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sing my Fiancè with Money RAW novel - Chapter (112)
카르한은 잠시 말없이 일리아를 바라보았다. 감격에 젖은 푸른색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 반짝였다.
“사실 넷째가 생길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지금도 너무 기쁜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나치게 기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필요하다고 카르한이 중얼거렸다. 설레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카르한을 보며 일리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넷째는 딸이었으면 좋겠어요.”
카르한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별은 아무래도 좋았지만, 일리아가 원하는 것이 곧 카르한이 원하는 거였다.
“물론 아들이라고 해도 실망하지 않고 사랑해줄 거예요.”
아들만 넷이어도 재밌을 거라고 일리아가 키득거렸다. 카르한은 그런 일리아를 무척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밤하늘을 아무리 헤매도 찾지 못한 별이 일리아의 눈동자에 살아 숨 쉬는 것이 보였다.
“오랜만에 다시 육아를 하려니까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그땐 어떻게 했나 몰라.”
일리아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 말에 카르한은 벌써부터 의욕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전부 제게 맡겨주십시오.”
***
일리아의 임신 소식에 저택이 크게 뒤집어졌다. 가족들은 경사 났다며 벌써부터 주책을 떨었다.
그날 이후로 장기 휴식에 들어간 일리아는 두 번째 임신이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 세쌍둥이를 임신했을 때와 달리, 처음 겪어보는 입덧에 물도 제대로 마실 수 없었다. 과일이나 수프로 대충 때울 때가 잦아졌다.
옆에서 걱정하던 카르한은 일리아가 뭔가 먹고 싶다고 말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단 한 입이라도 먹이기 위해, 새벽이라도 외출해서 음식을 구해왔다.
어쩌다 일리아가 두 숟가락을 먹으면 누구보다 기쁘게 웃어주었다. 그런 카르한의 노력 덕분에 입덧 기간은 무탈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배가 점점 불러오자 카르한은 일리아의 손과 발이 되어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
“이러다가 돼지보다 게을러지면 어떡해요?”
카르한은 웃다가 일리아의 뺨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게으른 일리아도 귀여울 겁니다.”
일리아는 그냥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해가 바뀌고 세쌍둥이도 점차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시큰둥하던 라울과 엘로드도 동생이 잘 있는지 슬쩍 묻곤 했다. 나중에는 아예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손꼽아 동생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일리아는 넷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다녀왔습니다. 일리아.”
마차에서 내린 카르한이 일리아를 껴안고 인사를 건넸다. 똑같이 마주 안은 일리아가 대답했다.
“오늘도 일찍 왔네요?”
“예, 일이 끝나자마자 곧장 왔습니다.”
막내가 태어난 후로, 카르한은 매일매일 더 일찍 돌아오려고 노력 중이었다. 이러다가 나중엔 아침에 출근해서 점심에 돌아오는 게 아닐까 싶었다. 문제는 카르한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거 알아요? 당신이 꼴찌예요.”
카르한은 서둘러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옷만 갈아입은 그는 일리아와 함께 막내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미 방은 만석이었다.
“아일라, 이쪽 봐주렴.”
비올레와 클리프, 헤인리가 아기 침대에 달라붙어서 막내인 아일라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다. 그에 맞서서 불쑥 자라버린 세쌍둥이도 관심을 구걸했다.
“라울 오라버니라고 불러봐.”
“저건 무시하고 엘로드 오라버니라고 불러보렴.”
“아일라, 내가 바이올린 켜줄까?”
지나친 관심 속에서 아일라는 눈만 깜빡였다. 일리아와 카르한이 방으로 들어오자 비올레와 클리프가 먼저 아는 척했다.
“카르한, 왔어요?”
고개를 끄덕인 카르한은 침대에 누워있는 아일라를 보고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아일라, 아빠 왔다.”
눈만 동글동글 뜬 아일라의 입매가 조금씩 허물어졌다. 미소를 지을락 말락 하자 모두가 숨을 죽였다. 마침내 아일라가 배시시 웃자 클리프가 가슴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천사가 분명해…….”
이 모습을 그림으로 담아둬야 한다며 클리프가 주장했다. 평소에 사사건건 토를 달던 헤인리도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이면 조각상도 만들고, 시인을 불러 찬양 시를 짓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요즘 네가 좀 마음에 드는 소릴 하는구나.”
클리프와 헤인리가 훈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일리아는 피식 웃다가 아기 침대로 걸어가 아일라를 안아들었다.
아일라는 일리아와 똑 닮아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블로든 가문을 상징하는 금빛 머리카락과 카르한을 닮은 푸른색 눈동자가 어우러져, 마치 인형 같았다.
“보니까 옹알이도 제법 하더라고요. 슬슬 단어도 말할 것 같아요.”
그 말에 모두가 득달같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라고 불러보렴.”
“할머니가 더 짧지 않니?”
“라울 오라버니, 아니 라울이라고 불러도 돼!”
순식간에 방이 시끄러워지자 일리아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모두의 기대를 받게 된 아일라는 눈동자를 굴리다가 입술을 오물거렸다.
“우응, 어마……?”
“세상에.”
비올레의 감탄사와 함께 모두가 일리아를 쳐다보았다. 일리아는 놀란 나머지 입술만 살짝 벌린 채 아일라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저 부른 거 봤어요?”
침착한 척했지만 누구보다 흥분한 일리아가 가족들을 둘러보며 동의를 구했다.
“역시 막내는 엄마가 제일 좋은가 보구나.”
“그럼 두 번째는 외삼촌을…….”
헤인리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슬쩍 끼어들었다가 비올레에게 차단당했다.
“일리아, 제가 안겠습니다.”
조심스레 아일라를 넘겨받은 카르한은 흐물흐물 녹은 얼굴이 되었다.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의 얼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들은 썰물처럼 방을 빠져나왔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든 세쌍둥이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일라 보고 싶어.”
“지금 자려나?”
“잠깐만 보고 오는 건 어때?”
라울의 제안에 엘로드와 헤이든은 고민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쌍둥이는 몰래 방을 빠져나와 아일라의 방으로 향했다. 유모가 잠깐 자리를 비웠는지 방에는 아일라 혼자뿐이었다.
램프를 가까이 가져가자 잠에서 깼는지 아일라가 눈을 번쩍 떴다. 순간 놀라서 숨이 멎었다. 울면 어쩌나 싶었으나, 아일라는 옹알이하며 손가락만 꼬물거렸다.
“내 동생 귀여워…….”
헤이든의 중얼거림에 라울과 엘로드는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한참 동안 아일라와 놀아주었다. 딸랑이를 흔들어주고 모빌을 돌리며, 노래도 불러주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자 아이들은 슬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늦었다가는 아침에 못 일어날 터였다. 아쉬운 얼굴로 방을 둘러보면서 엘로드가 입을 열었다.
“여긴 너무 깜깜하고 무섭지 않아?”
“맞아. 우린 세 명이지만 아일라는 혼자잖아.”
“그럼 우리가 가도 무섭지 않게 해주자.”
헤이든의 제안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쌍둥이는 곧바로 옆방에서 장난감을 가져왔다. 아일라를 중심에 두고 곰인형을 둥글게 앉혔다. 라울은 어릴 적에 자주 가지고 놀았던 병정 인형을 가져와 의자에 세워놓았다. 이 인형들이 밤새 아일라를 지켜줄 것 같았다.
그제야 안심한 세쌍둥이는 만족스러운 듯 서로를 보며 웃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차례대로 아일라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잘 자.”
***
살짝 열어둔 창문 틈으로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불어왔다. 집무실 책상 앞에 앉아서 서류를 보던 일리아는 잠시 창밖을 응시했다.
탁 트인 정원은 만개한 꽃으로 가득했다. 시선을 돌리자 거대한 분수대가 눈에 들어왔다. 분수대 주위에 물동이를 받치는 세쌍둥이 동상이 보였다. 그 옆에는 막내인 아일라 동상이 추가로 세워져 있었다.
한참 창밖을 구경하는데, 익숙한 마차 한 대가 정원을 가로지르며 달려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일리아는 곧장 현관으로 내려와 세쌍둥이를 불렀다.
“라울, 엘로드, 헤이든.”
세쌍둥이가 일리아의 부름에 환히 웃었다.
“어머니!”
이제는 소년이 되어버린 세쌍둥이가 일리아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일리아는 저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져 버린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주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어제 방학식이었는데, 너무 늦게 도착할까 싶어서 오늘 왔어요.”
“저는 쟤 때문에 강제로 하루 더 묶여 있었어요.”
엘로드의 말에 라울이 투덜거렸다. 아직도 티격태격하는 첫째와 둘째를 보며 일리아가 웃었다.
“두 달 동안 방학이라고 했지?”
“맞아요. 보고 싶었어요.”
헤이든이 어리광부리듯 일리아를 끌어안았다. 몸은 훌쩍 커버렸지만, 헤이든은 아직도 아기처럼 굴곤 했다.
“일단 들어가자.”
일리아의 말에 세쌍둥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작년, 일리아와 카르한은 아이들의 교육을 두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가정교사를 고용해서 집에서 교육시킬지, 아카데미에 보낼지 말이다.
의논 끝에 두 사람은 아이들을 아카데미에 보내기로 했다. 일리아와 카르한은 둘 다 아카데미에 가본 적이 없어서,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알려주고 싶었다.
세쌍둥이는 아카데미로 떠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으나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검술에 재능을 보인 라울은 검술부에, 예전부터 책을 끼고 살던 엘로드는 행정부로, 미술과 음악에 두각을 나타낸 헤이든은 예술부에 입학했다.
세쌍둥이의 입학과 동시에 아카데미는 아주 난리가 났었다. 황족 버금가는 화려한 배경을 가진 데다가 각자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 단연 화제가 되었다. 교수들도 천재라며 혀를 내둘렀기에, 결국 세쌍둥이는 메즈라 제니어스가 담당하게 되었다.
카르한의 스승이자 일리아에게서 유물을 받아 수많은 논문을 써온 메즈라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지금은 셋 다 월반해서 2년 내로 졸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아일라!”
세쌍둥이의 부름에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일라가 고개를 들었다. 아일라는 장난감을 내려놓고 도도도 달려왔다.
“오라버니!”
“넘어질라.”
세쌍둥이는 아일라가 넘어져도 받을 수 있도록 일제히 팔을 벌렸다.
“잘 있었어?”
“오라버니는 아일라가 너무 보고 싶던데, 아일라도 라울 오라버니 보고 싶었지?”
“아일라, 저건 그냥 무시해도 된단다.”
아일라를 두고 저마다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천재라 이름을 날린 세쌍둥이도 막내 앞에서는 한낱 팔불출 오라버니에 불과했다.
“자! 출발!”
라울이 아일라를 등에 태우고 네 발로 바닥을 기었다. 평소라면 품위 없다고 질색하는 엘로드도 옷이 더러워지든 말든 무릎을 꿇고 아일라와 눈을 맞추었다. 헤이든은 자기 차례가 돌아오길 호시탐탐 노리다가 아일라가 좋아하는 장난감으로 이목을 사로잡았다.
세 아이가 아일라와 놀고 있는 사이, 일리아는 방을 나왔다. 슬슬 카르한이 돌아올 시간이었다. 일리아가 현관으로 나오자 포포가 달려왔다. 일리아는 포포를 품에 안고 카르한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 한 대가 현관 앞에서 멈춰 섰다. 일리아는 마차에서 내리는 카르한에게 다가섰다.
“카르한, 어서 와요.”
일리아의 인사에 카르한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다녀왔습니다.”
일리아의 이마에 입을 맞춘 카르한이 장미 한 다발을 내밀었다.
“오는 길에 장미가 탐스러워 보여서 사 왔습니다.”
일리아는 카르한이 어쩌다가 꽃을 샀을지 눈에 훤히 보였다. 분명 길 가다가 꽃가게를 발견하고 차마 지나치질 못해서 구입했을 것이다. 정원에 이렇게나 많은 꽃이 있는데도 말이다.
“고마워요. 카르한.”
일리아는 발뒤꿈치를 들어 카르한의 입술에 도장 찍듯 입을 맞추었다. 그 작은 보상으로도 카르한은 세상을 얻은 듯 기쁘게 웃었다.
“아참, 애들 좀 전에 왔어요.”
“생각보다 일찍 왔군요.”
카르한은 세쌍둥이에게 인사부터 해야겠다고 중얼거렸다. 포포를 내려놓은 일리아는 카르한과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 계단을 오르던 카르한은 잠깐 멈춰 서서 벽에 걸린 초상화를 응시했다.
초상화는 두 점이었다. 왼쪽은 카르한의 생일 선물로 그렸던 가족 초상화였다. 오른쪽은 작년에 새로 그린 초상화로, 무려 네 명이나 더 늘어버렸다.
카르한은 초상화를 그렸을 때를 떠올리고 작게 웃었다. 사람이 아홉 명이다 보니 어찌나 정신이 없던지. 특히 모두의 신경이 막내에게 향하느라 바네사가 몇 번이나 정면을 보라고 말했었다.
카르한은 그림 속에서 미소 짓는 일리아를 응시했다. 아름다웠지만 역시 그림은 실물을 전부 담을 수 없었다. 초상화에서 눈을 뗀 카르한이 일리아를 내려다보았다.
“왜 그래요?”
“예뻐서요.”
짤막한 대답에 일리아의 귓불이 조금 붉어졌다.
“당신 많이 능글맞아진 거 알아요?”
예전엔 말도 제대로 못 하더니 요즘은 숨 쉬듯이 예쁘다, 귀엽다…… 그런 말들을 내뱉었다. 슬쩍 눈꼬리를 내린 카르한이 물었다.
“그래서 싫습니까?”
“누가 싫대요?”
그제야 카르한이 안심한 듯 웃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과거의 카르한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깨닫곤 했다. 카르한은 다시 걸음을 옮겨 계단을 올랐다.
“다음에는 둘이서만 초상화를 그려도 좋을 듯합니다.”
“우리 둘만요?”
“예. 그건 제 집무실에 걸어두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요.”
잠시 말없이 일리아를 내려다보던 카르한이 입을 열었다.
“예전에는 제가 가족의 일원이라는 걸 확인 받고 싶었습니다.”
계단을 전부 오른 카르한이 씩 웃었다.
“지금은 그냥 자랑하려고 초상화를 남기고 싶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저와 일리아가 사랑했고, 사랑할 거라는 걸 다들 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우리가 매년 초상화를 남겨야겠어요.”
모든 순간을 기록해서 후세에 남길 것이다. 세상이 끝나는 날에도 분명 초상화 속 모습처럼 서로의 손을 잡고 있을 터였다. 이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면 깊어졌지 얕아질 일은 없을 것이다.
일리아와 카르한은 손을 맞잡은 채 복도를 걸었다. 아일라의 방으로 향하는 동안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다.
“이번에 시작한 사업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비올레에게 사업의 대부분을 물려받은 일리아는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일리아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번 사업은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다.
“몇 년 전부터 재물 운이 잠잠하니, 제가 더 힘내야죠.”
일리아의 미친 듯한 재물 운은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빛을 잃어갔다. 금맥을 발견한다거나 온천이 터지는 재물 운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일리아는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고난과 역경이 있었기에 사업에 더욱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온전히 제 실력으로 사업을 키울 수 있어서 좋아요.”
지금도 블로든은 제국 제일의 부자였고, 운에 의지하지 않고도 사업은 순탄히 흘러갔다. 일리아는 아무래도 재물 운이 연애 운으로 완전히 넘어간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어느덧 아일라의 방에 도착한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섰다.
“얘들아.”
카르한의 목소리에 세쌍둥이와 아일라가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
헤이든이 곧바로 카르한에게 달려왔다.
“오셨어요?”
“와, 오랜만이에요. 아버지.”
엘로드와 라울도 자리에서 일어나 카르한에게 다가왔다. 일반적인 귀족 가문의 부자 관계와 달리, 그들 사이에 어색함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짤막한 안부 인사를 나눈 후 카르한은 아일라를 번쩍 안아 들었다.
“우리 막내는 오라버니들이랑 잘 놀았나?”
“응응.”
아일라의 대답에 모두의 얼굴이 흐물흐물 풀렸다. 특히 카르한은 예뻐 죽겠다는 듯 아일라의 코에 제 코를 비볐다.
일리아를 많이 닮은 막내는 카르한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어찌나 예뻐하는지 아일라가 먹을 이유식에 들어갈 당근도 손수 심었을 정도였다.
“이제 우리 막내 생일이 일주일도 안 남았네.”
카르한의 속삭임에 세쌍둥이가 눈을 빛냈다.
“아일라, 가지고 싶은 건 없고? 말만 하면 오라버니가 당장 구해올 테니까.”
“오라버니는 작년부터 돈을 모아두었단다.”
“내가 연주회 열어줄게!”
득달같이 달려드는 세쌍둥이를 보던 일리아가 카르한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도 부모님이랑 오라버니가 엄청난 일을 꾸미더라고요.”
“음…….”
이제 카르한은 블로든 가문의 재력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지만, 일리아가 엄청나다고 말할 정도면 상상 그 이상일 터였다. 생일 이야기를 나누다가 카르한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참, 저번에 의논한 대로 그곳 땅을 매입했습니다.”
“잘했어요. 아일라 명의로 샀죠?”
“예. 지금쯤 지반을 다질 겁니다.”
두 사람은 아일라의 생일을 기념해 별장을 선물하기로 했다. 위치 좋은 땅을 매입했으니 내년이나 내후년쯤에는 완공될 터였다.
“얘들아, 슬슬 점심 먹을까?”
“좋아요.”
엘로드가 아일라를 불쑥 안아 들었다. 그러자 라울과 헤이든이 항의했다.
“야! 내가 안을 거야.”
“이번엔 나야.”
셋이서 티격태격하자, 일리아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카르한이 성큼성큼 걸어가 아일라를 안아 들자, 세쌍둥이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형제에게 아일라를 빼앗길 바에야 차라리 아버지가 안는 게 나았다.
다 같이 식당으로 향하던 때였다. 반대편 복도에서 누군가 황급히 걸어왔다.
“카르한 님!”
테시온을 발견한 일리아와 카르한이 멈춰 섰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세쌍둥이도 덩달아 멈추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테시온이 주춤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라니.”
“얼마 전에 아일라 님 명의로 매입한 땅 말입니다.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뭐?”
“지반을 다지다가 광맥을 발견했습니다.”
테시온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그냥 광산도 아니고, 다이아몬드 광산입니다…….”
일리아와 카르한은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일라가 까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사라진 줄 알았던 재물 운은 여전히 블로든 안에 건재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돈으로 약혼자를 키웠습니다 외전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