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sing my Fiancè with Money RAW novel - Chapter (102)
“……두 개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카르한이 둘러 거절하자, 일리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결국 쇼핑 목록에 유리 볼 두 개도 추가되었다. 길었던 쇼핑이 끝나고 일리아는 고용인들에게 따로 자유 시간을 주었다. 이제부터 카르한과 단둘이서 관광할 생각이었다.
일리아와 카르한은 눈에 튀지 않는 간편한 차림새로 갈아입고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유명한 관광지도 들르고 특이한 건물도 구경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파는 맛있는 간식도 사 먹었다.
“사이가 참 좋아 보이시네요. 혹시 부부신가요?”
오징어를 굽던 노점 주인이 물었다.
“예, 얼마 전에 결혼했습니다.”
카르한이 쑥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딱 좋을 때네요. 남부에서 좋은 추억 많이 쌓으시고 가세요.”
노점 주인의 말에 카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식으로 구운 오징어를 손에 든 카르한은 무척 즐거워 보였다.
“일리아, 우리가 부부처럼 보이나 봅니다.”
“그러게요. 바로 알아보네요.”
일리아는 그런 카르한이 귀여워서 속으로 웃었다. 그렇게 한창 돌아다니던 중, 더위를 먹은 일리아가 그늘 아래에서 멈춰 섰다.
“더워요. 목도 좀 마르고.”
그 말에 카르한이 곧장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근처에 음료를 파는 가게가 보였다.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카르한은 곧바로 음료를 파는 가게로 향했다. 일리아는 카르한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얇은 셔츠를 입고 있었으나, 일리아는 옷감 아래에 숨겨진 몸을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더위를 먹은 몸이 다시 달아오르자, 일리아는 손바닥으로 부채질했다.
멍하니 카르한을 기다릴 때였다. 급하게 걸어오던 누군가가 일리아와 부딪쳤다.
“죄, 죄송합니다.”
세게 부딪친 것은 아니었기에, 일리아는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고개를 숙인 남자아이는 금방 갈 길을 가버렸다. 곧이어 손에 음료를 든 카르한이 돌아왔다.
“레몬 에이드 사왔습니다.”
“고마워요.”
일리아는 차가운 레몬 에이드를 한 모금 마셨다. 더위가 조금 가시는 듯했다.
“가게에 들어가서 쉬는 건 어떻습니까?”
“음. 아직 못 가본 곳이 많은데…….”
카르한이 무리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내자, 일리아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금 쉬다가 움직여요.”
일리아와 카르한은 근처 음식점으로 향했다. 간단한 음식을 시켜놓고 잠시 앉아 있을 생각이었다.
“저희 가게는 선불입니다.”
가게 문 앞에 서 있던 점원의 말에 일리아는 자연스레 가방을 열었다.
“어?”
가방이 텅 비어 있었다. 혹시 바닥에 떨어뜨렸나 싶어서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카르한……. 나 소매치기 당했나 봐요.”
아까 남자아이와 부딪쳤는데, 그때 소매치기 당한 것 같다고 일리아가 설명했다. 하필 카르한도 남은 돈이 없었다.
“어쩌지요.”
카르한이 난감한 얼굴로 일리아를 쳐다보았다.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와버렸기에, 마차 삯을 마련하지 못하면 꼼짝없이 걸어가게 생겼다. 수중에 있는 물건이라도 팔아야 하나 카르한이 고민하는 사이, 일리아가 말했다.
“돈 좀 마련해야겠어요.”
“……예?”
“따라 와요.”
의아해하던 카르한은 일단 일리아를 따라 가게를 나왔다. 일리아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작게 조성된 공원으로 들어섰다. 공원 한쪽에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고운 모래가 쌓여 있었다.
그쪽으로 다가간 일리아는 모래를 살살 팠다. 그러자 모래 속에 파묻혀 있던 구리 동전 하나가 굴러 나왔다. 카르한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일리아가 말했다.
“아주 가끔, 수중에 돈이 없을 때 써먹는 방법이에요.”
일리아는 구리 동전을 챙긴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원을 나온 일리아는 곧장 노점을 찾아가 가장 저렴한 복권을 구입했다. 즉석에서 당첨을 확인할 수 있는 복권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카르한의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
1등이었다.
일리아는 1등 당첨 금액이 적힌 복권을 들고 은행에 들러, 당첨금을 수령했다. 그 과정이 무척 자연스러워서 카르한은 놀라는 것도 잊어버렸다.
곧장 마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온 두 사람은 삼삼오오 모여 있는 고용인들을 발견했다. 다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
“아가씨, 그게…….”
고용인들은 하나둘씩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잠깐 구경하는 사이 지갑이 없어졌어요.”
“저도 주머니에 넣어둔 회중시계가 사라졌어요. 정말 소중한 건데…….”
일리아의 미간이 좁아졌다. 저만 소매치기 당한 것이 아니었다.
“카르한, 아무래도 경비대를 찾아가봐야겠어요.”
“근처 경비대 위치를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카르한이 여관 주인에게 물어보러 간 사이, 일리아는 고용인들의 증언을 들었다.
사실 일리아는 제 지갑을 훔친 소매치기범을 잡을 생각이 없었다. 경비대에 들르는 것도 귀찮았고 무엇보다 귀중한 휴가를 망치기 싫었다. 하지만 고용인들마저 피해를 입었다 하니,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었다.
위치를 알아낸 일리아와 카르한은 곧장 경비대로 향했다. 경비대 건물로 들어서니, 나태하게 늘어져 있던 경비대원들이 바짝 긴장하며 일어섰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들은 카르한을 유심히 살피며 물었다. 요즘 카르한의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다지만, 흔히 볼 수 없는 체격과 사나운 인상은 괜한 의심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장소가 이런 곳이면 더더욱 말이다.
경직된 반응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카르한을 대신하여 일리아가 대답했다.
“소매치기를 당했어요.”
일리아의 말에 경비대원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일로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었다. 경비대원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여기에 진술서 쓰시고 돌아가십시오. 범인을 찾게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바로 수사가 들어가나요?”
“뭐……, 크게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찾으려는 의지가 별로 보이지 않아, 카르한이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우린 내일 올라가야 합니다.”
경비대원은 긴장한 듯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일단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자세히 이야기해주십시오.”
그나마 뭔가 하려는 시늉을 보이자, 일리아는 맞은편에 앉아서 진술을 시작했다.
“피해를 입은 장소는 어디입니까.”
“흰 갈매기 분수대 근처였어요.”
“피해 금액은요?”
“정확하진 않지만, 20만 크로엘 정도요?”
일리아의 대답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다른 일 하던 경비대원들도 전부 이쪽을 바라보았다.
“2, 20만이요?”
진술을 받던 경비대원이 더듬거리며 되물었다.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거짓말하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경비대원이 다시 말했다.
“금액을 정확히 말해주십시오.”
“아, 적게 말했네요. 제 고용인들의 피해금액은 합산하지 않았거든요.”
농담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자, 그가 일리아를 슬쩍 훑으며 물었다.
“……그, 성함이……?”
“일리아 블로든이에요.”
“블로든……?”
누군가의 중얼거림을 끝으로 모든 경비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더 편한 의자가 있습니다.”
“차라도 타 올까요?”
확연히 달라진 태도에 일리아는 고개를 내저으며 거절했다.
“아뇨, 저는 소매치기범만 잡으면 되거든요.”
“당장 잡아오겠습니다!”
경비대원들이 우르르 건물을 빠져나갔다. 진술서를 작성하던 경비대원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사실 관광객이 많은 곳이다 보니, 소매치기범이 많습니다. 하지만 귀족의 소지품에 손을 대는 간 큰 놈들은 잘 없지요.”
똑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그 대상이 귀족이라면 처벌 수위부터 달랐다. 하지만 일리아와 카르한은 아주 편안한 차림을 하고 있었기에, 귀족인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설명을 마친 남자는 긴장한 듯 목울대를 움직였다. 블로든 가문에서 항의가 들어온다면 전부 시말서를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일이 잘 풀리면 포상금을 받을지도 몰랐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찾아내겠습니다.”
예상가는 곳이 있다며, 남자가 말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경비대원들이 돌아왔다.
“잡아 왔습니다!”
그들에 비해 체구가 유독 작아 보이는 소년이 질질 끌려 들어왔다. 차림새를 보니 아까 길거리에서 부딪쳤던 소년이었다.
“지갑에 너무 큰 금액이 들어 있어서 겁먹은 모양입니다.”
자기들끼리 소란을 피워서 금방 붙잡을 수 있었다고 경비대원이 자랑스레 말했다. 움칠거리던 소년은 카르한과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자, 잘못했어요.”
소년이 두 손을 싹싹 빌기 시작했다. 카르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소년의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카르한이 일리아를 쳐다보았다.
“피해자가 많은데, 다른 물건도 네가 훔쳤니?”
“아니에요!”
소리친 소년이 지레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소년은 일리아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지갑을 내밀었다. 지갑은 텅 비어있었다. 일리아가 가만히 쳐다보자 소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중얼거렸다.
“……돈은 꼭 갚을게요.”
“이미 썼어?”
“형들이 전부 뺏어가서…….”
아이들에게 소매치기를 시키는 놈들이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경비대원들은 이미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가라앉은 눈으로 소년을 내려다보던 일리아는 프란체를 떠올렸다. 빈민가 소년이었던 프란체도 일리아의 지갑을 훔친 것으로 인연을 맺어, 지금은 블로든 가문의 기사가 되었다.
“어떻게 갚을 건데?”
“그건…….”
일리아의 물음에 소년이 우물쭈물하다가 대답했다.
“뭐든 할게요.”
“좋아.”
일리아는 속으로 결정을 끝냈다.
‘이제 프란체에게도 제자가 생길 때가 되었지.’
십 년째 막내라고 투덜거리는 프란체에게 새로운 막내를 붙여줄까 싶었다. 물론 성실함과 진실성을 먼저 봐야겠지만 말이다. 검술에 재능이 없다면 고용인으로 삼아도 될 거고……. 고개를 돌린 일리아가 경비대원들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아이들을 착취하는 범죄 조직이 있는 모양인데, 수색해야지 않겠어요?”
“죄송하지만 저희는 영주님의 명령이 없으면 못 움직입니다.”
경비대원이 단호히 대답했다. 아무리 블로든이라 한들, 신분은 백작에 불과했다. 그것도 백작 본인이 아닌 딸이 다른 지역의 공권력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이곳 영주는 후작으로, 블로든보다 신분이 높으니 일리아도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을 경비대원들은 알고 있었다. 그때 카르한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럼 영주를 만나면 되겠군요.”
“예?”
경비대원은 이내 헛웃음을 삼킨 채 대답했다.
“영주님은 만나고 싶다고 해서 바로 만날 수 있는 분이……,”
“영주께 전하십시오.”
그의 말을 잘라낸 카르한이 좀 더 힘주어 말했다.
“에반테온 공작이 기다리고 있다고.”
***
연락을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주가 직접 경비대로 찾아왔다. 아직 남부에는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기에, 에반테온 공작 부부가 신혼여행을 왔다는 걸 몰랐던 모양이었다.
영주는 카르한에게 굽실대느라 여문 벼처럼 허리를 펴질 못했다. 요즘 카르한의 위세는 몰아치는 파도와 같았다. 카르한은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는 데다가 국무 회의에서 가장 발언권이 강했다.
영주는 그런 카르한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성으로 모시겠다며 눈을 빛냈다. 카르한은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딱 한 마디만 했다.
-소매치기가 기승을 부리더군요.
-……경비대를 새로 꾸려서 소탕하겠습니다!
영주는 자신이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확답을 듣고 나서야 일리아와 카르한은 경비대 건물을 빠져나왔다. 고작 반나절 사이, 도시가 발칵 뒤집혔다. 나태하게 늘어져 있던 경비대원들은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지금껏 잡지 못한 게 아니라, 잡지 않은 것인지 아이들을 내세워 돈을 벌어오던 놈들이 줄줄이 잡혀 들어왔다. 훔친 물건을 팔아넘기는 경로도 수색한 듯, 고용인들이 도둑맞은 귀중품들도 모두 돌아왔다.
일리아와 카르한은 벌어진 일을 수습하느라 하루를 더 묵기로 했다. 범죄에 연루된 아이들을 보호할 시설을 물색하고, 보육 교사를 고용했다. 앞으로 아이들은 소매치기 대신 제대로 된 교육을 받게 될 터였다.
할 일을 마친 일리아와 카르한은 아쉬움을 삼킨 채 마차에 올라탔다. 화려한 관광 도시의 이면에 일리아는 씁쓸해졌다. 아무리 자신이 노력해도 뿌리까지 뽑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가난과 범죄가 태어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창밖을 응시하던 일리아가 카르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신혼여행까지 와서 일하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카르한은 대답 대신 일리아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딱 붙어 앉은 카르한이 대답했다.
“저는 일리아의 그런 다정한 면을 좋아합니다.”
“…….”
“그리고 기뻤습니다. 드디어 도움이 될 수 있어서.”
항상 일리아가 하던 일을 지켜보기만 했는데, 이제는 직접 관여하고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에 카르한은 뿌듯해 보였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일리아가 손에 깍지를 꼈다. 손끝에서부터 맥박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항상 내게 도움이 되었어요. 고마워요, 카르한.”
카르한은 소리 없이 웃다가 일리아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일리아는 다른 손으로 카르한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오늘 아이들 보니까 귀엽더라고요. 이제 우리도 슬슬 아이 생각을 해봐야겠죠?”
그 말에 카르한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아이는 몇 명 정도가 좋을까요?”
“음…….”
카르한이 생각에 잠긴 사이, 일리아가 먼저 말했다.
“역시 셋 정도는 낳아야겠죠?”
순간 가슴이 섬뜩해진 카르한은 잠시 잊고 있던 말을 떠올렸다.
-아이가 좀 많네요. 그것도…… 세쌍둥이?
설마, 아니겠지. 카르한은 애써 생각을 떨쳐냈다.
***
늦가을에 접어든 동부는 사방이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가득했다. 천천히 후원을 걷던 레베타는 잠시 멈춰 서서 나뭇가지에 매달린 단풍을 올려다보았다.
단풍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 붙어있었다. 아등바등 가지를 붙들던 단풍이 끝내 추락하자, 레베타는 그제야 걸음을 돌려 후원을 벗어났다.
그녀의 일과는 무척이나 단조로웠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차와 수프로 식사를 마친 후 정원을 산책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하여 가문의 살림을 맡아 일하다 보면 하루가 끝났다.
집무실로 들어온 레베타는 이번 달 저택 관리비 예산을 짜기 위해 펜을 들었다. 사각사각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잠시 후 복도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펜촉 소리를 덮어썼다.
“아가씨 앞으로 선물이 왔습니다!”
레베타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고용인을 맞이했다. 꽃다발과 작은 상자를 건네받은 레베타는 상자 겉에 적힌 수신인을 먼저 확인했다.
[카르한 에반테온]그토록 기다리던 이의 이름이었다. 레베타는 상자부터 열었다. 작은 상자 안에 바다를 연상케 하는 기념품이 담겨 있었다.
카르한이 결혼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제국을 떠들썩하게 한 결혼식이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남부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아마 이건 남부에서 구입한 기념품일 것이다.
한참 동안 기념품을 만지작거리던 레베타는 묻어두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제 네 눈앞에 나타나지 않으마.
레베타는 카르한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곧바로 수도를 떠나 친가로 내려왔다. 남편의 장례식은 물론이고 카르한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몇 달 동안 저택 밖으로는 나가지 않고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그럼에도 때때로 궁금해졌다. 카르한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지내고는 있는지……. 그러다가 두 달 전, 카르한에게서 선물이 왔다.
편지 하나 없이 물건만 달랑 보내왔지만, 레베타는 무척이나 기뻤다. 완전히 끊어진 줄 알았던 인연의 끈은 아직 이어져 있었다. 그 후로 가끔씩 이렇게 작은 선물이 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