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sing my Fiancè with Money RAW novel - Chapter (110)
엘로드가 과일 가게를 스쳐지나가자 라울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가격 비교하고 살 거야. 팻말에 적혀 있는 가격 봤으니, 이제 시장에 가보자.”
“시장은 왜?”
“시장이 더 저렴하니까.”
엘로드의 대답에 헤이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은 그걸 어떻게 알아?”
“고용인들한테 미리 물어봤어.”
뒤에서 대화를 전부 들은 블로든 가문 사람들은 일제히 감탄했다.
“누구를 닮았는지 똑 부러지네.”
클리프가 중얼거리자, 일리아는 조용히 카르한을 쳐다보았다. 오르골 가게에서 처음 만났을 때, 점원에게 강매 당하던 카르한이 떠올랐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일리아는 생각했다. 일단 엘로드는 카르한을 그다지 닮지 않은 것 같다고 말이다.
세쌍둥이는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사과를 샀다. 자신감을 얻게 된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바게트를 사기 위해서 빵집을 찾아 나섰다. 위풍당당하게 빵집에 들어간 세쌍둥이가 바게트를 집어 들었다.
“5크로엘입니다.”
지갑을 전부 털었지만 3크로엘뿐이었다.
“혹시 3크로엘에 주실 순 없나요?”
“그건 안 돼요.”
단호한 대답에 엘로드는 바게트를 내려놓았다.
“그럼 다음에 다시 올게요.”
아이들은 곧장 다른 빵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다른 빵집도 마찬가지로 깎아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 벌써 세 군데에서 퇴짜를 맞게 된 아이들은 시무룩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본 블로든 가문 사람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들은 신속하게 각자 할 일을 찾아 흩어졌다. 비올레와 클리프가 가게를 매수하러 간 사이, 일리아는 말렉에게 몰래 신호를 보냈다. 다른 가게로 유도하라고 말이다.
“도련님들. 저쪽에도 빵집이 있습니다.”
세쌍둥이가 동시에 말렉을 올려다보았다.
“예전에 가본 적이 있는데, 다른 가게보다 저렴했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빨리 가보자!”
희망이 생긴 아이들은 곧장 말렉이 말한 빵집으로 향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빵집 주인이 아이들을 반겨주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바게트 얼마예요?”
아이들이 긴장한 얼굴로 가격을 묻자, 여인이 빙그레 웃었다.
“1크로엘입니다.”
세쌍둥이의 입이 벌어졌다. 다른 가게보다 무려 다섯 배나 저렴했다. 기뻐하는 라울이나 헤이든과 달리 엘로드는 의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왜 여기만 이렇게 싸요?”
뒤에 서 있던 프란체와 말렉이 식은땀을 흘렸다. 다행히 완벽하게 매수된 빵집 주인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지나치게 많이 구워버렸지 뭐예요. 그래서 오늘만 특별히 이 값에 팔고 있답니다.”
“그렇구나.”
그제야 엘로드는 의심을 거두었다.
“우리 2크로엘이나 남았어!”
“빵 맛있겠다.”
라울과 헤이든이 방앗간에 온 참새처럼 빵집을 빙글빙글 돌았다. 행복한 고민에 빠진 아이들의 모습에 가게 밖에서 구경하던 비올레가 중얼거렸다.
“오늘 애들 간식은 빵이다.”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빵 하나씩 안고 나온 세쌍둥이는 심부름을 마치고 마차에 올라탔다. 몰래 지켜보던 블로든 가문 사람들도 다함께 저택으로 돌아왔다. 간발의 차로 먼저 저택에 도착한 일리아는 옷매무새를 정돈한 후 아이들을 맞이했다.
“잘 다녀왔니?”
세 아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아는 심부름으로 사온 물품을 확인한 후 아이들을 칭찬했다.
“전부 다 사왔구나. 잘했어.”
헤헤 웃던 세쌍둥이는 오늘 심부름이 어땠는지 저마다 재잘거렸다.
“앞으로는 좀 더 계획적으로 돈을 쓸 거예요.”
“형들이랑 가게 탐방하는 게 재밌었어요.”
“돼지고기 꼬치 맛있었어요. 또 먹고 싶다.”
그때 뒤에서 나타난 카르한이 아이들을 번쩍 안아들었다.
“얘들아, 간식 먹자.”
“오늘 간식은 뭐예요?”
아이들의 물음에 일리아와 카르한은 잠깐 눈을 마주쳤다.
카르한이 웃으며 말했다.
“맛있는 빵.”
***
시간은 빠르게 흘러 가을 초입이 훌쩍 다가왔다. 오늘은 두 사람의 결혼기념일이었다.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지 고민하던 끝에 일리아와 카르한은 둘이서 근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틀 동안 가족들이 세쌍둥이를 돌봐주기로 했기에, 정말 오랜만에 둘이서만 보내는 시간이었다.
마차는 어느새 수도 외곽으로 빠져나왔다. 빼곡하던 건물이 사라지고 울긋불긋한 단풍나무가 주변을 에워쌌다. 연신 감탄하던 일리아는 고개를 돌려 카르한에게 말했다.
“올해는 단풍이 빨리 들었네요. 예쁘지 않아요?”
그 말에 카르한이 자연스레 일리아를 쳐다보았다. 예쁘다는 단어가 나오면 반사적으로 일리아를 보게 되었다. 시선을 느낀 일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순간 일리아의 귓불이 단풍처럼 붉어졌다.
“아니, 단풍을 보라니까요…….”
“저는 단풍보다 일리아를 보는 게 더 좋습니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질리기는커녕 늘 새롭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나름대로 뻔뻔하게 굴 수 있게 된 카르한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일리아를 감상했다.
마차는 근방에서 가장 좋은 여관 앞에 멈추었다. 직원이 짐을 옮겨주는 사이, 둘은 방에 들르지 않고 곧장 밖으로 나왔다.
일리아와 카르한은 산책하듯 느긋하게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곳도 관광지이긴 했으나 근처 마을이 더 유명해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관광객이 적었다. 일리아가 느긋하게 구경하자 카르한이 옆에서 하나씩 설명해주었다.
“저건 곰 머리 바위라고 불립니다.”
“그러고 보니 진짜 곰처럼 보이네요. 당신은 어떻게 알았어요?”
“책에서 봤습니다.”
바쁜 와중에 공부까지 하고 온 모양이었다. 일리아는 문득 과거의 카르한을 떠올렸다. 데이트 해본 적도 없는 그를 위해 연애 지침서까지 사다주던 때가 있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알아서 척척 데이트 코스를 짜오곤 했다.
두 사람은 단풍나무 아래를 걸어, 작은 폭포가 있는 곳까지 갔다. 시원한 물줄기가 힘차게 쏟아졌다. 워낙 한적한 곳이라 그런지 주위에 온통 물소리만 울려 퍼졌다. 한참 폭포를 감상하던 일리아가 속삭였다.
“평화롭네요. 그렇죠?”
고개를 끄덕인 카르한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림 같은 풍경이라 그런지 현실감이 떨어졌다. 저 멀리서 불어온 가을바람이 카르한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햇빛 아래서도 새까만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흩날렸다.
카르한은 결혼반지를 낀 손으로 일리아의 손을 잡았다. 길쭉한 손가락이 일리아의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깍지를 낀 채 그가 중얼거렸다.
“저는 일리아를 만난 후로 항상 행복했던 기억뿐입니다.”
오랫동안 그를 발목 잡아온 나쁜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퇴색해갔다. 일리아와 함께한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카르한을 만들어주었다. 일리아가 카르한을 이루는 전부가 된 것이다.
“다만 걱정이 있다면 아버지로서 제대로 하고 있는지 그것이 의문입니다.”
일리아는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깍지 낀 손은 맞물린 고리처럼 단단해졌다.
“부모가 되는 건 처음이잖아요. 조금 서투르면 뭐 어때요.”
“…….”
“다른 누가 뭐래도 제가 보기엔 당신은 최고의 아버지예요.”
그제야 카르한이 안도한 듯 눈매를 휘었다. 인적이 드문 단풍 길을 걸으며, 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쳐 온 과거부터 까마득하게 먼 미래까지. 시간이 많이 흘러도 분명 서로가 곁에 있을 터였다.
밖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여관으로 돌아왔다. 같이 씻으려고 했으나, 함께 들어가기 불편한 구조였다. 카르한이 먼저 씻고 나온 후, 일리아가 욕실로 들어섰다. 기대감 때문인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처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리아는 몸을 깨끗하게 씻은 후에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오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속옷을 입고 가운을 걸친 후 욕실 문을 열었다.
“……!”
일리아는 바닥에 뿌려진 장미 꽃잎을 보고 그대로 멈춰 섰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테이블에 놓인 와인과 꽃다발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시선이 닿은 곳에는…….
“일리아.”
나직한 목소리로 저를 부르는 카르한이 침대에 앉아 있었다. 목욕 가운을 제대로 동여매지 않은 탓에 탄탄한 가슴이 언뜻 보였다. 램프 조명 때문인지 굴곡진 그의 몸에 희미한 그늘이 드리웠다. 요즘 훈련할 시간도 많지 않을 텐데 여전히 완벽한 몸이었다.
일리아는 홀린 듯이 카르한의 몸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카르한은 일리아를 향해 성큼 다가왔다. 일리아의 허리를 감싸고 끌어안자 떨어져 있던 몸이 순식간에 밀착되었다. 한 팔로 허리를 두른 카르한은 다른 손으로 일리아의 젖은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특별한 날이니, 준비해 봤습니다.”
귀에 꽂아드는 저음에 일리아의 허리가 떨렸다. 그저 분위기만으로도 벌써부터 열이 올랐다. 카르한은 일리아를 끌어당겨 침대에 앉혔다. 그리고 마른 수건을 가져와 머리카락에 남은 물기를 완전히 털어주었다.
수건을 내려놓은 카르한이 테이블에 놓인 와인 잔을 집어 일리아에게 내밀었다. 일리아는 괜히 갈증이 나 와인을 홀짝였다. 와인을 한 모금 삼킨 카르한이 목욕 가운 끈을 슬쩍 당겼다.
앞섶이 벌어지며 반쯤 감춰진 몸이 완전히 드러났다. 세심하게 깎아 만든 듯 어디 하나 흠 잡을 곳 없는 몸이었다. 속으로 감탄하던 일리아는 와인을 전부 마셨다. 일리아가 빈 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와인 더 없어요?”
“남은 건 이것뿐입니다.”
카르한은 제 손에 쥐고 있던 와인 잔을 가리켰다. 고작 한두 모금 정도 될 법한 양이었다. 아쉬웠는지 일리아가 잔을 빤히 바라보자 카르한이 물었다.
“줄까요?”
“그럼 반으로 나눠 마셔요.”
카르한은 와인을 나누는 대신, 전부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맞춰왔다. 벌어진 입술을 타고 미지근해진 와인이 타고 들어왔다. 알싸한 향기가 입 안 가득히 맴돌았다.
일리아가 와인을 삼키자 카르한은 천천히 입술을 떼어냈다. 와인에 젖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놓아준 그가 속삭였다.
“더 마시고 싶습니까?”
일리아는 저도 모르게 목울대를 움직였다.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알 수 없었다. 요즘 카르한이 적극적이긴 했지만 오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일리아가 두 팔을 뻗어 카르한을 껴안았다. 침대에 풀썩 누운 두 사람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달아오른 열기와 짙은 와인 향기가 빠져나가지 않고 주위에 머물렀다.
“벌써 결혼한 지 십 년이나 되었는데…….”
일리아는 카르한이 입고 있는 목욕가운을 잡고 끌어내렸다.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가운이 침대 시트와 한 몸이 되었을 때, 일리아가 속삭였다.
“슬슬 넷째는 어때요?”
***
주말 오후, 세쌍둥이의 간식 시간이 돌아왔다. 각자 놀던 아이들은 간식 시간이 되자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오늘의 간식은 무화과 잼이 든 스콘이었다. 빠른 속도로 간식을 먹어치우던 라울이 문득 생각났다는 얼굴로 포크를 내려놓았다.
“야, 너네 그거 알아?”
엘로드는 무시했고 헤이든만 라울을 쳐다보았다.
“일주일 후에 엄마 아빠가 결혼한 날이래.”
그제야 고개를 든 엘로드가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었어.”
라울이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좋은 날인가?”
“바보야, 당연히 좋은 날이지. 유모한테 물어보니까 생일 다음으로 좋은 날이랬어.”
“와, 그 정도야?”
헤이든이 순진무구하게 감탄했다. 어깨를 으쓱인 라울이 엘로드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러니까 우리도 엄마 아빠한테 선물을 주는 건 어때?”
“흠, 나쁘지 않네.”
엘로드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라울이 활짝 웃었다. 사사건건 트집만 잡던 엘로드가 동의해주는 일은 흔치 않았다.
“난 벌써 선물 정해뒀으니까, 너네도 빨리 생각해봐.”
헤이든이 포크를 쥔 손을 번쩍 들었다.
“꽃다발은 어때?”
“그건 안 돼. 꽃은 정원에도 많잖아.”
“엄마는 꽃을 좋아하는걸.”
“아빠도 분명 꽃 선물을 주실 거니까 다른 거 생각해봐.”
엘로드마저 반대하자 헤이든은 양 뺨을 부풀린 채 미간을 좁혔다. 끙끙거리는 헤이든을 바라보던 엘로드가 라울에게 물었다.
“그런데 선물은 어떻게 살 건데?”
“할아버지나 할머니한테 부탁할 거야.”
“그건 네가 선물하는 게 아니잖아.”
엘로드의 일침에 라울이 멈칫했다.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듯 라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지금껏 필요한 것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말하기만 하면 됐다. 그럼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라울은 헤이든과 마찬가지로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명쾌한 해답이 나오지 않자, 라울이 엘로드를 쳐다보았다.
“너는 어떻게 할 건데?”
“난 저금해둔 돈이 있어.”
“그것도 결국 엄마 아빠 돈 아니야?”
“…….”
결국 엘로드마저 입을 다물어버렸다. 세 아이들은 머리를 맞댄 채 고민에 빠졌다. 어른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선물을 살 방법이 없어 보였다. 앓는 소리만 들려올 때 헤이든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우리가 돈을 벌어서 사주자!”
“어떻게?”
“그건 지금부터 생각해보려고.”
헤이든이 해맑게 말하자 라울이 어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엘로드가 입을 열었다.
“……좋은 생각이 났어.”
모두의 시선이 엘로드에게 향했다. 입꼬리를 당겨 웃는 엘로드는 무척 자신만만했다.
“일해서 돈 벌자.”
엘로드는 자신의 계획을 짤막하게 설명해주었다. 가만히 듣던 라울과 헤이든이 오오,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가자!”
성격 급한 라울이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울은 곧바로 비올레의 집무실로 뛰어갔다.
“할머니!”
간만에 집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비올레가 자리에서 일어나 라울을 맞이했다.
“라울, 무슨 일이니?”
“저를 고용해주세요!”
비올레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라울을 내려다보았다. 라울은 설명도 건너뛰고 곧장 물었다.
“제가 이 방 청소하면 얼마 주실 거예요?”
“돈이 필요한 거니? 그럼…….”
비올레가 자연스레 백지 수표를 꺼내려 하자, 라울이 고개를 내저었다.
“일해서 받을 거예요. 그걸로 엄마 아빠 선물 사줄 거거든요!”
비올레는 장하다는 듯 라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럼 당연히 줘야지. 집무실 청소하면 10만 크로엘을 주마.”
10만 크로엘이 얼마나 큰 돈인지 감이 오지 않았기에, 라울은 고개를 내저었다.
“금화 하나만 주세요.”
“그래, 그래.”
“지금부터 청소할게요!”
라울은 어디론가 뛰어나가, 빗자루와 먼지떨이를 가져왔다. 비올레는 라울이 청소하도록 잠시 집무실을 나왔다.
복도에 서 있으니, 안쪽에서 웬 소음이 들려왔다. 도자기 깨지는 소리와 무언가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아무래도 라울은 청소가 아니라 방을 파괴하러 온 듯했다.
그러다 거짓말처럼 소리가 끊기더니 주위가 조용해졌다. 문이 열리며 라울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다 했어요.”
“그래?”
비올레는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주위를 둘러본 비올레는 살짝 열린 서랍장에 비죽 튀어나온 러그 귀퉁이를 발견했다. 깨진 도자기 조각을 저기다 밀어 넣은 모양이었다.
“청소 잘했구나. 약속한 대로 수고비를 줘야지.”
비올레는 금화 한 닢을 라울의 손에 얹어주었다.
“감사합니다!”
두 손으로 금화를 쥔 라울은 세상을 얻은 듯 무척 행복한 얼굴로 집무실을 나왔다.
한편, 엘로드는 헤인리의 방으로 찾아갔다.
“삼촌.”
휴일을 맞아 방에 있던 헤인리가 엘로드를 번쩍 안아들었다.
“우리 꼬마는 무슨 일로 찾아왔을까?”
“삼촌이 하루 동안 저를 고용해주셨으면 해요.”
그 말에 헤인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누가 뭐라고 했니?”
“아니요. 사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요.”
“그럼 당장…….”
“제가 벌어서 살 거예요.”
엘로드의 단호한 말에 헤인리는 눈썹머리를 좁혔다. 더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헤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용 계약서 써야 하죠? 책에서 봤어요.”
똑 부러지게 말하는 엘로드의 모습에 헤인리는 웃고 말았다.
“너는 참…… 날 많이 닮았구나.”
헤인리는 엘로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서류 서른 장씩 나눌 수 있겠니?”
“맡겨만 주세요.”
엘로드가 순조롭게 일을 따낸 사이, 헤이든은 바이올린을 들고 클리프를 만나러 갔다.
“아이고, 우리 천사.”
화초에 물을 주던 클리프가 물뿌리개를 내려놓고 헤이든을 반겼다. 헤이든은 발치에 바이올린 케이스를 펼쳐서 내려놓았다. 길거리 악사들에게 배운 것이었다.
“할아버지, 바이올린 연주 듣고 싶지 않으세요?”
“오오, 직접 연주해주려고?”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으응?”
잠시 당황한 클리프는 빈 케이스를 내려다보다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