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sing my Fiancè with Money RAW novel - Chapter (39)
메즈라의 물음에 카르한이 움찔했다. 연애 서적을 찾아 읽을 이유라면 그것뿐이었기에 메즈라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가 헛기침을 내뱉은 후 말했다.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한때 연애 상담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지요.”
카르한이 눈동자를 도르륵 굴렸다. 메즈라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카르한의 연애 고민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첫 만남 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카르한은 성실하고 착한 학생이었다. 스승으로서 아끼는 제자를 돕고 싶은 것은 당연했다.
“연애 상담은 아니고……,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어서…….”
카르한이 느릿하게 말문을 열었다. 메즈라는 곧바로 의자에 앉아 카르한을 마주 보았다.
“마음에 둔 상대가 있습니까?”
카르한이 대답하지 않자, 메즈라는 좀 더 상세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자주 생각난다거나, 괜히 의식되는 그런 상대 말입니다.”
카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아 생각은 매일 하고 있었다. 나름 일리아를 의식해서 옷도 열심히 골라 입었고, 데이트 코스도 공부해갔다.
“흐음, 에반테온 님이 그 상대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모르겠단 말이지요?”
“……예.”
카르한은 일리아와 함께 있으면 즐겁고 마냥 좋았다. 친구가 생기면 이런 느낌일까 종종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일리아를 볼 때마다 가슴 언저리가 간질간질했다. 온 신경이 일리아에게 몰렸다가 간혹 가슴이 답답해지며 숨이 턱 막힐 때가 있었다. 그것의 정체가 궁금했다.
“가슴이 막 두근거린다거나 그러진 않습니까?”
“심장이 조금 안 좋긴 한데…….”
거기까지 말한 카르한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가끔씩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뛸 때가 있었는데, 일리아와 함께 있을 때만 그러했다. 늘 들고 다니던 심장 약도 그때밖에 먹을 일이 없었다. 왜 지금까지 이걸 몰랐지……?
카르한이 꼼짝하지 않자, 메즈라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에반테온 님은 그 상대와 어떤 관계가 되고 싶습니까?”
“저는…….”
턱, 하고 말문이 막혔다. 카르한은 현재에 안주했을 뿐, 앞으로 변화할 관계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가 되고 싶었다.
욕심을 좀 더 부리자면 시간이 많이 흘러도 일리아와 함께 있고 싶었다. 일리아가 무사히 파혼하고, 자신이 진짜 후계자가 된 후에도……. 먼 미래를 상상하던 카르한은 숨이 턱 막혔다.
분명히 일리아와 자신이 바라던 미래였다. 하지만 그 끝에 있는 것은 갈림길이었다. 서로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일리아와 카르한은 각자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다 다른 이와 결혼이라도 하면 바빠서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할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팔팔 끓는 온수를 들이부은 것처럼 속이 뜨거워졌다. 어두운 얼굴로 바닥만 내려다보던 카르한은 입술을 달싹였다.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는 듯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늘 곁에 있을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되고 싶습니다.”
그거 딱 결혼하면 되는 관계인데? 메즈라는 대답하려다가 참았다.
“하지만 제가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카르한이 자신 없어 하자, 메즈라가 발을 굴렸다.
“아니, 에반테온 님께서 무엇이 빠지신다고! 완벽한 집안에 훌륭한 외모! 그리고 재력까지 갖추시지 않으셨습니까.”
카르한이 시무룩한 얼굴로 정정해주었다.
“그분은 저보다 돈이 많습니다.”
돈이 더 많다고……? 설마 블로든 영애인가……?
메즈라의 눈동자가 짧게 흔들렸다. 생각해보면 에반테온 후계자인 그가 블로든 저택에 와서 수업을 받는 것이 이상하긴 했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얼핏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일리아와 카르한이 교제한다는……. 뜬소문이 아니라 사실인 모양이었다.
아니, 그전에 카르한은 좋아한다는 걸 아직 자각하지 못한 모양인데……, 정말 교제하는 게 맞긴 한가? 머릿속이 복잡해진 메즈라는 작게 침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두면 카르한은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자각하지 못할 것 같았다. 메즈라는 결국 자신이 느낀 바를 말해주었다.
“제가 보기엔 말입니다……. 에반테온 님께서 그분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 좋아합니다.”
순순히 돌아온 대답에 메즈라가 당황했다.
“아니, 그럼 왜……. 도대체 무엇을 고민하시는 겁니까?”
카르한이 뒷목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좋아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
“저는 채소를 좋아하는데, 채소한테는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아서……”
“아!”
메즈라는 뒤늦게 깨달았다. 카르한은 좋아함과 사랑함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을.
가끔씩 카르한을 보고 있으면 아직 세상에 나가보지 못한 아이 같았다. 배우는 속도는 빠르지만 기본적인 것도 몰라서 당황스러울 때가 종종 있었다. 아마도 카르한은 사랑을 처음 자각한 모양이었다.
“그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
카르한은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들어도 잘 모르겠다는 반응에 메즈라가 천천히 풀어서 설명해주었다.
“아무래도 그 상대가 에반테온 님께 특별한 사람이라 고민하시는 듯합니다.”
메즈라는 자신이 쓴 책을 힐끗 보았다. 낯부끄러운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은 에반테온 님께서도 확신하지 못하고 계신 듯하지만, 언젠가 좋아한다는 말로는 부족한 날이 온다면…….”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내를 떠올리며 웃었다.
“그때는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
일리아는 재무표를 작성하다가 멈추었다.
고개를 들어 여기서는 보이지도 않는 연무장 쪽을 바라보았다. 아마 지금쯤 카르한은 연무장에서 검술을 연마하고 있을 터였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카르한이 저를 피하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에도 가벼운 인사만 나누고 곧바로 사라졌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곰곰이 짚어보던 일리아는 연극 보러 갔을 때를 떠올렸다.
그날 일리아는 연극을 보던 중에 잠들어버렸다. 연극이 끝나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카르한의 상태가 이상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자버려서 화가 났나.”
그럴 것 같진 않지만……. 카르한을 붙잡고 대놓고 물어봐야 할지 고민되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일리아는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무실을 나와 본관의 중앙 홀로 내려가자 비올레가 보였다.
“딱 맞춰 왔구나.”
깔끔한 차림을 한 비올레가 일리아를 반겼다. 두 사람은 곧바로 현관 앞에 세워진 마차에 올라탔다.
일리아가 사업을 물려받고 싶다고 뜻을 내비친 후, 비올레는 일리아를 조금씩 경영에 끌어들이려 했다. 그리고 오늘, 비올레가 거래 상대와 협상하는 모습을 견학하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일리아와 비올레는 안내를 받아 응접실로 향했다. 장의자에 앉아 기다리자, 약속 시간에서 15분이 지난 후에야 풍성한 콧수염을 가진 남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남자는 조금 늦었다고 허허 웃으며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따님이시군요. 아름다우십니다.”
일리아를 본 남자가 감탄 어린 얼굴로 칭찬했다. 짤막하게 인사한 일리아는 비올레에게서 미리 들었던 정보를 떠올렸다.
남작인 그는 커다란 숲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곳에 마흐니라는 희귀한 나무가 자랐다. 그 원목은 고급 가구 재료로 쓰였고, 인기가 아주 좋았다. 그리고 이번에 블로든 가문에서 가구 사업을 확장하면서 원목을 안정적으로 공급 받기 위해 협상 자리를 만든 것이었다.
일리아는 기대에 찬 얼굴로 비올레를 힐끔 보았다. 오늘 어머니의 협상 실력을 눈으로 보고 많은 것을 배워 갈 수 있을 터였다. 비올레와 남작은 가벼운 대화부터 시작했다.
비올레는 사담은 적당히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남작이 자꾸만 신변잡기에 가까운 말만 늘어놓았다. 끊어내자니 여기서 굽히고 들어갈 사람은 비올레 쪽이었다. 그것을 뻔히 알고 있는 남작은 자기 이야기만 계속했다.
“그래서 이번에 본 오페라가 참 재미있더군요.”
쓸데없는 말로 시간이 자꾸만 흘러가자, 일리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나서고 싶었지만, 자신은 관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때 가만히 듣기만 하던 비올레가 대답했다.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다고 들었는데, 내용까지 재밌나 보네요. 그러고 보니 그 극장의 무대로 쓰인 재료가 마흐니 원목이었죠?”
비올레는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를 원하는 쪽으로 유도했다.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흐니 원목은 고급 가게에서만 쓰이기로 유명하지요. 그만큼 결이 아름다우니까요. 하지만 워낙 관리하기 까다로운 나무라서…….”
남자는 나무의 가치와 재배법에 대해 나불거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적을 내비쳤다.
“한 그루당 1만 크로엘은 받아야겠습니다.”
남자가 제시한 금액에 일리아는 표정을 굳혔다. 1만 크로엘은 터무니없는 가격이었다. 가공도 되지 않은 나무를 웬만한 가구보다 비싼 가격에 팔아치우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올레는 차분한 얼굴로 대답했다.
“예상했던 가격보다 훨씬 높아서 곤란하군요.”
“이거 참. 블로든이라면 흔쾌히 수락할 줄 알았는데……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그가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비올레를 힐끗댔다. 어차피 아쉬운 입장은 비올레라고 생각하는지 몸을 뒤로 젖힌 채 건방을 떨었다.
“뭐, 저는 아쉬울 것 하나 없습니다. 이미 그 가격을 맞춰준다는 사람이 제법 있었으니 말입니다. 물론 블로든과 우선 협상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일리아는 남작의 행동과 표정을 살폈다. 지금 하고 있는 말은 반절 이상 허풍일 터였다. 비올레는 조용히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남작은 더욱 신이 나서 오만하게 굴었다. 제가 완전히 주도권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등받이에 몸을 기댄 남작은 다리를 꼬아 거만한 자세를 취한 채 단호히 말했다.
“그러니 저는 제시한 가격에서 단 한 푼도 낮출 생각이 없습니다.”
싫으면 지금 나가라는 식으로 남작이 말했다. 한참 말이 없던 비올레가 입을 열었다.
“자세가 비뚜시네요.”
“허리가 좋지 않아서.”
남작이 웃으며 받아치자, 비올레는 가만히 디저트 나이프를 들었다. 그러자 남작의 시선이 나이프에 따라붙었다. 이윽고 퍽, 하고 부서지는 소리에 남작이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한 치의 오차 없이 반듯하게 잘린 케이크와 접시가 눈에 들어왔다. 손가락만 한 디저트 나이프로 두꺼운 접시를 두 동강 낸 것이었다. 허억, 하고 남작이 숨을 들이켰다.
“생각보다 접시가 무척 약하군요.”
비올레가 나이프를 쥔 채 남작의 풍성한 수염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런데 아직도 허리가 안 좋은가요?”
그는 반사적으로 애지중지 기른 콧수염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그리고 뒤늦게 비올레에 대한 소문을 떠올렸다.
한때 천재 검사로 이름을 날렸던 여자. 블로든 백작부인이 된 후에는 도장 깨기 하듯 무례한 거래 상대들을 박살내고 다닌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비올레와 남작의 눈이 마주쳤다. 남작은 저도 모르게 꼬았던 다리를 풀고 허리를 폈다. 그가 똑바로 앉자, 비올레가 턱을 치켜들었다. 상대를 압박하는 기운을 여과 없이 흘려보내며 그녀가 미소 지었다.
“그럼 협상을 계속 해볼까요.”
***
거래가 무사히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이었다. 일리아는 조금 지쳐서 의자에 기대앉았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 정신적으로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고삐 없이 날뛰던 남작은 비올레가 나선 후부터는 훨씬 얌전해졌다. 그래도 간간이 헛소리를 했는데, 비올레는 대답 대신 조용히 디저트 나이프를 들었다.
그때마다 나이프가 한계선이라도 되는 것처럼 남작은 수그러들었다. 그 결과 블로든 측은 원하던 조건으로 협상을 마칠 수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비올레가 일리아에게 물었다.
“오늘 공부는 좀 되었고?”
……아뇨. 참고할 수 없겠던데요.
일리아는 온화한 얼굴로 나이프를 치켜들던 비올레를 떠올렸다. 단숨에 분위기를 휘어잡은 그녀의 기백이 아직도 생생했다. 만약 자신이 어머니를 따라하려면 협상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검술부터 익혀야 할 듯했다.
일리아가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자, 비올레가 다시 질문했다.
“요즘 소공자와는 잘 지내고 있니?”
“……네. 서로 바빠서 그렇지, 매일 보고 있어요.”
일리아는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대답했다. 문제없다는 일리아의 태도에 비올레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많이 걱정했는데…….”
일리아에게서 에반테온 소공자와 사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비올레는 근심 걱정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전쟁터에 나가 있던 카르한은 온갖 악소문을 몰고 다녔다. 전쟁터의 악귀,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함, 매몰차고 차가운 성정.
비올레는 소문만 듣고 카르한 에반테온이 무척 야만적이며 위험한 남자일 거라 생각했다. 나쁜 남자가 잘 꼬이는 체질인 일리아가 드디어 대형 폭탄을 데리고 왔구나 하고 말이다.
그러나 막상 카르한을 만나보니,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사나운 인상이긴 하나 말투는 정중하고 행동은 조심스러웠다. 예절 교육을 잘 받은 도련님도 이 정도는 아닐 듯했다.
무척 인상 깊었지만, 첫 만남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비올레는 여전히 카르한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교제를 반대하진 않았으나 탐탁지 않게 여겼고, 은근히 헤어지기를 바랐다.
그런 나날이 이어지던 중, 우연한 기회에 카르한을 가르치게 되었다. 실은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카르한의 실체를 파헤쳐볼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제게 보여준 행동이 연기라면 당장 쫓아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비올레는 시간이 지날수록 카르한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음을 깨달았다. 야만적일 거라 생각했던 카르한은 무척 순했으며, 풀꽃처럼 여린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카르한은 훈련이라는 이름하에 무자비하게 굴리는 비올레를 걱정하기까지 했다.
-혹시 저 때문에 다른 일을 못 하시는 것은 아닌지…….
한결같은 그의 태도에 마지막까지 박혀 있던 편견의 조각이 빠져나갔다. 결국 비올레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그를 오해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편견이라는 베일을 벗고 보니, 카르한은 다시 없을 천재였다. 평소에는 정중하고 얌전한 성격이었으나, 검만 들면 사람이 돌변했다. 전쟁터의 악귀라는 소문이 사실인 것처럼 오싹한 위압감을 내뿜는 카르한은 비올레를 잔뜩 고양시켰다.
프란체도 검에 재능이 있긴 했으나, 그와는 또 다른 재능이었다. 오랜 실전으로 쌓아 올린 감각과 판단력. 비올레는 자칫 잘못하면 괴물이 될 수 있는 카르한을 제국 최고의 영웅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잠깐의 침묵이 마차 안을 휘감았다. 비올레가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파혼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지?”
창밖을 바라보던 일리아가 고개를 돌려, 비올레를 마주보았다. 비올레는 차분히 앉아 있었지만 눈동자는 서늘하기 짝이 없었다.
“그쪽이 순순히 받아들였을 것 같진 않구나.”
“……얼마 전에 저를 찾아왔어요.”
“리하트 테르시안이?”
일리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파혼해달라고 했는데, 받아들이질 않아서…….”
그 후로 일리아는 파혼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방도를 알아봤다. 리하트는 애매한 쓰레기였다. 도덕은 전부 갖다버렸으면서 쓸데없이 법망 안에서 놀고 있었다. 그 때문에 파혼하려면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일리아는 차근차근 하나씩 준비해 나가는 중이었다. 어느 정도 자료가 모이긴 했지만, 먼저 터뜨렸다간 반격이 돌아올까 싶어 눈치 싸움 중이었다. 무엇보다 승진을 앞두고 있을 헤인리가 걱정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리하트가 돈에 허덕인다는 말이 슬슬 들려왔다. 씀씀이를 줄이진 못하는데, 들어오는 돈이 없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돈을 이용해서 리하트를 괴롭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리아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비올레에게 말해주었다.