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95)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99화(95/675)
제 99화
디아블로 클랜이 거점에서 머문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원래 같았으면 한 달이 지났으니 당장 다음 시련에 도전하라는 시스템의 조언이 떠올랐겠지만, 한 달이 지나도 해당 메시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타뷸라의 늑대가 사라졌으니까.’
아무리 시스템이라 하여도, 게임처럼 사라진 NPC를 복구하는 능력은 없었다.
세운이 기억하는 탑이라면 플레이어들을 이대로 놔둘 것 같지는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제 슬슬 다음 층으로 이동할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이야, 몸에 딱 들어맞는데?”
“역시 어르신 장비는 기가 막힌다니까.”
“이거, 무슨 재질로 만들어진 거야? 엄청 가벼운데.”
다음 층으로 떠나기 전, 클랜원들은 저마다 고창석에게 건네받은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신기한 점은, 클랜원이 착용 중인 장비들이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었다.
“허허, 어차피 어디 팔려고 만든 것도 아니고. 누가 쓸지 훤히 아는데, 기왕이면 자기한테 딱 맞는 거로 만들어 줘야지.”
“하나하나 따로 만들기 귀찮으셨을 텐데요.”
“귀찮긴! 멀쩡한 대장간이 있을 때 제대로 만들어 놔야지. 오히려 요 한 달이 지구에 있을 때보다 훨씬 생기 넘쳤다네!”
바로, 고창석이 저마다의 특성에 맞게 모든 장비를 맞춤형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왼손잡이 전사에게는, 왼손 형 장검을. 민첩함이 장점인 전사에게는 가벼운 경갑옷을.
사이즈는 물론, 그립 형태나 날의 모양까지 완벽하게 맞춰주었다. 거기에 모두 C-등급 이상으로 성능마저 확실하다.
만약 저런 맞춤형 장비를 대장간에서 돈 주고 맞췄다면, 생각 이상으로 많은 공적치가 빠져나갔을 것이다.
아니, 세운 정도가 아니라면 애초에 구입할 공적치가 부족했겠지.
“저희도 준비 끝났어요!”
“이 능력 진짜 편하다, 그렇지?”
-성좌, ‘검은 새’가 당연한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성좌, ‘거대한 새’가 잊은 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라며 주위를 살펴봅니다.
거점의 정리도 끝났다.
아직 거점을 떠나지 않은 플레이어들이 찾아와 작별 인사를 건네주었다.
지난 파티 이후로 꽤 친해졌던 이들이었기에, 다음에 또 보자며 훈훈한 광경이 벌어졌다.
그러는 중에, 정리를 마친 유서아가 세운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런데 원래 1층의 시련은 어떤 거였을까요?”
세운의 활약 덕분에, 디아블로 클랜은 ‘1층 시련 통과 자격’을 획득하였다. 시련을 확인하지도 못하고 2층으로 올라가게 된 것이다.
첫 시련인 만큼,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녀의 질문에, 세운이 가볍게 대답하였다.
“웨이브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솔직히, 시련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기도 하구요.”
짐작에 가까운 대답이었지만, 이건 세운의 경험에 근거한 사실이었다.
1층의 첫 번째 시련. 그것은 튜토리얼의 첫 번째 장과 마찬가지로 몬스터 웨이브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문제는 클랜 전체가 아닌 플레이어 개개인으로서 시련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실력 없이 운 좋게 튜토리얼을 통과한 걸러내기 위한 시련이었지.’
이게 바로 세운이 튜토리얼 당시 클랜원을 강하게 밀어붙였던 이유이기도 했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아무리 열심히 지켜봤자, 그런 이들은 이 첫 번째 시련에서 떨어지게 마련이니까.
‘지금이라면, 이런 게 아니었어도 모두 붙었겠지.’
디아블로 클랜은 튜토리얼을 1위로 통과한 것답게 매우 강력했다.
세운의 활약이 컸다고는 하지만, 그게 아니라도 클랜원 개개인의 힘은 어지간한 1층의 플레이어 이상으로 강했다.
전투계가 아닌 고창석이었어도 첫 번째 시련 정도는 가볍게 통과할 수 있었을 테지.
솔직히 실력이 좋지 않아도, 고창석의 장비 정도면 어지간한 전투는 이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다들 이거 하나씩 받아 가세요! 이건 외상약이고, 이건 해독약이에요.”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하늘 씨.”
이하늘이 사람들에게 약품을 배급하였다.
세운이 반짝이는 동산에서 구해 온 약초로 만들어낸 약병이었다.
이전에 직접 사용해 보았는데, 어지간한 포션의 성능을 따라갈 정도로 훌륭했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클랜챗으로 연락주세요!”
클랜챗. 클랜 채팅의 줄임말이었다.
세운이 따로 포인트를 지불하며 개방한 클랜의 기능이었는데,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대화가 가능한 기능이었다.
무조건 같은 클랜이어야만 한다는 제한이 있었지만, 그것만 뺀다면 세운이 만들어 낸 통신석보다 뛰어난 기능이었다.
대충 정리가 끝나자,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이 유서아에게 몰렸다.
세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아시다시피, 저희가 지금까지 겪어온 건 말 그대로 ‘튜토리얼’이었어요. 탑에 들어온 지금, 시련은 전보다 더 어려워질 테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힘든 튜토리얼을 통과해 왔기에, 모두의 표정에서는 긴장과 함께 자신감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지금까지와 달리 혼자서 시련을 도전하거나, 전혀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닥쳐올지도 몰라요.”
이는 세운과의 대화를 이용한 일종의 조언이었다.
다들 튜토리얼에서 단체로 행동하는 것이 익숙해져 있을 테지만, 탑의 시련은 그렇지 않았다.
단체로 도전하는 층도 있지만, 혼자서, 또는 두 명이서 도전하는 등. 다양한 인원수로 갈라지는 곳도 많았다.
그 경각심을 새겨주기 위해, 그녀가 지금의 대사를 연설에 포함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지만, 저희는 할 수 있어요.”
진지하던 그녀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한껏 긴장하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도 그녀를 따라 밝아졌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저희는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예요.”
“휘유! 멋지다!”
“가자아!”
튜토리얼에서 많은 여정을 거치며 힘들어했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완전한 리더로 거듭나 있었다.
사람들의 환호가 멈춰갈 때쯤, 세운이 그녀의 앞으로 나섰다.
이제 슬슬 쉼터를 떠날 시간이다.
“다들 지금처럼만 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오, 클랜장!”
“혈랑! 혈랑!”
“형님, 저랑 같이 가요오!”
이제는 저 혈랑 소리도 익숙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생각하며, 세운은 가장 먼저 시련 통과권을 사용하였다.
-뛰어난 업적을 통해 1층의 시련을 통과합니다.
-곧바로 2층의 시련에 입장합니다.
파아앗!
밝은 빛과 함께, 세운의 몸이 사라져갔다.
곧이어 유서아를 포함한 클랜원들 역시 빛에 휩싸이며, 디아블로 클랜이 거점에서 완전히 몸을 감추었다.
* * *
“이걸 승급이라고 해야 하나…….”
튜토리얼의 총책임자 튜닝. 그가 거울을 보고 넥타이를 바로잡으며 중얼거렸다.
세운이 튜토리얼을 통과한 이후, 그는 쉴 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굶주린 오우거의 수장, ‘크락 카틀락’이 소환된 것은 물론 황금성이 함락되고 다라칸이 성벽 근처도 오지 못하고 쓰러진 것까지.
하나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사건들을 한데 묶어 탑에 보고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 결과…….
-현 시간부로 플레이어 ‘정세운’을 탑의 이레귤러로 지정한다.
-이에 튜토리얼 총책임자 ‘튜닝’을 특별 전담팀 팀장으로 임명한다.
탑은 튜닝에게 직위 이동을 권하였다.
솔직히, 말이 권한 거지 강제 이동이나 다름없었다. 공적치 랭킹 보상에 관련하여 책임이 있는 튜닝이었기에 거절은 불가능했으니까.
헛기침을 하며 목을 다듬은 튜닝이 탑의 관리소로 첫발을 내밀었다.
잘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직위상으로만 본다면 튜토리얼의 책임자보다는 탑의 팀장급이 더 높은 직위임이 분명했다.
관리소에 들어가자, 다크 서클이 눈 아래로 길게 내려온 남자가 그를 반겨주고 있었다.
“아…… 누구지?”
“튜닝입니다. 오늘부로 플레이어 ‘정세운’의 특별 전담팀 팀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아…… 아! 정세운! 그 빌어먹을!”
“네?”
“아니, 아니네. 그래, 자네가 그놈. 아니, 그 플레이어의 전담이란 말이지.”
세운의 이름을 듣고 욕설을 퍼붓던 남자의 표정이 돌연 밝아졌다.
그러고는 책상 위에 가득하던 서류를 다급하게 쌓기 시작하더니, 그것들을 한데 모아 튜닝에게 건네주었다.
튜닝으로서는 영문도 모른 채 서류를 받아 들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그 플레이어가 1층에 와서 저지른 것들이라네.”
“네?”
“반짝이는 동산의 해충을 제거하고, 5 서클에 달성했다네.”
“여기서도 히든 피스를 찾아낸 모양이군요. 게다가, 5 서클이라니.”
튜닝이 혀를 내둘렀다. 예상은 했지만, 과연 튜토리얼 때와 마찬가지로 탑에서도 큰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걸로 넘어가기에는 서류의 양이 너무 많았다.
이에 남자가 한숨을 내쉬더니 다음 사건을 소개해 주었다.
“자른 자잘한 것들도 많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플레이어가 타뷸라의 늑대를 사냥했다는 거네.”
“타뷸라의 늑대 말입니까? 그건 분명!”
“그래, 플레이어들이 쉼터에서 머무르지 않고 시련에 도전하게 하기 위한 강제 요소였지.”
“그럼 지금 쉼터의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당연히 아직까지 멀쩡히 남아 있네. 안 그래도 이것 때문에 상부에 올라갔다 오는 길이네. 얼른 새로운 강제 요소를 만들라더군.”
“……고생하십니다.”
“하하! 고생은 무슨! 괜찮다네. 그보다…….”
남자가 조용히 다가와 튜닝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이에, 튜닝은 다른 감정보다 소름이 끼칠 정도의 불길함이 가장 먼저 느껴졌다.
“자네가 더 고생이지. 딱 봐도, 그 플레이어가 벌일 일이 한두 개가 아닐 것 같은데 말이야.”
“하하, 저 나름 튜토리얼 총책임자 출신입니다. 업무는 자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혼자서 그 많은 일을 처리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네? 혼자라니요. 전담팀에 직원들이…….”
“자네, 몰랐나? 특별 전담팀은 일인으로 구성되어 있다네.”
철렁.
남자의 말을 들은 튜닝의 가슴이 크게 내려앉았다.
이럴 수가.
어쩐지, 공적치 랭킹 보상을 초과 지급한 건에 대해서 아무런 얘기도 없더니.
“크흠. 말이 좋아 팀장이지, 혼자서 한 팀이 할 일을 전부 떠맡은 거나 다름없지.”
자신을 전담팀에 혼자 배정한 것 자체가 어지간한 벌 이상으로 강한 형별이었다.
튜닝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자, 남자가 튜닝이 들고 있던 서류 위에 한 더미의 서류를 더 올리며 등을 다독여주었다.
“힘내게. 듣기로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성좌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니까 말이야.”
남자가 튜닝이 든 서류 더미 위로 커피 한 캔을 조용히 올려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