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90)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94화(90/675)
제 94화
“일단은 무기부터 보여주지. 자네가 원한대로 다양한 무기들을 종류별로 만들어 봤네.”
보따리를 펼치자 가장 먼저 검과 창, 도끼 같은 무기들이 보였다.
그것들에는 전부 파충류 특유의 비늘이 멋스럽게 박혀 있었는데, 색은 달라도 씨 드레이크의 비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허, 색은 좀 어떤가? 자네랑 파란색은 영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좀 바꿔 보았다네.”
“번거로우셨을 텐데.”
“번거롭긴. 오히려, 다양한 무기들을 만들면서 머리가 깨어나는 기분이라 이토록 재미날 수가 없었네.”
스릉.
세운이 검집 하나를 집어 들고 가볍게 발검을 해 보았다.
질 좋은 쇠를 사용한 것인지, 청명한 금속음이 귀를 간지럽혔다. 이 소리만으로, 검의 상태가 얼마나 좋은지 바로 파악되었다.
분명, 최소 C급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으리라.
[ 용아검(龍牙劍) ]분류 : 장검
등급 : B-
설명 : 뛰어난 장인이 하급 용의 소재와 질 좋은 쇠를 이용하여 만들어낸 장검.
능력 : 1. 용의 송곳니 – 절삭률이 40% 상승한다.
2. 용의 비늘 – 무기의 내구도가 대폭 상승한다.
3. 용의 포효 – 공포와 관련된 능력의 효과가 대폭 상승한다.
4. 흉터 – 공격력이 20% 상승한다.
‘B 등급이라고?’
정보를 확인하자마자 세운의 눈이 크게 떠졌다.
B- 등급이라니. 아무리 튜토리얼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재인 씨 드레이크의 부산물로 만들어 낸 무기라고 하여도, 믿기지 않는 등급이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은 고작 탑의 1층이다.
제아무리 잘난 장인이 만든 아이템이라 하여도, C급도 간당간당한 수준인 게 이곳이었다.
히든 피스를 찾아낸다고 하여도, 이만한 무기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무기가.
“설마, 이것들 전부…….”
“허허, 이번에 성좌께서 새로운 제련법을 하사해 주셨다네. 덕분에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지.”
다른 장비들을 확인해 본 세운의 눈이 더욱 크게 떠졌다.
장검, 단검, 활, 창, 메이스, 도끼 등. 열 가지가 넘어가는 무기들이 전부 B-등급을 가지고 있었다.
C+ 정도의 등급만 되어도 만족할 생각이었는데, 고창석은 세운의 생각 이상의 결과물을 가져와 주었다.
“이것도 한 번 입어보게나. 움직임에 방해되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 쓰긴 했는데, 아무래도 직접 입어보는 게 제일이니 말일세.”
“네, 바로 입어볼게요.”
세운이 입고 있던 붉은 늑대 갑옷을 벗고, 새로운 갑옷을 입어보았다.
씨 드레이크의 가죽을 토대로 만들어진 가죽 갑옷.
거기에 드레이크의 비늘을 외갑으로 둘러싸고, 그사이에 쇠로 만들어진 정교한 이음부가 관절을 연결해 주고 있었다.
적진을 자유롭게 활보하는 세운의 전투 스타일을 고려하여,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방어력을 높인 갑옷이었다.
상갑과 하갑을 모두 착용하고 가볍게 몸을 움직여본 결과.
“……안 입은 것처럼 편하네요. 관절부도 자연스럽고, 움직임에 제약이 전혀 안 느껴져요.”
“허허, 그거 다행이구만! 방어구는 내 특별히 더욱 신경 썼으니 말일세.”
갑옷의 착용성은 놀랍도록 뛰어났다. 성능이 아니라 착용성만 생각하자면, 세운이 회귀 전에 입어본 높은 등급의 갑옷들과 비교해도 더 편할 지경이다.
“잘 어울리시네요.”
언제부터 지켜봤는지, 세운의 모습을 지켜보던 유서아가 싱긋 미소 지었다.
그녀의 장비 역시 고창석이 만들어 준 것이지만, 아무래도 튜토리얼 때 만들어진 것이라 성능이 조금 떨어져 보였다.
이에 고창석에게 남은 소재가 있는지 물어보려던 중, 그가 보따리의 안쪽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우리 리더 오셨구먼. 얼른 입어보게.”
“제, 제 것도 있나요?”
“소재가 제법 많았거든. 특히 가죽은 양이 꽤 남아서 같이 만들어봤다네.”
“감사합니다!”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지 유서아가 방긋 웃으며 달려와 가죽 갑옷을 건네받았다.
세운과 마찬가지로 바로 갑옷을 입어보는 그녀.
튜토리얼 때 미리 사이즈 측정을 해 두었기 때문인지, 그녀의 갑옷 역시 조금의 부자연스러움도 없이 피부처럼 딱 맞아 보였다.
쌍검까지 꺼내 들고 휘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갑옷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다.
“혹시 소재가 더 남았나요?”
“이제 얼마 안 남았다네. 대신, 자네가 말해 준 덕에 대장간 주인이 매일 질 좋은 광석들을 캐 오고 있다네.”
“그럼 혹시 다른 사람들의 장비도…….”
“안 그래도 그럴 참이네. 자네만 괜찮다면, 남은 소재들을 좀 이용해 보려고 하는데 괜찮을까?”
“물론이지요.”
“허허, 이거 또 의욕이 생기는구먼!”
고창석이 소매를 크게 걷어 올렸다.
그러자 소매 안에 숨겨져 있던 구릿빛 근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 보았던 왜소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
어느새 다가온 쌍둥이 자매가 대단하다며 고창석의 근육을 쿡쿡 찔러보고 있었다.
‘좀 길들여 둘까.’
착용성이 뛰어나다지만, 아무래도 장비를 바꾸고 난 이질감이 존재했다. 이질감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실전에서 굴려보는 것.
1층에서 상대할 만한 몬스터를 찾기는 힘드니 유서아나 강한철을 불러 대련을 해야겠다는 생각 중.
“클랜장!”
저 멀리서, 세운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얀 가운을 입고 다급하게 병동을 빠져나오고 있는 그녀. 디아블로 클랜의 치료사, 이하늘이었다.
평소에 늘 환자를 돌보거나 약초를 다루느라 병동에 틀어박혀 있는 그녀가 저렇게 다급하게 달려 나오며 세운을 부르는 이유는 하나였다.
“설마, 일어났어?”
“아뇨, 그건 아닌데…….”
뭐야, 아니었구나.
세운의 얼굴에 눈에 띄게 실망감이 엿보일 때쯤.
“환자를 깨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의 얼굴에서 자신만만한 미소가 지어졌다.
* * *
소식을 듣자마자 세운은 이하늘과 함께 병동으로 달려갔다.
장비를 길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대 플레이어가 가진 정보는 그 이상으로 중요했으니까.
“이게 그 각성제라는 거야?”
“네! 클랜장이 가져다준 약초로 만들어 냈어요. 마르바스 님께서 도움을 주셨거든요!”
-성좌, ‘피투성이 사자’가 기분 좋게 성대를 울리며 자신의 계약자를 대견한 듯이 바라봅니다.
지옥의 대의장, 마르바스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낸 각성제.
그 정도면,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해 보지 않아도 충분히 신용 가능 포션이었다.
“지금 바로 사용해 보지.”
“네! 저도 효과가 궁금했거든요.”
커튼을 치우고, 침상 위에 누워 있는 선대 플레이어의 앞에 섰다.
각성제의 뚜껑이 폭- 하는 소리와 함께 따졌고, 비릿한 냄새가 병상을 가득 채웠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식욕이 팍 떨어지는 냄새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섭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하지만 실제로 먹어보면 맛있을지도 모르겠다며 한 걸음 다가섭니다.
-성좌, ‘고개를 숙인 까마귀’가 저 돼지는 하수구에 떨어져도 배부르게 먹고살 거라며 고개를 젓습니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하수구에도 생각보다 별미가 많다며 경험담을 늘어놓습니다.
-성좌, ‘시기를 둘러싼 뱀’이 혓바닥을 집어넣으며 표정을 찌푸립니다.
정작 세운은 줄 생각도 없는데, 설레발을 치는 베엘제붑을 보고 있자니 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세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하늘이 조심스럽게 각성제가 담긴 유리병을 기울인다.
주룩-
비릿한 냄새만큼이나 거부감이 느껴지는 걸쭉한 움직임, 피처럼 새빨간 빛깔.
대체 어떤 약초를 어떻게 섞었는지 의문이 들쯤, 그녀가 자랑스럽게 설명을 시작했다.
“세운 씨가 가져다준 약초 중에서 ‘피렐의 잎사귀’를 기반으로 만들어 봤어요!”
“……이름까지는 모르는데, 그거 혹시 독초 아니야?”
“맞아요! 생으로 먹으면 극심한 통증이 일어나는 독초인데, 그 통증이 말초신경계를 통해 중추신경계를 활성화할 수 있더라구요.”
“그 말은 통증으로 정신을 깨운다는…….”
“음, 나쁘게 말하면 그렇긴 한데. 어쨌든 결론은 중추신경계 활성화를 통한 각성제예요. 아마, 수면이나 마비 등의 상황에도 통할 거예요.”
통증을 통한 강제 각성제라니.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잔인한 방법이었다.
저런 설명을 이어가면서 호기심에 반짝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꾸물럭거리며 흘러내리던 각성제가 남자의 입에 담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의 몸에서 반응이 나타났다.
“커억!”
숨이 트인 것처럼 신음을 내뱉더니, 발작을 일으키는 남자.
각성제의 원리를 알고 있는 세운이기에 안쓰러움이 느껴졌지만, 이하늘은 초롱거리는 눈빛으로 관찰을 이어가고 있었다.
“위험한 건 아니겠지?”
“통증을 일으킬 뿐이지 부작용은 거의 없어요. ……아마도요.”
“아마도?”
“임상실험을 하기 전까지는 부작용을 완벽하게 알아낼 수 없으니까요.”
남자의 발작이 갈수록 심해졌다.
이하늘이 먼저 예상한 듯이 침상에 남자의 사지를 묶어 두지 않았으면, 침상에서 떨어졌을 게 분명했다.
기껏 살려낸 남자가 죽을까 봐 세운이 회복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그녀가 정상적인 반응이라며 세운을 막아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억!”
여태껏 굳게 감게 있던 남자의 눈이 크게 떠졌다.
통증 때문인지 부작용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흰자에는 붉은 핏줄이 잔뜩 돋아 있었다.
곧이어, 눈을 뜬 남자가 처음으로 말을 내뱉었다.
“사, 살려줘! 으아아악! 제발! 제발!”
“……이거, 진통제라도 줘야 하는 거 아냐?”
“네? 아니에요. 통증은 중추신경계를 활성화하기 위한 첫 자극일 뿐이라 효과가 그리 길지 않아요.”
“그럼, 이건 통증 때문이 아니라는 거야?”
“네. 각성제로 인한 부작용은 아닌 것 같은데…….”
“도망쳐야 해! 느, 늑대! 늑대들로부터 도망가야 해!”
늑대라.
세운은 골짜기에서 마주쳤을 때 늑대들이 남자를 공격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아마 그게 트라우마가 된 게 아닐까 싶었는데, 곧 이어진 남자의 말로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느, 늑대 인간이라니! 다들 도망쳐! 어서! 으아아악!”
늑대 인간.
그 얘기를 듣자마자, 세운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역시, 남자는 한 달 후에 있을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아마, 지금 남자는 일 년 전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동료가 모두 죽어 나가고, 늑대 인간으로부터 공격받던 순간. 그 순간이 끝없이 되풀이되며, 악몽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분명했다.
마몬의 창고에서 쓸 만한 게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오른 손등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이거라면…….’
세운은 씨 드레이크가 드래곤 피어를 내질렀을 때를 떠올렸다.
사티로스의 성흔은 적에게 공포를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적의 공포를 포식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 힘이라면, 남자의 악몽을 집어삼킬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세운이 즉시 남자의 이마에 손바닥을 올렸다.
그러자.
-‘사티로스의 성흔’이 타뷸라의 공포를 집어삼킵니다.
“크아아아악!”
남자의 비명과 함께, 사티로스의 성흔이 타오르는 것처럼 강한 빛을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