었어요.”
“당연히 그래야지. 또 마시면, ‘교육’의 강도를 더 높일 거라고 했으니까.”
술도 안 마실 거면서 마을에는 왜 또 내려간 건지.
이 정도면 세운과의 대련을 피하고자 피신을 간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생긴 여유 시간.
반짝이는 동산으로 돌아가 마나라도 더 수련할까 싶던 중, 거점의 정문이 열리고 있었다.
‘박정필이 돌아온 건가?’
그런 생각을 했지만, 곧 이어진 사람들의 반응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녀석이 돌아온 것이라면, 사람들이 저렇게 마중 나가러 달려 나갈 리가 없었으니까.
“와, 아저씨 왔다!”
“오랜만이에요!”
“아이고, 어르신. 올 거면 저희한테 언질이라도 해 주시지, 이 많은 걸 혼자 들고…….”
“허허, 괜찮네. 오히려 밖에 있을 때보다 훨씬 쌩쌩해졌으니.”
관심을 가지며 움직이니, 세운의 눈에 탄탄한 근육질의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등 뒤에는 자기 몸짓만 한 보따리를 들고 있었는데, 그에 비해 당사자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하긴, 근력으로만 따지만 어지간한 플레이어 이상이실 테니까.’
고창석. 디아블로 클랜의 유일한 대장장이였다.
그런데 거점까지는 어쩐 일일까?
분명 마을의 대장간에서 놀이터라도 온 듯이 신나게 망치를 두드리고 계셨는데.
‘설마, 그놈이?’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대장간의 주인. 놈이 세운과의 계약을 어기고 고창석을 쫓아낸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당장 마을로 돌아가 박정필에게 했던 것 이상의 ‘교육’을 해 줘야 하리라.
그렇게 생각하던 중, 고개를 휙휙 돌리며 서성거리던 고창석이 세운을 발견하자마자 신나게 달려왔다.
어찌나 흥이 났는지, 등 뒤의 보따리가 연신 들썩거리며 금속음이 악기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 여기 있었구먼!”
“설마 쫓겨나신 겁니까? 그럼 제가 바로…….”
“음? 쫓겨나다니 무슨 소리인가? 아, 대장간 일은 들었다네. 자네 덕분에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어.”
반응을 보아하니 대장간 주인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설마…….
“허허, 갑자기 이명이라는 게 생겨나더니 작업이 훨씬 빨라지더군. 그 덕에 생각보다 일찍 자네 장비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어.”
“벌써요?”
“내 얼른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바리바리 싸 들고 여기까지 달려왔다네.”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세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세운이 부탁했던 장비의 수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기본적인 방어구 세트는 물론, 종류별로 다양한 무기를 만들어달라고 했으니 못해도 10가지 이상의 장비를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 주문을 고작 며칠 사이에 완성하다니?
게다가.
‘이명이라니…….’
세운이나 강한철, 유서아 등의 전투계와 달리 그는 생산계의 일종인 대장장이다.
그런 생산계의 경우 전투계에 비해 이명을 얻기가 훨씬 힘들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고창석은 겨우 탑의 1층에서 이명을 획득하였다.
세운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의 가능성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안이었다.
“자, 얼른 확인해 보게!”
고창석이 보따리를 내려놓고는 신나게 매듭을 풀어헤쳤다.
곧이어.
-성좌, ‘금관을 쓴 병사’가 이 소재로 이 이상의 장비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어깨를 크게 으쓱거립니다.
풀어진 보따리의 사이로, 고창석이 만들어 낸 장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