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sing my Fiancè with Money RAW novel - Chapter (26)
클리프가 먼저 걸음을 뗐다. 카르한은 혹시 자신이 뭔가 실수라도 했나 싶어서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테시온이 옆에서 작게 속삭였다.
“잘하고 계십니다. 그 많은 것을 다 외우셨을 줄은…….”
역시 천재라며 테시온이 호들갑 떨었다.
“그리고 블로든 백작님께서는 정말 대단하십니다.”
억만금을 주어도 이런 시간을 갖기 어려울 거라며 테시온이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미술에 관심이 많은 테시온은 이미 블로든 백작의 팬이 되어버린 듯했다.
확실히 카르한도 클리프와 대화를 하면서 단시간에 많이 배웠다. 어느 정도 지식을 쌓고 감상하니 보는 재미도 있었다.
클리프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자 추상적이거나 난해한 작품들이 많이 보였다. 클리프가 어느 작품 앞에서 멈춰 섰다. 형태 없이 노란색과 분홍색 그리고 하늘빛이 뒤섞인 그림이었다. 구름처럼 몽글몽글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따스한 빛깔을 보고 있으니 일리아가 떠올랐다. 그녀를 색깔로 빚을 수 있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지금까지 본 작품 중에 가장 마음에 들어서, 카르한은 한참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떻습니까?”
클리프가 홀린 듯이 그림을 보고 있는 카르한에게 물었다.
“……다정하고 포근해서 덩달아 따스해지는 기분입니다.”
카르한은 솔직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클리프가 일리아의 아버지라는 것도 잠시 잊은 채 말을 이었다.
“블로든 영애가 생각납니다.”
클리프는 그림처럼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 카르한을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통 알 수 없었는데, 저 표정만큼은 쉬이 읽혔다. 아무래도 카르한은 정말로 일리아를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카르한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클리프는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이렇게 쉬운 남자였다니……. 클리프는 스스로를 타박했다. 고작 두 번 봤을 뿐인데, 벌써부터 마음이 기울어져서 큰일이었다. 클리프는 헛기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이 그림은 사랑이라는 주제로 그려진 것입니다.”
순간 카르한은 지레 놀라서 몸을 틀었다.
“연인들에게 인기가 많지요.”
뻣뻣하게 굳어진 카르한이 눈동자만 굴렸다. 괜히 찔려서 그런지 심장이 쿵쾅거렸다.
클리프는 작품 설명을 상세하게 해준 후 걸음을 뗐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2층을 다 돌게 되었다. 클리프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앞으로도 종종 만남을 가졌으면 합니다.”
클리프의 말에 카르한은 경직된 어깨를 조금 내렸다.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한 보람이 있었다. 드디어 합격인가 싶어서 안도하는데, 클리프가 물었다.
“혹시 음악 좋아하십니까?”
평소에 오르골을 종종 사용하곤 했다. 카르한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번에는 오케스트라를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
카르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순간 음악 공부를 시작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에 빠졌다.
카르한은 천천히 심호흡을 내뱉었다. 저번에는 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승낙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드디어 일리아와 연습한 성과를 보여줄 때였다. 카르한이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클리프가 말했다.
“아, 그때는 일리아도 함께 가면 좋겠군요.”
“……예.”
결국 카르한은 거절하지 못했다.
“관장님!”
누군가가 클리프를 불렀다. 단걸음에 달려온 남자가 클리프에게 뭐라고 귓속말했다. 클리프는 미안한 얼굴로 카르한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하지만, 잠시 자리를 비워도 괜찮겠습니까?”
“다녀오십시오. 구경하고 있겠습니다.”
클리프는 금방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점점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카르한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오케스트라라니……. 분명히 거절하려고 했는데, 일리아의 이름을 듣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카르한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아까 보았던 그림 앞에서 멈춰 섰다. 포근한 빛깔을 보고 있으니 뱃멀미를 하듯 가슴이 울렁거렸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카르한은 알 수 없었다.
이 그림을 일리아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에반테온 소공자잖아?”
“아니, 저자가 예술에 대해 뭘 안다고 이곳에…….”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골적인 괄시에, 카르한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노귀족 무리가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몇몇이 반사적으로 움찔거렸다. 꼬장꼬장한 노귀족들 사이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에반테온 공작가 원로 중 한 명이었다.
노귀족들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카르한을 탐색했다. 그들이 알고 있던 모습과 달리, 흉흉한 기세가 한풀 꺾여 있었다. 밝은 색 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위압감도 덜했다. 탐색을 마친 노귀족들이 먼저 다가와 아는 체했다.
“에반테온 소공자 아닙니까.”
카르한은 원로를 제외하고 누군지 잘 몰라서 고개만 살짝 숙였다.
“내 오래 살기는 한 모양입니다. 이런 곳에서 소공자를 뵐 줄이야.”
한 노귀족이 빈정거렸다. 예술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 미술관을 찾아올 줄은 몰랐다는 태도였다.
귀족 사회에서 카르한의 평판은 무척 나빴다. 특히 노귀족들은 카르한을 아니꼽게 보았다. 아무리 공작의 후계자라지만, 지나치게 뻣뻣하고 차갑게 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붙임성 있기는커녕 말을 걸면 도리어 무시무시한 눈빛만 보냈다. 어느 심약한 노귀족이 카르한의 시선을 받고 기절한 일이 있을 정도였다. 그 후로 그들은 카르한을 악당 취급했다.
“…….”
카르한은 그들이 저를 미워한다는 것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여전히 자신을 미워하는 이들은 별처럼 많았다. 아무래도 태도가 문제인 모양이었다.
말주변이 없는 탓에 누군가 말을 걸어 올 때마다 무척 곤란했다. 신중하게 대답을 고르고 있으면 다들 그사이에 도망가 버리곤 했다. 심지어 지금처럼 말을 섞기도 전부터 적의를 보이는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어려웠다.
일리아라면 어떻게 했을까. 카르한은 고민 끝에 일리아와 연습한 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그러자 노귀족들이 눈에 띄게 움찔했다. 한쪽 입꼬리만 올라간 어색한 미소는 오히려 카르한을 거만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심지어 허리춤에 칼집까지 차고 있으니 완벽한 악당처럼 보였다. 귀족들은 저들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뭐지, 미술관을 파괴하러 온 건가.’
‘안 된다. 여기는 예술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 지켜야 한다.’
‘이곳이 어딘 줄 알고……!’
노귀족들은 심호흡을 내뱉은 후 맹렬히 카르한을 노려보았다. 마치 재개발 구역을 밀러 나온 용병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우리가 두 눈 새파랗게 뜨고 있는데 감히…….”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눈빛이 더욱 타올랐다. 카르한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게 아닌가. 요즘 그래도 성공률이 많이 올라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연습을 더 해야 할 듯했다.
“그래서 무슨 목적으로 여길 온 겁니까?”
“……초대 받아서 왔습니다.”
“그럴 리가!”
말도 안 된다며 노귀족들이 성토했다. 보다 못한 테시온이 입을 열었다.
“저희는 블로든 백작님께 초대받은 손님입니다.”
블로든 백작을 언급하자 그들이 웅성거렸다. 클리프 블로든은 이 미술관의 관장이자, 예술을 사랑하는 모임의 회장이었다.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던 노귀족 하나가 어느 그림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저 그림이 뭔지는 압니까?”
당연히 모를 거라는 태도였다. 고개를 들어 그림을 확인한 카르한이 입을 열었다.
“저 그림은 300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작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작품의 모티프는 이미 멸망한 왕국이라 알려져 있지만 역사학자들은…….”
카르한은 클리프에게 들은 것과 자신이 아는 것을 토씨 하나 흘리지 않고 설명했다. 나직한 목소리가 끝없이 이어지고, 팔짱을 낀 채 듣던 귀족들이 천천히 팔을 풀었다.
“……제가 아는 것은 이 정도입니다.”
마침내 카르한의 말이 끝났을 때, 주위는 잠시 조용해졌다. 노귀족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린 채 그를 보고 있었다.
“혹시 제가 틀렸습니까?”
그들의 반응에 카르한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나 노귀족들은 당혹스러운 듯 눈동자만 굴렸다. 방금 카르한의 설명은 무척 훌륭해서 강연이라도 들은 것 같았다.
무식한 칼잡이라고 생각했는데, 에반테온 소공자가 이렇게나 박식했다고……? 그들이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입술만 벙긋거릴 때였다.
“카르한……?”
익숙한 목소리에 카르한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일리아가 서 있었다.
***
일리아는 아버지께서 준비한 전시회가 개관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초기에는 많이 바쁘실 것 같아서 일부러 방문하지 않았다. 시간이 제법 지났으니 이제 슬슬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택을 나온 일리아는 수도에서 가장 큰 미술관 앞에 도착했다. 미술관을 찾는 이들은 귀족과 평민, 아이와 노인까지 다양했다. 이 모든 것은 클리프 블로든이 노력한 결과였다.
십 년 전만 해도 규모가 큰 미술관이나 극장은 평민의 출입을 제한하곤 했다. 그러나 클리프는 예술은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음을 늘 강조했다.
그는 뜻을 실천하기 위해 귀족만 입장할 수 있었던 대형 미술관을 평민에게도 개방했다. 다만 약간의 입장료를 받았는데, 한때 무료로 개관했다가 악용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일리아는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멈칫했다. 건물 입구 구석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낡은 옷을 입은 여자는 동전을 손바닥으로 굴리며 미술관 입구만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입장료가 부담되는 모양이었다.
전시된 작품의 가치와 숫자를 따지자면 입장료는 무척 저렴한 편이었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렇지는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사치라고 생각될 만큼 부담일 수도 있었다. 고민하던 일리아는 입장을 도와주는 직원에게 향했다.
간단히 일러두자,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자가 고민 끝에 뒤돌아서는 순간이었다.
“천 번째 손님은 무료입장입니다.”
직원의 말에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재빠르게 직원에게 다가갔다.
“저 혹시…… 제가 천 번째인가요?”
“네, 맞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직원이 활짝 웃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여자는 들뜬 얼굴로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건넨 후 안으로 들어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일리아도 천천히 걸음을 뗐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온 일리아는 아버지를 찾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많이 바쁜지 보이질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직원에게 왔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해야 할 듯했다. 일리아는 프란체, 말렉과 함께 그림을 구경했다. 오래된 명화부터 시작해서 외국 작품까지 다양했다. 클리프가 몇 달을 공들여 준비한 만큼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조용히 관람하는데, 카르한이 떠올랐다. 저번에 미술 책 한 권을 옆구리에 끼고 온 것이 생각났다.
“초대장을 보낼 걸 그랬네.”
제안만 해놓고 잊고 있었다. 나중에 집에 돌아가면 바로 초대장을 보내야겠다고 일리아는 생각했다.
1층을 전부 돌고 난 후 2층으로 올라갔다. 작품을 구경하던 중 프란체가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하품하던 프란체는 일리아와 눈이 마주치자 변명했다.
“절대 지루해서 그런 게 아니라…….”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던 프란체가 실토했다.
“역시 저는 미술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 있지.”
1층에 비해 2층은 심오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추상화부터 시작해 역사와 정치, 철학, 이념을 표현한 것들이라 공부한 만큼 보이는 법이었다.
그림을 구경하던 일리아는 문득 아쉬웠다. 분명 훌륭한 그림이지만, 대부분 외국 작품이거나 오래된 것들이었다. 최근에 그려진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엇비슷하면서 눈길을 사로잡는 힘이 부족했다.
-기막힌 신인이 하나 나오면 좋을 텐데. 지금은 고이다 못해서 썩었으니.
아버지가 왜 한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일리아는 좀 더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 낯익은 노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카르한……?”
일리아는 저도 모르게 그를 불렀다. 그곳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일리아를 바라보았다.
“오, 블로든 영애 아닙니까.”
일리아의 얼굴을 알아본 노귀족들의 얼굴에 꽃이 피었다. 일리아는 이들이 누군지 깨달았다. 예술을 사랑하는 모임의 회원들이었다.
“저번 만찬 이후로 오랜만이지요.”
“백작께서는 잘 계십니까?”
그들이 우르르 안부 인사를 건넸다. 미술관 관장인 아버지를 두고 있는 덕분에, 노귀족들은 일리아를 손녀처럼 귀여워했다.
“저도 오랜만에 뵙게 되어서 기뻐요.”
일리아가 생긋 웃었다. 천사 같은 미소에 노귀족들은 흐뭇하게 따라 웃었다. 인사를 받던 일리아는 미묘한 얼굴로 카르한을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난감하다는 듯 서 있던 카르한의 표정이 사르르 풀렸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하는 강아지 같았다. 무뚝뚝하던 그의 얼굴이 부드러워지자, 노귀족들은 놀란 듯 입술을 벙긋거렸다.
잠깐 침묵이 돌았다. 어색하다 못해서 불편한 기류가 흘렀다. 그사이 일리아는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아무래도 노귀족들과 카르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
노귀족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내 잘되었다는 듯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아라면 자신들의 편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 듯했다. 한 귀족이 카르한을 힐끔거리며 입을 열었다.
“흠흠, 소공자께서 블로든 백작의 초대를 받아 전시회에 참석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믿기 어려워서 말이지요.”
……아버지가? 일리아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래서 그 말이 맞는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저희는 이곳을 지킬 의무가 있기 때문에…….”
누가 들으면 카르한이 미술관을 때려 부수러 온 것처럼 느껴질 말이었다. 못 올 곳에 온 것도 아니고…….
일리아는 악당 취급 당하고 있는 카르한을 올려다보았다. 어찌나 순한지 화를 낼 생각도 못 하고 그냥 듣고만 있었다. 일리아는 카르한에게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 그와 다정하게 팔짱을 꼈다.
열심히 떠들어대던 귀족이 말을 멈추었다. 모두가 당황한 눈으로 일리아와 카르한을 번갈아 보았다.
“블로든 영애……?”
“듣고 있으니 계속 말씀하세요.”
“아니, 두 사람 무슨…… 사이인지……?”
설마 하는 말투였다. 어릴 적부터 손녀처럼 귀여워해오던 일리아와 평소 행실이 좋지 않은 에반테온 소공자의 조합이라니…….
눈으로 봐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일리아는 아예 도장까지 쾅쾅 찍어주었다.
“연인이에요.”
콰앙, 하고 머리 위로 벼락이라도 떨어진 듯 노귀족들의 얼굴에 완전히 금이 갔다. 노귀족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황망히 일리아를 살폈다.
혹시 협박당했나 걱정하는 사람부터 카르한을 노려보는 사람까지 반응이 다양했다. 아무래도 노귀족들 사이에서 카르한은 평판이 무척 나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척을 지는 것은 아둔한 생각이었다. 이들 중에 아직까지 제국에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고위 귀족도 여럿이었다. 잘 보여 두면 미래에 공작이 될 카르한도 도움을 많이 받을 터였다.
일리아는 눈을 내리깔고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마음이 좀…… 아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