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sing my Fiancè with Money RAW novel - Chapter (111)
“무엇을 주면 좋을까?”
“돈이요.”
속물적인 대답에 클리프는 눈을 깜빡였다. 벌써부터 예술로 돈을 벌겠다는 포부인가……! 우리 집안에 예술가가 하나 나오겠다는 꿈에 부푼 클리프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 헤이든은 박수갈채를 받으며 금화를 쟁취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각자 돈을 모아온 세쌍둥이는 다시 모였다. 금화 세 닢을 테이블에 올려둔 채 아이들은 머리를 맞댔다.
“이걸로 뭐 사지?”
“아까 생각해둔 게 있다면서.”
엘로드의 말에 라울이 뒷목을 긁적였다.
“생각해보니 별로인 것 같아.”
“설마 먹는 거 생각한 건 아니겠지?”
뜨끔했는지 눈에 띄게 어깨를 움찔한 라울이 투덜거렸다.
“그럼 네가 말해봐.”
엘로드는 생각나는 게 없는지 침묵했다.
“조금 있으면 겨울이니까……. 이런 건 어때?”
구석에서 꼼지락거리던 헤이든이 의견을 내자, 라울과 엘로드의 눈이 반짝였다.
“괜찮은데?”
“그럼 그걸로 하자!”
아이들은 곧장 선물을 사다줄 사람을 물색했다. 아직까지 어른을 대동하지 않고 외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쌍둥이는 비올레에게 부탁해서 산 선물을 옷장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흘러…… 마침내 두 사람의 결혼기념일이 찾아왔다. 일리아와 카르한은 결혼기념일을 맞이해, 둘이서 근교로 여행을 떠났다.
엄마 아빠가 없는 그날 밤, 아이들은 램프 하나를 켜놓고 밤늦게까지 재잘거렸다. 두 손바닥으로 턱을 괸 헤이든이 중얼거렸다.
“엄마 아빠가 좋아할까?”
“당연하지. 우리가 고른 건데!”
“너네 편지는 다 썼어?”
엘로드의 물음에 라울과 헤이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라울과 헤이든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랴부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엘로드는 두 사람 뒤에 서서 감시했다.
“거기 조사 틀렸어.”
“조사가 뭐야?”
헤이든이 묻자 엘로드는 설명해주는 대신 편지를 직접 고쳐주었다. 작문에 재능이 없는 라울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끙끙거리다가 겨우겨우 편지 반 장을 채웠다.
“다 썼다.”
라울과 헤이든이 뿌듯한 얼굴로 편지지를 접었다.
“이만 자자.”
세쌍둥이는 다시 침대에 주르륵 누웠다. 램프 불이 꺼지고 완전한 어둠이 들어찼다.
***
짧았던 여행을 마치고 일리아와 카르한은 저택으로 돌아왔다. 이제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블로든 저택 현관에 마차가 도착하자, 건물 안쪽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윽고 현관문이 벌컥 열리더니 아이들이 쏟아지듯 뛰어나왔다.
“엄마! 아빠!”
“다들 잘 있었어?”
일리아가 두 팔을 벌려 아이들을 안아주었다. 마차에서 선물을 꺼내온 카르한은 세쌍둥이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빨리 들어가요!”
아이들이 일리아와 카르한의 옷자락을 잡고 이끌었다. 두 사람은 외출복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 아이들 방에 들어왔다.
라울과 엘로드가 일리아와 카르한을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헤이든이 옷장에 들어가더니 무언가를 꺼내왔다. 잘 포장된 상자가 일리아와 카르한의 무릎에 놓였다.
“선물이에요!”
“선물?”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잖아요.”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일리아와 카르한의 눈이 커졌다. 라울이 자랑하듯 말을 덧붙였다.
“일해서 번 돈으로 샀어요.”
“일이라니…….”
카르한이 당혹스러운 듯 아이들을 쳐다보자 하나씩 재잘거렸다.
“할머니 집무실 청소하고 받은 돈이에요.”
“저는 서류 정리해서 삼촌한테 수고비를 받았어요.”
“바이올린 연주해서 벌었어요!”
그 말에 일리아와 카르한은 감동에 젖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카르한의 눈동자에 서서히 희미한 물기가 차올랐다. 아이들을 꽉 안아준 카르한이 상자를 가리켰다.
“뜯어 봐도 될까?”
세쌍둥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아와 카르한은 잔뜩 들뜬 손길로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 똑같은 목도리 한 쌍이 들어 있었다. 목도리를 꺼내자, 끄트머리에 자수로 이름이 박힌 꼬리표가 보였다.
아이들이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일리아와 카르한은 조용히 목도리를 만지고 쓸다가 목에 둘러보았다.
“정말 마음에 드는구나.”
“고맙다. 얘들아.”
그제야 아이들이 활짝 웃었다.
“편지도 썼어요!”
헤이든이 편지를 건네주었다. 편지를 받게 된 일리아와 카르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굽혀 아이들을 안아주었다.
“목도리를 받았으니, 겨울에는 다 같이 눈을 보러 여행 갈까?”
“좋아요.”
“빨리 겨울 오면 좋겠다!”
일리아는 방방 뛰는 아이들을 보며 무척 행복한 얼굴로 웃었다. 카르한과 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았지만, 역시 온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
***
새벽 일찍 일어난 카르한은 옆자리에서 곤히 잠든 일리아를 내려다보았다. 말간 얼굴을 보니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카르한은 일리아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몸을 일으켜, 침실을 빠져나왔다.
집무실에 도착한 그는 당장 봐야 할 서류부터 검토했다. 그중 야만족인 우르시오에게서 온 서신도 있었다.
야만족의 왕이 화친을 제안해온 뒤, 외교에 관심이 많은 현 황제는 카르한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 야만족 언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던 카르한이 직접 외교를 담당했고, 그 결과 두 나라는 화친을 맺게 되었다. 그로 인해 제국이 얻은 이득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야만족이라 무시했던 아메르크 왕국의 문물은 제국에서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일으켰다. 왕국 음식이 귀족들 사이에서 큰 유행이 되었을 정도였다.
더불어 육로가 뚫리며 새로운 교역로가 열렸다. 더 이상 제국민들은 위험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수로를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귀족들은 카르한이 이룩한 성과를 칭송했다. 공작가 원로들 또한 공작령의 수익이 대폭 늘자, 카르한을 견제하지 않고 지지하는 쪽으로 태도를 달리했다.
카르한은 우르시오에게 보낼 답장을 작성한 후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다. 어느새 새벽빛이 물러나고 아침이 찾아왔다. 펜을 내려놓은 그는 다시 침실로 향했다. 카르한은 침대에 걸터앉아, 잠든 일리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일리아, 아침입니다.”
“으음.”
“더 잘 겁니까?”
“일어날 거예요…….”
졸음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일리아가 웅얼거렸다. 카르한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커튼을 걷으며 말했다.
“오늘 저는 아이들과 연못가에 갔다 올 겁니다.”
일리아가 완전히 몸을 일으키자, 카르한은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두 팔을 뻗어 일리아의 얼굴을 감싼 채 뺨에 입을 맞추었다. 간지러웠는지 일리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같이 못 가서 아쉽네요. 그래도 잘 다녀와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복도가 쿵쿵 울렸다. 세쌍둥이가 뛰어오는 소리였다.
“아빠!!”
“준비 다 했어요!”
침실 문이 벌컥 열리며 세쌍둥이가 뛰어 들어왔다. 벌써 옷까지 갈아입고 가방도 멘 채였다.
“빨리 가요!”
라울의 재촉에 카르한은 일리아와 인사를 나눈 후 침실을 나왔다. 빠르게 옷을 갈아입은 그는 고용인에게 미리 준비시켰던 짐을 받았다.
가방을 멘 세쌍둥이와 카르한은 저택 뒤편의 연못가로 향했다. 단풍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깐 카르한은 아이들을 데리고 연못 앞에 앉았다.
“엄마랑 아빠가 여기서 데이트를 몇 번 했지.”
카르한에게 연못가는 특별한 장소였다. 그가 처음 블로든 저택에 방문했을 때 일리아가 데려온 곳으로, 그 후에도 종종 둘이서 데이트를 즐기곤 했다. 조용히 수면을 내려다보던 헤이든이 고개를 들어 카르한에게 물었다.
“여기 물고기 살아요?”
“그럼.”
“낚시 하고 싶다!”
라울이 소리치자, 카르한이 냉큼 낚싯대를 가져왔다.
“그럴 줄 알고 가져왔지.”
“와!”
엘로드와 헤이든은 카르한의 양쪽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고, 라울은 아예 카르한의 등에 매미처럼 매달렸다. 세쌍둥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낚싯대에 시선을 고정했다. 미끼를 달아서 연못에 찌를 던졌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을 때 낚싯줄이 팽팽해졌다. 카르한은 재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묵직한 것으로 보아 대어가 낚인 듯했다.
“아빠, 힘내요!”
아이들의 응원을 받은 카르한은 팔에 힘을 주었다. 수면을 가르고 무언가가 튀어 올라, 바닥에 툭 떨어졌다. 일제히 그 주위를 둘러싼 세쌍둥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고기가 아닌데?”
카르한이 건진 것은 녹슨 장난감 배였다. 당황한 카르한이 장난감을 이리저리 살폈다.
“이게 왜 여기에…….”
카르한은 설마 하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오래전 일리아는 자신의 유년기 시절을 말해준 적이 있었다.
-책을 읽는데, 스무 척의 배를 띄우는 장면이 있었거든요. 보자마자 따라하고 싶었죠.
그래서 가지고 있던 장난감 배를 전부 가져와 연못에 띄웠다고 했다.
-한참 동안 내버려뒀다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결국 전부 침몰해버렸어요.
지금 카르한은 20년 넘게 연못 밑바닥에 침몰해 있던 장난감 배를 건진 것이다. 장난감을 툭툭 건드려보던 라울이 중얼거렸다.
“연못에 왜 장난감이 있지?”
“오래전에 엄마가 잃어버린 장난감이야.”
“어른들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요?”
헤이든의 물음에 카르한이 나직하게 웃었다.
“엄마도 어렸을 적이 있었으니까.”
카르한은 손수건을 펼쳐 장난감을 조심스레 감쌌다. 아마 일리아가 이걸 보면 무척 신기해하면서 좋아해 줄 터였다. 오늘 밤 잠들기 전까지 일리아의 과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다시 낚싯대를 든 카르한은 쌍둥이가 기다리던 물고기를 낚는 데 성공했다. 세쌍둥이는 양동이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실컷 구경했다. 물고기를 다시 연못에 풀어준 카르한이 물었다.
“이제 점심 먹을까?”
“네!”
세쌍둥이는 빠르게 돗자리를 향해 달려갔다. 도시락을 여니 속이 푸짐한 샌드위치와 과일이 담겨 있었다.
“내 포도야.”
“먼저 잡은 사람이 먹는 거지.”
“라울, 엘로드. 싸우지 말고.”
카르한은 능숙하게 두 아이를 떼어놓고 각자 입에 포도를 넣어주었다. 그사이 헤이든은 포도 한 송이를 손에 넣고 혼자서 냠냠 먹었다.
식사를 끝낸 카르한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끈을 묶어 해먹을 설치했다. 완성되자마자 엘로드는 해먹에 누워 독서를 시작했다.
카르한은 미리 준비해둔 말뚝을 박고 천막을 펼쳐, 작은 막사를 만들었다. 목검을 든 라울이 막사 안에 들어가더니 혼자 군대놀이를 즐겼다. 마지막으로 연못가 고목에 매단 그네는 헤이든이 독점했다.
카르한은 헤이든이 탄 그네를 밀어주다가 라울과 칼싸움을 하는 둥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모두가 만족스러운 오후였다.
카르한은 잠깐 쉴 겸 돗자리에 앉아, 세쌍둥이를 구경했다. 얼굴은 참 많이 닮았는데 하는 짓이나 성격은 너무나 달랐다. 여기까지 와서 각자 노는 것만 봐도 그러했다.
“함께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카르한은 아쉬움을 담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중요한 볼일이 있어서 오늘 일리아와 함께 오지 못했지만, 겨울이 오기 전에 서로 시간이 맞으면 한 번 더 놀러 와도 좋을 듯했다.
머리 위에 뜬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주위는 빠르게 어두워졌다. 카르한은 장작더미를 쌓아 낙엽에 불을 지폈다. 넘실거리는 불꽃이 하늘까지 닿을 듯 치솟았다.
그는 모닥불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세쌍둥이에게 고구마와 버섯 등을 구워서 나누어주었다. 모두가 부른 배를 부여잡고 돗자리에 누웠다. 깜깜해진 밤하늘에 물동이를 쏟기라도 한 듯 은하수가 길게 흘러갔다.
“저건 하프 자리야. 하프처럼 생겼지?”
카르한은 아이들에게 별자리를 하나씩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별자리를 보면서 방향을 찾는 법도 알려주었다.
“저 별은 이름이 뭐예요?”
헤이든이 가리킨 별을 확인한 카르한이 속삭였다.
“아직 이름이 없는 별인데, 헤이든으로 할까?”
“나도, 나도!”
“그럼 저 옆에는 라울. 왼편에는 엘로드라고 하자.”
“엄마는요?”
엘로드의 물음에 카르한은 잠시 침묵했다. 순간 일리아의 보랏빛 눈동자가 생각났다. 어두운 곳에서도 유독 선명하던 눈동자는 카르한이 본 그 어떤 별보다 아름답게 반짝였다.
일리아의 눈동자를 떠올린 카르한은 가만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마 평생을 헤매어도 그보다 반짝이는 별은 찾을 수 없을 터였다. 밤하늘에서 시선을 거둔 카르한이 조용히 속삭였다.
“엄마 별은 하늘에 없어.”
“왜요?”
“아빠가 가져갔거든.”
뜻밖의 대답에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카르한의 왼편에 누워있던 라울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도 가지고 싶다.”
카르한은 팔을 뻗어 라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빠 거라서 그건 어렵겠는데.”
“그럼 아빠 별은요?”
“엄마가 가져갔지.”
그래서 둘 다 하늘에 없는 거라며 카르한이 웃었다. 헤이든이 미간을 좁힌 채 제 별을 노려보다가 물었다.
“언제쯤 나도 별을 가질 수 있어요?”
“기꺼이 너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타닥, 타닥 불씨가 꺼져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카르한이 물을 부어 불씨를 완전히 껐다.
“늦었으니까 이만 들어가자.”
“나중에 가면 안 돼요?”
“지금쯤이면 엄마도 돌아왔을 거야.”
카르한이 부드럽게 거절하자 아이들은 아쉬운 듯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들의 손에 램프 하나씩 쥐여 준 카르한은 곧바로 연못가를 빠져나왔다. 저택에 도착했을 때, 사방이 불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리아의 마차를 확인한 카르한은 현관으로 들어왔다. 카르한과 아이들은 씻기 전에 먼저 일리아에게 인사하기 위해 침실로 올라왔다.
“일리아, 들어가겠습니다.”
안쪽에서 대답이 들려오기도 전, 문이 먼저 열렸다. 문을 열어준 일리아는 잘 다녀왔냐는 인사도 하지 않고 카르한과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이상함을 느낀 카르한이 심각한 얼굴로 일리아를 살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일리아가 입을 달싹이며 대답했다.
“무슨 일이라면 있긴 했는데…….”
카르한의 얼굴이 바짝 굳어졌다. 미간이 좁아지자 부드럽기만 하던 그의 분위기가 대번에 사나워졌다. 당장 일리아를 곤란하게 만든 주범을 찾아내, 혼내 줄 기세였다.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던 일리아는 결연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카르한과 시선을 마주한 채 말했다.
“나 임신했대요.”
카르한은 충격 받았는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일리아가 말을 이었다.
“사실 얼마 전부터 몸이 좀 좋지 않았거든요. 이상한 꿈을 꾸기도 했고요.”
일리아는 며칠 전에 꿨던 꿈을 말해주었다. 꿈속에서 일리아는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걸었다. 목적지 없이 걷다 보니 갑자기 하늘에서 금화가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리아는 금화 비에 파묻힐까 싶어, 어느 빈 건물로 피신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타조 알만 한 보석이 데굴데굴 굴러왔다. 놀라서 집어 들자 알이 깨지더니 환한 빛이 일리아를 집어삼켰다.
“아무래도 태몽인 것 같아서 혹시나 하고 의원을 불렀더니…….”
임신이었다고 일리아가 속삭였다. 카르한은 여전히 멍한 얼굴로 일리아를 바라보았다. 세쌍둥이를 키우며 내심 넷째를 바라긴 했지만 속으로 단념했었다. 일리아를 무리시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미 새로운 아이가 찾아왔다면…….
“카르한.”
일리아의 부름에 카르한은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표정이 왜 그래요. 혹시 싫어요?”
“그게 아니라.”
카르한은 재빨리 고개를 내저었다. 마음이 복잡해서 잠깐의 간격을 두고 말을 이었다.
“저는 기쁘지만, 당신이 힘들까 봐, 그게…….”
“의원은 관리만 잘 하면 괜찮을 거라고 했어요. 나보고 회복이 빠르대요.”
일리아는 팔을 뻗어 카르한의 손을 잡고 제 쪽으로 이끌었다.
“그때도 당신이 도와줘서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카르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만약 카르한이 조금이라도 가정에 소홀했다면 넷째는 생각지도 않았을 터였다. 일리아는 아직 밋밋한 배에 그의 손을 얹게 한 뒤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넷째의 아빠가 된 소감은요?”
계속 말이 없던 카르한은 팔을 벌려 일리아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일리아의 뺨에 입을 맞춘 그가 귓가에 속삭였다.
“영광입니다.”
카르한의 행복해 보이는 얼굴을 보며 일리아가 마주 웃었다. 이렇게나 좋아해주니 역시 잘되었다 싶었다. 잠시 껴안고 있던 일리아와 카르한이 서서히 떨어지자, 잠자코 기다리던 헤이든이 물었다.
“동생 생기는 거예요?”
“그래, 내년에 동생을 볼 수 있겠네.”
일리아의 대답에 라울이 깍지 낀 두 손바닥을 뒤통수에 댄 채 중얼거렸다.
“벌써 두 명이나 있어서 필요 없는데.”
“너희처럼 사고 치지만 않았으면.”
“뭐? 내가 사고 친다고?”
라울과 엘로드가 투닥투닥 싸우는 사이, 헤이든이 일리아의 품에 쏙 안겼다.
“그럼 이제 나는 막내가 아닌 거죠? 동생은 여자예요, 남자예요?”
쏟아지는 질문에 일리아는 하나하나 대답해주었다.
“아직 성별은 몰라. 하지만 이제 헤이든도 어엿한 형이나 오빠가 되겠네.”
“나는 동생 좋아요!”
드디어 막내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것에 헤이든은 만족하는 듯했다. 밤이 늦었기에 세쌍둥이는 먼저 방을 나갔다. 둘만 남게 되자, 카르한은 서둘러 일리아를 침대에 앉혔다.
“다른 분들은 이 소식을 아십니까?”
“아직 말 안 했어요. 당신한테 가장 먼저 말해주고 싶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