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ed the God's Warehouse RAW novel - Chapter (99)
마신의 창고를 털었습니다-103화(99/675)
제 103화
-4층의 시련에 도전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주제 : 동굴 지나기
-시간 제한 : 10시간
-산을 오르는 도중 한 명의 동료와 마주쳤습니다.
-현재 ‘디아블로 클랜’에 소속 중입니다. 마주친 동료는 클랜 내에서 무작위로 정해집니다.
산을 오르다 마주친 동료. 이건 일종의 스토리다.
어째서 이런 구조로 이뤄져 있는 건지는 몰라도, 탑을 오르다 보면 이러한 스토리를 내주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단순히 동료를 마주쳤다 정도지만, 층에 따라서는 시련과 직접적인 관계를 지닌 다양한 스토리를 내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누군가에게 협력하라든가, 동료를 모으라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아마 이 동굴이 산의 정상으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라는 설정이었지.’
아무리 험난한 절벽이 나타난다고 하여도 곧장 산의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세운이 알기로 이번 시련에 분기점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물며 종족에 따라 날개가 있는 플레이어라도 네 번째 층에서는 무조건 동굴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누가 동료로 걸리느냐인데…….
솔직히 시련이야 혼자 해결할 수 있으니 박정필이 걸려서 시끄럽게 굴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굴에 발을 디디자 쨍쨍한 태양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어둠이 들이닥쳤다.
그와 동시에,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거 반갑구먼.”
“어르신.”
“무작위로 선택된 동료가 자네라니, 나도 운이 꽤 좋은 모양이야.”
세운의 옆에서 나타난 플레이어는 바로 디아블로 클랜의 대장장이, 고창석이었다.
이전에 강한철에게 주었던 황금 갑주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풀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하고 있었다.
단단해 보이는 전신 갑주와 꼭 필요한 구멍만 뚫려 있는 투구, 섬세하게 만들어진 철제 신발.
손에는 세운이 돌다리를 찍었을 때 사용한 것과 비슷해 보이는 배틀 해머가 들려 있었는데, 방금 막 손질을 끝낸 것인지 표면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허허, 그렇게 빤히 쳐다보니 좀 민망하구먼. 언젠가 스스로 싸워야 할 일도 있을 것 같아서 준비해 둔 장비라네.”
“잘 어울리십니다. 올라오시는 데 힘들진 않으셨어요?”
“조금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상대할 만하더군. 오히려 날이 더운 게 가장 힘들 정도였다네.”
하긴, 그가 전투 경험은 그리 많지 않더라도 대장장이 일을 하며 근력과 체력은 어지간한 플레이어 이상이었을 거다.
그런 몸으로 저런 장비를 전신에 둘렀으니, 어지간한 몬스터는 그의 몸에 상처도 내기 힘들었을 테지.
저 살벌한 배틀 해머에 당하면 급소고 뭐고 당한 부위가 완전히 찌그러졌을 테니까.
“그나저나, 생각보다 어둡구먼. 조금만 더 들어가면 아예 시야가 안 잡히겠어.”
아직 입구 쪽이라 그런지 빛이 조금 흘러들어 오고 있지만, 안쪽은 벽의 윤곽이 전혀 안 보일 지경이었다.
세운이야 ‘밤 올빼미의 눈’을 통해 시야를 확보하고 있다지만, 다른 플레이어라면 꽤 곤란을 겪을 만한 상황이었다.
이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세운이 새로운 마법을 준비하였다.
-탐욕의 보물창고를 개방하였습니다.
[ 라이트(Light) ]– 백탑의 가장 기초적인 빛 마법으로써 출력에 따라 주변의 시야를 밝히거나 적의 시야를 방해하는 응용법이 존재한다.
“오오.”
세운의 손에서 하얀 빛무리가 떠올랐다.
1 서클 마법답게 마나도 거의 소모하지 않고, 위치만 지정해 두면 손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효율성이 좋은 마법이었다.
빛은 세운의 마나 운용에 따라 머리 위로 떠올라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간 자리에서 멈추었다.
지금부터는 저 빛이 전방에서 먼저 시야를 밝혀 줄 것이다.
“그 마법이라는 건 언제 보아도 신기하구먼.”
“앞으로 나아가죠.”
“굳이 지켜 주려고 안 해도 된다네. 내 몸 정도는 내가 지킬 수 있으니 말이야.”
고창석이 배틀 해머를 꽉 붙들고 세운의 뒤를 따라왔다.
하긴, 하층에 존재하는 몬스터의 공격으로는 그에게 작은 상처도 내기 힘들어 보였다.
기습으로 손톱을 휘둘러봤자, 저 갑옷을 뚫기는커녕 손톱이 부러져 나가고 말 테니까.
“횃불이 있긴 하구먼. 하나 챙길까?”
“횃불보다는 이게 더 효율이 좋으니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허허, 정말 여러모로 편리해 보인단 말이지. 나도 하나쯤 배워 보고 싶어.”
어둠을 뚫고 나가다 급격히 꺾어지는 커브를 돌자 보이는 횃불 하나.
본래라면 벽을 더듬으며 여기까지 이동한 후에 횃불을 들고 이동하는 게 이번 시련의 기본이었다.
그러다 자칫 횃불이 꺼지기라도 하면, 시련의 난이도는 극악으로 치닫는다.
그것이 2층 시련의 도전 인원이 두 명으로 설정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혼자 횃불을 들고 있으면 시련을 진행하는 데 제약이 너무 클 테니 말이다.
“아직 조용하구먼. 앞에 두 시련을 생각하면 여기도 조용히 넘어갈 것 같지는 않은데.”
“츠츠츠츳-”
“저놈들도 양반은 아닌 모양이네요.”
“음?”
“저기요.”
다른 플레이어보다 청각이 강화된 세운에게만 들려오는 소음.
세운의 반응에 고창석이 의아해하자, 라이트를 앞으로 더 이동시키며 밝기를 높였다.
그러자 무언가의 매끄러운 갑각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으, 징그럽구먼.”
“벌레는 안 좋아하시나요?”
“그런 건 아닌데, 저렇게 큰 노래기를 앞에 두면 전부 같은 반응일 걸세. 자네만 빼고 말이야.”
대충 빛에 노출된 다리만 해도 수십 개가 넘어가는 절지동물.
지네와 비슷하지만, 평평한 갑각의 지네와 달리 반원형의 갑각을 토대로 한 둥글둥글한 모습이 특징이었다.
지구에서의 노래기는 그리 공격적인 벌레가 아니겠지만…….
“츠츠츠츳-!”
“조심……!”
푹.
이곳에서는 아니다.
세운을 발견하자마자 번들거리는 다리를 뽐내며 빠르게 바닥을 기어 오는 놈의 갑각 사이에 뒤랑달을 꽂아 넣었다.
갑각이 제아무리 두껍다고 해도, 그 사이는 연약한 연부조직일 뿐이다.
길이만 2m가 넘어가는 노래기의 머리가 끊어졌다.
머리가 사라졌음에도 놀란 듯이 꿈틀거리는 놈의 몸통을 외각으로 차 버렸다.
“……괜한 걱정이었구먼. 이거 내가 도울 필요도 없겠어.”
“아뇨, 조금 도와주셔야겠는데요?”
“무슨 소리인가?”
“방금 그놈 한 마리가 다는 아닌 것 같거든요.”
“츠츠츳-”
“츠츠츠츳-”
수백 개의 다리가 바닥을 기는 스산한 소리와 함께,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매끈거리는 놈들의 갑각이 빛에 번들거리는 장면이 꽤 징그러웠다.
이에 고창석은 질색을 하면서도 투구의 안면을 내려쓰고 배틀 해머를 꽉 붙잡았다.
“기껏 손질해 놨더니, 또 더러워지겠구먼.”
“츠츠츳-!”
지네들이 딱딱한 갑각을 내세우며 달려들었다.
본래 놈들의 목표는 빛. 즉, 횃불을 들고 있는 플레이어다.
때문에 횃불을 지키기 위해 앞의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를 지켜야 하는 구조가 정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세운은 횃불 대신 마법을 이용하여 시야를 밝히고 있었다.
그러니 놈들의 공격은 자연스레 가장 앞에 서 있는 세운을 향하였고.
푹.
서걱-
놈들은 세운의 공격 범위에 들어오는 순간,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머리가 잘려 나갔다.
딱히 무공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단단한 갑각이라고는 하나, 조준이 조금 빗나가도 뒤랑달은 노래기의 갑각 따위는 가뿐히 꿰뚫었으니까.
수가 워낙 많은 터라 몇 마리를 놓쳤지만, 이 역시 상관없었다.
콰직!
“으, 이거 진득한 게 닦아내려면 고생 좀 해야겠어.”
고창석이 해머를 휘두를 때마다, 몬스터의 몸이 거칠게 터져 나갔다.
횃불을 공격하는 것에 이어 단단한 갑각에 어지간한 날붙이가 통하지 않아 꽤 까다로운 몬스터로 불리는 놈들인데, 세운과 고창석의 앞에서는 평범한 벌레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중…… 뒤쪽에 있던 몬스터 하나의 배가 불룩거리더니 입으로 무언가를 뱉어냈다.
콰아아!
입에서 뱉어지자마자 안개처럼 퍼져나가는 황색 기체.
멀리서도 고약한 냄새가 풍겨온다.
회귀 전에 당해 본 공격이었기에 그 정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것은 물론, 최루탄처럼 눈을 뜨기 힘들게 만들고 숨을 들이쉬면 기도가 따끔거리기까지 하는 공격이다.
때문에, 기체가 더 이상 밀려오기 전에 세운이 반대쪽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녹탑의 묘리에 따라 ‘브리즈’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뒤에서부터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황색 기체를 밀어냈다.
갑작스러운 바람에 놀란 놈이 다시 한번 악취를 토해내려 했지만, 그보다 세운의 검이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푹.
결국, 놈의 악취는 목에 걸린 채로 빠져나오지 못했고, 이를 마지막으로 짧았던 전투가 끝났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닦아내고 싶구먼. 손질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겠어.”
“일단은 시련부터 끝내죠.”
“알고 있네. 시간을 최대한 아껴야 그 공적치라는 걸 더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야.”
고창석이 배틀 해머에 붙은 끈적한 체액을 불쾌한 듯이 쳐다보았다.
그가 장비를 아끼는 마음은 알고 있지만, 몬스터를 상대할 때마다 장비를 손질하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좌, ‘배고픈 왕자’가 벌레류는 역시 이 깊고 진한 체액이 일품이라며 맛을 음미합니다.
폭식의 권능을 사용한 후, 다시 길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동굴은 한동안 외길이 유지되었다.
방금 나왔던 노린재 모습의 몬스터를 포함한 다양한 몬스터들이 기습을 해 왔지만, 별 위협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앞으로 쭉쭉 나아가다 보니 처음으로 갈림길이 나타났다.
“흐음, 갈림길이라……. 길을 알겠나? 난 길 찾는 데는 영 재능이 없어서 말이네.”
갈림길의 중간에 선 세운이 눈을 감고 감각에 집중하였다.
청각, 후각, 촉각 등. 각종 보물로 강화된 감각이 주위의 사소한 흔적이나 변화를 모두 잡아낸다.
“아마, 이쪽이 출구겠네요.”
“오오, 대단하구먼. 나는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말이야.”
세운이 오른쪽 길을 가리켰다.
미약한 온도의 차이나 바람의 흐름으로 보았을 때, 왼쪽은 막힌 길이었다.
고창석이 기분 좋게 오른쪽 길로 향하려 했지만, 세운이 그를 막아섰다.
“반대쪽으로 가죠.”
“음? 어째서인가? 자네라면 최단 시간으로 동굴을 빠져나가려고 할 줄 알았는데.”
맞는 말이다.
높은 랭킹을 통한 공적치 획득은 세운으로서도 목표로 삼고 있는 점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랭킹은 단순히 ‘속도’로만 정해지는 게 아니었다.
“저쪽에 뭔가 있을 것 같거든요.”
회귀 전에 찾아냈던 히든 피스.
그때는 열지 못했던 문을 지금이라면 열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