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sing A Hero RAW novel - Chapter 330
330화 특별편 5. 막판.
거침없이 휘몰아치는 쇠몽둥이와 나무창.
그리고 그것을 피하는 지혁의 날쌘 몸놀림.
거기에 조금이라도 빈틈이 생기면 들러붙는 좀비떼까지ㅡ!
지혁은 누군가 죽고 떨어트린 몽둥이를 불끈 쥐고 그것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거기에 걸리는 건 팔다리든 대가리든 가리지 않고 썩은 수박처럼 팡팡 터졌다,
말 그대로 피 튀기는 혈전.
그는 이 치열한 싸움 속에서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느꼈다.
그래, 이거야. 바로 이거.
신이 되고 난 이후로 그는 어딘지 모르게 무언가 살짝 허전하다는 느낌을 지을수가 없었다.
그리고 바로 이 치열한 전투속에서, 그는 그 허전함을 꽉 채울 수 있었다.
결국 고상한 신이 되어도 타고난 천성은 어쩔 수가 없다는 거지ㅡ.
우워어어어ㅡㅡ.
그렇게 한참 싸우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돌격 좀비가 나타나 괴성을 지르며 달려 들었다.
놈은 같은 좀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통 박치기로 으깼다.
생존자들은 거기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산개했다.
문제는 놈이 하나만 있는게 아니라는 거.
변종 좀비들이 우르르 몰려들자 넓은 광장 같은 곳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도가니가 됐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러하지 않을까.
참가자를 둘이나 더 죽인 지혁은 죽어라 창을 휘두르고 있는 레이카를 찾았다.
그녀는 이미 반쯤 탈진 상태나 다름없었다.
참가자 상대하랴 좀비 상대하랴···, 여기서 체력이 남아 있는 게 이상하지.
“나한테 붙어.”
지혁은 레이카와 함께 광장 중앙으로 향했다.
거기엔 마지막 생존자 무리가 몰려드는 좀비들을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물론 거기에도 참가자들은 있었다.
경기와 관계없는 생존자들은 왜 같은 인간들끼리 싸우는지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는 눈치였다.
답답하고 막 화도 나고.
레이카는 이곳에서 잠깐 숨이라도 돌리고 싶었으나, 우승을 바라는 참가자는 그녀를 쉬도록 가만두지 않았다.
ㅡㅡ!!
머리통을 깨부수기 위해 힘껏 휘두른 쇠파이프가 그녀의 창대에 막혔다.
그러나 이미 몇 번 충격을 받았던 나무 창대는 이번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반으로 뚝 깨졌다.
이 씨발···!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지혁이 나타나 쇠파이프 공격을 막았다.
레이카는 안도의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부러진 창을 들고 상대방에게 득달같이 달려가 놈의 목줄기에 창을 콱 틀어박혔다.
“퀘륵···!”
놈은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피거품을 부글부글 게워내다가 죽었다.
그러나 잠깐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좀비떼가 덤볐다.
레이카는 놈이 떨어트린 쇠파이프를 쥐고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변종 좀비의 대가리를 후려갈겼다.
이제는 형(形)이고 깨달음이고 그런 고상한 이론 따윈 없었다.
그녀는 되는 대로 무기를 막 휘둘렀다.
하악 하악 하악.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때, 다시 돌격 좀비가 워어어, 하고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시계탑 근처에 모여 있던 생존자 무리가 놈의 돌격 한 번에 다시 우르르 흩어졌다.
레이카는 다른 생각 따윈 없었다.
이 순간만큼은 지혁에 대한 복수마저 잊었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반드시 우승한다ㅡ.
그 일념 하나로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냈다.
그러기 위해서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어차피 남아 있는 참가자들도 다 그녀처럼 지친 상태였으므로 상대 못 할 정돈 아니었다.
흩어진 생존자들은 더 빠르게 죽어나갔다.
레이카의 눈에도 이제 주변에 지혁 말고는 살아 있는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그 괴물놈도 이 지옥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죽은 모양이리라.
사방을 이리 둘러봐도 그 큰 덩치가 보이질 않으니, 그리 생각할 수 밖에 없지.
“시계탑으로 올라가ㅡ!”
지혁은 그리 외쳤다.
레이카는 그 얘길 듣자마자 시계탑의 벽을 엉금엉금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바로 뒤에 그가 따라붙었다.
원래라면 이 정도 벽타기는 거뜬했을 테지만, 이미 힘이 다 빠진 팔은 울퉁불퉁한 곳을 잡을 때마다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나 여기서 이걸 놓친다면 진짜로 죽겠지.
그녀는 정말 마지막 모든 힘을 다 짜냈다.
그렇게 간신히 시계탑 끄트머리의 좁은 공간에 올라선 레이카는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변종 좀비를 쇠파이프로 마구 때리며 버텼다.
그녀는 이곳 광장으로 이어지는 온 사방이 좀비떼로 빼곡 찬 것을 보며 아득한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마치 새해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몰려든 인파 같았다.
도로와 인도는 그야말로 발디딜 틈도 없이 가득찼다.
거기에 수십 수백 이상의 변종 좀비들까지···!
설령 체력이 멀쩡하다고 해도, 이곳에 있으면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은 자명해 보였다.
그녀는 아래 쪽에 겨우 몇 명 살아 있는 참가자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그들도 오래 버티지 못할 듯했다.
기껏해야 2, 3분.
일부는 그녀처럼 시계탑에 오르려고 시도했으나, 체력이 다 빠졌는지 올라오다가 결국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위로 좀비들이 개미뗴처럼 덮쳐 순식간에 놈을 뜯어먹었다.
됐다, 이겼다···!
내가 이겼어.
내가 우승했다고ㅡ!
끝까지 살아남았단 말이야ㅡ!
이미 생존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자들이 이 지옥의 틈바구니에서 이떻게 살아남겠나.
꾸역꾸역 시계탑을 올라오는 지혁도 이제 레이카의 발밑 공간에 손이 턱 닿았다.
그는 그녀를 올려다보면서 도와 달라고 소리쳤다.
“레이카, 어서ㅡ!”
몸을 지탱하는 두 팔은 이미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레이카는 아주 잠깐 주저했으나, 곧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이놈을 죽여야 했다.
거기에 상대는 그녀를 끔찍하게 농락한 원수가 아닌가ㅡ!
그녀는 그의 손가락을 발로 지그시 밟았다.
악ㅡ.
그가 고통을 호소하며 불안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레이카, 왜 이래. 제발 살려줘. 제발···!”
“닥쳐, 이 새끼야. ···개새끼. 언제나 네 세상인 줄 알았지?”
레이카는 비릿하게 웃었다.
그러자 지혁이 고개를 마구 흔들며 호소했다.
“누가 우승하더라도···, 나누면 되잖아. 우리 함께 했잖아. 공평하게 나누자, 응? 나도 너 도왔잖아ㅡ!”
“도와? 씨발 새끼···! 넌 날 모욕하고 능욕했어. 흥, 개새끼, 꼴좋다. ···우승은 나야. 잘가라, 새꺄.”
그녀는 손을 밟은 발을 마치 꽁초에 불끄듯 빙글빙글 비볐다.
“후회···할거야. 난 분명, 기회를 줬어.”
지혁이 그리 말하자, 순간 레이카의 가슴이 뜨끔했다.
그러나 이미 우승이 코앞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픽 코웃음을 쳤다.
“후회는 무슨. 빨리···떨어져, 이 새끼야ㅡ!”
손을 짓눌러도 쉽게 떨어지지 않자 그녀는 발로 그것을 쾅쾅 밟기 시작했다.
씨발, 빨리 떨어져 이 거머리 같은 새끼야.
내가 우승해야 돼.
내가, 우승해야 한다고ㅡ!
이미 시계탑 아래는 좀비떼가 깔리고 깔려 그 높이가 점점 올라오고 있었다.
“빨리이, 떨어져어어ㅡㅡ!!”
결국 지혁의 손이 떨어지고, 그는 좀비떼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수많은 좀비들이 그를 덮쳤다.
됐다···!
레이카는 환하게 웃었다.
이제 우승했으니까.
못 볼 꼴도 당하고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우승했으니 그 모든 걸 보상받고도 남음이리라ㅡ!
그녀는 이제 곧 경기가 끝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혁이 떨어지고 한참이 지나도, 세계는 좀비 지옥에서 변함이 없었다.
···뭐야?
왜 안끝나?
내가 우승했잖아.
내가 이겼잖아.
레이카는 어안이 벙벙했다.
설마 최후의 생존자가 살아 있나 싶어서 그래서 그녀는 얼른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생존자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생존자는 보이지 않았다.
온 사방이 전부 좀비들 뿐이었다.
그녀는 혹시나 싶어 아까 지혁이 떨어졌던 자리를 바라봤다.
저놈의 숨통이 혹시 끈질기게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런데 그때 갑자기 그 근처가 꿀렁, 하고 흔들리더니, 무언가 불쑥 솟는게 아닌가ㅡ!
······아······!
강지혁이었다.
분명 좀비들이 그의 몸에 들러붙어 살을 마구 씹어 물고 있었으나,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서 있었다.
그는 마치 파리 쫒아내듯 좀비들을 휘적휘적 떼어내면서 다시 시계탑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 아ㅡㅡ!!
레이카는 거기서 무언가 일이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어째서 놈이 저 좀비들 속에서도 멀쩡히 살아나올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분명 살과 뼈가 뜯기고 거기에 바이러스가 침투되어 좀비가 되는 게 정상인데ㅡ!
지혁은 무시무시한 웃음을 지으면서 다시 시계탑의 벽을 타기 시작했다.
그녀는 올라오지 말라고 위협하며 쇠파이프를 마구 휘둘렀다.
그러나 그는 아까 했던 게 다 연기라고 주장하듯, 순식간에 펄쩍펄쩍 뛰어 시계탑 위로 올라갔다.
그녀보다 더 높은 곳으로.
“그러길래 내가 말했잖아. 후회할 짓 하지 말라고.”
레이카는 거기서 절망을 느꼈다.
이놈은 처음부터 자신을 능욕하려고 이 모든걸 계획했음을 깨달았다.
“씨발···, 씨발 새끼···!”
그녀는 진짜 너무 분하고 화가 나서 몸이 저절로 떨렸다.
“이건, 이건 반칙이야. 사기라고. 어떻게,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 있어? 이건, 이건 사기야ㅡ!”
“사기는 무슨. 당신이 약한 거지. 꼬우면 강해지든가.”
그녀는 다시 발악하며 그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곳은 손잡이가 될 만한 것도 없는 매끈한 벽을 타야 해서, 단순히 완력으로는 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승글벙글 웃으며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도와줄까? 응? ···올라오고 싶으면, 충성을 맹세해. 그럼 도와주지.”
“개새끼, 이 빌어먹을 새끼ㅡ!”
“싫은가 보네. 그럼 뒤지든가.”
이미 좀비떼는 그녀의 발치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지혁은 분노로 눈이 시뻘개진채 자신을 노려보는 레이카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그럼 누님들, 작별 인사를 드려야 할 차례군요. 형님들께서 자ㅡ알 놀다 가신다고 전해 달랍니다.”
“이 씨발 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ㅡㅡㅡㅡ!!!”
레이카는 마지막 비명 같은 괴성을 지르며 지혁이 있는 곳을 향해 펄쩍 뛰었다가 결국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녀가 좀비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마지막 참가자가 된 지혁은 경기에서 우승했다.
좀비 지옥의 세계는 점점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지혁은 빛무리에 휩싸였다.
···
레이카는 도저히 이 분노를 다시릴 수가 없었다.
늘 마음의 수양을 모토로 삼고 감정을 다스려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그녀에게 있어서, 이것은 엄청난 충격이고 재앙이었다.
강지혁, 강지혁, 강지혁 이 씨발 새끼이이이이ㅡㅡㅡ!!!
이제 그 이름은 떠올리기만 해도 정말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로 노이로제가 됐다.
온갖 농락을 다 당한 막내의 심정과는 달리 언니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어차피 경기는 경기일뿐, 그 감정을 경기 밖까지 가지고 나오는 건 신답지 못한 행동이니까.
어디까지나 그건 못된 취미를 가진 남편들을 골탕먹이려는 아내들의 장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거든.
그러나 막상 당한 장본인은 그렇게 태평하게 마음을 먹을 수가 없었다.
목숨만큼 중요한 자존심이 바닥을 친 이상, 그것을 회복하지 않고선 도저히 언니들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손상된 자존심 회복시키는 방범은 강지혁에게 보기 좋게 복수하는 것 뿐이고.
사실 언니들은 크게 신경쓰지 말라고 막내를 다독였으나, 레이카는 그럴 수 없었다.
좀 집요한 구석이 있는 그녀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모욕을 해소하고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치사하게 직접 해코지 할 순 없는 거고, 다음에 다시 경기에서 만나 확실하게 복수를 하는 거지.
···그리하여, 그녀는 이번에 놈이 우승으로 받았다는 자그마한 세계에 손님으로 방문했다.
그녀는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휴양지에서 거의 헐벗은 여자들을 끼고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어이쿠, 이게 누구셔. 우리 레이카 양 아니에요? 무슨 일이길래 이런 누추한 곳 까지 다 행차하셨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그러지 말고 자, 한 잔 쭉 해요. ···설마 아직도 악감정 가지고 있는 거 아니죠? 경기는 경기일 뿐이잖아요. 나도 어쩔 수 없었다구요. 원래 고용자들은 다 비슷비슷한 처지잖아요. 당신도 내 말뜻 모르지 않을 테고.”
“알아요. 아무 악감정도 없어요. 걱정 마요. 설마 내가 그런 속좁은 년이라 생각하는 거 아니죠?”
···씨이팔, 아니긴.
레이카의 얼굴에는 지혁을 향한 미움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아무리 눈치 없는 새끼라도 딱 보면 알 정도로.
“물론 아니죠. 자, 한 잔 쭈욱.”
그녀도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닌 듯해서 그가 내민 칵테일 한 잔을 쭉 들이켰다.
“다른 게 아니라, 다음에 있을 경기에 당신도 참가하려구요.”
“···경기요? ···글쎄요.”
지혁의 반응이 좀 미적지근하자, 오히려 안달이 난 건 레이카였다. 만약 여기서 그가 물러나 버리면 이 바닥에 처박힌 자존심은 어떻게 회복하나ㅡ!
“그, 그러는 게 어딨어요ㅡ! 내가, 활약 할 기회 정도는 다시 줘야죠ㅡ! ···솔직히 당신, 나한테 좀 너무했다는 생각 안 해요?!”
“···악감정이 아직 있으시구나.”
“아니, 악감정이 아니라···! ···하아, 네, 그래요. 맞아요. 솔직히 당신이라면 안 억울해요?! 눈앞에서 우승을 놓쳤는데ㅡ!”
사실 우승을 놓친 것보다 그에게 농락 당한게 더 화딱지가 났으나, 그녀는 적당히 에둘러 포장했다.
대놓고 네놈한테 복수를 하겠다, 하고 말하면 얼마나 추해 보이나ㅡ!
“···그런가.”
“네, 그래요. 특히 저같은 엘리트가 아쉽게 우승을 놓쳤으니,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안 그래요?”
지혁은 픽 웃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러니까, 다음 경기에 당신도 참가하라구요. ···솔직히 내가 운이 좀 나빳어요. 또 처음이기도 했구요. 방심했다 이 말이에요ㅡ!”
“언니들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어요?”
“이건 언니들이랑은 상관 없는 일이에요. ···그냥 내 명예를 회복하기 위함이에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네, 해야 돼요. 반드시.”
레이카는 고집스러워 보이는 눈으로 지혁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앙다물었다.
절대로 순순히 물러날 모양새가 아니었다.
지혁은 기분 좋게 휴양지에 와서 무어라 왈가왈부 목소리를 높이기 싫었으므로, 적당히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알았어요.”
거기에 이번 우승 상품을 받으니까 솔직히 욕심도 좀 나고.
아무래도 이번 경기의 규모가 그리 큰게 아니라서, 상품도 좀 아쉬웠다.
자동차로 치자면, 경차를 받은 느낌일까.
일단 공짜로 얻은 거라서 기분은 좋은데 그래도 마음이란 게 무언가를 얻으면 더 큰 걸 바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꼭이에요. 이번엔 나도 진심으로 할 거예요. 당신한테 똑똑히 보여주겠다구요. 내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거.”
“알았어요. 기대할게요.”
“···내 할 말은 이게 끝이에요. 쉬고 있는데 찾아와서 실례했네요. 그럼.”
레이카는 머리만 까딱이는 느낌을 주고는 다시 공허 속으로 훌쩍 떠났다.
곧 아내 에이젤이 슬그머니 다가와 누구냐고 물었다.
“아, 내 직장 동료. 별 거 아냐. 걱정 마.”
“성깔이 좀 있어 보이던데.”
“좀 그래 보이지?”
“막 섹스하고 그런 건 아니지? ···하긴, 설마 당신이 그만큼 개차반이겠어.”
“···에이, 설마.”
지혁은 속이 뜨끔했으나, 얼른 아닌 척 했다.
그리고 저 멀리 물놀이를 하고 있는 자식들에게 다가가 함께 어울려 놀았다.
사랑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에이젤의 눈매가 얄팍해졌다.
···사실 그녀는 얼마 전 어느 이름 모를 신의 채팅방에 초대를 받았다.
채널 ‘고상요염’.
한마디로 정의하면, 수상한 짓거리를 하는 남편놈들을 엿먹이는 곳이라고 하더라.
에이젤은 남편이 왠지 이것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묘한 확신이 있었다.
– 다음은 연애 시뮬레이션이닼ㅋㅋㅋㅋㅋ
-가즈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이년들 신났네 ㅋㅋㅋㅋㅋㅋㅋ
– 이번에 웬수 새끼들이 우리 잡으러 오는 거 아냐? ㅋㅋㅋㅋㅋㅋㅋㅋ
– 오라 해 ㅋㅋㅋㅋㅋㅋㅋ ㅅㅂ 여긴 우리 구역이다 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이젤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 속에서 오랫동안 표류했다.
···그럼 일단 똑같이 따라해 봐야지.
– 언니들!! 가즈아!!!!!!!!!!!!!!
–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번엔 존나 쎈년 보내자 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ㅇㅋㅇㅋ ㅋㅋㅋㅋㅋ
요정은 혼란스러운 채팅창을 끄고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