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sing A Hero RAW novel - Chapter 329
EP.329 특별편 5. 막판.
삐…, 삐…, 삐….
지혁은 거슬리는 경고음에 번쩍 눈을 떴다. 지쳐 잠든 레이카도 깜짝 놀라 깨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해가 멀쩡하게 떠 있는 대낮. 분명 어젯밤 제한 구역과는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었음이 분명한데, 벌써 구역이 이곳까지 좁아진 모양이었다.
“이, 씨이…!”
피로에 찌든 레이카는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면서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남녀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그 자리를 벗어나 더욱 깊은 도심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될 건가 보다ㅡ.
레이카를 앞세운 지혁은 사방을 면밀히 관찰하며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녀도 신경을 날 세우고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둘의 귀를 성가시게 만들던 경고음은 곧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은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자, 다 마셔.”
지혁은 레이카에게 조금 남은 물을 모두 건넸다. 그녀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잠깐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그것을 홱 낚아채 모조리 꿀꺽꿀꺽 마셨다.
그가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열심히 싸우려면 힘을 내야 할 거 아냐.”
그러면서 비상 식량도 아낌없이 내놨다. 어차피 오늘 밤을 넘기기 전에 결판이 날 듯하니, 아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보였다.
레이카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깔을 거두지 않았다. 그래놓고 그가 내미는 건 낼름낼름 잘도 받아 먹었다.
흥, 이러면 내 마음이 풀릴 줄 알고? 병신 새끼. 넌 뒤졌다. 내가 가만둘 줄 알아? 씨발놈ㅡ.
적당히 위장을 채운 레이카는 간만에 힘이 좀 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나중을 위해 체력을 최대한 비축해 둬야지.
그렇게 한참을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도심으로 들어가던 그들은 또 둘이서 움직이는 팀을 보았다. …딱 봐도 참가자 무리였다. 상대도 그걸 느꼈는지 경계 태세가 됐다.
“싸우자.”
“…뭐? 굳이 왜? 여기서 싸우면 불리해진다고ㅡ!”
“싫으면 달아나든가. 안 잡을게.”
레이카는 이를 뿌득 씹었다. 마음 같아선 싸우지 않고 물러나고 싶었으나, 그렇다고 또 지혁이 없으면 그녀도 오래 못 버틸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반드시 죽이고 싶은 새끼였으나, 최후의 최후까지는 어쩔 수 없이 함께 행동해야 하는 동지였다.
“…알았다.”
“넌 왼쪽. 난 오른쪽. …자, 이거.”
지혁은 레이카에게 하나 있는 창을 건넸다. 그녀는 손에 쥔 창으로 그의 가슴을 콱 찔러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아직은 성급히 행동할 때는 아니었다. …분명 더 좋은 기회가 올 테니까.
“설마 여기서 뒤지진 않겠지? 그럼 존나게 쪽팔릴 텐데.”
“너나 뒈지지 마, 이 새끼야.”
그는 한 번 능글맞게 웃고는 상대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놈들은 싸울까 말까 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여기서 놈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지혁은 목소리 높여 쩌렁쩌렁 외쳤다.
“야이 벼엉신 새끼들아, 쫄았으면 튀든가. 아니면 여기 와서 내 자지 빨아 볼래?”
이 개새끼, 진짜ㅡ.
레이카는 지혁의 도발 실력에 혀를 찼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소리를 듣고 물러나는 신이 어디 있겠나ㅡ!
그녀의 예상대로 놈들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그들을 향해 접근했다. 둘 모두 무기를 들고 있는 만큼, 신중히 싸울 필요가 있었다.
두 팀은 곧 격돌했다.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레이카의 상대가 날리는 한 방 한 방 모두가 맞았다 하면 치명상이 될 정도로 날카로웠다. …그러나 그녀 또한 무술 솜씨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자신 있지 않나ㅡ!
지혁이 맨주먹으로 상대를 때려눕히고 난 뒤, 레이카도 간신히 상대를 제압했다. 두 참가자는 곧 그들의 손에 처참히 목숨을 잃었다.
“우리 레이카, 참 잘 싸우네.”
그는 그녀에게 다가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쥐고 있던 창을 그에게 넘겼다. …사실 그녀는 여기서 기습적으로 그를 공격하면 과연 성공할지 안 할지 좀 고민했었다.
…성공 확률은 낮다. 더 완벽한 기회가 필요해.
그래도 아직 시간은 있었다. 지금까지 당한 걸 되갚고 또 손상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선, 반드시 보기 좋게 복수를 성공해야 하니까….
싸움을 끝낸 둘은 앉아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는 새에 하늘엔 울긋불긋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곧 도시가 좀비 지옥으로 변할 시간이었다.
“마지막 밤이 될 것 같네. 그치?”
지혁은 그리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레이카는 싸늘하게 외면했다. 둘의 관계가 그리 다정하게 말을 주고 받을 사이는 아니지 않나ㅡ!
“심술 많긴. 그러면 남자한테 인기 없다? 여자가 좀 부드러운 맛이 있어야지.”
“남이사 그러든 말든. 니가 상관할 바 아니거든.”
“남이라니. 자지 보지끼리 진하게 키스한 사인데.”
“개새끼. 존나 저질스러워.”
“이쪽 컨셉이 원래 그래서. …일을 하면 거기에 충실해야지, 안 그래? 그래서 너도 나 존나게 괴롭혔잖아.”
“니가 백 배는 더 나 괴롭혔거든?”
“이제 피해자 행세야? 시작은 당신이 먼저 했다?”
흥, 지랄은.
레이카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팩 돌렸다.
“이제 움직이자.”
둘은 휴식을 끝내고 일어났다. 그는 그녀의 엉덩이를 찰지게 찰싹 때렸다.
“악, 개새꺄ㅡ!”
“힘내라고. 기운 넣어준 거야, 기운.”
그녀는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얼굴에 달려 있는 저 능글맞고 기분 나쁜 웃음이 아주 거슬렸다.
씨발놈. 두고 봐. 개새끼. 진짜 죽여 버릴 거야. 진짜로. 이 수모는 오늘 전부 다 갚을 거야. 개새끼이ㅡ!
“아, 맞다. 우리 섹스하고 갈까?”
“진짜 미쳤어?! 정신 나가도 적당히 나가야지ㅡ!”
“농담이지, 농담. 설마 내가 그러겠어? 아 분위기가 존나게 처져 있으니까 한 번 해 본 소리라고.”
레이카는 진짜로 섹스하는 줄 알고 가슴이 덜컥 했다. 지금 여기서 섹스를 하면 스스로 죽겠다는 것과 다를 게 뭐가 있나ㅡ!
“정신 차렸으면 가자, 어서.”
그녀는 불안한 눈으로 그를 한 번 힐끔 보고 앞장서 걸었다. …한 번 데인 데가 있는 그녀는 꺼림칙한 기운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저놈이 좀 미친 새끼여야지.
곧 해가 사라지고, 건물에서 좀비들이 하나둘 어기적어기적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살벌한 기운은 평소보다 훨씬 더 심했다. 아무래도 이곳은 중심부에 가까워 좀비의 수가 많은 탓이리라.
다행히 오늘 하늘은 맑아 달빛이 환했다. 물론 낮에 비하면 시야가 매우 좁아졌으나, 그래도 횃불이 없는 둘에게 이만한 밝기도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좀비의 수가 확 늘어나서 그런지, 변종 좀비의 수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거기에 요란한 충격음도 이곳 저곳에서 들리고. …틀림없이 돌격 좀비의 소리였다.
둘은 빠른 걸음으로 최대한 좀비가 없는 곳을 찾아 움직였다. 그러나 수가 워낙 많아서 금세 길이 막혔다. 그럴 때마다 둘은 구멍을 뚫어 달아날 길을 만들었다.
변종 좀비 역시 쉴 틈이 없도록 펄쩍펄쩍 뛰어 그들에게 접근했다. 해가 지고 지금까지 두 남녀의 손에 죽은 변종 좀비가 벌써 넷이나 됐다. …그야말로 지금껏 겪지 못했던 물량 공세라고 할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귀에 삐삐ㅡ, 하고 다시 경고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쪽으로 움직였다.
…이거 구역이 빠르게 좁혀진다.
지혁과 레이카는 좀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체력이 부족한 그녀는 벌써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안 돼. 버텨야 돼. 좀 더. 좀 더…!
이제부턴 정신력 싸움이었다. 그녀는 혀끝을 살짝 씹어 비릿한 핏물을 삼켰다. 다시 눈알에 또렷하게 힘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곧 그들의 눈에 넓은 광장 같은 게 보였다. 중앙에는 종 달린 높은 시계탑이 있었다. 둘은 저곳이 바로 최후의 결전지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미 이곳에 도착한 생존자 무리가 제법 많은지, 여기저기서 시끄러운 소음이 마구 들렸다. 개중엔 참가자도 분명 있겠지.
둘은 말없이 그 전장으로 진입했다. 어차피 전투를 피할 수 없을 듯해서. 이 많은 좀비떼 속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으랴. 거기에 제한 구역 때문에 어디에 콕 박혀 숨어 있을 수도 없고.
그때 지혁의 등 뒤에서 창 하나가 쉭, 하고 날아왔다. 그는 몸을 비틀어 그것을 가볍게 피했다. 돌아보니 근육질 여자가 한 명 있었다. 말도 안 하고 창부터 던지는 걸 보니 참가자인 게 분명했다.
…차라리 이쪽이 암살자에 더 어울리는데.
그녀의 모습은 마치 엘릭서를 마시기 전의 황녀를 보는 듯했다. 근육은 보디빌더처럼 무시무시했다. 덩치가 크다고 몸놀림이 둔하지도 않았다.
“어이, 손님 왔다.”
앞장서 걷던 레이카가 뒤돌아보았다. 적은 그때 그 괴물 덩치처럼 무시무시한 외형을 가졌다.
“…싸울 거야?”
“싸워야지.”
지혁이 진하게 웃으며 그리 대답하자, 레이카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강해 보이면 다른 놈들이랑 싸우게 해서 힘을 빼놓는 게 좋을 텐데….
그는 레이카에게 창을 건네주자마자 곧장 근육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도 피하지 않고 맞받아쳤다.
ㅡㅡ!!
둘은 엄청난 속도와 세기로 무시무시한 공격을 주고 받았다. 레이카는 거기에 끼어들기가 꽤 애매했다. 그녀는 싸움에 끼어드는 대신에 주변에 다가오는 좀비들을 처리했다.
오래 이어질 줄 알았던 승부는 의외로 빠르게 결정됐다. 지혁이 아슬아슬하게 근육녀의 주먹을 피하고 그녀의 가슴을 때려 심장을 터트렸다. 쓰러진 그녀의 몸뚱이 위로 좀비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꽤 세네.”
지혁은 좀 지친듯한 모습으로 레이카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속으로 기뻐했다. 그가 지치는 만큼 기습에 성공할 확률도 높아진다는 의미니까.
“창은 들고 있어.”
둘은 곧 광장 안으로 진입했다. 여기저기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좀비와 싸우거나, 아니면 참가자와 싸우거나.
그녀는 그때 보았던 그 괴물놈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려고 눈깔을 이리저리 급하게 돌렸다. 그러나 놈은 그녀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놈이 다른 데에 있겠거니, 하고 적당히 넘겨짚었다.
그 괴물놈만 죽이면, 이놈을 처리한다ㅡ.
레이카는 그리 굳게 마음을 먹으며 들고 있는 창을 꽈악 쥐었다.
곧 그 둘도 치고 박고 싸우는 치열한 전투에 돌입했다.
온 사방에서 쏟아져 오는 좀비들은 겹겹이 쌓여 끝이 보이질 않았다.
바로 지금 이곳에서,
이 좆같은 경기의 우승자가 가려질 듯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형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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